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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다가오시는 하나님
(창 17:1-8)
어떤 교회에 새로 부임한 목사가 한 성도의 집을 방문하였습니다. 목사가 다녀간 후 남편이 직장에서 돌아오자마자 아내가 말했습니다.
“오늘 새로 오신 목사님이 다녀가셨어요.” “목사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소?” “목사님은 ‘이 가정에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까?’라고 물으셨는데, 전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어요.”
이 말을 들은 남편의 얼굴은 씨뻘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그럼 당신이 우리 가정은 전통적으로 신앙이 있는 가문입니다라고 이야기하지 그랬어.” “저도 처음에는 그러려고 했는데 목사님이 물으신 건 그런 물음이 아닌 것 같았어요”
“아 그러면 우리 식구들은 매일 기도하고 열심히 성경을 읽고 있다고 하지 그랬소.” “그렇지만 여보, 그것도 목사님이 질문 하신 것은 아니잖아요?”
남편은 정말 답답했습니다. “그럼 당신은 우리 식구들이 매 주일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고 하지 그랬소?” “아니예요, 목사님이 물으신 것은 우리 집에 하나님이 함께 계시느냐는 것이었어요.”
이 부부는 목사님이 물으신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민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그들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부부는 하나님을 갈망하게 되었고,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었으나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함께 계시다는 것을 매일 느끼면서 감격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믿고 사는 것과 그냥 종교적으로 교인으로 사는 것과는 매우 다릅니다. 형식적으로 종교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고 사는데 이르러야 합니다.
본문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부름을 받은 지 거의 24년이 지나 99세에 이르고 아내 사라가 89세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이 만나셔서 주신 말씀입니다.
당시 아브라함은 13년 전에 아내의 몸종 하갈을 통해서 아들 이스마엘을 낳아 그가 13세가 되어 법적으로 상속자를 확보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를 통해 자식을 낳기를 원했고 하나님은 약속해 주셨지만, 아브라함은 아내가 아들을 낳지 못하자 편법으로 아내의 몸종을 통해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계시로 가나안까지 왔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았으나 그만 첩의 아들 이스마엘과 함께 소시민으로 그럭저럭 살았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이 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통해 신앙의 매너리즘에 빠져 살아가는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를 않습니다. 공부를 잘했다고 세상을 유능하게 사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공부를 안 한 사람이 더 나은 것도 아닙니다.
우리 인간은 한계가 있습니다. 내 힘만으로 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아브라함은 본처를 통해서는 아들을 못 낳고 첩을 통해 낳고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아 이제 거의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의 아내가 89세가 되었으니 무슨 기대를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므로 아들 문제는 더 이상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럭저럭 산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입니다.
아들 문제를 더 이상 기대하지 않은 체념 상태, 이것이 문제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창17:1)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히브리어로 “엘 샤다이”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에 대해서 처음으로 나오는 말씀입니다.
‘엘’이라는 ‘능력의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샤다이’는 그 어원이 ‘샤르’라는 말로 ‘어머니 젖가슴’이나 ‘깊은 계곡에 있는 산’을 뜻합니다. 그래서 엘 샤다이는 어머니처럼 넓은 가슴으로 양육해 주시는 능력이 있는 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연약한 것들에게 살며시 다가와 주시는 어머니 같은 분입니다. 이 분은 능력이 있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체념하여 살고 있을 때 그들 곁에 살며시 다가와 그들을 건져 주시는 어머니 같은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어머니같이 성도들을 보호하시기에 ‘교회는 어머니이다’라고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칼빈은 “교회를 어머니로 받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받을 수 없다”고 말하며 교회를 높였고, “교회인 이 어머니가 우리를 잉태하고 출산하고 그의 젖으로 양육한다”(4권 1장 4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어머니들은 능력에 한계가 있습니다만 하나님은 다릅니다. 그는 말씀으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이 분이 우리의 위기의 순간에 다가 오시면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오늘날 우리가 처해 있는 위기는 무엇입니까? 그런 위기 때문에 실망과 체념에 빠져 있는 이는 없습니까? 엘 샤다이의 하나님이 도와 주시면 그 어떤 문제에서도 일어 날수 있습니다.
