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갤러리메르헨, 김명준 개인전 '아직 이름 없는 장소'
유형 : 대전전시회
날짜 : 2026년 7월 8일~7월 21일
관람시간 : 10:30 ~18:00
장소 : 갤러리메르헨, 대전 유성구 대덕대로 556번길 87
문의처 : 갤러리메르헨 042-867-7009
태양이 없는 곳에서 터지는 빛
Light Breaks Where No Sun Shines(1)
홍라담,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Radam Hong, Curator of Daejeon Museum of Art
파괴와 창조의 사이클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일까? 어떤 이에게는 특정 인물이나 초자연적인 존재일수도, 다른 이에게는 불확실한 미래가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두려움은 개인의 경험, 가치관, 문화적 배경에 따라 달라진다. 김명준(b. 1992)은 자연재해, 질병, 전쟁, 기후위기, 외계생명체 등 통제 불가능한 재난의 상황이 가장 두렵다고 말한다. 강원도 강릉 출신인 그는 2008년 태풍 루사(RUSA)와 최근 큰 산불을 겪으면서, 인간이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서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 깨달았다.(2) 이러한 경험으로 인해 그는 자연의 불확실성과 위험 요소를 배제한 환경인 수족관, 동물원, 조경, 분재 등을 자신의 안식처로 삼았다. 특히 수족관은 새로운 환경을 창조하기 위해 기존의 구성 요소들을 제거하고 레이아웃을 변경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이로 인해 수족관은 순환성을 지닌 일종의 인공자연으로 기능한다. 김명준의 작업 또한 이와 유사한 특성을 보인다. 그는 자연의 순환 메커니즘, 즉 생성과 소멸, 창조와 파괴를 사유하며 이를 화면에 담아낸다. 그의 작업에서 자주 등장하는 나무들은 수족관에 들어가는 유목이다. 〈뻗어 나오는 빛과 새어 나오는 빛〉(2024)에서는 죽은 나무인 유목을 그렸지만, 이 유목의 파편에는 정적인 죽음 대신 생명력을 품고 있는 빛들이 스며든다. 〈죽은 나무 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빛〉(2024)에서처럼 레이저나 낙뢰 같은 강렬한 빛이 파괴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매개 역할을 한다. 빛이 나무를 관통하거나 조각내는 장면은 고요한 정적을 깨고, 그곳에서 촉발한 에너지가 탄생함을 암시한다.
불규칙한 요동
김명준은 자연과 충돌하는 비가시적인 힘을 상상하고 이를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이러한 힘에 연관된 관심은 〈조준 Aiming〉(2023)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이 작품은 레이저 저격용 총 이미지를 통해 인간의 자연에 대한 정복 욕구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 앞에서 끊임없이 굴복해왔으며, 이러한 순응은 깃발을 통해 나타난다. 〈타격의 잔해〉(2024), 〈부스러지는 잔해〉(2024) 등 작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떨어져 나간 파편과 잔해, 파괴의 잔류물은 그가 구축한 풍경 속에 굳건히 자리한다. 〈관찰자 Obsever〉(2023)는 절대자 앞에서 미미한 인간의 존재를 표현하며, 더 높은 차원의 거대한 힘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낸다. 검은 구로 표현된 우주의 두 지점을 연결하는 웜홀을 통해 절대자, 신적 존재, 혹은 외계인이 관찰하고 탐색하는 구성을 보여준다. 화면의 거대한 산과 작은 돌멩이는 신적인 존재에게는 별다른 차이가 없음을 암시한다.
그럼에도 균일한 파동
SF 영화나 애니메이션, UAP(미확인 공중 현상, Unidentified Aerial Phenomena), 게임 속 전투 효과에서 묘사되는 우주적 현상들은 작가에게 훌륭한 영감을 준다. 특히 별의 탄생과 죽음에 대해서 그 모든 과정이 우주의 순환과 에너지 흐름을 형성하는 단적인 예라고 생각한다. 〈감시자 Watcher〉(2023)은 이러한 관심이 잘 드러나는 작업으로 별이 파괴되고 생성되는 이미지와 관련하여 우주의 순환적 본질을 표현한다. 이러한 이미지는 우주와 지구가 같은 자연 안에서 연결되어 있다는 상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동시에 우주적 질서와 지구의 생명체 사이의 밀접한 연관성을 드러낸다. 생성과 소멸의 과정에서 무한히 생성되는 물리적인 에너지는 단순한 파괴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형태와 구조를 만들어낸다. 비선형적이고 비가역적인 엔트로피의 흐름은 혼란스럽고 때로는 파괴적이지만 그것이 우주가 진화하는 방식이다. 〈죽은 나무 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우주〉(2023)는 죽은 나무 틈에서 검은 은하가 새어 나오는 이미지가 포착되는데, 이는 새로운 구조나 질서가 형성됨을 시사한다. 〈포착된 기원〉(2023)은 자연계의 기원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작업이다. 평행우주, 원자 단위의 구성, 그리고 죽어있는 별의 도상 등으로 우주와 존재의 본질을 탐구한다.
