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이 죽을수록 외형이~~~
근래에 어느 목사님의 설교를 유튜브를 통하여 듣다가 인상적인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이분이 이탈리아로 여행을 갔을 때 경험한 일이라 합니다.
그곳에서 일평생 목회자로 살아온 노( 老)목사님 한분을 만나서 교제를 할 기회가 있었다
합니다.
그때 은퇴를 얼마 남지 않는 노 목사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더랍니다.
“이 목사님! 일평생 목회자로 살면서 근래에 들어 느끼는 생각이 본질이 죽을수록 외형이 화려해지는 것 같애!, 대표적인 예가 베드로 성당을 들 수 있을거에요.” 하시더랍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듣던 이 목사님은“본질이 죽을수록 외형이 화려해 진다”는 선배분의 말이 하나님께서 그분을 통하여 자신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으로 받아 들였다는 것입니다.
인생살이에서 본질과 비본질을 구분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존재론적으로 다른 양태의 삶을 드러낸다고 하겠습니다.
예컨대 신자(信者)나 그리스도인을 개념적으로 정의하자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인생이고 삶임을 고백하고 인정하는 사람들이라 하겠습니다.
그러한 신자가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가장 우선시 해야 할 것은, 삶의 기준과 원칙이 내 중심이기보다 예수 그리스도 중심이어야 함은 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지난해 말 무렵부터 본의 아니게 사택 출입문 입구를 지키는 개냥이 한 마리가 있습니다. 처음에 아내와 아이를 따라서 교회에 올 때는 색깔이 회색이었는데,
열심히 사료를 주고 거두었더니 이제는 완전한 흰 고양이입니다.
개냥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분명히 고양이임에도 이 녀석은 강아지처럼 쫄랑쫄랑 따라다니는 별난 고양이이기 때문입니다.
폭염으로 모두가 힘겨워 하던 어느 날, 축 늘어져 있던 이 녀석이 애처로워서 고양이 간식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한번 맛을 들인 이 녀석은 그후부터 이제는 대 놓고 간식을 달라며 야옹! 야옹!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번은 그릇에 간식을 짜 놓고서, 허겁지겁 간식을 먹는 냥이의 몸통에 물조리개로 물을 쏟아주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녀석은 간식을 먹는 것이 더 큰 우선순위였는지 물을 붓든지 말든지는 전혀 개의치 않는 것입니다.
반면에 간식을 다 먹고 난 고양이에게 물을 부으려하면 혼비백산 도망칩니다.
고양이의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배우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가장 소중한 것을 얻기 위해서 덜 소중한 것은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을 미물인 고양이도 알고서 행동화한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결국 인간의 삶이란 가치와 우선순위의 문제라는 사실입니다.
진정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 소중하고 가치있게 느낀다면 나머지 것은 비본질로 여길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마치 부두가에서 생명을 구하기 위해 모인 구조대가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일보다 장비나 숙소의 시설을 개선하는데 마음을 빼앗겼다는 이야기와 같은 모습이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이 직면한 삶의 문제가 아닐런지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라디아서 2:20)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첫댓글 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