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Ⅲ-47]집 하나 건사하기가…
“(야 이눔아) 집구석(집) 하나 건사하기가 그리 쉰(쉬운) 줄 아냐?” 같이 살 때 아버지가 자주 하던 말씀이다. ‘건사하다’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잘 거두어 보호함. 간수’라 돼 있다. 7, 8월 거의 두 달을 평일에 용인 아내집으로 출퇴근한 셈이니, 그나마 건사를 못한 주제에 시골집이 엉망이 돼 있었다. 처마 밑에 거미줄은 말할 것도 없고, 거실이나 주방에도 거미줄이 있고, 없었던 바퀴벌레도 몇 마리 보였다. 소파에 누워 잠을 자려는데, 뭔가 벌레가 스멀스멀 몸으로 기어오를 것같아 왠지 쭈빗쭈빗까지 했다.
아무튼, 소프트웨어(내부)는 그렇다치고 하드웨어(외부)는 더욱 엉망인 게, 일단 자갈마당에 잡초가 무성하고, 꽃밭의 풀들은 한 길을 넘어 들어서기가 겁이 났다. 뒷마당의 표고버섯용 참나무토막 50여개는 5년이 넘었으므로 슳을대로 슳어 통나무가 퍼석퍼석 썩어가고 있는게 완전 흉물이었다. 꽃밭을 그나마 제 꼴 만드는데 반나절, 뽑아낸 풀만 옛날 지게로 치자만 한 바작이 넘었다. 또 하루는 자갈마당에 풀약을 하고, 본채와 사랑채의 툇마루 일대 정비에 나섰다. 마루 밑에 멋있으라고 쌓아놓았던 써가래 잔토막들을 모두 들어내고, 사랑채 툇마루에 무조건 쌓아놓은 박스와 비료 등을 옆마당으로 옮겼다. 몇 달, 몇 년만에 제모습을 드러낸 마루를 멀쩡한 수건을 작살내 여러 번 닦으니, 이제야 제법 마루같다. 사진을 찍어 아내에게 보내니 칭찬에 입이 마른다. 앞으론 아내가 좋아하고, 나를 칭찬할 일만 하겠다고 다짐을 했다.
뚤방(토방, 우리는 뚜릉이라고 했다)은 또 얼마나 지저분한가. 널려 있는 낫 등 농기구를 모두 컨테이너에 옮기고 물청소를 하니 조금은 낫다. 내처 뒤안의 통나무들을 리어카로 아니면 손으로 들어 집 밖으로 옮겼다. 화목보일러 쏘시개로도 못쓸 것같으니 볕 좋은 날 태워야 할 것같다. 웃통을 벗고 50여토막 나르는데 3시간여. 녹초가 되니 농주 생각이 간절했다. 집안 정리만 벌써 사흘째인데, 아직도 멀었다. 아들네 짐(소파, 책상)이 빠져나간 사랑방이 만장(아주 넒음)이 돼 오랜만에 큰방이 됐다. 쓸고 닦는데, 스탠드 에어컨이 고장이 나(사실은 차단기가 가구에 숨겨져 있었는데, 그걸 모르고 AS 신고까지 했으니) 죽을맛이었다.
아하-, 이래서 어른들이 흔히 ‘집 하나 건사하기가 쉰 일인 줄 아냐?’는 말을 하는구나. 대체 거미 등 벌레들은 어떻게 사람이 거처하지 않는 줄을 귀신같이 하는 것일까? 불과 두 달도 채 비워놓지 않았는데, 사람이 살지 않는 것처럼 만들어놓다니? 참 고약한 일이다. 인기척(사람이 살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을 만한 기미)이 그처럼 중요한 것같다. 아직도 할 일은 많다. 제습기로 이 방 저 방 습기도 빼내야 한다. 한 방(방이라야 3개 있지만)에 3통의 물은 보통이다. 게다가 창틀을 보라. 날벌레들의 시체와 켜켜이 쌓인 먼지들, 청소하기가 정말 쉽지 않다. 창문을 다 들어내고 하면 좋겠지만, 혼자서는 불가능. 아내에게 칭찬받으려면 아직 멀었다. 주부, 엄마들의 일상이 저절로 떠올라 씁쓸하다. 집안엔 그저 살림하는 여인이 있어야 하거늘, 털털하기가 한량없는 나같은 놈이 홀로 사는 고향집의 정상은 말도, 꼴도 아닌 것을. 어느날은 사랑채 현관앞에 꽃뱀 한 마리가 꽈리를 틀고 있어 질색한 적도 있다.
방치해놓은 뒷밭은 헛웃음이 나올 정도다. 풀들이 내 키를 넘보게 자라 발을 떼기가 겁이 나는데, 그 속에서 딴 오이(물외) 3개가 예쁘다. 이제 작두콩 줄기도 따 작두로 잘게 잘라 말려야 한다. 전원田園이 장무將蕪하니(바야흐로 무성하니) 내가 어찌 돌아오지 않겠는가(호불귀乎不歸)? 논두럭에 풀약도 해야 하고, 추석을 앞두고 처서도 지났으니 산소 벌초도 해야 한다. 이제 수확의 가을이 다가오건만, 아직도 열대야로 허덕이니, 절로 짜증이 난다. 여름에 일체 다른 작물을 심는 일을 하지 않았으니(그저 흙이 보이는 곳마다 들깨 모종을 허벌나게 얻어 심었을 뿐), 별로 할 일은 없는 것은 다행이다. 남들이 배추를 심는다해도 나는 쳐다보지도 않을 생각이다. 들깨밭에 살충제도 뿌려줘야 하는데, 타이밍이 중요한데 하지도 않고 걱정뿐이다.
어른들 말씀이 하나도 틀린 게 없다. 정말 집 하나 건사하기가 이토록 힘들다는 것을 새삼 느낀 요 며칠. 암 생각없이 힘들어도 방바닥을 쓸고 닦을 일이다. 우천! 힘내라, 힘! 밤이 길어지고 있다. 6시가 돼도 어둑어둑, 날이 환히 밝아지지 않는구나. 이제 눈 내리는 겨울이 오리니. 사랑방에서 독서삼매경에 빠지는 즐거움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