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개국시조 태조 이성계...
틀림없이...반역으로 왕위에 오른 고려의 역적이 맞긴하다.
당대 대륙의 원나라정권의 판세는...
기황후파의 고려계들과 정통 몽골황통유지파들의 대립을 기화로...
각 지역의 군벌들이 난립하며...속지의 여러 민족들에서도 반란이 일어나던 대원제국의 몰락시기였고...
특히나, 남방의 한족(신장성 천산 남부지역?)들이 백성의 대다수인 원나라 남경(호탄?)지역의 명나라(무굴?)가 발호하면선...
후빌라이한"계파는 사막으로 내몰려 본토인 외몽골에서 북원(北元)으로만 대를 연명하던 시기였었기에...
그 중간의 여진족들 지역인 요동(감숙성~내몽골 서부?)과...
동진(東眞)지역인 내몽골 동부와 현 베이징과 동북삼성은 무주공산였기에...
당대 이성계, 최영등의 군대를 가진 최고의 막강 군벌국가격이던 고려로선...
옛 고구려의 상당지역을 수복할 절호의 기회였고...
공민왕을 이은 우왕과 공양왕도 역시 마찬가지였으나...이성계가 자신에게 집중됀 군권과 백성들의 신망을 악용해...
왕위를 찬탈하고...이를 역사서에 합리화시킨 정황은 뚜렷한 고로...
조선태조 이성계는 고려의 역신임을 넘어...한민족의 숙원였던 고구려영토 수복열망을 배신하고...
개인적 권력욕에 고려를 배신한 역적은 맞는 이치이다.
그러나, 역사는 승자들의 전유물이기에...
조선왕조실록등의 조선사서들은 이를 합리화시키기 위해...공민왕과 우왕, 창왕등을 변태같이 묘사해...
역성혁명의 정당성를 강변한 것도 맞지만...
그 반대로...500년 뒤엔...남방 섬 원숭이들인 왜놈들과 친일파들에게 조선이 망하면서도...
그 조선의 역사는...다시 한번 왜놈들의 손을 탓을게 뻔하니...모든 현존사서들의 문구를 고대로 믿을순 없으니...
여러 사서들을 비교 검토하여.,,왜놈들의 손을 못탄 흔적들을 발굴함이 역사복원의 기본이라 하겠다.
조선민족을 찌질하게 묘사하기 위해선...
고려왕조는 망할 수 밖에 없던 찌질했던 나라고...이를 좀 덜 찌질했던 이성계가 차지하곤...
철저히 명나라를 존숭하며 북방영토도 명나라에 다 내주고 조선왕을 책봉받기에 급급했다 써야...
그 찌질한 왕조인 조선의 패망은 숙명이고..왜놈들과 친일 개화파들의 대동아공영이 명분이 섯을게 뻔하니...
최대한 조선의 개국까지도 폄하하고 ...이성계의 패악과 오류를 과장&왜곡했던걸...
우린 뭔 성경구절 마냥 진리로 알고 이성계가 저지르지 않은 패악질까지도 이성계의 짓으로 비판하고 있던 것일지도 모른단...
의심이 너무 부족했던건 아닐지 싶다.
그 정황중의 하나가...조선(朝鮮)이란 국명이다.
일부 재야사학자들은...조선(朝鮮)이란 국호는...단군 개국이래...기자조선..이성계조선을 이은 영원한 한민족의 국호로...
유라시아대륙...최소한 현 중원대륙 정도는 다 다스린 역대 천자국의 국명이라 예상하시는 분들이 계신듯 하고...
중국(中國)이란...이 조선의 경기지방에 있던 황도를 이르단 말씀들을 하시고...나도 한때 그 학설을 철석같이 믿었으나...
좀 공부해 보면 볼수록...그건 약간의 착각일듯 싶다.
상식으로 생각해 봅시다.
조선(朝鮮)이란 국호는...중원대륙을 호령한 천자국의 영원한 국호라 한다면...
고종의 대한제국은 왜 조선제국(朝鮮帝國)이라 하질 않았던 것일까...?
왜 왜놈들은...대한제국을 다 먹곤...그 위대한 조선제국의 호칭을 이미 다 먹은 한반도에 부여해 주어...
민족혼을 불타게 만든 등신짓을 했단 말일까...?
그래, 나는 이런 가정을 해 봅니다.
조선은 단군이 개국한 지역이자 기자가 차지한 지역이 맞긴 한데...그 통치지역 전체를 이른 국명이 아닌...