가장 인공적인 색
김명준의 화면은 대부분 푸른 톤을 사용한다. 차가운 중간 톤의 스틸 블루 계열이 주를 이루지만 때로는 명도가 높은 코발트 블루나 회색에 가까운 스모키 블루를 사용하며 인공적인 미감을 강조한다. 파란색은 자연에서 드물게 발견되며 주로 합성 색소나 염료로 만들어진다.(3) 스틸 블루 계열의 사용은 가장 인공적인 색이자 시체와 유사한 색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죽은 나무 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빛〉(2023)에서는 자연적인 모티프인 산이나 바다도 푸른색으로 표현되며 빙하와 같은 자연 요소와 연결된다. 따라서 그의 작업에서 자연의 고유함과 인공의 차가움이 교차하며 그 경계가 모호해진다. 또한 물에 잠긴 산은 세상의 끝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상상하게 한다. 최근 김명준은 비물질적인 요소들을 미술의 범주로 끌어들여 조형적인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 〈과녘 The target〉 (2024)에서 화면 테두리에 스틸 재료를 사용하여 차가운 온도와 같은 비물질적인 개념들을 시지각적으로 제시한다. 이러한 접근은 물성에 대한 실험으로 ‘죽음’과 ‘살아있음’을 전복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태양이 없는 곳에서 터지는 빛
김명준의 작업에서 양가적인 요소들은 주제나 매체에서 개념적으로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 이러한 요소들은 그만의 세계관으로 화면에서 통합된다. 그는 유화보다는 아크릴릭 작업을 선호하는데, 이는 복잡하고 무거운 주제를 보다 가볍고 직관적으로 전달하기 위함이다. 그가 게임, 만화 이미지, 숏츠 등 누구나 쉽게 접근 가능한 매체의 이미지를 활용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김명준은 자연 속에서 생명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과정을 탐구한다. 동시에 파괴와 창조의 사이클에서 취해야 할 태도를 제시한다. 공주문화예술촌 개인전 《불규칙한 요동, 균일한 파동》은 우주적인 차원에서의 변화와 생명의 순환이 지속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의 화면에서는 파괴가 기존의 구조나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변화를 위한 기초를 마련하는 과정으로 묘사된다.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삶은 요동친다. 대립이나 갈등, 좌절 등을 피할 수는 없지만, 이를 극복하며 나아가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 김명준은 햇빛이 들지 않는 곳에서도 터지는 빛에 주목한다. 그리고 어두운 밤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것이 그러한 선택지가 될 수 있다.
(1)딜런 토마스(Dylan Thomas, 1914~1953)의 동명의 시 〈Light Breaks Where No Sun Shines〉(1934) 제목에서 차용.
(2) 지난 23년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에서 도심형 대형산불이 발생하여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기도 했다. 2023년 강원특별자치도에서 발생한 산불 피해는 총 66건에 이른다.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산림청 보도자료(2024. 02. 23.) 참조.
(3) 파란색이 자연에서 보기 어려운 색으로 평가되는 이유로는 짧은 파장을 가져 빛이 산란되어 인간의 눈에 띄기 어렵거나, ‘피코시아닌’이라는 파란색의 필수 색소가 대부분의 식물에서 생산되지 않기 때문이다. Why Blue is Rare in Nature, National Geographic 기사 참조.
https://www.nationalgeographic.com/science/article/why-blue-is-rare-in-nature
김명준 - Crack_211cm x 299cm_acrylic on canvas_2025
김명준 - The Blue Afterglow_72.7cm x 60.6cm_acrylic on canvas_2026
김명준 - 벽력_227.3cm x 181.8cm_acrylic on canvas_2025
[작업노트]
아직 이름 없는 장소
The Place Without a Name Yet
내 작업은 재난을 경험한 기억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내가 관심을 두는 것은 재난의 순간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모든 것이 지나간 뒤에 남겨진 풍경, 그리고 그 안에서 조용히 진행되고 있는 변화의 움직임에 가깝다.
재난은 익숙했던 세계를 무너뜨린다. 그러나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무너진 자리에서는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감각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나는 그 변화의 순간에 주목한다. 그것은 끝난 세계와 시작되는 세계가 교차하는 지점이며, 상실과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이다.
작품 속에는 반복적으로 나무와 별빛, 우주, 재난의 순간들이 등장한다. 불에 그을린 나무들은 생명을 잃은 존재처럼 보이지만, 화면 안에서는 또 다른 흐름과 연결된다. 가지를 따라 번져가는 빛, 허공을 가로지르는 선들, 서로를 연결하는 작은 점들은 사라진 것들 위에서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는 과정을 암시한다. 그것들은 어떤 상징이라기보다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변화의 흔적들에 가깝다.
내가 그리는 풍경은 현실의 특정 장소를 재현하지 않는다. 동시에 완전한 상상의 공간도 아니다. 그것은 실제 경험에서 비롯되었지만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경계 위에 존재한다. 익숙한 풍경처럼 보이지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장소, 설명할 수 있지만 쉽게 규정할 수 없는 장소이다.
그래서 이번 전시의 제목을 《아직 이름 없는 장소》라고 붙였다.
이 장소는 하나의 결론이 아니라 상태에 가깝다. 이전의 질서가 사라졌지만 새로운 질서는 아직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공간. 우리는 보통 사물과 현상에 이름을 붙임으로써 이해하려 하지만, 어떤 변화는 이름보다 먼저 찾아온다. 나는 그 순간을 붙잡고 싶었다.
작품 속 풍경들은 사건의 순간, 혹은 이후의 세계를 이야기하지만 폐허에 머물지 않는다. 그렇다고 낙관적인 미래를 단정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 사이에 존재하는 가능성을 바라본다. 눈에 보이지 않던 흐름들이 연결되고, 멈춘 것처럼 보였던 세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들 말이다.
내 작업은 어쩌면 그 변화의 징후를 기록하는 일에 가깝다. 아직 무엇이 될지 알 수 없지만 분명히 새로운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상태. 나는 그 모호하고 불완전한 경계 위에서,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세계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김명준 - 흐르는 불꽃_130.3 × 97.0cm_acrylic on canvas_2025
김명준 - 흐르는 불꽃_130.3cm × 89.4cm_acrylic on canvas_2025
문화가 모이는 곳 "대전공연전시" http://www.gongjeo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