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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를 만난 이야기
나는 가야산 아래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다섯 살 무렵부터 산에 다녔다. 다섯 살 때에 처음으로 어머니를 따라 산길로 삼십 리나 되는 코배기재를 넘어 해인사에 갔다. 돌아오는 중에 다리가 아파서 뒤에 한참 뒤에 쳐져서 따라오다가 길바닥에 주저앉아 “엄마 같이 가!” “엄마 같이 가!” 하고 엉엉 울었던 것이 생각난다.
열두 살 때 가야산 코배기재를 넘어오다가 호랑이를 처음 만났다. 코배기재는 몹시 가팔라서 올라갈 때 코가 땅에 닿는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나는 다섯 살 때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어머니를 따라 등에 짐을 지고 해인사 아래에 있는 신부락까지 코배기재를 넘어다녔다. 등에 맬빵을 매어 약초, 산나물, 목기 같은 것을 잔뜩 짊어지고 가서 해인사 앞에 펴 놓고 관광객들한테 팔거나 장사꾼들한테 넘겨 주었다. 다섯 살 때부터 열다섯 살 때까지 10년 동안을 30리가 넘는 산길을 일주일에 한 번씩 넘어 다녔다. 어머니와 함께 60리가 넘는 산길을 수백 번을 왕래한 것이다.
가파른 산길을 숨이 차서 헐떡거리면서 코배기재를 넘어가면 진대밭골이 나온다. 진대밭골은 가파르지 않아서 걷기가 좋다. 진대밭골은 진저리가 날 정도로 긴 골짜기라는 뜻이다. 숲이 울창하여 하늘도 땅도 안 보이는 깊고 긴 골짜기다. 울창한 숲을 지나면 넓은 억새밭이 나오고 억새밭을 한참 동안 걸어서 지나면 바닥에 물이 질펀하고 키를 넘는 갈대숲이 나오고 갈대숲을 지나면 개울을 건너야 한다. 개울을 건너서 한참을 내려가면 해인사가 나온다.
아버지는 목기를 깎는 기술자셨다. 아버지는 집 뒤편 담벼락 옆에 작업장을 설치해 놓고 목기를 깎을 때 나오는 물푸레나무 대팻밥을 질겅질겅 껌씹듯이 씹으시면서 나무를 깎았다. 우리 집에서는 아버지가 깎은 목기를 어머니와 내가 등에 지고 코배기재나 불귀재를 넘어가서 해인사 아랫마을에 있는 가게에 내다 팔아서 생계를 유지했다.
해인사 주변의 산이 거의 해인사에 딸린 땅이었으므로 해인사에서는 삼림감시원을 고용하여 목기를 깎는 사람들을 단속했다. 내가 살던 성주군 쪽 가야산은 해인사에 딸린 산이 아니었지만 삼림감시원들이 해인사로 가는 모든 길목을 막고 지키고 있어서 그들을 피해서 신부락 마을로 갈 수가 없었다. 산림감시원들의 단속이 심해서 낮에는 목기를 짊어지고 다닐 수가 없고 새벽이나 한밤중에 코배기재를 넘어 다녀야 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산림감시원들은 한밤중에도 진대밭골 아래 마을로 내려가는 길목에 장작불을 지펴 놓고 지키고 있기도 했다. 멀리서 산림감시원들이 피워 놓은 불빛이 보이면 산으로 숨어서 숨을 죽이고 몰래 빠져 나가기도 했고, 감시원들한테 붙잡혀서 엉엉 울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서 풀려 나오기도 했다.
코배기재 삼십릿길은 추억과 한이 서린 고개다. 그러나 지금은 그 길이 흔적조차 없어진지도 30년이 넘었다.
열두 살 때 초겨울 무렵이었을 것이다. 산림감시원들을 피해서 가기 위해 오후 늦게 집을 나섰다. 저녁 무렵에 신부락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 목기를 넘겨주고 돌아오려니까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진대밭골 초입에 있는 개울을 건너면 키를 넘는 갈대 숲이었다. 갈대 숲속에서는 앞이 보이지 않고 스스스 갈대 잎이 스치는 소리만 난다. 갈대숲을 지나 이깔나무 숲을 막 들어섰을 때 길 위쪽에서 우두두둑 하는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언뜻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몸통이 누렇고 몸통에 줄무늬가 있는 큰 짐승이 낮게 날아가는 날짐승을 쫓아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짐승이 얼마나 날쌔게 쫓아가는지 마른 나무들이 부딛혀 부러지면서 우두둑 소리를 낸 것이었다.
