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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 39코스
여행일 : ‘20. 4. 18(토)
소재지 :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과 구정면 일원
여행코스 : 남항진해변(솔바람다리)→안목해변→해송숲길→강문해변→경포해변→경포호→허난설헌생가터→경포대→경포해변→사근진→순긋→순포해변→사천진항(소요시간 : 16㎞/ 4시간, 실제는 12.6㎞/ 2시간 50분)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남항진 해변에서 바다를 따라 북쪽으로 안목해변과 강문해변, 경포해변, 경포호수, 허균허난설헌 유적공원을 지나 다시 사천진까지 바다를 따라 걷는 16㎞의 둘레길로, 강릉바우길의 5구간인 ’바다 호숫길‘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 구간은 트레킹의 재미를 한껏 만끽하며 걸을 수 있는 구간이다. 파도가 밀려오는 해변가에서 조개껍질을 주으며 걸을 수도 있고, 모래밭 위에 설치한 데크 위를 걷는가 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고 울창한 해변 솔밭 길을 따라 걸을 수도 있다. 거기다 경포호반의 정취에 빠져 걷다가 만나게 되는 역사를 품은 누정(樓亭)들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 들머리는 남항진 해변(강릉시 공항길127번길 67)
동해고속도로(속초-삼척) 강릉 IC에서 내려와 35번 국도를 타고 강릉시내로 들어온다. 옥천오거리(강릉시 옥천동)에서 우회전, 남대천을 건넌 다음 첫 번째로 만나게 되는 로터리에서 9시 방향의 ‘입암로’를 따른다. 이어서 ‘6주공 오거리(강릉시 입암동)에서 우회전, 반석교회 앞 로터리에서는 9시 방향으로 진행한 다음 ’강릉골프연습장‘ 앞 삼거리에서 오른편 ’공항길‘로 들어서면 잠시 후 남항진 해변에 이르게 된다. 해파랑길 안내도와 스탬프보관함은 남항진해변의 북쪽 끄트머리에 있는 ’솔바람다리‘의 입구에 세워져 있다.
▼ 버스에서 내리니 ’호랑이‘와 ’반달곰‘ 한 쌍이 반긴다. 생김새로 보아 평창 동계올림픽의 마스코트인 ’수호랑(Soohorang)‘과 패럴림픽의 마스코트인 ’반다디(Bandabi)‘로 여겨지는데, 이곳 강릉은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올림픽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았나 보다. 참로고 수호랑은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백호를 모티브로 삼았다. 수호랑이라는 이름은 '수호+랑'으로 이뤄진 합성어로, '수호'는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 참가자, 관중들을 보호한다는 의미이며, '랑'은 '호랑이'와 강원도를 대표하는 '정선아리랑'의 '랑'에서 따온 것이다. 한편 ’반다비‘는 한국에 서식하여 대한민국과 강원도를 대표하는 반달가슴곰을 모티브로 삼았으며, 의지와 용기를 상징한다. '반다비'의 '반다'는 반달가슴곰(아시아흑곰)의 반달을 의미하고, '-비'는 대회를 기념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 강릉 남대천 위에 놓인 솔바람다리를 건너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남항진‘과 ’안목‘을 잇는 인도교로 남대천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으면서도 먼 길을 돌아다녀야만 했던 두 마을 주민들을 위해 2010년 건설됐다. 하지만 요즘은 여름철 피서지로 더 유명하단다. 바다와 강 사이에 놓인 다리 특성상 바람이 많이 불기 때문이다. 또한 조명시설을 갖추고 있어 저녁마다 아름다운 야경을 보여준단다.
▼ 솔바람다리를 건너다 뒤돌아본 ’남항진 해변(南項津 海濱)‘이다. 600m 길이의 모래사장 주변에 횟집과 커피숍들이 많을 뿐만 아니라 너른 주차장과 화장실, 전망데크 등의 편의시설까지 갖추고 있어 쉬어가기에 딱 좋은 해변이다. 높다란 철 구조물은 짚라인의 일종인 ’아라나비‘의 탑승장이다. 여기서 ’아라’는 바다의 순 우리말, 저곳에서 짚라인을 타면 아름다운 바다 위를 나비처럼 훨훨 날아서 강릉항 근처까지 간다.
