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8 - 아라시야마 대나무숲 치쿠린에서 다케시마의 유래와 시인 바쇼를 생각하다!
2024년 9월 19일 교토 에서 렌터카로 긴카쿠지(銀閣寺 은각사) 를 보고 철학의 길 哲學の道 을 걸은후
아라시야마 (嵐山 あらしやま) 로 왔는데.... 인파를 헤치고 걸어서 덴류지(천룡사) 에 도착합니다.
텐류지 天龍寺(천룡사) 는 무로마치 막부 쇼군 아시카가 다카우지 가 적인 "고다이고왕(천황) 의 명복"
을 빌기위해 지었다는데..... 최종 승리자인 다카우지가 민심 수습 을 위헤 교토에 절을 세운 것입니다.
그런데 관람료 가 비싼지라 딸과 손주등 7명이 다 들어가기는 무리인데다가 늦더위로 손주들이 기진맥진했으니
입장은 못하고.... 북쪽으로 올라가 좀 시원한 치쿠린 으로 찾아가니, 기대했던 대로 여기는 무덥지 않습니다.
북쪽에 아라시야마 치쿠린, 竹林 の小經(죽림노소경) 이라고 불리는 대나무숲 은 시원한데다가 정적이라
좋으며, 여기서 더 올라가면 수풀이 우거진 산의 출발점을 따라 작은 절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답니다.
여기 아라시야마 치쿠린 (竹林 の小經) 은 대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있는데, 일본 竹刀(죽도) 의 90%
를 만든다는 이른바 사가의 죽림 으로..... 영화와 CF 에도 자주 등장하는 엄청 유명한 곳입니다.
대나무 숲을 거닐다 보니 문득 생각나는게, 일본 사람들은 대나무 라고는 한
뿌리도 자라지 않는 "독도를 왜 다케시마(竹島 죽도)" 라고 했을까 하는
의문이 떠오르는데..... 하지만 모든 말에는 다 그 "연유" 가 있기 마련이지요?
진태하 선생은 '漢字學全書(한자학전서)' 에서 한 분야에 10년을 전념하면 프로의 세계 에 입문
하게 되고 20년을 하면 강호에 나가서 일방적으로 얻어맞지는 않으니 때리기도
하며 30년을 정진하면 대가의 반열에 오르고 50년을 하면 접신(接神) 의 경지 에 도달 한답니다?
진 선생의 주장 가운데 "독도(獨島)" 의 이름이 어떻게 해서 독도가 되었나를 밝힌 부분이
흥미로운데.... 원래는 '독섬' 으로 불렸다는 것이니, 고대에 이 섬을 지나다니는 뱃사람
들이 붙인 이름으로 섬에 나무가 없이 바위 로만 이루어졌기 때문이니 "돌섬" 을 의미합니다.
“돌(石)” 의 방언이 "독" 이니 우리나라 중남부 지방의 사투리에서는 '돌' 을 '독' 으로 발음 하는데
독도는 경상도와 전라도 뱃사람 들이 섬을 지나다니다가 붙였던 이름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독섬' 으로 불려오던 이름이 대한제국 시대에 한자 이름으로
바뀌면서 '石島(석도)' 로 되었는데, 그러다가 다시 소리 나는
대로 ( 借音表記 ) 바꾸었으니..... '독섬' 이 '獨島 독도' 가 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대나무 가 있는 것도 아닌 섬에 왜 대나무 竹(죽) 자를 넣었을까요?
독도를 竹島(죽도) 로 표기한 경위를 살펴보자면, 대나무 원산지는 동남아시아 인데
점점 북상하여 중국 남방으로 올라왔으니 중국 남방에서는 竹을 'tek 텍' 으로 발음합니다.
이 'tek 텍' 이 일본에 들어와서는 종성(終聲) 을 분리 하여 발음하는 습관에 의하여
'다케' 로 발음이 되었고.... 반면에 한국에 들어와서는 입성(入聲)
이 탈락된 뒤 에 들어온지라 '대' 로 발음하게 되었다는 것이 진 선생의 주장 입니다.
우리나라 뱃사람들이 '독셤' 이라고 발음하는 것을 일본 사람들이 듣고 전하는
과정에서 '도케시마' 로, 이것이 다시 '다케시마' 로 정착되었으니
다케시마를 일본식으로 표현하면.... '竹島 죽도' 가 되었던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독도에는 대나무가 전혀 없으므로 대나무 竹(죽) 자가 전혀 필요가
없는데도, 우리말의 '독섬' 을 들은 일본 사람들이 소리 나는 대로 전하는
과정에서 '다케시마(竹島 죽도)' 로 되었다는 것이..... 바로 저 책에 나옵니다.