나는 그 큰 짐승이 호랑이가 아니고 우리 집에서 키우는 큰 개가 따라 온 것인 줄 알았다. 우리 집에서는 몸집이 아주 큰 누렁개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그 누렁개는 어머니와 내가 코배기재를 넘어갈 때마다 코배기재 마루까지 따라와서 아무리 쫓아도 잘 돌아기지 않았다. 한참 동안 실랑이를 해서 간신히 쫓어보내도 한참 뒤에 보면 멀찌감치 떨어져서 뒤를 따라오곤 했다.
어머니한테 “저기 우리 개가 따라왔다” 고 했더니 어머니께서는 “저것은 개가 아니다, 빨리 가자” 하시면서 걸음만 재촉하셨다. 나는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그제서야 그것이 개가 아니라 호랑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머니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정신없이 앞만 보고 걸었다. 나는 듯이 진대밭골을 지나 코배기재 고갯마루에 와서야 잠깐 서서 가쁜 숨을 한 번 몰아쉬었다. 고갯마루에 오니 달빛이 환했다. 달빛이 비친 땅을 골라 밟으며 가파른 산길을 내려와서 집에 도착할 때까지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나중에 어른들한테 들으니 부엉이는 산신령의 인도자로 호랑이의 길앞잡이 노릇을 한다고 했다. 곧 부엉이가 앞장서서 높이 날면서 먹잇감이 있는 곳을 알려 주면 호랑이가 뒤쫓아가서 사냥을 한다고 한다. 부엉이는 호랑이가 먹다가 남긴 것을 먹는다. 이처럼 부엉이와 호랑이가 사이좋게 공생을 한다는 것이다. 또 부엉이와 호랑이는 서로 쫓고 쫓기면서 서로 장난을 치면서 노는 일이 잦다고 했다.
또 한 번은 가야산 불귀재에서 호랑이를 만났다. 불귀재는 고향 마을에서 해인사로 가는 두 갈래 고갯길 중에 하나다. 두리봉과 수도산 사이에 있는 고갯길로 거창군 가북면 용암 마을 뒤로 돌아서 해인사로 가는 길이다. 불귀재는 코배기재보다 덜 가파르고 중간에 외딴 초가집이 하나 있어서 물 한 모금 얻어마시면서 쉬었다가 갈 수 있지만 거리가 훨씬 더 멀어서 자주 다니지는 않았다.
불귀(不歸)재는 이름 그대로 돌아오지 못하는 고개라는 뜻이다. 이 고개는 오래 전부터 거창군 가북면에서 소장수들이 소를 몰고 창천 장에 팔려고 넘어다니던 큰 고개이다. 소장수들은 돈을 많이 갖고 다닌다. 그래서 옛날에는 이 고개에 소장수들의 돈을 뺏으려는 산적들이 많았다고 한다. 내가 어렸을 때까지만 해도 실제로 불귀재에서 도적을 만나서 목숨을 잃거나 두들겨 맞아서 재물을 몽땅 빼앗기고 병신이 된 사람이 더러 있었다. 우리 집에서 키우던 소를 도둑이 훔쳐서 불귀재를 넘어 거창 소시장에 팔아버린 일도 있었다.
김소월의 시에도 ‘불귀 불귀 다시 불귀’라고 하는 구절이 나온다. 김소월의 시에 나오는 불귀는 소쩍새의 울음소리를 나타낸 의성어이다.