▼ 솔바람 다리를 건넌 해파랑길은 ’죽도봉(竹島峰)‘으로 오르도록 나있다. 하지만 우린 이를 무시하고 해안도로를 따라 진행했다. 봉우리에 올라가봤자 눈에 담을 만한 풍경이 없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저 봉우리는 대나무가 많다고 해서 ’죽도봉‘이란 이름을 얻었지만 마을 사람들은 ‘견조봉(堅造峰)’ 또는 ‘젠주봉(全州峰)’이라고도 부른단다. 전라북도 도청소재지인 전주에 있던 봉우리가 떠내려 와서 이곳에 머물렀다고 해서 생긴 이름으로, 매년 전주 사람이 이곳에 와서 도지를 받아 갔다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참! 옛날엔 이곳에 천연염전도 있었는데, 이곳 사람들은 아직도 일이 잘 풀릴 때를 ‘젠주 염전되듯’이라는 표현을 쓴단다.
▼ 잠시 후 ’강릉항(江陵港, 옛 안목항)‘에 이른다. 남대천의 하류에 위치한 이곳은 조선 후기까지만 해도 ’견조도‘라는 섬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육계도로 변했고 지금은 항구가 들어섰다. 이후 2011년에 강릉~울릉도 간 정기 여객선 운항이 이루어지면서 찾는 사람들이 부척 늘었다고 한다. 현존하는 강릉-울릉도 간 항로 가운데 가장 빠르기 때문이란다. 현재 평일 편도 2회, 주말 편도 2-4회 운항되고 있단다. 참! 강릉항에서 정동진 해안까지 다녀오는 유람선도 이곳에서 출발한다는 것도 기억해 두자.
▼ 몇 걸음 더 걷자 이번에는 ’안목해변(安木海濱)‘이 나온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15분만이다. 500m 길이의 하얀 모래사장은 생각보다 모래알의 굵어 어린이들에게는 조금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짙푸른 색과 청록색이 번갈아가며 빛을 내는 바닷물은 보기만 해도 청량감이 느껴지는 풍경이다. 거기다 음식점, 카페 등 각종 편의시설들까지 잘 갖추고 있으니 가족단위 피서객들에게는 이만한 곳도 없겠다. 참고로 ‘안목’의 옛 이름은 ‘앞목’이었다고 한다. 남대천 하구 반대편에 위치한 남항진에서 송정으로 가는 마을 앞에 있는 길목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앞목’의 발음이 어렵다고 해서 ‘안목’으로 고쳐 부른 것이 현재의 지명으로 굳어졌다.
▼ 해변의 입구에는 ‘강릉 커피거리’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었다. 맞다. 트레킹을 위한 사전 조사를 하던 중에 얻어들은 풍월로는 이곳은 바닷바람에 커피향기가 퍼지는 낭만이 있는 공간이라고 했다. ‘카페’거리가 아닌 ‘커피’거리라고도 했다. 커피 종류가 다양할 뿐만 아니라 맛도 뛰어나다는 부연 설명도 있었지만 주어진 시간에 쫒기는 나그네는 들어가 볼만한 여유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테이크아웃’이라는 방법도 있었건만 그땐 왜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참고로 강릉은 1,000년 전 신라 화랑들이 차를 달여 마신 유일한 차 유적지 ‘한송정(寒松亭)’이 있는 곳이다. 강릉이 일찍부터 커피 문화가 발달할 수 있었던 근원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 모래사장 뒤편 길가를 따라 카페들이 줄지어 있다. 유명 ‘브랜드 커피’ 카페부터 로스팅을 직접 하는 ‘핸드메이드 커피’ 카페까지 종류도 크기도 개성도 다양한 카페들이 30여 곳 들어서 있다. 이 카페들이 자리하기 전 80년대 안목해변에는 수많은 커피자판기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그것이 지금의 커피거리의 시초가 되었다. 지금은 커피자판기가 많이 줄어들고 그 자리에 대형 카페들이 자리하고 있지만,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 한 잔 하는 낭만은 그대로라고 한다.
▼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 굳이 테이크아웃해서 바닷가로 나올 필요도 없다. 카페들이 해변을 마주하고 나란히 줄지어 있어서 대부분의 카페테라스에서 바다가 정면으로 바라보이기 때문이다.