그 핵심지인 경기지역격의 지역명칭이다.
예를 들자면,,,한나라(漢),한나라(韓),제나라(齊),연나라(燕)등등의 중원왕조 명칭에서 보듯...
그 왕조의 조대명은...그 통치지역 전체의 명칭이라기 보단...그 왕조를 잉태한 지역명으로 했단 전통을 무시해선 않됀다 보인다.
단군조선이나 기자조선도,..그 강역이 중원 중북부를 다 경영한 문명이 맞을듯 하나...
그 전체지역의 명칭들이 다 조선이라 불려진게 아닌...단군이나 기자의 직접통치지역인...즉, 경기지역격인 지방의 명칭이...
바로 조선(朝鮮)였던 것이란 발상의 전환도 필요해 보인다.
전의 글에서도 약소하나마 일부를 증거제시 했듯...
조선 사서들에도 간혹...단군조선의 국호는 조선이 아닌...단국(檀國)이기에...
거기서 나는 특허의 활(예맥각궁)을 단궁(檀弓)이라 하고...그 통치자를 단군(檀君)이라 하는 이치요...
그 나라가 기자에 밀리고 한나라에 밀려 남방으로 망명하면선...
삼한(三韓)지역의 원 국명이 진단(震旦)이란 호칭으로 불렸단 고사들을 참고하건데...
단군조선의 원조 국호는..,꼭히 붙이자면...단국(檀國)이라 해야 적당하단 사서들도 참고해야 할 듯 하고...
중국이 우리를 진단(眞旦)이라 했고...인도가 현 지나대륙을 진단(震旦)이라 호칭했단 예를 봐서는...
현 중원대륙 남부가 바로 삼한(三韓)의 전신인 진국(震)의 지역이요...
삼한(三韓)은 단지, 중국의 한(韓) 왕조 유민들의 나라란 뜻이기에...
삼한의 본토인 현 중원남부 차이나의 명칭은...진나라(차이나,震國)이 더 적절하단 제 주장도 곁들여 봅니다.
각설하고 오늘은...
이성계 조선의 국호문제...
밑의 안정복 선생의 글엔...분명 태조 이성계가 명태조에게 제시한 국명은 화녕(和寧)이었고...
그건 단지 자신의 조상들 고향이자 조삼무덤이 있던 지역에 대한 애착이 아니라...
그 지역의 영토에 대한 의지를 반영한 국호란 기록이 있다.
그러나, 태종 이후의 기록부턴...
왠 일인지...태조 이성계의 개국 원년 처음부터 조선(朝鮮)과 화녕(和寧)의 두 국호를 한상질을 사절편으로 보내...
조선이란 국호를 허가 받았다고 하는데...이는 태종의 짓이지 이성계의 뜻 같지가 않다.
태조 이성계는 자신의 고향이자 조상들의 무덤이 있던 화녕(和寧)지역의 여진족들 지역을 우리가 정복하여
고구려의 옛 영지를 수복하여 우리땅이 됐으니...
나를 화녕(和寧)의 군장으로 인정해 달라고 명태조에게 요구했던 정황이 보인다.
그 지역은 원나라 후빌라이계가 버리고 북원(외몽골)을 도망친 무주공산에...
알타이 서부의 나얀칸(乃顔)세력의 군벌인 합단(哈丹)세력들과 홍건적들... 동북삼성지역의 여진인들이 들어와 살던 지역이기도 했다.
이 대목에서 다시 상식적으로 한번 판단해 봅시다.
고조선을 뜻하는 조선(朝鮮)은...강단사학이 말한 영토론 현 동북삼성까지이고...
이성계 할아비들의 본향인 함흥은...그 남쪽인 함경남도 함흥이란게 강당사학과 일제의 주뎅이질인데...
뭔 이성계 사랑이 지극해서...
명태조는 이성계에게 한반도만이 아닌...동북삼성까지를 뜻하는 조선(朝鮮)이란 국호를 강요했냔 의문이 있다.
그러면서도 뭔 함경도 항흥 이남의 철령위 선포로...
고려와 싸움박질였는지도 설명이 어려운게 현 강단사학의 강역비정이다.
밑의 조선사 기록엔...
분명...명태조가 철령위를 선포했는데...그건 이성계 조상들의 본향과 묘지까지 해당돼는 땅이니 봐 달란 구절이 나온다.