아무리 꿈을 잃고 절망에 빠진 사람도, 인생에 실패하여 도저히 살 수 없는 지경에 빠진 사람도 엘 샤다이의 하나님이 함께 계시면 새 힘을 얻어 위기를 하나님의 축복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어떤 마을에 큰불이 나서 모든 가옥을 태워 버릴 기세로 번지고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기적을 행하는 현자로 알려진 목사가 사는 움막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제발 기적으로 불길을 잡아주도록 애원했습니다.
하지만 목사는 시큰둥할 뿐 놀라는 기색이 전혀 없었습니다.
애가 탄 마을 사람들은 목사에게 통사정을 했습니다. “제발, 불 좀 꺼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 주세요.” 목사는 말없이 움막으로 들어가더니, 평소에 엮어 두었던 갈대바구니 여러 개를 손에 들고 나와 그것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이런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길이 없어 놀라고 어리벙벙할 뿐이었습니다. 그러자 목사가 말했습니다. “지금쯤 마을이 몽땅 타 없어졌을 거요. 각자 집으로 돌아가서 숯을 긁어모으도록 하시오. 집에서 남은 것이라고는 그것밖에 없을 터인즉.”
군중은 화가 나서 소리 질렀습니다. “당신 지금 우리를 놀리고 있는 거요?” “비극이란 거꾸로 뒤집힌 하나님의 축복인 거요.” 목사는 거침없이 말을 이었습니다. “이미 겨울이 목전에 닥쳐왔으니, 인근의 수많은 마을은 숯이 절실하게 필요할 거요. 그들에게 숯을 팔아서 돈을 넉넉히 벌어들이시오. 그 돈이면 훨씬 크고 멋진 집을 지을 수 있을 거외다.”
사람들은 돌아와 수도자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마을에 돌아오니 정말로 집은 몽땅 타서 없어진 상태였습니다. 그들은 저마다 숯을 주워 모았고, 그것을 인근 마을로 가져다 팔았습니다. 그리하여 번 돈으로 한결 크고 멋진 집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무서운 경제적 위기에서 갈 길을 잃고 방황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하셔서 그들을 고통의 긴 터널에서 건져 내실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은 우리의 미래를 책임지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기에서 건져 새 힘을 주시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희망적인 미래로 이끌어 주십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셨다는 것은 단지 아브라함이 자신의 정실 사라에게서 아들을 하나 낳게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좀 더 큰 계획이 있었습니다.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창17:2).
하나님의 이 말씀은 아브라함을 심히 번성케 한다는 축복이었습니다. 얼마나 대단하신 하나님이십니까? 아브라함 그는 고향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으로 가서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가나안에 처음 왔을 때 흉년이 되어 그가 그렇게 그리던 가나안을 떠나 이집트에 갔으나 먹고 살기 위해 거짓말로 아내를 누이라고 하여 이집트 왕 바로에게 빼앗길 뻔했습니다.
하나님의 신기한 기적으로 아내를 찾고 많은 재산을 벌 수가 있었습니다. 그가 많은 재산을 가지고 다시 애굽을 떠나 가나안에 왔으나 조카 롯과 헤어질 때 푸른 요단 들판을 양보하고 갈 바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창13:14-15).
하나님은 어려울 때마다 나타나셔서 힘을 주시고 미래의 번영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번영토록 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유럽을 비롯한 기독교 국가들에게 엄청난 번영을 주셨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의 선진국들은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에게도 이런 번영을 주실 것입니다.
또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창17:5).
