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7일(목)
* 시작 기도
주님...
주님을 사랑할 자격이 없는 자가 여기 있습니다.
아니 주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도 없는 자입니다.
내가 걸어온 길을 돌이켜 보면 나는 죽기에 합당한 자입니다.
이런 내가 어떻게 여기에 있게 되었는지 그저 감개무량할 뿐입니다.
밤새 오염된 나의 영혼을 주의 보혈로 씻어 주옵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육신으로 달려가려는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는 죽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나의 의로 칠갑을 한 나를 불쌍히 여기사 무화과옷은 벗겨주시고 가죽옷으로 예표된 그리스도의 옷을 입혀 주옵소서.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아니 진짜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이런 나는 살아 있는 것 자체로 이 세상을 오염시키는 부정한 존재이오니 나를 불러주소서.
빈껍데기와 같은 나이지만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우사 주님을 진심으로 앙모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시 67:1-7
제목 : 주는 민족들을 공평히 심판하시며
(시 곧 노래, 인도자를 따라 현악에 맞춘 것)
1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고 그의 얼굴 빛을 우리에게 비추사 (셀라)
2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모든 나라에게 알리소서.
3 하나님이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4 온 백성은 기쁘고 즐겁게 노래할지니 주는 민족들을 공평히 심판하시며 땅 위의 나라들을 다스리실 것임이니이다. (셀라)
5 하나님이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6 땅이 그의 소산을 내어 주었으니 하나님 곧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7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니 땅의 모든 끝이 하나님을 경외하리로다.
* 나의 묵상
본 시의 저자나 저작배경이 나와 있지 않다.
그러나 이 시는 예로부터 장막절 기간에 낭송되었으며 유대인들 사이에서 추수감사 찬송으로 불려졌던 시이다.
그래서 이 시를 감사예배시로 분류한다.
하나님,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복을 주십시오.
주의 얼굴빛을 우리에게 비추어 주시면, 주의 법이 세상에 주의 구원의 길이 온 나라에 알려질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고 모든 나라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여 주십시오.
주께서 민족들을 공평하게 심판하시고 땅 위의 나라들을 다스리시면 온 백성들은 기뻐하고 즐겁게 노래할 것입니다.
하나님, 민족과 나라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여 주십시오.
땅에 곡식과 채소가 풍성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복으로 인하여 땅의 모든 끝까지 하나님을 경외하며 높이 찬양할 것입니다.
장막절은 1년 농사를 다 짓고 난 후에 추수에 대한 감사로 지키는 절기이다.
장막절 또는 초막절이라고 하는 절기는 이스라엘 7대 절기 중에서 가장 마지막 절기이다.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칠칠절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 초막절 곧 장막절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의미한다.
1년 동안 지은 알곡을 창고에 모으는 것이 장막절이다.
그것처럼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영생주시기로 작정하신 이들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 나라로 모으는 날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본 시는 이 세상 만물 안에서 주신 어떤 물질로 인하여 감사하는 일차원적 감사를 뛰어넘는다.
곧 생명과 영생에 대한 감사의 노래인 것이다.
곡식이 영글기 위해서는 햇빛이 반드시 필요하듯이 우리 인생이 아들의 생명을 얻어 영생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의 얼굴빛이 필요하다.
그 빛을 받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
그 빛은 다름 아니라 주의 도, 곧 주의 법이며 말씀이다.
땅 위에 있는 어떤 것도 다 쇠하고 멸하며 사라지지만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기 때문이다.
(벧전 1:23-25)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모든 육체는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그런데 이 말씀은 무조건 우리를 기쁘고 즐겁게 해주지 않는다.
말씀은 살아 있는 검과 같아서 말씀 앞에 서면 우리의 죄 된 심령을 찔러 쪼개기 때문이다.
(히 4:12-1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우리에게 진정한 기쁨과 즐거움은 세상의 쾌락과 물질의 많고 적음이 아니다.
그것은 있을 때는 누구나 좋아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없으면 금방 그 즐거움도 사라지고 오히려 염려와 근심이 그 있던 곳을 가득 채우고 만다.
하지만 말씀을 통한 주님의 공의의 심판은 우리의 심령을 정결하고 깨끗하게 한다.
하여 물질의 있고 없음, 건강의 유무, 자식의 성공실패 등 만물 안에서 이루어지는 어떤 일들도 초월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이것이 진정한 능력이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심판은 마음을 가난하게 해 준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고 말씀한다(마 5:3).
그것은 심판을 통하여 더 이상 썩어 없어질 재물에 마음을 두지 않고 오직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예수를 믿기 전에 철저한 유대인이었다.
그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었다.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었다.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였으며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였다.
누구도 그에게서 율법의 흠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자였던 것이다.
그런 바울은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옥에 가두거나 박해하기 위하여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빛으로 오신 주님을 만났다.
주님의 빛이 너무도 강렬하여 그의 눈이 멀어버렸다.
그는 그렇게 3일 동안 소경으로 지내면서 그동안 자기의 義로 행했던 일들을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회개한다.
다메섹 시내로 들어가 아나니아를 만나 그에게 안수를 받자 그의 눈에서 꺼풀이 벗겨졌다.
그 꺼풀은 그의 영안을 덮고 있던 자기 義라는 꺼풀이었다.
사실 그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였지만, 그는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하나님처럼 되어 자기 자신을 하나님으로 믿는 자기주장의지였다.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소경으로 지냈던 3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의 3일과 동일하다.
그는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에 죽었고 주님과 연합하여 함께 무덤에 장사되었다.
그러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은 그를 큰 자 사울에서 작은 자 바울로 바꾸게 하였다.
그렇게 자기 욕심과 자기 의로 가득했던 그 심령은 가장 가난한 심령의 소유자로 변하였다.
그 즉시 그는 시내로 나가서 예수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다.
나는 정말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연합하여 살기를 원한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이것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죽은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살아서 나를 주장하는 나를 본다.
주님과 연합하여 함께 동행하는 것 같은데 어느 새 내 마음과 내 뜻대로 행하는 나를 본다.
그래서 이것이 나의 실체임을 고백한다.
물론 나는 창세전 언약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는다.
하지만 나는 완전히 구속되지 못한 몸을 입고 있기에 구원받는 자로서 육신으로는 죄를 먹고 마신다.
하여 오늘도 나는 주님 앞에서 죄인 됨과 염치없음으로 그저 고개를 숙이고 손으로 입을 가릴 뿐이다.
그런 죄인이지만 복음을 통해 생명으로 나아간다.
복음만이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기에 복음을 전하는 이 사명을 소홀히 하는 것은 직무유기임을 깨달아 다시 한 번 심기일전하여 주님 앞에 선다.
주의 얼굴을 구하며 그 얼굴빛으로 자양분 삼아 오늘도 주의 말씀, 곧 복음의 능력으로 하루를 힘껏 시작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주님이 지으신 이 세상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베트남은 동남아시아에 속해 있지만 제가 있는 하이퐁은 북부 지역이라서 지금은 지내기가 정말 좋습니다.
날씨가 덥지 않고 한낮에는 약간 덮지만 한 여름에 비하면 정말 좋습니다.
이런 날씨만큼이나 나의 심령도 주 안에서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죄로 인하여 상하고 깨지고 무너지고 엉망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 안에 주의 복음이 있기에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음이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내가 복음을 몰랐더라면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지 생각하면 끔찍하기까지 합니다.
이 종에게 복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종을 불쌍히 여기사 주의 말씀 안에서 날마다 십자가로 죽게 하소서.
나는 죽고 오직 주님으로만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날 구원하신 십자가로 오늘 하루도 만족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