그럼 우리 섬인 독도에 어떻게 일본 어부들이 온것인지 궁금한데.... 1618년 호키번 태수 마쓰다이라
신타로는 막부에 문의한후 돗토리현 요나고의 오오야가(大谷家) 와 무라카와가(村川家) 에게
“竹島(죽도) 도해봉서” 를 발급하니 어업 면허 로, 독도를 주인 없는 무인도 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요나고 어부들은 독도 어업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울릉도에 상륙해 고기를 잡고 약초를 캐며 삼림을 벌채해서
겨울이 되면 돌아갔던 것이니 조선이 울릉도에 “공도정책(空島政策)” 을 썼기 때문인데, 숙종때 1693년
어부 안용복 이 고기를 잡으러 울릉도에 갔는데... 왜인들이 어업 중에 섬에 정박한 것을 보고 항의하다가
왜인들에게 잡혀서 오키(隱岐) 섬을 거쳐 돗토리현 요나고로 끌려가 울릉도는 조선땅 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일본인이 안용복을 잡아간 것은 울릉도가 무인도라 평화롭게(?) 어업과 벌목을 하는데 갑자기 조선인
이 쳐들어와 행패 를 부리니 일본 관청에 신고해 벌 을 주려는 것이고, 두번째는 일본 정부에서
조선에 공문을 보내 다시는 조선인들이 울릉도에 나타나지 못하게 달라는 것인데..... 정반대로
호키슈 태수는 막부에 문의하고는 울릉도는 조선땅 이니 가지 말라고 명하니 혹 떼려다 혹 붙인격이라?
울릉도는 고려시대 함경도에 거주한 여진족 들이 해적이 되어 강원도 동해안과 일본 서해안에 규슈까지
약탈하는 중에 들러는 섬이라 사람이 살수 없었는데... 일본은 도이(島夷) 라 부르니 1019년 3월
도이인(刀伊人 여진족) 들이 50척의 배를 타고 쓰시마(대마도對馬島) 에 쳐들어 왔다고 기록했는데
저 약탈을 하던중 1018년에 울릉도에서 무자비한 약탈로 우산국 주민들은 궤멸적인 타격 을 받았습니다.
1022년에는 요행히 살아 남았던 우릉성주와 아들 부어잉다랑등 주민 들이 섬을 나와 고려로 귀부 했는데
1420년 조선 태종과 세종 임금 때 먼 섬은 풍랑으로 왕래도 어렵고 세금도 빈약한데 관리를 파견해
다스리는 비용은 높은데다가 왜구까지 준동하니.... 쇄환령 을 내려 울릉도 주민을 육지 로 옮긴 것입니다!
여진족이 함경도에 거주한 것은.... 고려 초기 국경선이 서쪽은 황해도이고 동쪽은 원산 이니 평안도
와 함경도는 여진족 들이 수백년간 대를 이어 살았는데, 고려 태조 왕건은 사람들을 평양에
보내 목책을 두른후 남쪽 백성들을 옮겼으니... 고구려 멸망후 당나라는 고구려인들을 중국땅
으로 잡아간지라 수백년간 평양 일대는 황무지 로 변해 사람이라고는 살지않는 황폐한 땅 이었습니다.
그래도 울릉도는 조선땅이니 3년에 한번 순찰선 을 보내 섬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잡아와 감옥에 넣다가
이후 순찰선이 뜸하니 일본인들이 상륙하기도 했는데, 고종은 1882년에 검찰사 이규원 을 보내니,
조선인 140명과 일본인 78명을 적발해 쫓아낸후 466년간 계속된 공도 정책을 포기 하고는 1883년
4월에 전라도와 경상도 조선인 16호 54명을 울릉도에 이주 시키니 오늘날 울릉도민의 조상들 입니다.
시간만 있다면 도롯코열차 (Right Seat ) 타고 계곡 강변 풍경을 구경하는게 좋으니 도중에 도롯코 카메오카
에키 トロッコ 龜岡 역에 하차해서 도보 10분 거리인 JR 카메오카 龜岡駅 에서 기차를 타고 교토역
으로 갈수 있는데.... 실제는 JR 우마호리역 JR 馬堀駅 이 더 가까운 것 같지만 우린 그냥 남쪽으로 걷습니다.
