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의 일생을 묘사한 본생담(本生譚)과 불전도(佛傳圖)에서
부처를 의인화한 형상을 기피한 이유에 대해서는 고대 문헌 어디에도 밝혀져 있지 않다.
부처의 변형된 모습을 표현하는 어려움은 별 문제로 하더라도,
조각가나 불교 교단에서는 부처를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에 대한 비판과 논쟁이 있었던 것 같다.
업과 윤회의 설에 따르면, 인간은 몇 번에 걸쳐
스스로를 더욱 완전하게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태어나며,
부처 역시 이 이론에 따라 수많은 환생을 겪었다고 한다.
550회의 삶을 거친 후에 결국 부처는
가장 숭고한 경지인 깨달음[成佛]을 얻었으며 열반을 통해
부처는 육체의 굴레에서 스스로 자유로워졌다.
부처는 더 이상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을 것이며,
그는 이미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났던 것이다.
산치사원들은 분명히 입구의 탑문에 부처의 감격스러운 생애를 묘사하고 싶어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부처가 가까스로 벗어던진 육체에
그를 다시 가두어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느꼈을 것이다.
예술가들은 불교 교단과 적절한 협의를 거쳐 위대한 출성에서 보았던 것처럼
기발한 해결책을 찾아낸 것 같다.
그들은 부처의 일대기를 묘사하고 있지만 부처의 존재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부처의 출현을 암시했다.
그 결과, 부호 혹은 상징이라는 독특한 시각 체계가 창안되었다.
불족적(佛足迹)은 부처가 밟았던 땅을 의미하며,
산개(傘蓋)는 그가 머물렀던 공간을 가리킨다.
빈 대좌(臺座)는 앉아 있는 부처의 모습을 상징하며,
길게 뻗어 있는 길은 걸어가고 있는 부처를 의미한다. "
----<<인도미술>> 비드야 데헤자 지음/ 이숙희 옮김. 한길아트. 2001. p. 54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