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념’이 아니라 ‘실용’이란 구호 (= 한나라당 당론에 ‘적극 지지층’ 숫자 늘리기 작업 안하고 與黨 失政에 의존하는 바탕) 는 ‘與黨’의 <對 한나라당 네가티브>에 대책없이 얻어맞자는 발상
‘지난 대선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온’ 윤여준식 사고방식에 입각한 지지율 상승은 반갑지 않다.
꼭, 정신과 의사가 아니래도 좋다. 한번 상상해보라. 한나라당이 왜 좌파정당 네가티브 잔 펀치에 허물어졌는지?
“저기여”
“예”
“울 아부지(열린당)가 집안을 망쳐서요,...... ”
그렇게 찾아온 ‘환자’는 ‘정신과의사’에 신뢰가 높을 수밖에 없다. 즉, 망치는 자 아니면 다 좋다는 식의 심리 기제 속이다. 심리적 상처를 남긴 사람이 열린당이 되고 정신과의사가 한나라당이 된다. 이러한 기제를 너끈히 쭉쭉 활용하여 ‘대세론’을 만들어주고서는,
“이누마, 저 정신병원의사(한나라당)가 내연의 처가 있는 도덕적 불결자여! 비록 몽둥이 휘두르는 패륜 아버지(失政의 左派政黨)라도 다시 한번 믿어주지 않으련?”
정말로 아닌 것 같은 틈바구니에 사로 잡혀 있는 사람들에게, 불만 표출로서 실컷 욕구불만을 해소하게 하고서는, ‘대안’으로 선택한 것의 ‘공신력’을 자꾸 떨어뜨리면서 ‘새것’이나 ‘옛것’이나 하는 전략이다.
두 번의 대선패배를 주문한 ‘윤여준’은 또다시 똑같은 전략을 써서, 열린당의 작전에 자진해서 걸려들었다.
<단순한 경제적 욕구불만>에 의거한 지지성향에 도취되어서, ‘한나라당 정당의 신념’에 동화하게 하는 교육을 늘 등한시한다. [조선일보]의 예전 좌파지지 기억에 입각되어서, 그 어떠한 궁지에 처해서도 과거 좌파세력에 ‘인심’쓰는 것은 초호화판이다.
<단순한 경제적 욕구불만>에 의거한 지지자는, 네거티브 잔 펀치에 쉽게 돌아선다. 여기에서, 깊이 있는 지지자로 만들려는 의지를 스스로 할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미 계속 과거 관성의 반복밖에 할 줄 모르는 ‘윤여준’식 사고의 한계 때문이다.
2. ‘네거티브’ 잔 펀치의 ‘바다’를 건너기 위해서,
이명박이 믿는 것은 단 하나. 며칠 전 KBS가 이재용이 군대를 쉽게 빠진 이유를 화두로 삼으면서, 200억 가까운 재산가의 병역 면제를 권력가 자녀들의 병역 면제로 연결하는 전략에서, 한나라당 지지자가 쉽게 이명박의 ‘오류’ 덩어리를 버릴 수 없다는 책략이다.
즉, 이명박은 ‘이회창’에 이정연 비리가 있어도, 김대중 민주당이 이정연과 재벌가 자녀들을 세트 메뉴로 다루었기 때문에 버릴 수가 없듯이, 이명박과 재벌가 들을 세트메뉴로 다루면 ‘네거티브’ 잔 펀치를 알면서도 계속 얻어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네거티브 잔 펀치의 핵심은 간단하다. 권력 없고 힘 없는 서민들에 다시금 숨막히는 사회가 도래된다는 것이다.
이명박이 순순히 열린당 부동산의 첨병으로 몰리는 꼴은, 향후에 어떻게 열린당이 ‘네거티브’할 것인지가 선명하게 다가온다. 이명박의 정책은 대부분이 읽지 않겠지만, 읽어보는 사람에게는 이명박의 부동산정책은 노무현의 망할부동산 정책보다 전혀 발전하지 못했다.