▼ 역시 사전조사에서 주워들은 풍월을 따라 ‘벽화골목’으로 들어가 봤다. 안목해변의 ‘파스쿠찌 커피숍’ 옆 골목이 들머리인데 ‘버스 타는 그림골목’이라는 그럴 듯한 이름에 홀렸다고고 할까? 하지만 기대가 크면 그만큼 실망도 크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너무 성의 없게 꾸며져 있었다. 70m에 불과한 골목의 길이는 차지하고라도 그림도 고작해야 물고기가 다라고 보면 된다.
▼ 벽화골목을 반대편으로 빠져나와 오른편으로 방향을 트니 다시 안목해변이다. 아니 이곳에는 ‘안목 해맞이공원’이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었다. 공원이란 이름에 걸맞게 파고라와 벤치는 물론이고 ‘커피 잔과 커피콩’을 형상화한 조형물도 세워 놓았다. 2012년 제4회 강릉 커피축제를 기념하여 제작된 조형물로서 안목 커피거리를 대표하는 조형물이란다.
▼ 이후부터 탐방로는 해송 숲속으로 나있다. 비릿한 바다 내음을 흡수해 버릴 정도로 짙은 솔향이 코끝을 스쳐가는 기분 좋은 산책로이다. 거기다 ‘송정해변(松亭海邊)’의 금빛 모래밭까지 끼었으니 이만한 산책로가 또 어디 있겠는가. 참고로 송정해안 솔숲의 역사는 고려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고려 충숙왕의 부마 최문한(崔文漢)이 송도에서 강릉으로 올 때, 소나무 여덟 그루를 가져와 이곳에 심고 '팔송정'이라 했다는 것이다. 그 후 마을 이름이 송정으로 바뀌었다. 임진왜란 때는 이곳의 소나무로 인해 강릉이 왜군들로부터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유명한 일화도 전해진다. 도참설 신봉자인 왜군 총사령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에 가거든 송(松)자가 든 곳은 조심하라’고 명했다는 것이다.
▼ 모랫길이 싫은 사람이라면 도로가에 내놓은 인도를 따르면 된다. 이때 도로변 담벼락에 그려놓은 벽화들을 감상할 수 있다. 어감부터가 고운 골목이 아니라 삭막한 도로라는 것만 다를 뿐 그려진 그림들은 아까 들어가 봤던 ‘버스 타는 벽화골목’보다 오히려 한 수 위이다.
▼ 담벼락 위에 철조망까지 쳐진 걸 보면 틀림없는 군부대이다. 요즘은 군의 시설도 저렇게 예쁘게 치장하는가 보다.
▼ 강릉항을 지난 지 20분, 왼쪽으로 찻길을 건넌 탐방로가 울창한 솔숲으로 들어선다. ‘딴봉마을 산책로’이다. 입구에는 이 산책로에 대한 안내판도 세워놓았다. ‘딴봉’이란 지명은 강문 가는 곳에 외따로 떨어져 있는 ‘봉’이라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안내판은 또 솔숲을 걸을 때 흡수하게 되는 피톤치드(phytoncide)에 대한 설명도 덧붙였다. 피톤치드란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나무들이 각종 병충해(病蟲害)에 저항하기 위해 배출하는 분비물(分泌物)을 말한다. 이 물질은 사람들에게도 많은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살균작용은 물론이고, 장과 심폐기능을 강화시켜주는 한편, 스트레스 해소에도 뛰어난 효능이 있다는 것이다.
▼ 한 줌 햇빛조차 스며들지 못할 정도로 울창한 솔숲이 끝 간 데 없이 펼쳐진다. 비바람 속에서도 한줄기 향긋한 솔내음이 코끝을 스쳐지나간다. 그러자 우중충하던 머릿속이 청량감으로 바뀌어간다. 피톤치드는 찌뿌둥한 날씨까지도 별거 아니게 만들어버리나 보다. 하긴 현지인들뿐만 아니라 외지 관광객들까지도 한번쯤은 꼭 들른다는 말이 그냥 나왔겠는가.
▼ 솔숲 한가운데 탑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이 층으로 된 대의 위에는 논산의 은진미륵처럼 괴상한 모자를 쓴 석상이 하나 올리어져 있다. 그런데 양복을 입고 팔짱을 끼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부처님은 아니다. 비문(碑文)은 ‘송림처사 경주 최공 봉조(鳳祚) 유적기념'이라고 적고 있다. 그 아랫단에 적혀있는 '三生餘年 精誠으로 육성하신 송림 유적....'이라는 글귀로 미루어 보아 지금의 솔숲을 만드는데 평생을 바쳤다는 최봉조 선생의 유허비(遺址碑)인 듯하다.