관광객들로 붐비는 도로를 10분을 걸어서 드디어 목조로 된 길이 154m 폭 12m 도게츠교 渡月橋 (도월교)
를 건너는데..... 다리를 건너면 아라시야마코엔 嵐山公園(풍산공원) 오른쪽에 공중 화장실 이 있습니다.
가쓰라강 위에 다리 이름이 도게츠교 渡月橋 (とげつきょう 도월교) 인 것은 헤이안시대에 일왕이
이 강에서 달 구경을 하면서.... 마치 달이 다리를 건너가는 것 같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아라시야마 (嵐山 あらしやま) 의 중심부를 흐르는 가쓰라강에 가설되어 있는 도게쓰교 는 여기
아라시야마의 상징이니...... 많은 관광객들이 다리를 거닐며 풍경을 즐기는 모습을 봅니다.
아라시야마 (嵐山) 는 북쪽으로 게이후쿠 전기 철도 를 통해 교토시 중심부에서 접근이
가능하고, 남쪽으로는 한큐 아라시야마선 을 통해 오사카 쪽에서도 접근할수
있으며, 또한 JR 사가 아라시야마역 을 통해 교토역에서 북쪽으로 접근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여기 호즈강 保津川(보진천) 강변에는 관광객들을 태우는 보트(유람선) 들이 정박해 있는데... 이 강은
상류는 오이가와강이라 하고 중류는 호즈가와강이라 부르며 하류는 가쓰라가와강 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오래전 헤이안시대 (794년 1185년)~ 부터 귀족들은 궁중을 벗어나 여기 강의 중류인 한적한 강변에서
보트를 타는 풍습이 있었으니..... 배를 타고 내려가면서 호즈강 협곡의 경치 를 즐겼다고 합니다.
호즈가와강 협곡에는 백명의 시인들이 한편씩 쓴 일본 와카 백편 이 있으니 배경이 되는 산 이름을 따서
오구라 햐쿠닌 이라 부른다고 하며.... 또 와카의 시인 인 바쇼 (芭蕉 파초) 도 이 강에 왔었다고 합니다.
하이쿠 시인 바쇼 는 일본 각지를 유랑하며 많은 시를 썼으니 그의 흔적을 여러 곳에서 보았는데
첫번째는 센다이 仙台(선대) 북쪽에 일본 3경 마쓰시마 松島(송도) 이니 1689년에 찾은
시성(詩聖) 마쓰오 바쇼 는 기행문집에 일본에서 경치가 제일 아름다운 곳 이라 예찬했다고 합니다.
시인 바쇼는 이가국 출신으로 하이쿠 에 뜻을 두어 1678년 하이쿠의 스승으로 독립하는데
하이쿠에 높은 문학성을 부여한 쇼풍(蕉風) 을 창시하였으니 여행 체험과 감상을
하이카이(俳諧) 와 하이분(俳文) 으로 엮어 쓴 “오쿠노 호소미치 (奥の細道)” 가 있습니다.
바쇼에게 여행 목적은 옛 노래 "와카의 명소" 를 방문하고 전란의 격전지를 찾아 죽어간 선인
들의 "영혼을 진혼" 하는 것이었는데, 본문에는 자연의 실제 풍경과 와카 속에 읊어진 풍경
이 중첩되어 그려지니 옛 가인들의 시정(詩情) 과 교감 하면서 자신의 문장으로 재현한 것입니다.
바쇼 하이카이 세계는 세속을 떠나 자연에 칩거하면서 자연에 몰입하여 그 아름다움을
찬미하지만 자연과 합일하는 모습 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데, 바쇼의 하이카이
에는 세속적인 해학성과 함께 또 인간으로서의 고독과 우수 가 깃들어 있다고 말합니다.
"인간의 이치" 에 더 관심이 있었으니 시간 흐름을 초월해 고인들의 정취에 공감하려는
것이었다는데....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 라고 불리는 “하이쿠(俳句)” 는
5· 7· 5 단 열일곱 자로 이뤄진 일본의 정형시이니, 바쇼의 하이쿠 일곱편을 옮겨 봅니다.