후에 명나라는 이 철령위를 요동지역으로 물려주긴 하나...세조 이후엔 다시 여진족들 차지가 돼어...
이성계 조상들의 묘가 오랑케들의 지역에 들어갔다 한탄하기도 한다.
더 중요한건...
고려가 주장한 강역은...틀림없이 두만강 이북 공험진 까지 수백리 지역을 이른단다.
그러나 후대엔 두만강까지만 국경이 철석같이 정해져서...이성계 조상들의 본향과 묘소들이 오랑케지역에 들어갔다 한탄한다.
강단사학대로면...한반도 함경남도 함흥이 이성계 조상들의 본향이자 묘소들도 잘 만들어져 있는 곳이라는데...?
그럼,18세기의 두만강은 강원도에 있었단 얘긴가...?
이러니,현 대한민국 강단사학의 주장들이...왜놈들이 왜곡한 조선사를 달달 왜우는 수준의 삽질이란 반증이다.
이성계는 고려의 요동정벌을 기회로 자신에게 주워진 군권을 악용해 역성혁명을 한 배신자는 맞지만...
그렇다고 고려의 북방영토를 명나라에 받치며 조선왕이길 구걸한 비겁자도 아니였던 정황이 나오기도 한다.
발해가 요나라에 망할시기 잠시 차지했던 동녕부와 철령 동북부...요동벌 일부...
이게 요나라가 굳건해 지면선 다시 거란(요나라)에 빼앗끼고...
금나라가 요나라를 치면선...잠시 차지하려 하다가...금나라에 다시 빼앗끼고...
금나라가 몽골족에 패망하면선...발해와 금나라의 동쪽 잔당인 동진(東眞)지역을 고려가 다시 차지했다가...
몽골의 침입으로...서북도는 홍복원일당이 들어 바치고...동녕부,쌍성총관부는 조모씨 일가와 이성계 할애비들이 들어 바쳤다가...
원세조 후빌라이의 집권 이후엔...
고려 충렬왕 이후부터 부마국의 지위로...이 지역들의 통치권을 슬슬 인정받게 되는 이치였는데...
명나라가 발호하여 원나라를 북원(외몽골)로 밀어내곤...이 지역들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한게 철영위 선포이고...
고려는 이건 원래부터 고구려의 강역이고...우리가 이미 원나라에 인정받은 수복지니...양보할 수 없다.
전쟁도 불사하고 요동을 치겠다 강하게 나오면선...명태조도 포기하기에 이른 경우였는데...
이 지역 소유권을 이성계도 그대로 주장했던 것이고....이 지역의 명칭이 화녕(和寧)으로 대표됐었던 것이다.
명태조는 ...
이성계의 나라 이름을...이성계 요구대로 화녕(和寧)이라 인정할 수 없었고...
그 남부인 고조선 동남지역의 경기지역 명칭인 조선(朝鮮)이란 명칭을 강요했던 정황이 보인다.
그래, 조선사나 명사엔...
명태조가 이성계의 사신을 질책하며...
이미, 조선이란 국호를 내려 줬음에도...왜 이성계는 조선국왕(朝鮮國王)이라 하질 않고...
아직도 권지국사(임시 위임통치자)란 직함을 사용하는가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조선사엔...또...
태조1년 이미 조반이란 사신이 명태조를 구슬르고...한상질을 보내 국호를 정해오게 하여...
화녕과 조선이란 두 국호 중 조선을 골라줬다 나오는데...뭔 소리인지...?
이를 태종시대의 사서엔...
이미, 조선이란 국호를 하사받긴 했으나...조선국왕의 지인과 국새도 없으니...권지국사라 했단 변명이 나오는데...
말이 않됀다.
명태조가 등신이라서...조선이란 국호를 정해주고도...조선왕으로 이성계를 인정해 주면서...
황제가 제후에게 내리는 국왕 옥새나 임명장도 안 줬단게 말이 되는가...?
그리고선...왜 조선국왕이라 하지 않고,,,권지국사라 하나 따졌단 말이던가...?
이런 정황으로 보건데..
이성계는 역성혁명을 인정받기 위해... 예전에 명태조를 몽골군의 홍건적 토벌 군장 탈탈승상의 군영에서 보고 알았던
조반이란 자를 사신으로 파견하여...명태조의 진군을 막으려 했던 정황이고...
그럼 국호는 뭐라 바꿀 것인가 묻자...
신속하게 한상질등을 사신으로 보내어...