어려서 10년 동안 수백 번을 넘어다녔던 고갯길이 그리워서 스물 아홉살 때 몹시 무더운 여름날에 불귀재를 다시 넘어 보았다. 반대쪽인 거창군 가북면 쪽에서 불귀재를 넘어 고향 마을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무더운 여름철이어서 가파른 길을 한낮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올라가기가 싫었다. 그래서 가북면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는 개금불 마을에서 해가 저물 때까지 그늘에서 놀면서 쉬고 있다가 해거름이 가까워서야 고개를 넘어가기 시작했다. 벌써 15년의 세월이 지났던가. 어머니와 내가 고향을 떠난 뒤로는 아무도 그 고갯길을 넘어 다니는 사람이 없었던 모양이다. 옛날에 다니던 오솔길은 없어진 지 오래 되었고 넓은 억새밭은 울창한 솔밭으로 변해 있었다. 예전에 없던 오리나무가 자라서 숲을 이루어 하늘이 보이지 않았다. 옛날 기억을 더듬어 길을 찾으면서 걸음을 재촉했다.
땅거미가 내리고 어둠이 깃들 무렵에야 고갯마루를 지났다. 고갯마루에 있는 성황당의 돌무더기도 미역줄나무 넝쿨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고갯마루를 지나서 십 분쯤 내려오면 길 위쪽에 수백 년 묵은 아름드리 돌배나무가 있던 곳이다. 돌배나무는 죽어서 그루터기만 남아서 썩어가고 있었다.
돌배나무 그루터기를 지나 모퉁이를 돌아가는데 길 아래쪽에서 부스럭거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길 아래쪽은 칡밭이었다. 노루나 고라니가 칡넝쿨을 뜯어먹는 소리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개를 내밀어 내려다 봤더니 노루도 아니고 고라니도 아니었다. 몸통이 누렇고 얼룩 무늬가 있는 큰 짐승이 칡덩굴 아래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엄청나게 큰 호랑이였다. 몸통의 길이가 4미터는 되어 보였다. 황금색 털빛에 검은 줄무늬가 선명했다. 꼬리를 길게 쭉 펼쳐들고 있었다.
호랑이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눈에서 뿜어 나오는 파란 불빛이 전짓불보다 더 밝았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등줄기에 땀이 솟고 다리가 휘청거렸다. 몇 초 동안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 짧은 시간이 몇 시간이라도 되는 것처럼 길게 느껴졌다. 나는 기절할 만큼 크게 놀랐으나 호랑이가 나를 해칠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나를 해칠 생각이 있었다면 내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벌써 덤벼들었을 것이다. 호랑이가 길 위쪽에서 나타나면 해칠 생각이 있는 것이고 길 아래쪽에서 나타나면 도와 달라고 하는 것이라고 하던 이야기도 생각이 났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호랑이한테 눈을 떼지 않고 애써 태연한 척 하면서 천천히 길을 따라 걸었다. 호랑이도 몇 미터 뒤에서 천천히 나를 따라왔다. 길 아래쪽에서 3-4분 가량 내 뒤를 천천히 따라오다가 내리막길이 거의 끝나고 평탄한 길이 시작되는 곳에 이르러서야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우리나라에 호랑이가 없다고 하는데 그것은 틀린 말이다. 가야산에는 호랑이가 살고 있었다. 가야산 아래 고향에는 열 두 개의 마을이 골짜기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데 복골 밑에 있는 독산마을에 사는 한 아주머니가 산에 머루를 따러 갔다가 호랑이를 보고 놀라서 실성해서 미쳐 버렸다. 그 아주머니는 정신이 완전히 나가서 며칠 동안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지르다가 죽었다.
또 불귀재 밑에 갈골 마을에 사는 한 사냥꾼은 멧돼지 사냥을 하러 갔다가 호랑이가 묏등 옆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혼이 나갈 정도로 놀라서 그 뒤로 두 번 다시 산에 올라가지 않았다.
나는 약초를 캐러 다니면서 호랑이를 몇 번 만났다. 지리산 세석 평전 근처에서도 만난 적이 있고 대구 근처의 팔공산 골짜기에서도 만난 적도 있다.