“유별나구나/ 향기도 없는 풀에/ 머무는 나비”
“오래된 연못/ 개구리 뛰어드는/ 물소리”
“고요함이여/ 바위에 스며드는/ 매미의 울음”
“소금 절인/ 도미 잇몸도 시리다 /생선 가게 좌판”
“방랑에 병들어/ 꿈은 시든 들판을 /헤매고 돈다”
“가진 것 하나/ 나의 생은 /가벼운 조롱박”
“들판의 해골 되리라/ 마음먹으니 몸에/스미는 바람”
두번째는 그의 고향 이자 "닌자 忍者 의 고향 이가 伊賀" 로 가는데 마이바라 米原 에서 쿠사쯔
草津(초진) 로 가기 위해 기차로 쯔게 柘植(척식) 에서 내려 환승하는데.... 쯔게 拓植 ツゲ 는
712년에 백제 유민인 오노 마려가 편찬한 고지키 古事記(고사기) 에는 都祁(도기) 로 나옵니다.
그런데 720년 일본서기 나 이후의 속일본기에서는 竹鷄 (죽계), 鬪鷄(투계) 로 나옵니다
竹鷄(죽계) 라면.... 바로 鷄林(계림) 을 뜻하니 곧 서라벌이라 신라인 들이 나라를
세운 곳이라고 여겨지는데.... 근처에 "시라기촌 白木村(백목, 신라)" 도 있다고 합니다.
역사에는 닌자 忍者 캐릭터 들이 보이는데 JR 간사이혼센 가모행 関西本線 기차를 타고
역시 닌자의 고향 "코가(甲賀 갑하)" 를 지나니 70개 유파중에 으뜸은, 우리가 가는
곳 이가류(伊賀) 우에노 인데 이가우에노 伊賀上野 역에 내려 코인로카에 배낭을 넣습니다.
이가우에노역 앞에는 마쓰오 바쇼 (松尾 芭蕉) 의 고향 이가시 라는 비 가 서 있으며 사철 (私鐵) 기차표
를 끊어 우에노시 上野市(상야시) 에 도착해 이가우에노성 伊賀上野城 을 찾으니 이가류(伊賀) 의
두령 핫토리 한조 는 1569년에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도와 큰 전공을 올려 영지를 얻어서 세운 성입니다.
세번째는 기후시의 기후코엔 岐阜公園 에 나가라가와강 長良川(장량천) 을 찾았는데 옛날부터 알아
주는 가마우지 낚씨 인 나가라카와 우가이 (長良川鵜飼) 를 볼수 있는 곳으로, 마츠오 바쇼
(松尾芭蕉) 도 구경하고는 유명한 시를 남겼으니.... “ おもしろうて やがてかなしき 鵜舟かな ” 라!
네번째는 후쿠이현 남부 쓰루가 (敦賀)에 도착해 게히진구 氣比神宮(기비신궁) 를 찾아
유랑 시인 바쇼의 동상 을 보았으니..... 그가 이곳 쓰 루가를 찾아 남긴 시 들입니다.
빛에 들리는 신궁의 종소리 바다 속에 잠기노라 月いつこ鐘八沈る海の底」
「이름난 기비의 달, 별안간에 다시 찾아 왔노라 名月や北國日和定なき」
「중산을 넘어 월국(=후쿠이)으로 8월마다 가고 싶어라 中山や越路も月ハまた命」
「비 내리는 기비여, 달도 없고 씨름도 없네 月のみか雨に相撲もなかりけり」
「옷 압은 채 조개잡이 여덟 밫깔의 달 衣着て小貝拾ハんいろの月」
「눈물 난다. 갈 때마다 밟히는 모래벌의 이슬 なみだしくや遊行のもてる砂の露」
다섯번째는 야마가타 (山形) 역에서 기차로 야마데라(山寺) 역에 내려 산으로 들어가 릿샤쿠지 (立石寺)
절에 도착해 1000단이 넘는 긴 돌 계단을 오르는데.... 일본을 대표하는 가인(歌人) 마츠오 바쇼
(松尾芭蕉) 노래의 무대 가 되었으며, 여섯번째가 여기 아라시야마의 호즈강 保津川(보진천) 강변 입니다.
그러고는 봉풍당(峯嵐堂) 가게로 들어가서는 아이스크림과 음료수 를 시켜서 갈증을
달래는데..... 가게에 걸린 사철 풍경 사진 을 찍으며 잠시 쉬고는, 다시 주차장으로
가서 주차료 1,040엔을 내고는 렌터카에 올라 동쪽 킨카구지(금각사) 절에 도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