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포의 새벽 편지1794
신심명-022
동봉
제3칙
제2장 위순違順
제1절
어긋남과 수순함이 서로다투면
이것이곧 마음병이 되고마나니
그윽하고 심오한뜻 알지못한채
쓸데없이 고요함만 마음에두네
위순상쟁違順相爭
시위심병是爲心病
불식현지不識玄旨
도로염정徒勞念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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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식현지不識玄旨
도로염정徒勞念靜
대관절 현지玄旨가 무엇이기에
현지를 이해하지 못하면
고요에 드는 것이 헛수고일까
이를 다른 말로 풀이하면
현지를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그동안 닦아온 수행력이
헛수고일까 아닐까가
정해진다는 것이다
만약 현지를 모른다면
고요세계에 머무를지라도
모두가 부질없는 짓에 불과하다
이 말을 뒤집어 생각할 필요가 있다
현지玄旨의 검을 현玄을 살펴보자
검을 현玄 자는 검붉다의 뜻이다
단순하게 '검다'가 아니라
영어 다크Dark에 해당하듯
가믈가믈, 또는 가물가물의 뜻이다
아이에게 묻는다
'넌 밝은 게 좋아, 컴컴한 게 좋아?'
아이가 답한다
'밝은 게 좋아'
다시 묻는다
'넌 까만 게 좋아, 하얀 게 좋아?'
'난 하얀 게 좋아'
또 한 번 묻는다
'넌 먼 게 좋아 가까운 게 좋아?'
'난 가까운 게 좋아.'
물음에 두 가지를 설정하고
한 가지 답을 유도한다
이들 두 가지는 서로 다르다
하나는 선이고 하나는 악이며
한쪽이 빛이라면 한쪽은 그늘이다
포지티브와 네거티브에서
하나를 선택하게 한다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답은 같다
그런데 중요한 게 있다
긍정은 부정을 배후에 두고 있다
현玄은 삼단논법으로 이해 불가다
연역적 추리의 삼단논법을
바짝 들이대더라도 쉽지 않다
긍정적이며 동시에
부정적 세계인 까닭이다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고
코에 맡아지지 않고
혀에 느껴지지 않고
피부로 알 수가 없으며
생각으로도 쉽게 판단할 수 없다
같은 뜻 다른 글자를 보자
검을 흑/나쁠 흑/모함할 흑黑
검을 유/그윽할 유幽
검을 자/이 자玆
검을 려/새벽 여黎
검은 조/노예 조皁
검은 조/하인 조皂
검을 검黔
검을 치緇
검을 암黯
검을 담黮 외에 90여 자에 이른다
한자를 접하면서 알아둘 게 있다
한자에는 한글이나 영어처럼
씨가름이 정해져 있지 않다
같은 글자를 놓고도
때로는 이름씨名詞로
때로는 움직씨動詞로
때로는 그림씨形容詞로
어떤 때는 어찌씨副詞로
어떤 때는 부림말目的語로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바뀐다
참고로 우리나라 문법의 씨가름은
모두 아홉 가지로 분류된다
1) 이름씨名詞
2) 대이름씨代名詞
3) 셈씨數詞
4) 토씨助詞
5) 움직씨動詞
6) 그림씨形容詞
7) 매김씨冠形詞
8) 어찌씨副詞
9) 느낌씨感歎詞 따위다
검을 현玄 자에 담긴 그림씨로는
검다, 검붉다, 오묘하다, 깊다
심오하다, 신묘하다
멀다, 아득하다
매달리다, 걸리다, 빛나다
고요하다, 잠잠하다
아찔하다, 얼떨떨하다
짙다, 크다, 통달하다, 능란하다
사물의 이치, 지식, 기술 따위에 관해
훤히 알거나 능숙한 상태다
이름씨로 표현할 때 검을 현玄은
천자문 천지현황의 현玄은
곧 하늘을 나타내며
북쪽을 가리켜 현玄이라 한다
그 밖에 태곳적 혼돈 시절
4대손 현손, 손자
음력 9월을 현월玄月이라 하며
검은빛을 가리킨다
불교佛敎 또는 도교道敎
성씨, 연주를 본관으로 한 연주현씨다
작다는 뜻의 작을요幺 부수와
위, 머리 부분을 뜻하는
돼지해머리亠 부수의 합자다
독특한 예지만 부수 둘이 합친 글자다
이는 한글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한자에서 부수가 홑소리라면
소릿값은 분명 닿소리다
우리 한글에서는
홑소리끼리 만나거나
닿소리끼리 만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안 간다
어쩌면 하늘이란 세계도
우리말의 큰 울타리 한울에서 왔고
한울의 보호를 받는 땅은
한울을 소중하게 받들었을 것이다
명사 천天으로 부를 때와 달리
형용사 현玄으로 표현할 때
이처럼 부수와 부수가 만남을 통해
그윽하고 머나먼 뜻을 나타내고
나아가 검은 빛, 검붉은 빛
가믈가믈한 하늘로 표현한 것이다
위에서 살폈듯이 검을 현玄 자는
검붉다, 오묘하다의 뜻으로
돼지머리 두亠 자와
작을 요幺 자가 결합한 글자다
그러나 실제 검을 현玄 자는
활과 시위를 함께 그린 것이다
따라서 현玄은 줄絃이나 시위弦다
옛사람들은 활시위에
옻이나 송진 따위를 발라
줄弦의 수명을 길게 하려 애썼다
이때 가공된 활시위의 빛깔이
검은빛을 띠었기 때문에
나중에 현玄이 검붉다로 바뀐다
그러나 현玄 자가 부수로 쓰일 때
여전히 시위나 줄과 관련된다
옻칠하고 송진을 바르는 게
그윽한 색깔과 멋을 생각하였겠으나
이처럼 곰팡이나 좀이 쏠지 않고
시위의 생명을 튼실히 하려 함이다
검을 현玄에 담긴 뜻이 어찌 이뿐이랴
비록 '가물가물하다'가 표준어지만
나는 가믈가믈을 즐겨 쓴다
가물가물하다가 표준어라면
전북은 저물저물하다로 표현하고
까무락까무락으로 쓰기도 한다
아스라하다
아슬아슬하다
고물고물하다
까물까물하다
까뭇하다 따위가 있으나
나는 서당 훈장님이 일러 준
가믈가믈이란 표현이 마음에 든다
현지玄旨를 알지 못한다면
고요靜에 들고
선정禪에 들고
명상瞑想에 들고
어떤 행을 닦더라도
헛수고일 뿐이라고 한다
현지玄旨는 배후인 까닭이다
현지는 부정적인 배후의 세계다
긍정을 긍정하고자 한다면
부정까지 긍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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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탑이 다양한 옷으로 변신하다
보명사 주지 정일스님 사진/동봉 꾸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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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3/2019
종로 대각사 봉환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