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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6일(수)
* 시작 기도
(왕하 19:25) 네(앗수르 왕)가 듣지 못하였느냐? 이 일은 내가 태초부터 행하였고 옛날부터 정한 바라. 이제 내가 이루어 너로 견고한 성들을 멸하여 무너진 돌무더기가 되게 함이니라.
주님...
앗수르 왕 산헤립은 자기가 하나님처럼 행동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멸시하였고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유다 왕 히스기야를 무시하였습니다(왕하 19:10-13).
하지만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태초 곧 창세전부터 정하셨고 때가 되어 지금 행하신 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이야 두 말할 필요도 없지만 하나님을 믿는 히스기야를 비롯하여 오늘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나 역시 눈에 보이는 것으로 일희일비 하는 자임을 부인할 수 없나이다.
어찌 되었건 하나님께서는 창세전 언약을 통하여 지금도 일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하여 우리가 영적으로 연약하여질 때 연단을 통하여 강하고 담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고난과 시련을 허락하심을 믿습니다.
우리가 더욱 주 안에서 살되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소서.
그리하여 주의 영으로 조명하시어 말씀의 빛을 비추어 주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내가 하나님처럼 되려는 나의 의는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이 하루도 주님과 연합하여 동행하는 주의 자녀가 되게 하소서.
사촌동생이 어제 췌장암 수술을 하였습니다.
잘 회복될 수 있게 하시고 이런 고난을 통하여 믿음이 더욱 견고하여지며 성숙되게 하소서.
창세전 주님의 뜻을 분명히 알아 주님과 더욱 친밀해지는 아들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시 66:8-20
제목 : 불과 물을 통과하였더니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
8 만민들아 우리 하나님을 송축하며 그의 찬양 소리를 들리게 할지어다.
9 그는 우리 영혼을 살려 두시고 우리의 실족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는 주시로다.
10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 같이 하셨으며
11 우리를 끌어 그물에 걸리게 하시며 어려운 짐을 우리 허리에 매어두셨으며
12 사람들이 우리 머리를 타고 가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불과 물을 통과하였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
13 내가 번제물을 가지고 주의 집에 들어가서 나의 서원을 주께 갚으리니
14 이는 내 입술이 낸 것이요 내 환난 때에 내 입이 말한 것이니이다.
15 내가 숫양의 향기와 함께 살진 것으로 주께 번제를 드리며 수소와 염소를 드리리이다. (셀라)
16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너희들아 다 와서 들으라. 하나님이 나의 영혼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내가 선포하리로다.
17 내가 나의 입으로 그에게 부르짖으며 나의 혀로 높이 찬송하였도다.
18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19 그러나 하나님이 실로 들으셨음이여 내 기도 소리에 귀를 기울이셨도다.
20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가 내 기도를 물리치지 아니하시고 그의 인자하심을 내게서 거두지도 아니하셨도다.
* 나의 묵상
본 시의 표제에는 저자나 저작배경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선민 공동체 전체의 구원에 대한 간증 찬양이나 시인 개인의 구원에 대한 간증이 나오는 것을 보면 자신을 민족의 대표로 내세울 수 있는 이스라엘의 왕들 중 한 명으로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다윗 여호사밧 히스기야 등이 거론되어진다.
그 중에서도 이사야 43장과 비슷한 내용이 많이 나온다는데 착안하여 이사야와 동 시대 사람인 히스기야를 가장 유력한 저자로 추정할 수 있다.
이를 참고하면 저작 배경을 유추할 수 있다.
앗수르의 침략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위기 상황을 극복한 히스기야가 자신 및 이스라엘이 경험한 구원의 체험을 간증 형식으로 노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본문 이전의 5-7절은 시인이 과거 선민 이스라엘이 경험한 구원의 체험을 회상하는 내용이었다면 8-12절은 현재 시인과 동시대에 살고 있는 선민들이 받고 있는 연단과 회복의 은혜를 찬양하는 내용이다.
모든 백성들, 모든 만민들이여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라.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살려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미끄러져 넘어지지 않게 하셨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연단하시는데 은을 불속에 넣어 단련함같이 하셨다.
또한 주께서는 우리를 잡아 감옥에 넣으시고 우리의 등 위에 무거운 짐을 지우기도 하신다.
