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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열매 감사 맥추감사
□ 본문 : 창세기 22장 1-18절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맥추감사는 믿음의 감사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당장 보이지는 않지만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믿음으로 드리는 감사가 맥추감사입니다. 여호사밧과 유다 백성들이 성가대를 앞세우고 감사의 찬양을 하며 수많은 적군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이 믿음의 감사가 바로 맥추감사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감사를 통해 유다 백성들에게 놀라운 승리를 주셨습니다. 지난주에 나누었던 말씀입니다.
맥추감사는 믿음의 감사이며 또한 첫 열매 감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맥추절을 지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밀(小麥)을 추수하고 첫 열매를 드렸습니다. 맥추절은 첫 열매를 드리는 절기입니다.(출34:22) 첫 열매는 말 그대로 처음 수확한 열매입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첫 열매를 드리라고 명령하시는 것일까요? 첫 열매가 가지고 있는 의미 때문입니다.
1. 첫 열매는 가장 귀한 것입니다.
첫 열매는 가장 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귀한 첫 열매를 바치라고 하시는 것은, 가장 귀한 것을 드려 사랑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첫 수확물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첫 월급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첫 아들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실재로 그래서 목사가 된 분들이 많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이 첫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는 내용입니다. 물론 이삭 전에 아브라함이 낳은 아들이 있습니다. 이스마엘입니다. 그러나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아니라 애굽 여종 하갈을 통해 낳은 아들입니다. 하나님이 언약의 아들이 아닙니다.
2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런데 그냥 이삭이라고 하시지 않고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얼마나 이삭을 사랑하고 있는지 하나님도 알고 계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랑하는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십니다. 번제는 제물을 죽여서 각을 뜨고 불에 태워 드리는 제사입니다. 하나님은 인신제사를 철저하게 금하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명령입니다.
첫 열매를 드리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렵습니다. 저의 집 아이들도 그랬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첫 월급을 첫 열매로 하나님께 바치라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알바해서 받은 첫 월급을 첫 열매로 바쳤습니다. 직장에 들어가서 받은 첫 월급을 첫 열매로 바쳤습니다. 아이들이 기쁨으로 바쳤을까요? 글쎄요. 아이들의 반응을 보면 그렇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너 첫 월급은 하나님께 첫 열매로 바쳐야 해.’ 그러면 아이들이 이렇게 반응합니다. ‘네? 전부요?’ ‘응’ ‘왜요?’ ‘첫 열매는 하나님의 것이니까.’ 그러면 아이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말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 있어서 첫 월급이 어떤 의미인지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그래서 더욱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라고 가르칩니다. 첫 열매는 가장 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귀한 첫 열매를 드려 사랑해야 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첫 열매를 드리는 것이 당연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하나님께 나의 가장 귀한 것을 드리는 것은 기쁨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래서 아브라함도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드렸던 것입니다. 이삭을 너무나 사랑했지만 이삭보다 이삭을 주신 하나님을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12절 말씀입니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이 말씀을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줄을 아노라.’이렇게 바꿀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것은 이삭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사랑이었습니다. 이삭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그 마음이었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이 세상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했던 그 사랑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식어진다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변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했던 그 때의 그 열심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봉사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도 모르고 다른 사람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요한계시록 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에베소교회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2:2,3)
행위로 보면 수고로 보면 에베소교회는 정말 귀한 교회였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어떤 핍박도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며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겼던 교회였습니다. 겉으로 보면 뜨겁게 주님을 사랑하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에베소교회가 처음 사랑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2:4)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말씀하십니다. 너무나 충격적인 말씀입니다. 처음 사랑 없이도,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보다 이삭을 더 사랑하면서도,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면서도, 하나님보다 물질을 세상을 더 사랑하면서도 얼마든지 이렇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렵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드리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첫 열매를 드리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첫 열매가 내가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무리 하나님을 가장 사랑한다고 고백해도 첫 열매 이삭을 드리지 못한다면, 사실은 하나님보다 이삭을 더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을 가장 사랑한다고 고백해도 첫 열매를 드리지 못한다면, 사실은 하나님 아닌 그 무엇을 하나님이 아닌 그 누구를 더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매년 맥추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점검해 보라는 것입니다. 정말 세상 그 누구보다도, 세상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첫 열매를 기쁨으로 드릴 수 있다면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어떤 사람이 첫 열매 앞에서 갈등한다면 하나님보다 그 무엇을 더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 마음에 갈등이 있고 아까운 마음이 들고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마음이 있다면 첫 열매를 드리지 말아야 합니까? 그런 마음으로 첫 열매를 드리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첫 열매를 드리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첫 열매를 드림으로 가장 귀한 것을 드려 사랑해야 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배우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너는 마땅히 매 년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신14:22,23)