▼ 도로를 건너 바닷가로 나와도 솔숲은 계속된다. 아니 주변 풍경은 ’땅봉마을 산책로‘보다 한결 더 나아졌다. 솔숲에 갖가지 조형물들을 더해 아예 조각공원으로 꾸며놓았기 때문이다. 송림 좌측 편에 위치한 '세인트존스 경포호텔'에서 조성했다는데 고마운 일이라 하겠다. 참고 세인트존스 경포호텔은 1,091개의 객실과 다양한 부대시설을 갖춘 4성급 호텔로 동해바다와 연결되어 있는 듯한 '인피니티 풀(infinity pool)'을 갖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 그 가운데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동해바다를 응시하고 있는 ’장군상(將軍像)‘이다. 그 옆을 사자가 지키고 있는 걸로 보아 ’이사부(異斯夫)‘ 장군이 아닐까 싶다. 그가 우산국(于山國, 현재의 울릉도)를 정벌할 때 사자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처음 보는 맹수로 겁을 줬다고나 할까? 아무튼 그는 당시의 영웅담을 그리며 바다건너 울릉도를 아직까지 응시하고 있나보다.
▼ 다음은 강문해변(江門海濱)이다. 백사장의 규모는 길이 680m, 경포호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줄기를 경계로 북쪽은 경포해변, 남쪽은 강문해변으로 구분된다. 강문해변은 금빛 모래사장이 곱다. 하지만 오뉴월 햇볕을 가려줄만한 솔숲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단점이 더 큰 해변이다. 참고로 ’강문‘은 '강이 흐르는 문', 혹은 '강이 흐르는 입구'라는 뜻으로 경포호의 물이 바다로 흐르는 곳에 위치한 작은 포구(浦口)이다. 앞내와 뒷내(운정천)가 경포 호수에서 만나 이곳 강문에서 바다로 빠지기 때문에 마을 이름이 그렇게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 강문해변의 조형물들은 젊은 연인들을 위한 포토박스 위주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집사람이 그냥 지나칠 리가 없다.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마음만은 청춘이라는데 어쩌겠는가.
▼ 강문해변의 북쪽 끄트머리 방파제에는 유럽에서나 볼 법한 예쁜 건축물이 지어져 있다. 군의 해안초소인 모양인데 시대의 흐름에 맞춰 예술적으로 설계되었나보다. 등대처럼 보이기도 하는 저 건축물 뒤, 그러니까 솟대다리 아래에는 ’솟대‘를 형상화하여 만든 원형그릇도 만들어 놓았다. 동전 등을 던져 원형 안 그릇에 들어가면 액운을 막아주고 소망이 이루어진다는 새로운 스토리까지 만들었으니 한번쯤 시도해 볼 일이다.
▼ 경포호의 물이 바다로 흘러드는 곳에는 유려한 자태의 '강문 솟대다리'가 놓여있다. ’솟대‘는 마을의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로 장대 끝에 새 모양으로 나무를 깎아서 달거나 볍씨를 주머니에 넣어 높이 달아매는 민간신앙의 상징물이다. 이 다리는 ’진또배기‘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갖고 있는 ’강문 마을‘의 특징을 다리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진또배기‘는 ’솟대‘의 강원도 사투리로 '하늘 높이 솟아 있는 대'라는 뜻을 갖으며 보통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다. 솟대는 그 자체가 우리나라 고유 민속신앙의 한 형태를 가리키는데, 예로부터 짐대, 오릿대, 솔대, 갯대, 수살이, 액맥이대, 방아솔대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강문에서는 예로부터 솟대 대신에 진또배기라고 불러왔는데, '짐대박이'를 어원으로 진대(솟대)가 박혀 있다는 의미로 ’진또배기‘라 불렀다고 추정하고 있다.