화녕(和寧)이란 자신의 본향이자 조상들의 본거지요 무덤이 있던 자리의 지명을 국호로 제시했는데...
이는 명태조가 원나라에서 회수할 동북영토이기에...즉, 철령위 지역이기에...이를 거부하고...
그 남부인 옛 고조선(檀國)의 후기 동남부 중심지역인 조선(朝鮮)으로 함이 마땅하다 주장했기에...
이후, 명태조의 조선 정벌을 없었으나...이성계의 입장에서도 북방영토의 포기를 상징하는 화녕(和寧)국호 포기를 못하고 ..
소강상태를 유지하다가...
명태조와 사이가 나빠져서...더우기 이성계가 보낸 사절들이 명태조를 우롱하는 조서를 작성하고...
여진족 지역들에 대한 회유포섭공작과 국경약탈이 빈번하여...이성계의 사절들을 처형하거나 구금하기에 이르기도 한다.
결국,
이방원(태종)의 왕자의 난 이후...
이를 인정받기 위한 태종 이방원의 본격적인 명나라에 대한 이쁜짓 시기부터...
조선의 명나라 사대가 본격화 되고...화녕(和寧)이란 고토회복의 국호가 아닌...그 남부지역인 조선(朝鮮)이란 지역명이...
이성계 왕가의 국호로 인정받기에 이른거라고 보이는 정황들이 있다.
간단한 대목들만 요약해 나열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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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선이 개국(開國)함에 이르러 명 나라에게 국호(國號)를 청하면서 화령(和寧)으로 하고자 했으니, 화령이란 영흥(永興)의 별호다. 우리 태조대왕이 처음에 화령백(和寧伯)에 봉해지고자 한 것은 무릇 국호가 그 봉작(封爵)의 칭호일 뿐만 아니라 이 땅이 일월(日月)을 배태(胚胎)한 곳이기 때문에 성상(聖上)의 뜻은 그 곳을 병탄하고자 하여 이로써 봉호를 청한 것이었다. 오랑캐가 점점 강성해짐에 선춘(先春)의 옛 강토도 보전을 못하고 덕릉(德陵 목조(穆祖)의 능)·안릉(安陵 목조의 비인 효공 왕후(孝恭王后)의 능) 두 능도 이역(異域)으로 들어가 두만강과 압록강이 하나의 큰 철한(鐵限)이 되어버렸으니, 이것이 바로 뜻있는 선비가 길게 한숨쉬고 짧게 탄식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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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무 25년 7월 15일에 지밀직사사 조반(趙胖)을 보내어 황제께 주달하였고, 계속해서 문하 평리(門下評理) 조림(趙琳)을 보내어 표문(表文)을 올려 아뢰게 하였더니, 삼가 성지(聖旨)를 받자오니, 권지 국사(權知國事)로 윤허하시고, 예부에서 온 자문을 받자오니, 그 사연에, ‘나라의 이름을 무엇으로 고쳐야 하느냐? 빨리 와서 알리라.’ 하옵기로, 이에 의하여 즉시 지밀직사사 한상질(韓尙質)을 보내어 주본(奏本)을 가지고 경사(京師)에 가서 삼가 성지를 받자오니, 이르기를, ‘동이(東夷)의 칭호는 오직 조선이라 하는 것이 아름답고, 또 그 내력이 오래 되니, 그 이름을 근본으로 삼아 본받을 만하니.’ 하셨으니, 삼가 이에 따라 하기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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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무 26년 3월 초9일 문하 평리 이염(李恬)을 보내어 전조 고려 국왕의 금인(金印)을 부송(附送)했고, 또 그 해 12월 초8일에 좌군 도독부(左軍都督府)의 자문을 받자와 삼가 성지(聖旨)의 1절(節)을 뵈오니, 그 사연에, ‘정명(正名)에 합치되게 지금 조선이라고 이름을 고쳤은즉, 표문에 전대로 권지 국사라 함은 무슨 까닭인지 알지 못하겠다.’ 하셨으니, 이 분부를 받자와 일국 신민들이 벌벌 떨면서 황송히 여기오며, 모두 국왕이라고 시행하라 하오나, 오늘날 비록 국왕이라 일컬을지라도 명칭이 끊어져 내려 주신 고명과 조선국의 인장을 받지 못하여, 일국의 신민들이 밤낮으로 옹망하고 감히 사연을 아뢰오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살피시기를 청하와 번거롭게 아뢰오니, 국왕의 고명과 조선의 인신(印信)을 주시어서 시행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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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 같은 데에도 우리 나라를 기록하되 그 세계(世系)를 원조(遠祖)에서부터 태조(太祖)에 이르기까지 분명하게 기록하고, 또 쓰기를 ‘왕요(王瑤)가 혼암하므로 많은 사람이 문하 시중(門下侍中) 모(某)를 추대하여 임금을 삼았다.’ 하였습니다. 그 뒤에 또 고명(誥命)을 내렸다 했는데, 그 고명의 하사는 태종조(太宗朝)에 있었으며, 그 때에는 단지 권지 국사(權知國事)라고만 칭하였으니, 무슨 까닭으로 그랬는지 알 수 없습니다. 조종이 설사 참덕이 있다 하더라도 사실과 다르면 또한 유감일 것인데, 하물며 이와 같이 사실과 다른 일임에리까. 이 말이 반드시 천하에 반포되었을 것이요, 천하에 반포될 뿐만 아니라 또한 후세에까지 전해질 것입니다. 대절(大節)의 사실이 이와 같이 엉뚱하게 전해졌으니, 통분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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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서들의 불일치를 보건데...