성경은 이와 같이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항상 배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이들에게 첫 열매를 드리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의 믿음이 참 예쁩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에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첫 열매 드리는 것이 기쁨이 아니라 목사인 아버지가 하라고 하니까 수동적으로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첫 열매를 드리라고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가장 사랑해야 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저는 부족한 것이 많은 아버지입니다. 자녀들을 향해 ‘아버지처럼 해!’ 아직도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 아이들을 참으로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 아이들의 인생을 책임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며, 우리 아이들을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축복을 받는 방법이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아이들에게 하나님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기쁨으로 첫 열매를 드립니다. 그러나 아직 그런 사랑이 아닐지라도 가장 귀한 첫 열매를 드리다보면 어느새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게 됩니다. 물질이 있는 곳이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최고의 것을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의 길을 걷지 않습니다. 결국 사람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것을 붙잡고,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것을 의지하고,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것을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안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이레입니다. 이미 하나님은 모든 것을 예비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받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지 않는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첫 열매 감사 맥추감사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부담을 주시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2. 첫 열매는 모든 것입니다.
첫 열매는 가장 귀한 것입니다. 그리고 첫 열매는 모든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영적 원리입니다. 그래서 첫 열매를 드리는 것은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일주일의 첫 열매는 주일입니다. 주일은 주님의 날입니다. 그래서 주일에 함께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성도와 교제하고, 또 봉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일주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주일을 지켰다고 해서 나머지 6일을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주일에 교회에 모여 함께 예배드리며 이날을 하나님께 드렸다면, 나머지 6일도 세상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첫 열매인 주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그럴 때 나머지 6일도 하나님께 드려진 거룩한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주일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나머지 6일을 거룩하게 살 수 있겠습니까? 무엇보다도 첫 열매인 주일을 드릴 때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는 6일을 살게 됩니다. 주일을 드린 것은 나머지 6일도 하나님께 드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십일조도 같은 원리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의 수입이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고백하는 것이 십일조입니다. 우리가 십 분의 일을 드리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린 것으로 여기십니다. 십 분의 일은 모든 것을 대표하는 첫 열매와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십일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물질을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은 나머지 십 분의 구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 물질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이 물질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도, 십일조를 드리는 것도 영적으로는 첫 열매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시간도 우리의 물질도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간도 우리의 물질도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첫 열매를 드리는 자의 축복
1)여호와 이레를 경험합니다.
13절, 14절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여호와 이레는 ‘여호와께서 준비하심’입니다. 우리가 첫 열매 드리는 것을 주저하는 것은 아직 추수 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몇 달이 지나야 추수하는데 그때까지 무슨 일이 있을지 어떻게 압니까? 눈에 보이는 것은 이 첫 열매가 전부인데, 손에 잡히는 것은 이 첫 열매가 전부인데, 이것을 드리고 나면 보이는 것도 없고 잡히는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드립니까? 그래서 맥추감사는 믿음의 감사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드릴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드렸습니다. 물론 마지막 순간에 이삭을 죽이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막으셨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어떻게 이삭을 드릴 수 있었을까요? 이삭보다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통해서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니, 이삭을 번제로 드려도 하나님은 죽어서 재가 된 이삭을 다시 살리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드렸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9절은 이삭을 바친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맥추감사는 믿음의 감사입니다. 맥추감사는 첫 열매 감사입니다. 맥추감사의 인생은 여호와 이레를 경험합니다. 믿음으로 감사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모릅니다. 첫 열매로 감사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예비하심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감사하면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잘 모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위해 무엇을 예비하셨는지 잘 모르겠습니까?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감사할 때입니다. 믿음의 감사를 드리십시오. 첫 열매 감사를 드리십시오. 그러면 여호와 이레를 경험합니다.
