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윤의 미술치유] 치유의 아그리파 석고상 - ‘있는 그대로’
로마와 조선의 정직한 미의식
아그리파의 흉상 (BC 25–24). 루브르 박물관/위키백과
아무도 없는 화실의 문을 들어서자 아침 햇살 속 먼지들의 춤이 정겹다. 주전자 물을 끓이고 이젤을 편다.
의자에 앉아 연필을 깎고 그리다 만 드로잉을 이어간다. 모델은 ‘아그리파’ 석고상. 연필이 내는 ‘사각사각’ 소리와 함께 홀로 차분하고 충만한 시간에 빠져든다. 순간 문이 ‘드르륵’ 열리며 들어온 친구의 한마디, ‘야, 진짜 똑같네.’
미술학도라면 누구나 공감할 20세기 말 한국 화실의 장면이다. 정밀한 석고상 묘사는 입시미술을 비롯해 모두가 거쳐가는 과정이였다.
외국 예술가들에겐 너무나 '고전적' 이라 희귀하게 비친 모습이기도 하다. 19세기에 유럽에서 일본을 거쳐 1920년경부터 시작된 이 교육은 최근 들어 창의성을 저해한다하여 사라지는 추세이다.
석고상의 주인공은 ‘마르쿠스 윕사니우스 아그리파 (Marcus Vipsanius Agrippa, BC 63~12)’. 로마시대의 정치인이자 군인, 로마제국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친구이며 현존하는 최초의 돔(dome) 형식 건축물인 판테온을 세우기도 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와의 관계는 삼국지의 유비와 관우처럼 낭만적인 ‘브로맨스(bromance)’ 스토리의 극치를 보여준다.
로마의 시인 호타리우스는 “무례한 정복자가 오히려 그리스의 포로가 되어 버렸다” 라 했지만 로마는 그리스의 아름다움을 답습하지만은 않았다. 하늘에 떠있던 그리스의 예술이 로마시대에는 땅으로 내려와 두 발을 딛게 된다.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로마의 미의식은 도로와 개선문, 콜로세움, 공공목욕탕 등 눈부신 건축공학의 발전을 이룬다. 로마 회화 속 인물들도 공중을 부유하는 듯한 그리스와 다르게 초기 원근법과 명암등을 통해 실제감이 강조된다.
로마 공화정 시대를 대표하는 흉상들은 그리스의 ‘이상’ 보단 ‘현실’을 선호하여 비너스와 같은 신 대신 실존인물들을 모델로 한다. 그리스 조각들은 대부분 육체의 황금기인 젊음에 머물러 있지만 로마 흉상들은 중.노년층이 많았다. 그들의 정신과 업적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한 아름다움은 최대한 ‘있는 그대로’ 의 사실적 묘사였다.
탐욕스럽고 문란한 황제도, 비열하고 의심 많은 귀족도, 노쇠한 원로 정치인도 그 모습 그대로 표현 되었다. 당시 로마인들은 '자연스러운 불완전함'을 사랑했기에 주름살은 오히려 삶의 지혜와 연륜, 철학을 나타냈다. 과도한 보정과 뽀샵질은 촌스러움 이였다.
조선시대의 초상화는 한 술 더 뜬다. 오죽하면 인물의 피부병과 사팔눈까지 정확히 묘사했을까. 전신사조(傳神寫照)’ - 인물의 외형뿐 아니라 인격과 내면세계까지 표출해야 하며, 일호일발(一毫一髮) - ‘터럭 하나라도 일치해야 하는 사실성'을 갖춰야 하니 많은 이들은 초상화로 그려지기를 거부하기도 했다.
성리학자 이채의 초상화 (1802년). 국립중앙박물관 /위키백과
조선(1392~1910년)의 말로는 썩 좋진 않았지만 세계사에서 유례없이 정신문화를 추구한 수준높은 측면이 있었던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조선은 꼿꼿한 지식인들이 이끈 매우 지적인 (intellectual) 국가였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힘있는 권력자들에겐 더욱 그러하다. 맨 얼굴의 자신을 보는 것은 그닥 유쾌하지 않은 일일 수 있다. 하물며 세상과 후대에 남기는 것이라면야. 하지만 저 시기 로마와 조선의 예술에는 뽀샵을 거절하는 자신감있는 미의식이 존재했고 명예와 존경, 선대와 후대의 연결을 중히 여긴 문화에 기여하게 된다.
심리학자 칼 융은 변화란 현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간에야 비로소 시작되는 역설적인 마음의 역동이라 했다. 중독자 누구도 자신의 중독을 순순히 인정하지 않는다.
어쩌면 국가도 마찬가지 아닐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는 이들이 늘어야 집단은 발전한다. 나라와 정치인의 '자연스러운 불완전함'도 모두가 겸허히 받아들이고 냉정히 평가해야 진정한 변화가 시작되는 것 아닐까.
끊임없이 숨기고 부정하는 것은 촌스러운 뽀샵질과 다를 바 없다. '인위적인 완전함' 의 난투장에 갇힌 사회에선 모두가 불행해질 수 밖에.
무대를 다시 화실로 옮겨, 미술치료의 관점에선 아그리파를 그리던 한국의 미술학도와 로마 흉상과 조선 초상화 예술가의 마음 모두 유사한 맥락에 있다. 형태와 선을 지각(perceive)하고 집중하는 사실적이고 세밀한 묘사는 마음을 침착하게 하며 자연스럽게 감정을 조절하고 진정시킨다.
셋 모두는 과한 뽀샵질과 보정의 충동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 의 정직한 표현에 몰입하는 치유의 시간을 경험했을 것이다. 최종 작품의 현실적 평가는 각각 다르겠지만, 미술치료는 결과보다 창작 과정의 심리적 변화에 큰 의미를 두기에 가능한 상상이다.
그러고보니, 아그리파 석고상을 싸그리 없애는 것도 창의성을 저해하는 교육 아닌가 싶다.
글 | 임성윤 교수
출처 : 마음건강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