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성인지 감수성의 부재로 사회 지도층에 있는 분들이 사회적 지탄을 받은 경우가 있었다. 일상생활에서 성별 차이로 인한 차별과 불균형을 감지하는 민간성이 부재하여 나타난 일들이다. 성별 간의 불균형에 대한이해와 지식을 갖춰 성차별적 요소를 감지해 내는 교육이 필요하듯이 <왜요, 그 말이 어때서요?>에서 저자 김청연님은 '언어 감수성'을 강조하고 있다.
언어 감수성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아직 정립되어 있지 않다. 다만 감수성이란 뜻이 외부 세계의 자극을 받아들이고 느끼는 성질이라고 정의 되듯이 언어 감수성은 내가 하는 말을 듣고 상대방이 어떻게 느낄까 스스로 점검할 수 있는 정도로 말할 수 있겠다. 내가 무심코 내뱉은 말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고 불편하게 느낄 수 있다고 여기며 스스로 말 한마디라도 조심스럽게 한다면 그 사람은 언어 감수성이 예민하다라고 말할 수 있다. 반면, 뭘 그런 것까지 생각하느냐, 나는 그런 의미로 말한 것이 아니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다면 언어 감수성이 없다라고 볼 수 있겠다.
저자가 언어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가 한 말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를 언급한 것은 우리가 쓰는 말이 곧 그 사람의 존재를 결정짓기 때문이라는 말에 큰 공감이 되었다. 차별과 불평등을 자아내게 하는 말들은 곧 상대방의 존재를 타인과 구분짓게 하는 것임을 언론을 통해 익히 들어온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면 다른 사람을 비하하기 위해 ~충이라고 벌레를 연상하게 하는 말들은 곧 상대방을 인간 이하의 것으로 취급한다는 이야기다. 피부와 언어로 사람을 구분하는 인종주의도 우리가 쓰는 언어를 통해 널리 전파되고 있다. 직업을 비하는 말들, 직업의 귀천을 따지는 습관적인 말들, 정상이 아닌 것들을 스스로 정해 비정상적인 것들을 당연시하는 말들은 어느새 자주 사용되어 지고 언급되다보니 고착화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말 한마디의 위력이 결국 사회 전체 분위기를 좌지우지 할 수 있음을 실감한다.
"언어라는 게 자기도 모르게 새 일상 속에 자리를 잡고, 습관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때론 '낯설게 보기'를 하면서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음" 을 저자는 지속해서 반복하여 강조한다. 언어 감수성이라는 말이 나오면 내 자신도 자유로울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을 웃기게 한다는 이유로 아무렇지도 않게 비하했던 말, 1학년 담임교사는 아무래도 여자가 해야 한다는 성고정관념,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암암리에 구분짓는 말, 출신대학을 강조하며 학벌과 외적 조건을 은근히 선호하며 했던 무수한 말들. 이런 말들이 누군가에게는 상처와 아픔이 될 수 있었음을 반성하게 된다. 내가 한 말이 개인이 한 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 자리를 잡게 만드는 단초가 된다면 그것만큼 후회되는 일이 또 있을까 싶다. '낯설게 보기'. 당연한 것처럼 통용되는 말들을 다르게 깊게 생각해 보면 곧 차별이 될 수 있고 불평등을 조장하게 만드는 말이 될 수 있음을 다시 깨닫는다.
직장인들이라면 한 번 쯤이면 읽어보셨으면 한다. 특히, 직장내 리더십을 가지신 분들이거나 또는 리더십을 발휘할 예정이신 분들은 꼭 한 번 읽어보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