▼ 솟대다리를 건너면 동해안 최대라는 ’경포해변(鏡浦海邊)‘이 나온다. 경포호(鏡浦湖)와 바다 사이에 생성되어 있는 사빈(砂濱)으로, 6km의 백사장이 펼쳐져 있고 주위에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있다. 해변엔 사람들이 제법 많다. 이처럼 비바람이 몰아치는데도 저 정도라면 보통 때는 얼마나 붐빌까? 참고로 딴봉마을 산책로 입구에서 이곳까지는 20분, 트레킹을 시작한지는 55분이 지났다.
▼ 데크 탐방로를 따라 진행하다, 큰 시계탑이 있는 곳에 세워진 이정표에서 왼편 허난설헌 유적지 방향으로 들어서야 하는데 그냥 지나쳐버리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독도야' 횟집과 '7-eleven' 편의점 사이로 길이 나있는데도 비바람에 쫒기다가 길을 놓쳐버린 것이다.
▼ 길을 제대로 들어섰더라면 만날 수 있었던 ‘경포호(鏡浦湖)’이다. 경호(鏡湖)라고도 하는데 호수 면이 거울처럼 맑다는데서 유래된 이름이란다. 경포천 하구 일대가 사빈의 발달로 폐쇄되면서 형성된 석호(潟湖)로 본래는 주위가 12㎞에 달하는 큰 호수였다고 하나, 지금은 토사의 퇴적으로 4㎞로 작아졌다고 한다. 1966년에 실시된 경포천 및 안현천의 유로 변경과 호안공사로 현재와 같은 호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으며 호수 주위의 오래 된 소나무 숲과 벚나무가 유명하다,(아래 사진 몇 장은 다른 분의 것을 빌려왔다.)
▼ 경포호는 경포대(鏡浦臺)를 위시해서 해운정(海雲亭)과 경호정(鏡湖亭), 금란정(金蘭亭), 방해정(放海亭), 석란정(石蘭亭), 창랑정(滄浪亭), 취영정(聚瀛亭), 상영정(觴詠亭) 등 역사적인 누정(樓亭)들을 호반에 품고 있다. 하지만 길을 잘못 들어선 우린 곁눈질조차 하지 못했다. 그 아쉬움은 ’경포팔경(鏡浦八景)‘을 떠올려 보는 것으로 대신해본다. 호수 남쪽에 위치한 녹두정(지금의 한송정 터)에서 바라보는 일출이 1경인 '녹두일출(綠荳日出)'이요, 호수 동쪽에 솟아 있는 산죽이 무성한 죽도에서의 달맞이가 2경인 '죽도명월(竹島明月)'이다. 3경인 '강문어화(江門漁火)’는 강문의 고깃배 불빛이 바다와 호수에 비치는 아름다운 밤 풍경이고, 4경인 '초당취연(草堂炊煙)'은 저녁 무렵 초당마을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다. 5경에서 8경까지는 경포호 북안(北岸)에 있는 홍장암에 내리는 밤비 ‘홍장야우(紅粧夜雨)', 호수 서북쪽 시루봉의 낙조인 '증봉낙조(甑峰落照)', 시루봉 신선이 바둑을 두고 피리를 부는 '환선취적(喚仙吹笛)', 호수 남동쪽 한송정에서 해질 무렵 치는 종소리 '한송모종(寒松暮鍾)'이다.
▼ ‘허균·허난설헌 기념관’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이다. 강릉은 유난히도 많은 문인을 낳은 문학의 고장이다. 그 중에서도 홍길동전의 저자이자 당대의 사상가로 알려진 허균과 27세에 요절할 때까지 수많은 시를 남겨 중국과 일본에까지 이름을 날린 여류시인 허난설헌 남매는 특히 유명하다. 허난설헌(許蘭雪軒, 1563년~1589년)은 조선 중기의 시인이다. 본명은 초희(楚姬), 호는 난설헌(蘭雪軒)이다. 당대 석학인 아버지 허엽과 오빠, 동생의 틈바구니에서 어깨너머로 글을 익혔으며 집안과 교분이 있던 손곡 이달(李達)에게 시를 배웠다. 하지만 그녀의 생애는 순탄하지 못했다. 15세에 결혼한 김성립(金誠立)은 방탕했고 친정집에는 옥사(獄事)까지 있었다. 그녀는 27년의 짧은 생을 아픔과 한으로 가슴앓이 하다가 젊은 나이에 자는 듯이 세상을 떠났다. '여자'로 태어난 것과 '조선'에서 태어난 것, 그리고 '김성립'의 아내가 된 한(恨)을 입버릇처럼 말했다는 그녀는 한마디로 때를 잘못 만난 천재 여류 시인이었다 하겠다.