어떤 때는 원수들이 우리 머리 위를 밟고 지나가게도 하셨으며 심지어 우리로 하여금 불과 물속을 지나가게도 하셨다.
그런데 그런 우리를 주님께서 인도하여내셔서 하나님의 약속의 땅인 젖과 꿀이 풍부한 땅으로 인도하셨다.
그것은 넘치는 잔과 쓰고도 남을 만한 곳이다.
마치 다윗이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고백했던 그런 자리와도 같다.
13-20절은 본 시의 시인으로 보이는 왕의 개인적인 구원에 대한 간증과 찬양의 내용으로 볼 수 있다.
내가 번제물을 가지고 주의 성전에 들어가서 주께 맹세한 것을 갚을 것이다.
이 약속은 내가 가장 어려움을 당할 때에 주님께 내 입으로 맹세하고 약속한 것이다.
이제 나는 숫양을 태워서 그 향기를 드리며 살진 수소와 염소를 드릴 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모든 사람들은 내 말을 잘 들으라.
주께서 내게 행하신 모든 일을 여러분에게 말하겠다.
나는 나의 입으로 그분에게 기도하며 부르짖었고 또한 나의 입으로 그분을 크게 찬양하였다.
아마도 내가 내 마음속에 죄를 품고 있었다면 주께서는 내 소리를 듣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 기도를 들으셨다.
그러니 하나님을 찬양하여라.
그분은 내 기도를 거절하지 않으신 것처럼 그분의 인자하심 곧 나를 향한 사랑하심도 멈추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시험(test)을 하신다.
그러나 그 시험은 마귀와 같이 미혹하는 시험(temptation)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을 성숙하도록 하기 위한 연단이다.
때로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가혹한 시험, 곧 불에도 넣으시고 물속에도 집어넣으신다.
하지만 그런 시험을 통해서 어떤 환난과 어려움도 넉넉히 이겨낼 수 있는 단단한 믿음을 소유하게 하시는 것이다.
(욥 23:8-10)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은 하나님께서 왜 자기에게 이런 시험을 하시는지 알지 못하였다.
이해할 수 없었고 도무지 깨닫지도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믿었다.
그래서 이런 믿음의 고백이 나오는 것이다.
나는 비록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지만 그러나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단련하셔서 순금과 같이 만들어주실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그들이 비록 풀무불에 들어간다 할지라도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 건져주실 것을 믿었다.
설령 그리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자기들은 느부갓네살 왕의 신상에 절할 수 없노라고 믿음의 선포를 하였다.
(단 3:16-18) 사드락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이처럼 오늘 본문 10-12절에서도 시인은 선민 공동체가 견디기 힘든 엄청난 고난으로 시험 받은 것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고난은 결코 고난으로 끝나지 않고 가장 좋고 아름다운 것으로 보상을 받는다.
주님은 우리를 시험하실 때 은을 단련하는 것처럼 풀무불에 집어넣어 강하게 연단하신다.
그리고 그들을 끌어내어 그물, 곧 감옥에도 갇히게 하시며 때로는 감당하기 힘든 무거운 짐을 그들의 가장 약한 허리에 매어서 힘들게도 하신다.
심지어 사람들이 그들의 머리를 밟고 지나가면서 온갖 모욕과 수치 비난과 부끄러움을 당하게도 하신다.
이러한 불과 물의 온갖 고난을 통과하였을 때 주께서는 그들을 인도하여 내사 가장 아름답고 풍부한 땅으로 인도하신 것이다.
우리 예수님은 고난 중의 고난을 당한 분이시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채찍을 맞아 거의 만신창이가 되셨다.
채찍 끝에는 쇳조각이나 짐승의 뼛조각을 달아서 그것으로 채찍질을 해서 몸을 휘감았다가 힘껏 당기면 살점이 뚝뚝 떨어지는 고통을 당하게 된다.
살점이 떨어진 자리에서는 피가 흘러나와 온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힘이 다 빠져 거의 죽게 되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십자가에 매달리기 위하여 십자가의 가로대를 자신의 어깨에 매고 골고다 언덕까지 올라가셔야만 하셨다.