열린당의 네거티브 공식은 그냥 ‘오점잡기’가 아니다. 계급주의 공식에 입각하여 한나라당이 창출하는 미래는, 힘없는 자에게 어렵게 한다는 가닥이다. 여기에서, 윤여준과 더불어서 이명박계 한나라당의원은, ‘분석’은 올바르나 ‘진단’에서 생뚱맞게 ‘마르크스주의’를 적용하여 한나라당이 나아갈 수 있는 바가 아니라 ‘열린당정신’을 말하는 바가 있다.
네거티브 잔 펀치를 벗어나기 위해서, 열린당이 몰아갈 수 있는 ‘논리의 틀’을 생각해 봐야 한다.
박근혜의 경우에는 ‘한국 현대사’ 관련 잔펀치가 있다. 이명박의 경우에는 네거티브 잔 펀치의 꼭지점이 상당히 많은 데, <군병역회피>, <건설비리>, <한국현대사>, <좌파 경력>, <부동산 노가다꾼의 경제학의 한계>, 등등이 꼽힌다. 박근혜의 경우는 ‘대북 온건론’으로 ‘한국 현대사’관련 잔펀치가 상당히 중화될 수 있으나, 이명박의 경우는 열린당 선동가들이 어렵지 않게 한나라당 당의 이미지를 맑스주의 내의 ‘부르주아 반동’ 이미지로 고정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다. 그와 동시에 친북좌익의 박정희 친일 시비의 의도처럼 ‘한국인의 정체성’을 창조한 박정희 대통령의 친일경력 문제가 주는 의미처럼, ‘민노당 학생위’수준의 공산의식을 보였던 6.3운동에 대한 탐구는 '한나라당 내 기독교 저학력 노인층을 단박에 다 후루루루룩 떨어낼 파괴력을 갖고 있다. 한나라당 내 기독교 저학력 노인층은 신문을 읽어도 제목만 읽고 100자평 다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열린당 측에서 섬세하게 탐구하며 이명박이 정말로 우익이 아닐 수 있겠네? 하고 비춰주면 기독교 저학력 노인층의 인내력은 쉽게 종결될 것이다. 열린당이 대항 주자로 나서면 얼마든지 써먹을 주제이다.
이명박의 대응 공식은 어느 정도 드러났다. ‘대세론’으로서 올라타게 된다면, 한나라당을 둘러싼 기업가들의 오점과 더불어 한 케이스로 묶이면서, <제2의 이회창>으로 존재하며 ‘열린당의 세 번째 승리’에 기여하려는 듯 하다. 이명박의 승부는 11월과 12월 중의 ‘열린당 대항마’없는 시기에 얼마나 ‘대기업’들의 한나라당 관련자에 ‘인지도’를 높이느냐에 초점을 둘 것이다. 반면에, <제2의 이회창>도 싫고 <정계복귀 이회창>도 싫은 한나라당 지지자는 적극적으로 ‘대세론 막기’ 움직임을 벌일 것이다.
네거티브 잔 펀치의 바다는 결국은 요점 정리 하면 간단하다.
(1) 서민 주체에
(2) 열린당이 경제 실정해서 죄송스럽지만
(3) 한나라당이 잡으면
(4) 열린당 스럽거나 좌파 공식에서의 부르주아 반동 스럽다는 일로 굳어질 것이다.
한나라당의 ‘윤여준’과 이명박계의 대응력은 형편 없다. 왜, ‘네거티브’의 잔펀치에 역전 당할 조짐으로 몰리는 가에 대한 분석이 없다.
‘네거티브’ 잔 펀치의 바다를 건너기 위한 처방으로,
(1) 열린당의 정체성을 수호하는 좌파 이념의 성채에 대한 ‘네거티브’ 잔펀치를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 그러한 의미에서 ‘뉴라이트’는 그러한 사명을 가지고 왔는 듯 한데, 하는 일 없이 있어, 우익의 실질 시도를 방해한다.
- ‘민주화운동’이 ‘민주화운동’이었어?
-자유민주주의를 급진화한더니, 실제 의미는 사회민주주의였어? 속였네?
- 없는 자에게 편한 세상 만든다더니, 결국 하는 게 근로의욕 상실의 부동산투기의 대중화였어?