호랑이처럼 힘이 세어지는 방법
호랑이는 가장 힘이 센 동물이다. 호랑이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범 같은 장사라는 옛말이 있다. 호랑이는 자기 몸무게와 같은 무게의 먹이를 입에 물고 3미터가 넘는 담을 단번에 훌쩍 뛰어넘을 수 있다. 소나 멧돼지도 호랑이가 앞발로 한 번 후려치면 두개골이 가루가 되어 버린다. 호랑이의 힘은 앞발에서 나온다. 호랑이의 앞발을 호경골이라 하는데 차력약, 신경통, 관절염 치료약으로 이름이 높다. 호랑이는 죽어도 앞발은 쓰러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호경골은 쇠보다 더 단단하다. 수십 년 전에 호경골을 하나 구해서 톱과 도끼로 자르고 잘게 부수어서 가루로 내어 약으로 만들어 보려고 했던 적이 있다. 호경골이 얼마나 단단한 지 톱날이 망가지고 도끼날이 부러져서 자를 수도 깨트릴 수도 없었다. 식초에 담갔다가 열을 가하여 굽기를 여러 번 거듭하였더니 부드러워져서 마침내 가루로 만들 수 있었다. 호랑이의 엄청난 힘은 이처럼 튼튼한 뼈에서 나오는 것이다.
호랑이처럼 힘이 세어지는 방법이 있다. 옛날에는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는 장사들이 많이 있었다. 중국의 수호지에 나오는 무송, 조선시대 때 반란을 일으킨 이징옥, 임꺽정 같은 사람들이 모두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은 장사들이다. 힘은 뼈에서 나온다. 뼈가 튼튼해지면 힘이 세어지는 것이다. 옛말에 통뼈 혹은 고리뼈를 가진 사람이 있다고 했다. 손목이나 발목 뼈가 납작하지 않고 동글동글하게 생긴 것을 통뼈라고 한다. 실제로 통뼈는 엄청난 강골(强骨)이다. 요즘에는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을 수 있을만큼 힘이 센 장사가 없지만 옛날에는 실제로 많이 있었다.
뼈가 튼튼하면 힘이 세다. 힘은 뼈에서 나온다. 뼈를 무쇠처럼 튼튼하게 하는데 가장 좋은 약효가 있는 약재 중에 하나가 접골목이다.
허리가 잘린 지네를 다시 붙게 한 약초
옛날, 한 훌륭한 의원이 있었다. 어느 날 왕진을 가다가 큰 나무 아래 그늘에서 쉬고 있을 때 갑자기 큰 지네 한 마리가 나타났다. 의원은 깜짝 놀라서 지네를 피하면서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꺼내어 지네의 몸통을 두 동강으로 잘라 버렸다. 지네는 몸통이 두 동강이 난 채로 죽지 않고 한참동안 살아서 꿈틀거렸다. 그런데 잠시 뒤에 풀숲에서 지네 한 마리가 기어 나오더니 두 동강이 난 지네를 끌고 풀숲으로 들어가 버렸다.
의원은 호기심이 생겨서 지네 뒤를 따라다니면서 자세히 관찰해 보았다. 지네는 몸통이 잘린 지네를 풀숲에 두고 어디론가 기어가더니 얼마 뒤에 나뭇잎 한 개를 입에 물고 돌아왔다. 지네는 물고 온 나뭇잎을 몸통이 잘린 지네 위에 덮어 놓았다. 그렇게 하고 나서 30분쯤이 지나자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두 동강이 났던 지네의 몸통이 본래대로 달라붙어서 천천히 숲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럴 수가 있나?”
의원은 깜짝 놀라서 지네가 들어간 숲속으로 들어가서 지네가 물고 온 잎이 어떤 식물의 잎인지 찾아보았다. 그 식물은 키가 작고 이삭처럼 생긴 연한 노랑색 꽃이 피어 있었다. 의원은 그 식물이 부러진 뼈를 붙이는데 좋은 효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잎과 줄기를 잘라서 집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의원은 집에서 기르고 있는 수탉의 다리를 꺾은 다음 그 식물의 잎과 줄기를 짓찧어 붙이고 천으로 잘 싸매 주었다. 과연 그 나무는 부러진 뼈를 이어 주는데 신통한 효과가 있어서 사흘이 지나자 부러졌던 수탉의 다리가 완전하게 아물어 붙었다.
“정말 신기한 효과가 있는 나무이구나.”
그 뒤부터 의원은그 나무를 부러진 뼈를 치료하는데 쓰기 시작하였다. 두 동강이 난 지네의 몸통과 부러진 수탉의 다리를 다시 붙게 한 약초가 바로 접골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