그 건장한 30대 초반의 청년이 가로대 하나 지고 가는 것이 무슨 큰 일이었겠는가?
그러나 이미 채찍질을 당하여 만신창이가 된 상황에서 십자가의 가로대는 천근만근이었을 것이다.
결국 중간쯤에 몇 번이고 쓰러져 더 이상 지고 갈 수 없게 되었을 때 옆에 있던 구레네 사람 시몬이 대신 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골고다 언덕에 올라가서 십자가에 오르셨고 손과 발에 대못이 박혔으며 머리에는 가시관을 옆구리에는 창으로 찔림을 받으셨다.
그뿐 아니라 손으로 뺨을 맞으시고 침뱉음을 당하셨으며 말로는 온갖 수욕을 다 당하셨다.
심지어 주님께서 당하신 고난 중의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아버지와의 분리인 영적인 고난이었다.
아들 그리스도는 창세전부터 아버지의 품속에 거하셨다.
그렇게 아버지와 단 한 번도 분리된 적이 없으셨지만 십자가 위에서 분리의 고통을 당하신 것이다.
이것은 아들이지만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와 분리되는 그 시점에 영적 고뇌를 담아 crying out 곧 부르짖으셨다.
(마 27: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이렇게 고난 중의 고난을 당하신 아들은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되셨다.
그리고 아버지의 영광 가운데 부활하셔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 곧 통치권을 받으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셔서 지금도 우리를 통치하고 계신다.
그곳은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이 자리, 가장 아름답고 풍부한 곳 그곳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장소가 아니라 바로 창세전 아버지의 나라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계시는 곳, 하나님의 나라, 창세전의 세계, 거할 성읍이요 영원한 지성소가 바로 그곳이다.
나는 그곳을 지식적으로만 알았을 뿐이다.
그곳은 마치 죽어서 가는 천국으로 이 세상을 살다가 죽고 나면 가는 곳쯤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이 나라와 그 나라는 동시에 살아가야 하는 나라이다.
바로 두 차원의 세계를 동시에 사는 것이다.
비록 육신의 발은 이 나라의 땅을 딛고 산다.
하지만 내 영혼은 날마다 카이로스의 시간 안에서 현재로 임하는 영생의 실제를 경험하면서 사는 것이다.
세상 나라 따로 하나님 나라 따로가 아니라 두 나라는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살지만 영원에 잇대어 사는 것이 우리 믿는 자들의 모습이어야 한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날마다 넘어지며 죄악 가운데 서 있다.
그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잘 되지 않는다.
여전히 넘어지고 그것에 처참하게 무너져서 나 또한 죄에 만신창이가 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염치 불구하고 면목없음으로 다시 일어서서 아들을 힘입어 말씀 앞으로 나온다.
그곳만이 내가 살 곳이요 내가 숨 쉴 곳이며 나의 처소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의 죄를 주의 보혈로 씻고 주께서 주시는 정결함으로 주님 앞으로 나온다.
부끄럽고 염치없지만 나를 보지 않고 오직 주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주님께 나아가는 나를 받아주실 줄 믿는다.
그 안에 주의 은혜와 인자하심이 충만하기 때문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는 고난을 두려워합니다.
주의 심판을 무서워합니다.
그러나 복음을 알면 알수록 주의 고난과 심판이 복임을 믿습니다.
고난이 없고 주의 심판이 없음은 정말 주의 뜻대로 살아가는 자이거나 아니면 주님의 생각에서 지워진 자, 둘 중의 하나가 아닐런지요?
주님, 이 종을 주의 공의로 심판하소서.
이 종을 버리지 마시고 이 종에게 고난을 주셔서 그 고난을 감당하게 하시고 넉넉히 단련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진짜로 주님이 인도하시는 가장 아름답고 풍부한 그곳, 아버지의 품으로 인도하소서.
주님, 이제는 그 나라를 맛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과 날마다 완전한 영생의 삶을 살기 원합니다.
이 종을 불러주소서.
이 종을 인도하사 더 이상 죄에 얽매여 살지 않도록 자유케 하시고 이 죄에서 끊어주옵소서.
그러나 죄를 이겨야만 한다면 정말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시어 피 흘리기까지 싸워 이길 수 있게 하옵소서.
주의 은혜를 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