등등 ‘운동권’이었음을 소름돋게 싫어하는 바로서의 의미가 많다.
그런데, 이것을 왜 못하냐?
뉴라이트와 열린당 노사모는 ‘자기애적 인격장애’로 동일유형이다.
열린당에 대하여 ‘네거티브’ 잔펀치를 구사하기 위해서 이념의 심장부를 두들겨야 하는데, 이거 두들기자니 <운동권끼리> “내세에 만납세다 동지” 하는 가닥에서 자기가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다.
열린당원이 한나라당을 맑스주의 내에 부르주아 반동으로 모는 잔펀치를 한다면,
한나라당 지지자는 자유민주주의 한다더니 적화 일보 직전이네 하는 잔펀치를 이념의 심장부에서 두들겨야 한다.
즉, 한총련 경력자는 한총련을 부정하고
전대협 경력자는 전대협을 부정하고
맑스주의옹호자는 맑스주의의 심장부를 부정해야 한다.
그래야, 마음이 울린다.
이명박 패거리가 욕먹는 게 다른 게 아니다. 뉴라이트가 욕먹는 게 다른 게 아니다. 한나라당에서 열린당을 향해 네거티브 잔펀치를 구사할 때에 구사하지 않고서, <이념이 아니야 실용이야>하면서 입닥치고 있겠단다. 정말, 한나라당에 올라선 운동권 출신들은 그 어떠한 경우에도 우익엔 ‘눈물만큼’ 운동권에겐 ‘한아름’이 고쳐진 바가 없다.
(2) 강남에 발목 잡혀서 끌려가거나, 열린당원의 맑스주의에 합세하는 일은 자살행위.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적인 평등권을 살리겠다는 차원의 답변만이 정답이다. 재벌가와 강남 부자들을 셋트 메뉴로 병역 문제를 다루는 한국방송공사 토론의 경우에, 재벌가와 강남 부자들의 병역 문제에 대하여 헌법상의 자유민주주의적 평등권을 살리겠다는 답을 해야한다.
한나라당은 강남을 옹호해야 한다는 가닥에 사로 잡혀서 열린당의 한나라당을 부르조아 반동으로 모는 프레임을 강화하는 사례가 많다.
(3) 우익 역사 컨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좌익이 공략가능한 모든 경우를 대비하여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최선의 방책은 이명박이 아니라 박근혜가 경선에 승리하는 것이다.
3. 한나라당의 정책 수용자를 많이 배운 고상취미의 노인이 아니라, ‘여성취향’의 대중들로 바꿔 설정해야. 100점 컨텐츠 이회창의 소설스러운 컨텐츠 노무현에 몰락을 알면서, 노인 윤여준은 또다시 과거 가닥으로 한나라당을 몰아가고 있어.
이명박은 ‘구호’와 ‘명사’등등을 씌워서 얻는 이미지정치를 하면서, 상대를 이미지정치로 몰아넣는다. 자신이 정치적인 행보하면서 남의 지적만이 정치라고 한다. 기타 등등 한때 ‘김대중 선거운동원’들이 쌍팔년도 수준에 했었을 법한 ‘공식정치’를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은 우수한 컨텐츠를 알아줄 것이란 ‘선진국민’이 존재한다는 기대는 꺼야 한다.
네거티브에 사로 잡힐 때, 어떤 정책을 내면 그 정책의 파괴력으로 반전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실제로 유권자들의 수준은 천박하기 그지 없다.
극장표를 팔아도 극장에서 영화를 보지 않고 몰랐어요 환불사태가 벌어지지 않을 만큼의 밑줄 쳐주는 판매가 있다. 실제 정책에서도 중요 부분은 콕 집어 밑줄 쳐줘야 된다.
우익은 논쟁적 이슈를 만들지 못한다. 가장 커다란 이유는 노년층의 권력 독점 욕구가 그 어떠한 생산적 젊은 문화를, 씨말리고 있기 때문이다. 30대 풋풋한 대학교수의 특성을 유지한 강준만 흉내를, 환갑을 여유로 넘은 안병직교수가 흉내내어 실명비판한다는 바에서, 정말 우익지식인의 권력욕구의 추악성을 느낀다. 안병직교수는 자신의 이념을 팔기 위해서 ‘한겨레’와 ‘조선일보’의 양다리 의미가 명백하다.
