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위 잭슨 폴록
예술과 배설
자연과 예술
현대 추상화의 새로운 시작
아침에 차를 보고 경악했다. 새들이 식중독에 걸렸는지, 장염에 걸린 건지, 애지중지하는 차에 배설물 테러를 했다. 오십 평생 처음으로 새 똥의 색깔이 이토록 다양한지 처음 알았다. 뜨겁게 바라보았다. 오늘은 똥에 진심인 하루였다. 요즘 내 인생에 유난히 똥이 많이 개입하는 것 같다.
나쁜 것들 새총을 준비해야 하는 건지 아님 전원 기저귀를 채워야 하는 건지 당황스러웠다. 장소를 바꾸어 주차를 해보았다. 신기하게도 내차만 공격했다. 단체로 전용 화장실로 쓰기로 약속이나 한 것 같다. 코르크 마개로 똥구멍을 막아야 하는 건지 혼란스럽다. 다른 차들은 깨끗한데 일관성 있게 내 차만 공격했다.
산도 4.9 쇠도 녹인다는 지독한 비둘기의 똥이 제일 무섭다. 철판까지 침투해서 부식시킨다니 염산 테러급이다. 심지어 모래 알갱이도 들어 있어서 함부로 닦아서도 안된다. 스프레이로 물을 뿌린 후 정성껏 닦아야 한다. 뭐든 정성이 제일 중요하다. 색깔도 찬란했다.
물감을 마구 흩뿌리는 퍼포먼스의 대가 잭슨 폴록이 생각났다. 무의식과 우연이 만들어낸 취기 어린 위대한 기법을 도입했다. 그냥 세차하기엔 화려한 캠퍼스 같아서 망설였다.
잭슨 폴록은 미국을 상징하는 대표 행위예술가이다. 언제나 만취 상태에서 그림을 그리는 그의 모습은 신들린 사람 같다. 드립핑 기법 개발자이다. 현대 추상화의 새로운 창을 열었다. 광기 어린 신세계를 펼쳤다.
1947년 마룻바닥에 편 화포 위에 공업용 페인트를 떨어뜨리는 '드리핑' 기법을 창안해 하루아침에 유명해졌다. 잭슨 폴록은 바닥에 천을 놓고 막대기에 물감을 묻힌 뒤에 사정없이 흩뿌리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이렇게 완성된 그림은 어떤 형체는 보이지 않고 마치 실타래가 엉킨 듯한 물감 자국만이 남았다.
입에는 담배를 물고 신을 신은 채로 캠퍼스 위들 달리며 물감을 뚝뚝 떨어 뜨리는 모습은 경이롭기만 하다. 실타래처럼 꼬이고 또 꼬이는 그림은 뒤틀어질 대로 뒤틀린 내 삶을 보는 것 같다. 얼마나 더 열심히 살아야 신은 이 실타래를 풀어 줄까?
한스 나무스가 이 방식으로 작업하는 폴록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 후대에 '액션 페인팅'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평론가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폴록의 작품이 회화의 기본(평면성, 비재 현성)을 제대로 드러내 보인다며 극찬했다.
그린버그가 좋아한 회화는 입체적으로 보이지 않고 어떤 자연세계 속 대상을 재현하지 않는 그림이었는데, 폴록의 추상표현주의 회화가 딱 여기에 들어맞았던 것이다. 추상화의 가치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미국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하늘의 잭슨 폴락처럼 예술적으로 똥을 싸질렀다.
펜트하우스(Penthouse)는 아파트, 호텔 등의 고층 건물의 최고층에 위치한 고급 주거 공간이다. 펜트하우스는 최고층이라는 이점으로 인해 가장 좋은 전망을 보유하는 특징을 지닌다. 새들의 테러 장소를 올려다보니 그들의 펜트 하우스가 있었다. 창공을 향해 손을 뻗은 거대한 나무 위에 그들 만의 집이 있었다.
똥도 제대로 정성껏 싸면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 잭슨 폴록이 현대에 와서야 알아낸 것을 새들은 고대부터 창공을 나르며 드리핑 기법을 행해왔던 것이다.
예술과 배설의 경계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인간의 욕망이 그의 그림을 천문학적 가격까지 올려놓았다. 그는 좋은 아내를 만나 세상의 인정을 받았고 새로 만난 애인으로 모든 것을 잃었다. 과거의 모든 틀을 깨뜨리고 행위 예술의 신 개척로를 열었다.
1956년 8월 4일 애인과 함께 만취 상태로 운전을 하던 그는 자작나무를 받고 사망한다. 미국 화단의 전설이 된 그의 작품을 아내는 모두 박물관에 기증하였다. 그의 그림은 미술세계의 영역을 새로운 세계로 이끌었으며 또 다른 차원의 문을 열었다.
자연은 오래전부터 우리들의 스승이었으며 자연을 닮아가는 미술이야 말로 진정한 예술이지 않을까?
새들의 펜트 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