나의 힘겨웠던 청춘 시절을 잘 건너갈 수 있도록 힘이 되었던 작가는 니코스 카잔차키스(1883.2.18.-1957.10.26.)였다. 그는 그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 키 높이를 열심히 재고 있네. 사람의 키 높이란 늘 같은 것이 아니라서 말일세, 인간의 영혼이란 기후, 침묵, 고독 그리고 함께 있는 사람에 따라 눈부시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이라네.”
본래 빛의 존재인 인간이 어찌하여 눈부신 자신의 빛을 잃었을까? 카잔차키스는 통장에 수 백억원이 있다고 한들 비밀번호를 몰라 거지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통장의 소유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물음을 주고 있다. 그는 인생을 쓰레기통으로 만들지 않고 보물 창고로 만드는 지혜란 무엇일까?를 치열하게 물었다.
나 자신을 아는 지혜를 얻지 못할 때, 인간은 자신을 자신 안에 가두고 고통을 주는 방식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들은 자신이 지금 추구하고 있는 바를 즉시 명확하게 말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특징이 있다. 그런 태도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대한 의식이 명료하지 못하기 때문에 애매모호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이 애매모호함이야말로 인간 존재의 눈 부신 빛을 어둡게 하는 핵심 요인이다.
바로 이 주제를 거침없이 치고 나간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자신의 삶을 자유와 사랑이라고 말하고 행동했다. 카잔차키스는 독수리와 비둘기, 하늘과 땅, 빛과 어둠, 동양과 서양처럼 상반되고 이질적인 것들을 자신 안에서 통합시키고자 노력한 사람이었다. 그는 크레타섬에 초라하지만 유명한 묘비명을 남겼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Δεν ελπίζω τίποτα.(I hope for nothing) Δε φοβούμαι τίποτα.(I fear nothing) Είμαι λέφτερος.(I am free))
인간은 자신의 감옥에서 벗어나고자 투쟁할 때 의식의 지평을 무한하게 열어갈 수 있다. 바로 그런 사람이 자신은 물론 누군가를 눈부시게 빛이 나도록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육체의 키 높이만 재는 사람이 아니라 영혼의 키 높이를 열심히 재는 사람이다.
- 숨 이병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