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관 후기] ㅡ 비정상의 세계
오늘 미국은 "이란에게 통행료를 내면 제재하겠다"고 했습니다. (경향신문, 2026.5.2)
미국의 이란 침공도,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도, 통행료 내면 제재하겠다는 것도, 모두 다 비정상이다.
석유가 꼭 필요해서 통행료를 내고서라도 석유를 가져오겠다는데 그걸 못하게 한다. 달리 다른 방도를 제시해주는 것도 아니다. 석유 없이 살던가 그냥 알아서들 하라는 것이다. 비정상이다.
국조위에서 서해피격사건 관련 "대통령실과 소통한 적 있었냐"는 이용우 의원 질문에서 김태효는 "없었다"고 하다가 뒤에 가서는 증거를 들이대자 "NSC 회의 전에 소통한 적 없다고 답한 겁니다"라고 발뺌한다.
전후관계로 인과관계를 팔아먹으려는 수작이다. 즉, 우연성으로 필연성을 사려는 얍삽하고 사악한 언변술이다. 이것 역시 비정상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은 의문이 되어야지 사건에 사건을 무는 별건식 수사로 되어서는 안 된다. 변호사비 대납 사건에서 시작해 별건에 별건으로 계속 물어대며 대북 송금 사건에까지 이르른 것도 역시 비정상이다. 그래서 결국 조작 수사와 조작 기소에 이르기까지 됐는데 망상과 집착의 비정상적 결과물이다.
내란공범으로 지목되어 수사 대상인 추경호를 국힘당에서 이 번 지선 후보로 내세운 것 또한 비정상이다.
지난 내내 비상이 아니었던 적이 드물고 정상으로 보였던 적이 거의 없던 국짐당이니 그럴 만도 하겠으나 너무 막나간다.
이번 국정조사에서 밝혀진 중요한 사실들이 엄청 많았지만 대부분의 언론들은 기사 한 줄도 쓰지 않고 있다. 재래식 언론이라는 듣기 싫어할 평가는 있지만 그래도 너무한다. 비정상의 극치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자는 "나라다운 나라 세우기"의 '촛불혁명'이 '빛의혁명'으로 거듭 탄생된 것이 우연은 아닌 듯싶다.
세계 역시 대전환기의 패러다임 변화를 예견케 한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으려는 움직임으로서.
무엇보다 눈여겨볼 대목은 관계 변화이다. 억압과 착취와 제재라는 이름의 수직적 관계에서 평화와 정의와 호혜로 이름되는 수평적 관계로 펼쳐지는 전환과 확장으로 잇는 관계의 변화에 주목한다. 그게 아니라면 비정상 양상(모양과 상태)은 계속된다. 불행이 계속된다는 뜻이다.
kjm _ 2026.5.2
* <첨부>
1.
상궤(常軌)에 관하여...!!
ㅡ kjm / 2021.7.11
1. 상궤란, 'common course' 혹은 'nomal course'로서, 사람이 좇아야 할 '바른 길', '정상적인 코스'를 뜻합니다.
"상궤를 벗어났다"라 함은, "사람의 도리를 내팽겨쳤다", "비정상(abnormal)이다"라는 것이죠.
2. '현실 세계'는, 흐리멍텅해서 알려고 해도 잘 파악이 안 되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우리의 '인식 세계'는, 똑 똑 끊어내는 일들을 합니다. "한 번씩 끊어주고 간다"고 보시면 됩니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
"90년생이 온다."
"586세대"
"87년 체제"
기타 등등...으로서, 우리의 의식 세계를 점령해서 똑같이 현실을 나누려는 움직임(행동)으로 나타납니다.
특히 시간적 구분을 주로 사용하곤 하는데...
"코로나19"
"포스트 코로나"... 등등
3. "끊어서 본다"는 것은 상당히 편리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위험성 또한 있습니다.
의식 세계에서 인식적으로 끊어낸다고 해서 실제로 현실도 그렇게 된다는 건 아닙니다.
그리 생각하다가는 혼자 착각에 빠져서 대사를 그르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이럴 때 바로 '비정상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자기 생각만 옳은 것이게 됩니다.
옛날에 어떤 검객이 검의 도(道)를 궁극으로까지 이르게 하려고 달을 칼로 자르려 했고 성공했다는 전설도 있는데, 실제로 지금까지 달은 그대로입니다.
자신의 의식 세계(주관적 관념의 세계)와 현실 세계(객관의 세계)와는 구분해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싸이코의 세계'에 빠져 상궤를 벗어난 '영원한 이방인'으로 남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이란 것도 결국은, "세상이 비정상이니 비정상의 눈으로 보자"는 것일 뿐입니다.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2.
정치 풍향계70..!! (특별 편)
ㅡ kjm / 2021.10.17
1.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들은 사실에 주목하기보다는 사람에 주목한다. 즉, 논리적 관계보다는 심리적 관계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2.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진실보다는 사적 이익을 목적으로 해서 판단하고 기사화하면서 이것을 진실 혹은 사실인 양 포장해서 유포한다는 것이다.
