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개꽃 경주 남산
김인기
막상 뒤돌아보면 20년이나 30년 세월도 순식간이다. 심지어는 200년이나 300년도 그다지 긴 세월이 아니다. 찬찬히 과거를 거슬러 따져보노라면, 그래서 그게 그렇구나 싶다. 미래도 급히 다가온다. 상황도 달라진다. 나는 궁금하다. 후인들은 2025년 6월 3일을 어떻게 생각할까? 날짜야 잊겠지. 그러나 역사는 쉬이 지워지지 않으리. 이날에 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결과는? 전체 유권자 44,391,871명 중 야당의 이재명 후보자가 17,287,513표(49.42%)를 얻었고 여당의 김문수 후보자가 14,395,639표(41.15%)를 얻었다. 전국 투표율은 79.4%였고, 전체 투표자는 35,236,497명이었다.
‘과연 이 정권교체로 지난 12월 3일의 그 쿠데타는 잘 정리가 되려나.’
하루하루가 조마조마했다. 구치소에 있어야 할 흉악범이 기괴하게도 풀려나와 버젓이 거리를 활보했다. 정황증거로 보자면 전쟁마저 획책한 듯하다. 이러고도 저들이 건재하구나! 비록 아무개가 권좌에서 쫓겨났다지만, 마치 망령처럼 다시 나타나 총칼을 들이댈지 몰라.
‘설마 그럴 리가!’
‘아니야, 혹시라도 선거유세 도중에 야당의 유력 후보자가 암살이라도 당하면 어쩌지?’
실지로 이런 불안감에 시달렸다. 그래서 ‘내란성 불면증’이니 ‘내란성 탈모증’이니 하는 새로운 표현들이 생겨났다. 이게 엄살이 아니었다.
‘나와 같은 부류들이야 크게 걱정할 게 있으랴.’
‘아니지. 나도 장담할 수 없어.’
우리 현대사의 깊은 상처라 할 민간인 학살 사건들을 돌아보면, 윤석열의 불법 계엄이 일 년가량 유지가 되었더라도, 나 역시 비열한 것들한테 온갖 폭언을 들으며 흠씬 두들겨 맞았을 거야. 어디론가 끌려가 생매장을 당했거나. 누군들 꼭 무슨 죄가 있어서 죽으랴. 더군다나 나는 저들의 비위에 거슬릴 법한 언행들도 더러 했다. 그런 만큼 나도 만신창이가 된 몰골로 우두나찰과 마두나찰을 만나볼 뻔했다.
내가 생존본능에 이끌려 살자고 안간힘을 썼어도, 이게 가능했을지도 의문이지만, 아무리 그래봤자 헛수고였을 것이다. 도리어 이러는 자신이 너무나 비루해서 견디기 어려웠으리. 그래, 요행히 살았다고 하자. 그러면 나와 인연을 이어온 도반들은 어땠을까? 아무개와 아무개 등등 여럿이 사망. 어휴, 내가 이런 꼴을 보고 어떻게 살아? 미래가 없다.
시민들도 이걸 잘 알았다. 그래서 2024년 12월 그날 이들이 우르르 국회로 몰려들었다. 영문도 모르고 출동한 군인들마저 부조리를 느껴서 머뭇거렸고. 이것은 길이 청사에 빛날 행동이었다. 작금의 한국인들이 얼마나 자부심이 강한데, 감히 저런 것들이 뭘 어떻게 한다고? 설령 계엄군이 국회를 완벽히 장악했더라도 뜻을 이루지는 못했을 것이다. 비록 엄청난 유혈사태가 일어났겠지만.
민주시민들의 힘이 일단은 내란 및 외환을 기도한 이들을 제압했으나 아직은 가야 할 길이 멀다. 이 나라에 어쩌다가 이런 일이 생겼나? 이참에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치해야 한다. 죄질도 극히 나쁘다. 관련자들은 반드시 척결해야지. 더 고민할 여지도 없다. 자업자득이고 인과응보이다. 누가 정신이 아주 나가지 않은 이상은 무슨 결론이 어떻게 달라질 수도 없다. 그럼에도 나는 마냥 방심할 수는 없어 사태의 추이를 주시한다.