▼ 잠시 후 '스카이베이 경포'가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그 생김새가 어딘지 눈에 익다. 맞다. 작년 말에 다녀왔던 싱가포르의 ‘마리나베이 센즈 호텔(Marina Bay Sands Hotel)’을 쏙 빼다 닮았다. 57층 규모의 건물 3개가 범선 모양의 ‘스카이 파크(Sky Park)’를 떠받치고 있는 독특한 외관으로 유명한 호텔 말이다. 북미회담 때는 김정은이 찾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호텔인데 옥상에 만들어놓은 ‘인피니티 풀(infinity pool)’은 그야말로 명성이 자자하다. 인피니스풀이란 시각적으로 경계가 없는 수영장을 말한다. 물과 하늘이 이어지는 풍경으로 설계되는 게 보통인데, 그런 풍경은 호화 리조트나 고급호텔의 품격을 나타내는 광고로 사용되기도 한다. 아무튼 또 다른 세계적 명소를 만들기 위해 마리나베이 센즈 호텔을 벤치마킹하지 않았나 싶다.
▼ 경포해변도 역시 여러 가지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입체 솔향 포토존’이다. 경포해변의 대표적 풍경인 해송 숲과 망망대해의 떠오르는 태양을 상징하는데, 다섯 개의 서로 다른 원구는 경포호에 뜨는 다섯 개의 달을 상징하며 가장 큰 달에는 LED 조명을 이용하여 24절기를 나타내는 24개의 별자리를 연출했단다.
▼ 2016년에 방영되었던 KBS-2TV의 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의 촬영지에 만들어놓은 포토존도 만들 수 있다. 어린 시절 가슴 아픈 악연으로 헤어졌던 두 남녀가 안하무인 '슈퍼갑 톱스타'와 비굴하고 속물적인 '슈퍼을 다큐 PD'로 다시 만나 그려가는 까칠하고 애틋한 사랑 이야기로 김우빈과 수지가 주인공으로 출연했었다.
▼ 경포해변을 벗어나면 탐방로는 도로를 따른다. 동해안의 볼거리인 해변을 보고 싶다면 도로변의 이정표를 참고해서 들어서면 된다. 그렇게 해서 만난 첫 번째 해변은 ‘사근진 해변(沙斤津 海濱)’이다. 옛날 어부들만 살던 마을에 삼남 지방에서 온 사기장수가 눌러 앉아, 조그마한 배를 한척 구입하여 날이 좋으면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고, 날이 궂으면 사기를 팔았다는데서 유래된 이름이란다. 사근진 앞바다에는 ’멍개바위‘라는 커다란 갯바위가 있었다. 옛날 이 마을에 어미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용왕님께 빌던 딸이 살았다고 한다. 기도에 마음이 움직인 용왕이 단방약으로 알려준 게 바로 ’멍게‘였다. 딸이 따온 멍게를 먹고 어미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으니 자연스레 전설이 되었다. 전설 때문인지는 몰라도 기도발이 강하다는 속설도 있으니 원하는 게 있다면 한번’쯤 빌어볼 일이다.
▼ 다음은 ‘순긋 해변’이다. 솟대다리를 건넌지 1시간 만이다. 순긋해변은 200m 길이의 백사장으로 이루어진 작은 해수욕장으로 편의시설도 인근의 다른 해변들에 비해 보잘 것이 없었다. 대신 분위기는 아늑하면서도 조용했다. 거기다 수심이 얕다니 가족단위의 피서지로는 괜찮을 것 같다.
▼ 순긋해변의 끄트머리쯤에서 탐방로는 안현동을 벗어나 사천면(산대월리)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순포리’로 연결된다. ‘순포’란 마을 이름은 이곳에 순채(蓴菜)라는 나물이 많이 자생한다는 데서 유래되었단다. 이 마을을 유명하게 만든 ‘순포습지(蓴浦濕地)’는 동해안에 있는 18개 석호 가운데 하나이다.
