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사라져도 습관은 남는다(4)
신6:4~9
막1:21을 보자.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마5:1~2을 보자.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또는 “설교하셨다”라고 하지 않고 “가르쳤다”고 표현했을까? 그 이유는 마가와 마태가 유대인이기 때문이다. 신6:4~9은 유대인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쉐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테필린)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메주자)”
이 말씀이 뜻하는 바는 무엇인가? 시도, 때도, 장소도, 가리지 말고 부지런히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골수에 박히도록 가르치라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가죽끈이 달린 사각 통을 이마에 묶고 또 하나는 손목에 매고 성경을 읽는다(사진1 참고). 그 통을 “테플린”이라고 부르는데 그 뚜껑을 열어보면 그 속에 얇은 섀미가죽에 손으로 쓴 신6:4~9가 나온다(절대로 인쇄물은 사용할 수 없다). 9절을 보자.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유대인의 집 현관문 기둥에는 “메주자”라는 문패가 달려 있는데 이 메주자의 뚜껑을 열어보면 역시 얇은 섀미가죽에 쓴 신6:4~9이 나온다(사진2). 그리고 그들은 집을 나가고 들어올 때마다 거기에다가 손을 댄 후 그 손을 자기 입에 키스한다. 사랑한다는 뜻이다.
사진3은 한 젊은 아버지가 통곡의 벽 앞에서 성경을 읽고 있다. 그런데 그 앞에는 갓돌이 지난 아이를 앉혀 놓았다. 이는 “길을 갈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의 실행이다. 아이는 아버지가 뭘 읽는지 알지 못하지만 무언가를 읽고 있다는 사실만은 안다.
7절에서 “부지런히 가르치며”의 히브리어는 샤난(שָׁנַן)이다. “날카롭게 하다”는 뜻도 있는데 칼을 갈아 날을 세우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연마해야 한다는 뜻이다.
산상수훈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율법)을 연마한 결과물이다. 40일을 금식한 예수님을 시험했던 마귀조차 예수님의 연마한 말씀에 기겁하고 줄행랑쳤다.
세계 5대 식량 메이저 중 상위 3개 회사는 유대인 손안에 들어있다. 세계7 대 석유 메이저 중 6개도, 맨해튼의 금융도 유대인의 손안에 있으며, 유럽의 금융도 유대인인 로스차일드 가문이 쥐고 있다. 세계 통신사들, 미국의 유명 언론사들, 미국의 대기업 社主도 대부분 유대인이다.
세계의 역사를 바꾼 네 명의 인물이 있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 물리학의 아버지인 아인슈타인, 공산주의를 창시한 마르크스, 인간의 무의식 세계를 찾아낸 프로이트. 이 네 사람은 모두 유대인이다.
유대인은 13살이 되면 성인식을 치른 후 아침마다 성경을 읽고 기도한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그 습관을 유지한다.
“기억을 사라져도 습관은 남는다”
좋은 습관이 사람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