우익사회에 ‘청년우파’논의가 있어도 늘 잠시잠깐인 이유가 우익 노년 지식인의 권력욕구가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식을 대중화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지식이 높은 등급임을 자랑한다.
그리고, 열린당의 공세에 비판한다.
네거티브의 바다를 건너는 방법은, 한나라당이 열린당에 대한 실정을 지적하는 네거티브가 아니라, 좌익 이념 심장부를 겨냥한 네거티브를 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이 풀뿌리 젊은 논거에서 나와야 하는 것이다.
님의 글은 읽을수록 심오하고 의미심장합니다.높은 고견에 진심으로 존경과 경의를 표합니다. 네거티브의 근본적인 속성을 모르는 인물은 현대사회에서 대선주자가 되기에는 자질여부를 떠나 부적격합니다. 네거티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고발, 고소같은 속좁은 조처를 취해서는 결코 해결될 수가 없습니다. 깊이있는 고찰로 타계해 나가던지 아니면 솔직하기라도 해야지 모르긴 몰라도 의혹은 점점 부풀려지고 변명은 더욱 궁색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같은 우군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지 못한다면 관용하는 배려라도 베풀어야지 고소를 하는 짓거리는 세인의 비웃음을 살 수 밨에 없습니다.
첫댓글 65년이면 죽을병이고 약도 없었을건데 어떻게 군대도 못갈만치 죽을병을 앓은 사람이 살았을까? 이상하네요, 나는 그때 고등학생이었는데 폐병이라고 옆에도 안가고 음식을 먹으면 그사람것은 따로끓여서 보관하여두고 다시사용하고,,,반복이 었으며 곧죽는병이었습니다,꼭 이걸 알으셔야 합니다, 옆에도안가고 비리비리 말라서 뼈만앙상한 폐인! 이런병에 걸린사람이 취직을해요? 말도 안되지! 어떻게 무얼먹고 살았을까? 궁금하네 꼭 파헤칩시다,
님의 글은 읽을수록 심오하고 의미심장합니다.높은 고견에 진심으로 존경과 경의를 표합니다. 네거티브의 근본적인 속성을 모르는 인물은 현대사회에서 대선주자가 되기에는 자질여부를 떠나 부적격합니다. 네거티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고발, 고소같은 속좁은 조처를 취해서는 결코 해결될 수가 없습니다. 깊이있는 고찰로 타계해 나가던지 아니면 솔직하기라도 해야지 모르긴 몰라도 의혹은 점점 부풀려지고 변명은 더욱 궁색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같은 우군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지 못한다면 관용하는 배려라도 베풀어야지 고소를 하는 짓거리는 세인의 비웃음을 살 수 밨에 없습니다.
이제 병역문제 정말 명쾌한 해명이 없다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타계하기 힘든 지경까지 갈 수 밖에 없습니다. 대선주자에 진정 뜻이 있다면 고소하는 짓은 정말 멍청한 바보같은 짓이었습니다. 이제는 스스로가 판 무덤에서 헤어나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병역문제로 집요하게 물고늘어진다면 자칫 역풍을 맞을지도모른다는 우려가듭니다.왜냐? 김대업이가 이회창씨 아들둘 병역문제를 집요하게 물고늘어져 노무현이가 엄청난 이득을보아 당선되였지만 지금 국민들의정서는 그때와는 조금다른양상입니다. 이명박씨의경우 논산훈련소에까지 깄다가 귀향조치당했다고하는데 사실일경우 두아들이 체중미달등으로 징병검사에서 아예 불합격판정받은거와는 성격이 완전다릅니다. 우리가 신중해야할부분은 논산훈련소에서 귀향조치를내린 사유가 정당하다면 명역미필을 문제삼는 우리들은 닭쫒던개 지붕처다보는 격이 된다는것입니다.신중하게 대처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