2)대적의 성문을 차지합니다.
17절, 18절 말씀입니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하나님께서 첫 열매 이삭을 바친 아브라함에게 세 가지를 축복하십니다. 그 중에 두 가지는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약속하신 축복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는 새로운 축복입니다. 그것은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입니다.
성문은 성 전체를 의미합니다. 대적의 성문을 차지한다는 것은 마귀가 장악하고 있던 곳에서 마귀를 쫓아내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입니다. 이 축복의 말씀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차지함으로 성취되었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마귀의 권세, 죄와 사망의 권세를 꺾으심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그러므로 이 축복은 우리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이 축복은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영적 전쟁가운데 있습니다. 마귀는 끊임없이 우리를 대적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고 하고, 우리를 통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것을 방해합니다. 이와 같은 마귀의 공격을 물리치고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는 무기가 있습니다. 바로 맥추감사입니다. 믿음의 감사입니다. 첫 열매 감사입니다.
감사할 때 마귀의 역사는 꺾이고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우리 인생과 가정의 모든 것을 감사합시다. 그러면 마귀의 역사는 꺾이고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인생과 가정에 임합니다. 교회의 모든 것을 감사합시다. 그러면 마귀의 역사는 꺾이고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교회에 임합니다. 모든 상황과 환경에 감사합시다. 그러면 마귀의 역사는 꺾이고 하나님의 나라가 모든 상황과 환경 가운데 임합니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모든 관계에 감사합시다. 그러면 마귀의 역사는 꺾이고 하나님의 나라가 모든 관계 가운데 임합니다.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여전히 부담스러운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첫 열매 감사 좋지, 그러나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이렇게 살기 힘든데.’ 이런 마음이 든다면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첫 열매이신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귀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전부를 주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첫 열매 예수 그리스도를 이미 받았습니다. 첫 열매 예수 그리스도를 이미 먹었습니다. 이것을 잊지 않고 기념하기 위해서 매월 첫째 주마다 성찬식을 하는 것입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내어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알면 첫 열매를 드리는 것은 기쁨이고 감격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대단한 첫 열매를 드린다한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첫 열매 예수님과 어찌 비교할 수가 있겠습니까? 아마도 아브라함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입니다. 자신의 독자 이삭을 번제로 하나님께 드렸기 때문입니다.
※ 지금 12기 제자훈련이 진행 중입니다. 지난주 제자훈련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었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생명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울었던 적은 참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난주 제자훈련을 인도할 때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때문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27:46)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버림받으시는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예수님이 당하신 육신의 고통 정신적인 고통을 우리는 감히 상상하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고통스러웠던 것은 하나님 아버지에게 버림받는 고통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부르짖은 예수님을 바라보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셨을까요? 당신의 독생자의 부르짖음을 외면해야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셨을까요? 제자훈련을 인도하다가 그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전해져 오는데 제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훈련생들은 덤덤한데 리더가 혼자 흥분해서 울면 좀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주일제자훈련 시간에는 잘 참았는데, 수요제자훈련 시간에는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리고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첫 열매를 바치라고 하시는 것은 하나님 때문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들을 위한 것입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깨닫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자가 누리는 그 놀라운 기쁨과 행복을 맛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처럼 독자를 번제로 드릴 일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날마다 첫 열매 감사로 살아가면 조금씩 알게 될 것입니다. 첫 열매 예수님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말로 다할 수 없는 그 놀라운 사랑을 말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첫 열매 예수님의 몸과 피를 먹는 성찬식을 거행합니다. 오늘의 성찬식을 통해 지금까지 누리지 못했던 하나님 아버지의 놀라운 사랑을 경험하기를 축복합니다. 주께 영광!
치바에서 김성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