태조 이성계는 분명 명나라와 뭔 불화가 있었고,,,그건 영토와 국호 문제였고...
정통성이 없던 태종 이방원이의 왕자의 난 이후...명나라의 힘을 빌려 왕권을 유지하려한 태종 이방원의 행적들이...
명사에 기록되었기에...이후 이방원계의 조선왕들은...내내 명나라사서의 종계변무를 주업으로 삼았다 보이는 대목이다.
이성계가 ...
태종 이방원 이후의 조선왕조실록 대로...명나라에 조선이란 국호 공손히 받고...
일부 재야 민족사학자들 말대로...북방 영토를 바친 허접이라면...
명태조가 가장 이뻐해 줬어야지 왜 마찰이 잦았단 말인가의 모순을 재 해석해야하는 대목이다.
이인임이 요동정벌의 수장였고...그를 제거한게 이성계라면...
이성계는 명나라에 알아서 긴 귀염둥이인데...
왜 그 사악한 이인임을...구염둥이 친명 사대주의자 이성계 아비라고 오기한 뜬금없는 사서를 명태조가 싸인해 줬단 말일까...?
이로 보면,,,태종 이후부터 누차 본격화 돼는 종계변무...즉, 이성계 아비 이인임이란 왜곡 시정요구는...그 구실일 뿐...
실상의 종계변무는...이성계 조상이 타타르(달단동)계 여진족이라는 진실...
그리고 태종 이방원의 집권은...
아비를 몰아내고 형제들을 죽인 치졸한 작태였단걸,,,명나라 사서에서 지워달란 간절한 구걸이 아니였나란 예상도 해 본다.
결국, 끝내 지워지질 않아서...
조선 역대 왕들의 직계 조상인 태종 이방원은...
태조 이성계님으로 부터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아 세자로 지목돼고...
형제들과도 우애가 깊디 깊었으나...이상하게 이복형제들과 친형아들이 빨랑 뒤지고...동생들도 자꾸 저승으로 가곤 하여...
간혹 태종께서 형제들을 제거한게 아니냔 세간의 의심도 일부 있었으나...
이는 터무니없는 무고로,,,이를 명나라 사서가 잘 입증하니라~~~!
란 기고만장형의... 전형적인 용비어천가가 불가능했던 것이라 사료된다.
결론은...
이성계는 고려의 고구려영토 수복전쟁의 기회때 주워진 군권으로 역성혁명을 한 반민족자는 맞지만...
이방원 이후의 조선역사 대로...명나라에 일방적으로 아부한 왕도 아니요...영토를 포기했던 왕도 아니란 정황이며...
오히려 이성계 집권시기엔...조선 사절들이 명태조를 조롱할 정도로 위세가 당당했던 국가가 화녕(和寧)였고...
이 국명은...외몽골 하라호름(和林)과 같은 지명이였음에 그 영토가 그 주변 어디까지란 반증인걸...
정통성 없던 태종 이방원이...
명나라의 힘을 빌려 왕권을 유지하고져...스스로 명 태종에 꼬랑질 말고 들어가면서 부터...
화녕(和寧=하라호름)이 조선으로 바뀌고....그 역사가 비굴해진 것이라고 예상되는 대목이다.