누구 말마따나 뜻이 있는 곳에 길은 있는 법이다. 그러니까 저마다 역할도 있어. 누구는 수사를 하고, 누구는 법리를 따진다. 역사가와 성직자는 관점이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혹자는 일상사에 골몰하느라 그만 중대사를 깜빡 잊기도 한다. 이래서 불안감이 있어. 나 역시 뭔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비록 학식이나 안목이야 보잘것없다 해도 감각마저 없는 건 아니니, 다소 어설프더라도 나중에 다시 따져볼 단서라도 남기자 이래서 이렇게 나선다.
‘무엇이든 쓰기로 하자. 찍소리라도 내자.’
이른바 중압감이란 게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와 5천만 명이 넘는 구성원들의 운명이 통째로 결딴날 뻔한 일을 두고 뭐라고 하자니, 이게 부담스럽다. 이 인간이 뭐라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사실이 그렇잖아. 그렇다고 시답잖은 인물의 사사로운 잡설이라고 해서 오로지 무의미하기만 하랴. 이것도 나름의 기능은 있어.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손에 손을 잡고 한 걸음 두 걸음 나아가야지. 이들이 바로 절절한 사연들을 가슴에 묻고 이름조차 남기지 않는 민중들이다. 나도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꽃이 피었네. 우리 모두 환하네.’
그러고 보니 지난 4월에 도반들과 어울려 경주 남산에 간 건 최근의 사정과도 잘 어울리는 일이었다. 여럿이 남간사지 당간지주를 바라봤다. 단체 사진도 찍었고. 창림사지 삼층석탑 틈새에는 꽃뱀이 있었다. 거참, 까딱했으면 망개꽃이 피는 줄도 모르고 죽을 뻔했네. 망개나무는 볼품이 없다. 그러나 요즘은 인간들이 과연 이것들보다 더 낫기나 한가 싶어. 윤을곡 마애삼체불마저도 법문을 그렇게 펼치는 듯도 하고.
“이번 행사는 취소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며 걱정했습니다.”
신기훈 시인의 이 발언에 모두 공감했다. 지난 4월 4일에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 윤 아무개를 파면했다. 만약에 판결이 달랐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아마도 끔찍한 참상들이 벌어졌을 것이다. 오로지 상상만으로도 눈앞이 캄캄하다. 아무리 30여 년 이어온 4ㆍ19 기념 연례행사였다고 하더라도, 이러면 개최가 어렵다. ‘대구경북작가회의’라는 이 단체도 탄압을 받아 아주 사라졌으려나. 이랬더라면 나 역시 봄날의 햇살마저 뒤숭숭하게 느꼈으리.
유적지나 박물관에 다니다 보면 더러더러 머리 없는 불상들이 있다. 좌대에 길게 금이 갔거나 어깨의 일부가 떨어진 것들도 많다. 나는 으레 그러려니 했다. 긴긴 세월 동안 눈보라와 비바람에 시달렸으니까. 그러나 이게 꼭 이렇지도 않다. 이 나라에서 사라진 그 불두(佛頭)들 다수가 어떻게 미국의 놀이공원에 있지? 주왕산 정고집 시인이 과거에 본 바로는 그 문화재들이 ‘야만인들의 우상’ 또는 ‘마귀들의 대갈통’ 취급을 받으며 엉뚱하게도 거기에 그렇게 있더라는 것이다.
이건 아니지! 당장 잃어버린 보물들을 되찾자. 혹시나 그새 어디론가 사라졌다면, 그 행방이라도 수소문해야지. 그렇지만 이것도 시도하면 논란이 일어날 듯하다. 미국인들이 총칼로 유물들을 강탈했다고 해도 반환 절차가 복잡할 텐데, 하물며 당시 한국인들이 그네들과 거래라도 한 것이면, 골치가 무척이나 아파진다. 몰지각한 자들이 쌀 두어 됫박에 멀쩡한 불상에서 머리를 떼어 외국인들에게 넘기지나 않았을까? 갑자기 열불이 확 난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는 알았을까?’