▼ 순포교(蓴浦橋, 순포습지로 연결되는 물길에 놓은 다리)를 건넌 탐방로는 도로 우측 소나무 숲속으로 들어선다. 솔숲은 좁은데다 나무의 키도 작다. 나무 사이의 공간도 좁다. 조성한지 얼마 되지 않는다는 얘기일 것이다. 거기다 바닥은 우레탄을 깔았다. 이런 조건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도로를 따라도 된다.
▼ 순긋해변을 지난 지 25분 여, 탐방로는 ‘사천해변(沙川海邊)’으로 들어선다. 모래사장의 길이가 300m쯤 되는 작은 해변으로 인근의 다른 해변들에 비해 기반시설도 약한 편이다. 그래선지 기업체의 하계 휴양지로 많이 이용되고 있단다.
▼ 사천해변이 끝났다싶으면 ‘쌍한정(雙閒亭)’이 나온다. 1520년(중종 15) 숙질간인 박수량(朴遂良)과 박공달(朴公達)이 관직에서 물러나 함께 소요하면서 세운 정자이다. 안에는 운곡(雲谷) 송한필(宋翰弼)의 기문(記文)을 비롯하여 12개의 현판이 걸려있다고 한다. 쌍한정의 왼편에 있는 작은 건물은 박수량의 효행비각(孝行碑閣)이다.
▼ 쌍한정 바로 옆의 '하평교'를 건넌다. 순긋해변을 지난 지 30분 남짓 지났다.
▼ 다리를 건너는 도중 왼편으로 백두대간이 조망되지만 오른편에 펼쳐놓은 사천천의 하구만은 못하다. 물길에 쓸려온 토사가 만들어놓은 삼각주(三角洲)에는 갈대가 한길이다. 지금은 비록 말라비틀어졌지만 여름철에 찾을 경우 잠깐의 눈요깃거리로 충분하겠다.
▼ 잠시 후 만나게 되는 사거리에서 ‘사천진 해변’ 푯말을 보고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다. 길가에는 ‘사천항 물회마을’이란 입간판도 세워져 있다. 맞다. 사천진해변에서 물놀이를 하는 재미도 있고 선착장 2층에 올라 바다를 조망하는 볼거리도 있지만 역시 물회만큼 사천진항을 빛나게 하는 것은 없다고 했다. 오죽하면 항구 주변의 마을에 사천진 물회마을이란 이름을 붙여놓았을까. 명성에 걸맞게 사천진의 물회는 풍성한 꾸미와 감칠맛 넘치는 회의 치감, 시원한 육수까지 어우러져 이곳까지 걸어오는 동안 쌓였던 피로를 깨끗이 지워버릴 정도란다.
▼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 조금 더 들어가니 조각공원이 나온다. ‘2017년 해변 디자인페스티벌 설치미술 공모전’에 당선된 작품들을 전시해 놓았는데 숫자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 몇 걸음 더 걷자 ‘사천진항(沙川津港)’이다. 백두대간에서 갈라진 분수계로부터 동으로 흘러나온 사천천과 바다가 만나는 합류 지점에 위치한 국가어향이다. 하지만 항구는 ‘국가’라는 등급에 걸맞지 않게 작은 어선들 몇 척만 정박하고 있을 따름이다. 먼 바다까지 나다니는 고깃배들은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그래선지 어판장 앞에 늘어선 횟집의 수족관도 어종이나 씨알이 모두 보잘 것 없었다. 그나마 인심 좋은 주인장을 만나 웃는 얼굴로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 트레킹 날머리는 ‘사천진 해변’
해파랑길 39코스가 종료되는 ‘사천진 해변(沙川津 海邊)’은 사천진 마을을 통과해야 만나게 된다. 해변으로 들어서는 초입의 소공원에 해파랑길 안내도와 스탬프보관함아 세워져 있다. 오늘은 총 2시간 50분을 걸었다. 핸프폰에 깔아놓은 앱은 12.6㎞를 가리킨다. 정규 코스는 ‘경포호’를 한 바퀴 돌도록 되어있으나 이를 놓쳐버린 덕분에 원래의 거리보다 4㎞쯤 적게 걸은 셈이다.
▼ ‘뒷불 해수욕장’으로도 불리는 사천진 해변은 길이가 800m쯤 되는 제법 큰 규모의 해수욕장이다. 경관도 뛰어난 편이다. 북쪽 끄트머리에 수평선을 가리며 우뚝 솟은 갯바위들이 늘어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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