조선왕조는 내내...
명나라의 문화와 군사력이 존경스럽고 두려워 사대했다기 보단...
그들이 쥐고 있던...이성계의 타타르계 여진이란 엑스파일과....태종 이방원의 치졸한 아비퇴출과 형제들 제거 공작질 엑스파일...
이 비밀들의 공개 협박에 후둘렸기에...명나라를 사대했를 수 밖엔 없었다고 보인다.
오늘날에 미국이 써먹는 세계지배전략과 명나라의 그것이 많이도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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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는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서북쪽은 산악이 막혀 있으니 실제로는 4면에서 적의 침략을 받는 나라이다. 바닷길로 말하자면 왜(倭)와 서로 접하여 있는데 동남의 연해가 가장 가깝다. 저들의 대마도(對馬島)·일기도(一歧島)·옥람도(玉藍島)·평호도(平戶島) 등의 섬 및 서해(西海) 구국(九國)의 땅은 모두 바람에 돛을 달면 하루나 2, 3일의 노정이요, 은기(隱歧)·백기(伯耆) 등 여러 주(州)는 강원도의 동해와 역시 3, 4일의 노정에 불과하다. 그러니 만약 그들과 화친이 깨진다면 3면의 연해가 모두 그 해를 받게 된다. 서해의 1면은 왜환(倭患)뿐만 아니라 예로부터 늘 바다의 풍랑이 걱정거리가 되어 왔고, 또 중국과 흔단이라도 생기는 날이면 수륙(水陸)으로 한꺼번에 이르러 등주(登州)·내주(萊州)·회양(淮陽)·절강(浙江)으로부터 돛을 올리고 오니, 한(漢)·위(魏)·수(隋)·당(唐)의 일을 보아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동·서·남쪽은 각기 바다를 경계로 삼아 강역(疆域)을 다투는 일이 없지만, 서북쪽은 육지로 이어지고 산융(山戎)과 접해 있으며 또 중국과 통해 있어서 득실(得失)이 무상하다. 근본을 따져서 논하자면 요동(遼東)의 절반 땅인 오랄(烏喇) 이남은 모두가 우리 땅이다. 그런데 수(隋)·당(唐)·송(宋)의 즈음에 발해(渤海)·거란(契丹)·완안(完顔) 등의 잡종이 번갈아 일어나면서 땅의 경계가 점차 줄어들었다. 애석하게도 신라 문무왕 이후로 모두 원대한 뜻이 없어 백제를 병합하고 고구려를 평정하는 것으로 뜻이 이미 만족하여 다시는 고구려의 옛 강토를 회복하려 하지 않음으로써 발해로 하여금 가만히 앉아서 커지게 하였다. 뒤에 고려 태조가 요(遼)와 국교를 끊은 것은 뜻이 또한 우연하지 않은 것이었으나 불행하게도 훙서(薨逝)하였고, 그 뒤의 왕들은 비록 뜻을 계승하기는 했지만 서쪽으로는 압록강을 경계로 삼고 북쪽으로는 두만강을 경계로 삼는 데 그쳐 요동의 1보의 땅도 넘보지 못하였다.
우리 조선이 개국(開國)함에 이르러 명 나라에게 국호(國號)를 청하면서 화령(和寧)으로 하고자 했으니, 화령이란 영흥(永興)의 별호다. 우리 태조대왕이 처음에 화령백(和寧伯)에 봉해지고자 한 것은 무릇 국호가 그 봉작(封爵)의 칭호일 뿐만 아니라 이 땅이 일월(日月)을 배태(胚胎)한 곳이기 때문에 성상(聖上)의 뜻은 그 곳을 병탄하고자 하여 이로써 봉호를 청한 것이었다. 오랑캐가 점점 강성해짐에 선춘(先春)의 옛 강토도 보전을 못하고 덕릉(德陵 목조(穆祖)의 능)·안릉(安陵 목조의 비인 효공 왕후(孝恭王后)의 능) 두 능도 이역(異域)으로 들어가 두만강과 압록강이 하나의 큰 철한(鐵限)이 되어버렸으니, 이것이 바로 뜻있는 선비가 길게 한숨쉬고 짧게 탄식하는 까닭이다.
