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 결과에는 국산차 회사들의 문제점이 보인다. 르노삼성은 영업 현장의 개선을, 쉐보레는 가격표를 다듬어야 한다. 쌍용차는 믿음을 주었으면 좋겠다. 치열한 경쟁이 있는 시장이 건강하다
제네시스 GV70
모든 상업적인 활동은 지금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물론 시대 흐름과 시장의 변화에 맞춰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작은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잡화점이어서 독점적 지위를 누려왔다고 해도,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집 문까지 배달이 가능해진 시대적 변화를 이기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는 말이다. 하물며 세계를 상대로 하며 빠르게 바뀌고 있는 자동차라면 그 고민의 깊이는 엄청나야 하고 실천 가능한 내용이어야 한다.
이런 뻔한 이야기를 반복한 이유는 2020년 국내 자동차 판매 성적표를 보고 든 생각 때문이다. 수입차를 제외하고 제네시스를 포함해 현대, 기아, 르노삼성, 쌍용, 한국지엠 등 국산차만 봐도 그렇다. 2019년과 비교할 때 국산차 브랜드 중에서 판매량이 가장 많이 늘어난 곳은 제네시스로, 5만1583대에서 10만8384대로 거의 두 배 가까이 뛰었다. 2015년 말 제네시스 브랜드가 론칭한 후 장기적인 관점에서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차근차근 만들어 수입차를 통해 높아진 눈높이의 소비자들을 돌려세운 것이 주효했다.
현대차는 쏘나타가 K5에 1위 자리를 넘겨준 것이 뼈아프다. 더욱이 택시 등 LF 모델 판매가 많다는 건 문제다. N 라인이 나오는 등 조금은 활기를 찾고 있긴 하지만, 적극적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그럼에도 현대차그룹은 별걱정이 없다. 라인업이 괜찮은 새 차들로 채워졌고 순수 전기차 플랫폼과 모빌리티 회사로의 전환을 포함한 미래 계획까지 확실하게 나와 있어서다.
르노삼성 SM6
다른 회사로 눈을 돌려보자. 코로나19가 창궐하는 상황이었지만 의외로 국산차 판매는 늘었다. 르노삼성은 2019년 8만6859대에서 2020년 9만5939대로 약 10%, 한국지엠은 같은 기간 7만6471대가 8만2954대로 약 8% 늘었다. 이 두 회사는 전체 판매가 늘어나긴 했어도 속사정은 좋지 못하다. 너무 말라서 기초체력을 기르기 위해 체중을 늘렸는데 근육이 아니라 지방만 붙어 더 나빠진 꼴이다.
르노삼성은 전체 판매의 절반을 QM6(4만6825대)가 채웠다. 특히나 LPG 모델의 판매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문제다. 차 크기 등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QM6의 고육지책으로 틈새를 찾아 성공했다고도 할 수 있지만 문제는 영업 현장이다. 전시장을 방문한 고객들에게 QM6 LPG만 권한다. SM6를 사러 왔다고 해도 QM6 LPG 이야기를 한다. ‘팔기 쉬운 차’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전체 판매량 증가는 미미하면서 모델별 비중이 크게 한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QM6처럼 작년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며 사양도 좋고 성능도 월등하게 좋아진 SM6가 고작 8527대 팔린 것만 봐도 그렇다. 구형인 LF 쏘나타 택시 모델의 절반도 안 팔린 SM6가 정말 르노삼성의 플래그십인가? 도대체 언제까지 리어 서스펜션과 뒷자리 승차감 타령만 하며 팔기 쉬운 QM6 LPG에만 매달릴 것인가. XM3가 적당히 팔리고는 있지만 활활 타오르는 소형 SUV 시장에서 충분한 대안이 될 수 있는 르노 캡처는 왜 잠잠한지 궁금하다. 전시장에 방문한 고객에게 XM3 아니면 르노 캡처로 선택지를 제한하면 벗어나지 않게 붙잡는 것도 가능할 텐데 말이다. 좋은 새 차가 나왔다면 다른 차 판매량은 그대로인 상태에서 새 차의 판매량이 더해져야 하는데, 파이 크기는 그대로에 나누는 비율만 달라졌다. 이건 문제다.
쉐보레 트레일블레이저
쉐보레도 비슷하다. 트레일 블레이저가 2만 대를 넘기며 그래도 선전하고, 트래버스와 콜로라도 등의 수입 모델이 자리를 잡은 것도 긍정적이다. 문제는 수익구조에 큰 영향을 미치는 국내 생산 모델들이다. 경차 시장에서 2만8935대가 팔린 스파크는 3만8766대의 모닝 판매에 한참 뒤떨어져 있다. 기아 레이보다는 불과 400대 더 팔렸을 뿐이다. 실질적인 대표 세단 역할을 해야 하는 말리부는 6548대로 중형 세단 꼴찌다. 모델 라인업을 보강하거나 트림별 사양 조절을 포함해 전체적인 가격표 손질이 필요하다. 세단 시장이 죽었다고? 그렇지 않다. 말리부만 팔리지 않을 뿐이다.
쌍용자동차는, 우선 법정관리를 벗어나는 것에만 집중해야 한다. 지난 20년 동안 몇 번의 인수-투자-결별의 수순을 경험했으니 이번만큼은 확실하게 결론을 내렸으면 좋겠다. 좋은 차를 만들겠다는 약속과 그걸 신뢰할 수 있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 특히나 해외시장 공략을 위한 전략과 그에 따른 자금 계획 등이 현실적으로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좋아하는 연예인을 따르는 팬들도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면 지친다. 좋은 소식으로 빨리 돌아오기를 바랄 뿐이다.
포털사이트 등에서 현대·기아차에 달리는 악플을 보면 현대·기아의 83%에 달하는 국산차 시장 점유율은 이해하기 힘들다. 그런데 내가 탈 차를 고르다 보면 결국엔 현대·기아차가 된다는 뜻이다. 쉐보레와 르노삼성, 쌍용자동차 모두 좋은 방향을 찾고 선전했으면 좋겠다. 다양한 차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시장은 건강하다. 소비자가 어떤 차를 살지 심각하게 고민하는 시장이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