이게 다만 지난 일만도 아니다. 현재 상황을 둘러보자니, 나는 너무나 경악스러워 숨이 막힌다. 과연 인간들의 됨됨이가 나아지기나 했나 싶어. 지금이라도 형편이 달라지면, 이들이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어쩌다 완장만 하나 찼다 하면 미쳐 날뛰지나 않을까 싶어. 이런 작자들이 내 눈앞에도 어른거린다.
‘그것들이 모조리 환생이라도 했나?’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그렇지. 어떻게 저런 자를 용인하나? 내가 사는 이 지역은 특히나 극심하다. 어떻게 헌법을 근본부터 무너뜨린 자를 옹호하나? 그런데도 다수가 내란당 후보자에게 표를 줬다. 대구에서는 김문수 후보자가 1,103,913표(67.62%)를 얻었고, 이재명 후보자가 379,130표(23.22%)를 얻었다. 경북에서는 김문수 후보자가 1,159,594표(66.87%)를 얻었고, 이재명 후보자는 442,683표(25.52%)를 얻었다.
“…….”
마치 오컬트 영화의 한 장면처럼 으스스하다. 하기야 이런 게 처음도 아니다. 그래서 더 궁금하다. 이 지역민들 대다수가 하는 이 선택이 시비곡직은 물론이려니와 자신들의 이해득실과도 어긋난다. 사회학자 최종희 선생의 책 『대구경북의 사회학』을 읽어보면, 헛웃음이 나온다. 말하자면 그러는 게 자기들은 ‘의리’를 지키는 거라나 뭐라나.
‘우리는 이랬다저랬다 안 해!’
이들은 민주공화국의 주권자들이 아니다. 왕국의 신민들이거나 암흑가의 조직원들이거나. 이들한테는 각자가 공공의 일을 두고 나름대로 따져보자는 생각 자체가 없다. 이게 도리어 불충이고 모반이다. 나는 이들이 가끔은 정처 없이 떠도는 좀비들로도 보인다. 영혼이라곤 전혀 없는 자들이 탐욕은 또 엄청나다던데, 아이고야, 그러고 보니 바로 지난겨울에 있었던 일이 무지무지 살 떨리는 거였네.
잠시나마 그 음모가 성공했더라면 내 주위 여럿도 고달팠을 듯하다. 지회장을 맡은 신기훈 시인과 사무처장을 맡은 이정연 시인은 교단에서 쫓겨났을 것이다. 피재현 시인은 어쩐지 표정부터가 불온하다며 경을 쳤을 테고. 김용락 시인은 또 ‘도바리’가 되었을까? 아마도 정대호 시인과 이중기 시인은 행방불명 또는 생사불명으로 결판이 났을 거다. 권서각 시인과 배창환 시인은 울분이 차서 폭음을 거듭하다가……. 박승민 시인과 김수상 시인은 크나큰 충격으로 넋이 나갔을 거야.
‘하, 우리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칠성판에 누울 신세였구나.’
부지불식간에 나는 그만 뜨거워졌다. 도반들도 이랬을까? 이번 행사에는 참가자들이 많았다. 아무리 이하석 선생이 길라잡이라 해도 그렇지. 서른 명이 넘었다. 선생은 경주 남산을 매우 좋아한다. 요즘 유행어로 상태를 요약하자면, ‘덕후’의 ‘덕심’과 ‘덕질’이 대단하다. 연전에는 선생이 『코 떼인 경주 남산』이란 책도 내었으니, 오늘 아무개도 이에 얼씨구나 호응하여 「망개꽃 경주 남산」이라는 제목의 글을 쓴다. 산 아래 길목에는 탱자꽃도 하얗게 피었더라. 이렇게 이 소식도 수줍게 살짝 덧붙인다.
[2025.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