지금의 병력으로는 기자(箕子)의 강토와 고구려의 토지를 회복한다거나 목조(穆祖)·익조(翼祖)의 구거(舊居)를 회복하자고 말할 수는 없으니, 마땅히 옛 일을 많이 알아 그 계한(界限)을 밝혀 스스로 강해질 길을 찾아야 할 뿐이다. 일찍이 듣건대,
“숙묘(肅廟) 임진년에 목극등(穆克登)이 와서 강계(疆界)를 정하던 때에 마땅히 분계강(分界江)으로 한계를 삼았어야 한다. 분계는 두만강의 북쪽에 있는데, 그 이름을 분계라고 한 것은 대개 이곳이 피차의 경계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공공연히 수백 리의 땅을 버렸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북방 사람들이 대다수 한스럽게 여기고 있다. 그러니 그 당시 일을 맡은 사람은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하였다.
그러나 왕자(王者)의 다스림은 덕을 힘쓰는 것이요, 땅을 넓히기를 힘쓰는 것은 아니니 이는 작은 일에 해당된다. 참으로 크게 우려되는 점은, 만약 중국에 변이 생겨 완안(完顔)이 남으로 옮겨간다면 요(遼)와 심양(瀋陽) 일대에 또한 자립하여 세력을 확장해나갈 자가 있을 것이니, 예를 들자면 공손(公孫), 모용(慕容), 대씨(大氏), 동진(東眞) 같은 부류가 여기에 해당된다. 고구려는 강성할 때를 당했기 때문에 이씨(二氏)의 환난을 당하지 않았고, 신라의 경우는 요(遼)는 멀리 있고 대씨는 바야흐로 저들의 국내를 경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패북(浿北)의 땅만을 잃었으며, 고려는 몽고의 지원을 얻었기 때문에 동진이 우리에게 큰 상처를 주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원(元)의 순제(順帝)가 북쪽의 본굴(本窟)로 달아나자 흥경(興京)·오랄(烏喇) 동쪽의 수천 리 땅에 족히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이요, 국경이 접해 있어 우리가 옛 예(禮)에 따라 조공을 바치다 보니 그 이해(利害)가 더욱 심해지게 되었다. 이로부터 국경의 분쟁이 일어나고 내반(內叛)의 틈이 생겨났으니, 소손녕(蕭遜寧)이 와서 고구려의 옛 지역을 요구하고 명 태조(明太祖)가 철령위(鐵嶺衛)를 세우려고 하던 때에 만약 서희(徐熙)와 박의중(朴宜中)의 적절한 대답이 없었다면 거의 나라를 보전하지 못할 뻔했고, 조휘(趙暉)가 쌍성(雙城)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한순(韓恂)이 의주(義州)에서 반란을 일으켰을 때에 만약 우리가 대국(大國)을 의탁하여 중국 경내의 지역과 같은 의리를 갖추지 않았다면 결국은 잃고 말았을 것이다.
또 천하에 일이 많아 도적이 종횡하면서 해동(海東)의 한 지역은 항시 망명하는 곳이 되어 왔다. 전국(戰國)의 말기에 한인(韓人)이 바다를 건너와 삼한(三韓)을 세웠고, 연(燕)의 난리에 위만(衛滿)이 동으로 오면서 기씨(箕氏)가 망했고, 대씨(大氏)가 멸망함에 남은 무리 수만 명이 모두 우리 나라로 들어왔는데 저들은 약하고 우리는 강했기 때문에 위씨(衛氏)가 쓰던 꾀를 답습하지는 못했고, 거란(契丹)이 망했을 때에 김시(金始)·김산(金山) 등이 또한 우리 나라로 와서는 옛날에 신하로서 섬기던 예(禮)를 요구하고 크게 노략질을 해 갔으니, 그 형세가 또 발해(渤海)의 주변에 몽고(蒙古)만이 있던 것과 달랐다. 발해는 동진(東眞)이 그 근처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몽고의 힘을 빌려서 평정을 했고 내안(乃顔)이 원을 배반했다가 사로잡힘에 여당(餘黨) 합단(哈丹)이 또다시 동으로 달아나 노략질을 하자 역시 원의 힘을 빌려 평정했던 것이다. 원이 망함에 나하추(
納哈出)가 크게 이 지역으로 들어가자 홍건적(紅巾賊)이 난을 피하여 우리 나라로 들어왔는데, 이 때에는 대국의 지원도 없어 형세가 매우 위급했다. 다행히 우리 태조(太祖)의 신무(神武)와 세 원수(元帥 정세운(鄭世雲)·이방실(李芳實)·김득배(金得培))의 용력(用力)에 힘입어 마침내 평정을 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명(明)이 망할 때도 우리가 먼저 침략을 받았다. 그러니 예로부터 천하의 용병(用兵)이 항상 동북쪽에 있었으며, 우리 나라가 화를 받은 연유를 전철을 통해 환히 알 수 있다. 이것을 본다면 나라를 위해 계획을 세우는 선비는 바다를 방비하고 변경을 방어하는 대책에 대해 더욱 생각해야 할 것이다.