아브람이란 말은 ‘높은 아버지’라는 뜻이요 아브라함이란 말은 ‘많은 민족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세계 민족 속에 뛰어나게 만들어 세계에 영향을 미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유럽과 미국은 아브라함과 같은 축복을 받았지만 세계에 좋은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니라 힘없는 나라들을 식민지로 삼는 우를 범했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의 후손들인 이스라엘은 힘을 주변나라를 공격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하나님을 향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번성케 하시고 하나님이 세계에 좋은 영향력을 미치도록 간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미래에 번성할 것을 말씀하시면서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17:1)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표준새번역이나 공동번역에서 “흠 없이 살라”고 번역했고, 현대어성경에서는 “너는 언제나 내 앞에서 살아가도록 하여라 내가 항상 네 앞에서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도록 하여라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를 생각하며 살아라 그리고 바른 길만 걷도록 하여라”고 풀어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완전하라고 하셨는데 실상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게 살지를 못했습니다. 인간은 그 누구도 완전하게 사는 사람이 없습니다. 흠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완전하게 살라고 하셨나요? 우리 인간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있다는 것을 알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불원간 하나님 앞에 가서 선악 간에 판단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심판하실 때 우리는 오른편과 왼편으로 구별을 받을 것입니다. 오른편에 구별을 받은 자에게 말씀하신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고 하시니 오른편에 구별 받은 의인이 “언제 내가 그렇게 했습니까?”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때 주님이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25:31-40)고 하셨습니다.
“돈으로는 딱 한번 칼국수 한 그릇씩 먹은 일 밖에는 없습니다.” 삼척시 도계읍에서 홀로 사는 세 할머니가 폐지를 팔아 꼬박꼬박 모은 150만원을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최근 자신들이 다니던 도계장로교회에 기탁했습니다. 교회는 이들을 멋지고 자랑스런 할머니 삼총사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이 세 삼총사가 폐지 모으기에 나선 것은 지난 봄입니다. 온 동네를 다니며 버려진 종이상자와 고물을 모았습니다. 무더위가 극성을 부린 여름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자신들 보다 훨씬 덩치가 큰 폐지덩이를 손수레에 나르는 등 일을 쉬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차곡차곡 모은 돈이 목표한 금액에 달하자 할머니 삼총사는 목사 면담을 요청,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써달라는 부탁과 함께 150만원이 든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사단법인 선행칭찬운동본부의 ‘칭찬합시다’ 코너에 이런 경험담이 실렸습니다. 초등학생인 소영(엄소영)이는 매주 토요일 노원역으로 논술학원을 갑니다. 논술학원 앞에는 자장면이 1500원밖에 안하는 중국집이 있는데 맛도 무척 좋아서 자주 소영이가 애용했습니다.
어느 날, 근처에 있는 롯데백화점에 쇼핑 나오신 엄마와 만나서 소영이가 한턱 쏘려고 그 중국집으로 갔습니다. 자장면 두 그릇을 시키고 맛있게 먹고 있는데 딱 보기에도 옷이 허름한 할머니께서 들어오시더니 “지금은 500원 밖에 없는데 먼저 먹고 천원은 나중에 내도 됩니까?”하고 물어 보셨습니다.
처음에는 옷도 허름하고 잘 안 씻은 것 같은 그 할머니가 무서웠지만 그 얘길 듣고 나니 그냥 자장면을 먹고 싶은 소영이의 마음과 같은 마음이란 걸 소영이는 느꼈습니다.
그때 주인 아줌마께서 환하게 웃으시며 “저희 가게는 원래 5시부터6까지는 돈을 받지 않아요. 이 학생도 지금 공짜로 먹는 것인 걸요~”라고 하시면서 소영이를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평소 학원이 끝난 시간인 5시부터 6시 사이에만 그 가게에 갔었는데 공짜로 먹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아줌마께서 할머니께 공짜음식을 대접하고 싶으셨나 봅니다.
그 할머니는 “정말이오?”라시며 정말 기뻐하셨습니다. 할머니는 정말 씹지도 않으시고 자장면을 드셨습니다. 얼떨결에 소영이는 돈을 안 냈습니다. 오히려 평소 소영이가 계산할 때 표정보다 할머니를 보시며 더 활짝 웃으시는 아주머니가 참 존경스러웠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에게 잘 하는 것이 주님 앞에서 완전하게 사는 것입니다. 더욱이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구원받지 못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구원받지 못한 영혼을 구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수 많은 선교사들이 생명을 내 놓았습니다. 그들의 고귀한 순교와 피로 우리가 영광된 구원에 이르렀으니, 우리도 나가서 복음을 전해야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어떠한 위기를 맞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켜 주시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해 주신 것은 우리의 축복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분의 증인이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느 때건 어느 장소이건 복음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전하여 그분의 생명을 구원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