3. 우리는 생각을 한다. 너무도 확실한 것 아닌가? 그런데 '사고의 연속성'을 전제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길까?
4. 나는 계속해서 말해왔다. "나는 기준으로 생각하고, 전제로 말한다"고 말이다. 그러면 여기서 "전제로 말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5. 만일 내가 神이라면, 어떤 근거나 이유나 증거나 전제 없이도 판단해서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아쉽게도 神이 아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오류가 또한 가능하고, 그 오류를 없애거나 줄이기 위해서 전제를 두고 말하는 것이다.
6. 만일 내가 神이라면 사다리 없이도 지붕에 오를 수 있고 하늘을 날아다닐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안타깝게도 神이 아니기에 사다리가 없으면 지붕에 오를 수 없다는 사실이다.
7. 여기서의 '사다리'는 연속성을 가리킨다. 즉, '사고의 연속성'을 가리킨다.
8. 심리적 관계에서는 비약(jump)이 가능하다. 즉, '사고의 불연속성'을 띈다. 그러나 사실적 관계나 논리적 관계에서는 연속성을 전제하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우린 알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다. 만일 원인과 결과, 전제와 결론 사이에 연속성이 없다면 도대체 어떤 판단을 하나라도 옳게 내릴 수 있겠는가?
9. 우리가 지식을 쌓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설명'과 '예측'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설명과 예측이 있어야 세상을 이해할 수 있고, 또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10. 교육도 마찬가지로, 두 가지 중요한 목적을 가지는데, 하나는 '개념화 훈련'으로서, 알고 있는 것에 의미를 심는 작업이다. 다른 하나는 앞서 말한 '사고의 연속성 훈련'을 시키는 작업이다.
11. 우리가 언론을 통해서 접하는 단독이니 특종이니 하는 것들은 사고의 연속을 깨는 의외의(생각지 못한) 사실에 관한 발견을 뜻한다.
12. 그런데 왜 그다지도 의외의 사실들이 그리도 많이 나타나는 걸까? 왜 단독과 특종들이 매일매일 넘쳐날까?
13. 검찰의 수사나 판사의 판결도 마찬가지로 왜 갑자기 의외성 판단들이 부지기수로 나타날까?
14. 이것은 비정상이 정상을 잡아먹는 형국이다. 즉, 토마스 쿤의 말을 빌리면, '패러다임'이 바뀌게 되는 혁명적 상황이게 된다.
15. 우리는 '개혁'이란 말로 온화하게 말하지만, 지식 체계와 판단 양상에 있어서는 '혁명'이란 표현이 적합한 표현이라 본다.
16.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해 새로이 등장한 뉴노멀 상황도 그렇고, 검찰총장이 범죄자가 되고 동시에 대권 후보로 나서는 상황도 매우 생소하고 기괴하다. 게다가 많은 언론들이 진실 추구와 권력 감시란 본업을 팽개치고 스스로 정치플레이어로 전면에 나서는 것 역시 이변이다.
17. 기득권자들이 지붕에 먼저 올라가서는 올라가는 사다리를 걷어차버려 양극화와 불평등이 심각한데도 아무도 따지지도 묻지도 않는 현실 역시 괴이하다. 특히 양극화의 제일 원인인 '불로소득'에 관해서 제일야당인 국민의힘과 야당 대권후보들의 입에선 마치 '금기어'가 된 것처럼 침묵한다. 언론들도 관심을 두려 하지 않는다. 언론들의 관심은 단지 윤석열이 개를 끌고 저녁에 산책나왔다는 류의 것들이다.
18. 오늘 마침,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무효신청소송에서 기각한다는 판결이 났다. 이것의 의미는 윤석열 후보의 그간의 모든 주장들을 뒷받침하는 가장 큰 전제가 무너졌다는 뜻이다.
19. 따라서 윤석열 후보는 후보에서 내려와야 할 상황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오류 가능성'을 부정해왔던 지독한 검찰주의자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무속신앙도 그 이유가 될 수 있다.
20. 언론들은 계속 그를 논리적 전제를 대신해서 힘(언론권력)으로 옹호해줄 것이며, 그가 속한 정당(국민의힘)에서도 그를 내치지 않을 것이란 예측도 하게 된다.
21. 바야흐로 급격히 변화하는 시대에 역리(逆理)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음에, 사람의 심리적 의식 흐름만을 쫓아다니면서 "더 나은 사고(better thinking)"를 외면하게 된다면, 과연 미래에의 희망이 있을까?
22. 뻔뻔한 윤석열의 낙마와는 별도로, 작금의 언론인, 법조인, 정치인들에게 기대할 무엇이 있는지에 대해 그다지 낙관적이지는 않다.
K / 2026.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