첫댓글 본문 상중단에... 명에게 국호를 청하기를 '화령'을 원했다... 화령은 곧 영흥이다... 결론적으로 이성계는 자신의 본거지인 화령(당시 지명 영흥)을 국호로 삼으려 했으나...주원장의 결론은 조선이었죠?... 여기에 숨은 뜻을 이미 김자가 깨우쳤다우.^^
그러면서 왜 대륙조선설에 다리를 거시는지여...?
도대체 왜?
@궐한 저는 소설과 실사의 구분을 명확히 합니다... 제 글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일방적인 주장일 경우 '소설 혹은 추측, 추정'이라는 단어를 아낌없이 씁니다.
@金子 제 글의 기본은 엄연한 역사서의 제시와 그 모순을 집은 글입니다.
단지, 그 해석에서...저의 가설이 가미됀 정도이지...그걸 순수 소설로 높게 처 주심은 과분하신 대우이십니다.
@궐한 권한님 역사에 대해서 그리도 관심이 높나요? 그 마음 진실이라면 답글을 확인해 보시고 님의 지금 이 생각이
무엇이 먼저 필요한가도 잘 모르고 매주왈 고주왈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지금도 확실한 역사적
근거가 다 밝혀지는 사실 앞에서 독도를 지들 땅이라고 생때거지를 쓰는 사실 앞에서 지금 뭣들 하자는 것입니까? 과연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도 외면하는 이 상태에서 고려말 이성계가 역적을 했다고요? 했죠 과거로 부터 제왕정치에서 순리적으로 나라가 밖기었던가요? 이 모두가 다 역적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이것을 통해 당신이 노리는 그 속셈에 무엇입니까? 얄량한 글자랑을 하겠다는 것입니까?
@정도회운동자 필요한 것에 쓰지 못하면 그것은 글을 써도 먹물이나 낙서에 불과하고 필요한 것이 쓰지 못할 말은 잡담이나 시비에 불과합니다. 이 시대에 태어나 살고 있으니 같은 한민족으로서 서로가 제살 뜻기에 급급할 것이 아니고 우리가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는데 뜻을 모아 주십시오. 이것을 할 수 없다면 당신 글은 글이 아니고 쓸모없는
낙서에 불과합니다. 그런글을 만들고 말고는 당신이 스스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궐한 님은 사서에서 모순을 짚는다고 하셨는데... 이는 커다란 그림판에서 숨은 그림찾기가 되어야 함에도... 님은 숨은 그림 하나를 트집잡아... 그림 자체를 부정하고 계십니다... 아닌가요?
@정도회운동자 그럼,님은 독도 만행에 뭘 하시고 계신가여...?
손꾸락을로 글질하는것 빼고여...
매일 일본 대사관 앞에 가서 입으로만 옹알거린다고 왜놈들이 눈하나 깜빡할까여...?
당연 우리땅이니 왜놈들이 까불대면 그 핑계로 독도를 군사요세화 시키는게 정상이고...
주변해역 다 뵝쇠조치하고...전쟁도 불사할 강력한 대응이 먼저입니다.
매일 조뎅이로나 손꾸락 댓글질로는 아무것도 변하질 않습니다.
민주당애들이나 박근혜가 그걸 할까여...?
입하고 손꾸락만 아파여...
@金子 뭔 성철스님같은 화두 숭내내지 마시고...
쉬운 훈민정음으로...어느 부분 어느 문장이 그렇다고 명시하세여...
대개 자신없으신 분들이 말을 부러 어렵게 하십니다.
@궐한 ㅎㅎ 드뎌 제가 성철스님과 비교 대상이 되는군요... ㅋ 고맙습니다... 역시 님의 안목은 탁월하십니다... ㅋ 한가지 불만은... 사람들은 제가 욕을 못하는 줄 아는데... 성철스님 만큼은 입도 거칩니다... 오죽하면 한때 별명이 김욕이었을까요.ㅋㅋ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4.02.26 1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