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적으로 명쾌한 좌파이론에 비해 우파는 「경험(經驗)」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좌파가 한권의 책을 읽고 태어난다면, 우파는 그보다 몇 배되는 책을 읽어야 비로소「탄생」합니다.
교과서 포럼 박효종교수는 ‘위대’했고, 조인스닷컴은 ‘비겁’과 ‘위선’의 절정이었던 하루였습니다. 김영삼 시대 이후로 벌어진 ‘역사도식’을 버리고 근본을 찾았습니다. ‘박정희 정치체제 완전 부정’ ‘경제 발전은 긍정’이란 논거에서, 조인스닷컴 디지털국회의원이란 분의 의견처럼 ‘경제발전’과 ‘유신독재’를 분리하는 것은 ‘지식사기극’이란 주장을 반영했습니다. ‘경제발전’을 긍정하는 즉시 1970년대적 한계성일 수 밖에 없는 ‘유신체제’를 긍정할 수 밖에 없는 ‘역사가의 솔직성’을 대담하게 찾았습니다.
쌍팔년도 처럼 ‘한국 현대사 연구’가 미흡하다는 이유로의 좌익의 무기는 사라졌습니다. 이젠 질리게 좌익 역사 연구가 쌓였습니다. 우익이 김영삼 체제 이후로 ‘반공교재’를 의심했습니다. 좌익들이 우익에게 ‘금지된 연구’ 다 끝나고 보자고 했습니다. <교과서 포럼>의 주장은 좌익 역사학을 전부 반영하니 결국은, 좌익 역사학은 길게 길게 먹어봐도 아무것도 없더라는 고백입니다.
우익이 강해질려면 ‘단 한권의 책’으로 ‘승부’가 되었어야 했습니다. ‘단 한권의 책’의 집필자는 훗날 터져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입장이어야 합니다. 김영삼 체제는 ‘좌익 연구’ 다 만들어놓고 변증법적으로 승부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주천 교수조차도 정반합을 ‘이거’와 ‘이거 반대’ 사이에 ‘합’이라는 삼각형을 그려놓고 생각하는 바에서 절망을 토했습니다.
김성욱 기자는 ‘동국대 한상범 교수’를 아시지요? 한겨레신문에 뻔질나게 불려나가는 건국대 법대의 모 진보적 교수도 아실 것입니다. 그들의 논거는 분명합니다. ‘대한민국 건국의 부당성’에서 연역해서 논거를 뽑아갑니다. 공공복리 차원에서 국가의 사명의 요소는, 대한민국을 부당하게 보기에 ‘국가폭력’으로 생각하며 국가가 국민의 인권을 침해했다고 봅니다. 김성욱 기자는 법대 출신이라면 세세하게 찾아보면서, 반대 논거를 말해야 합니다. ‘권영성교수’의 [헌법학원론]과 한상범교수의 [헌법이야기]를 마주 놓고 대조해 보며 읽으며, 대중 상대로 이야기하면 얼마나 쉽게 다른 입지점을 가졌는가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민사법 상에서의 ‘피고’의 주장을 깨는 ‘원고’에 고용된 변호사 입장 처럼, 좌파의 논거를 부시기 위하여 준비자료를 많이 거쳐야 합니다. 승률 높은 변호사에겐 누구나 ‘야성’이 있을 터인데, 김성욱 기자에겐 좌익을 깨는 차원의 ‘논리화된 야성’이 아니라 ‘술자리 푸념’만이 보이니다.
헤겔은 헌법 주변에 코드가 맞물려서 각종 문화가 돌아가야 된다고 합니다만, 헤겔 논거 위에 쓰여진 우익의 법논리와 김영삼 체제의 함석헌의 씨알사상논리 위에 씌어진 ‘이단 우익’의 법논리의 충돌이 드러납니다. 마침내, 노무현 체제에 이르러서는 헌법의 근본철학과 판이하게 다른 논거와 이중적 동반 관계로 들어서게 됩니다. 노무현 체제가 뻑하면 노태우 김영삼 체제부터 잘못이 기원되었으니 괜찮다고 했는데, 김영삼 지지자는 부정할 지라도 중립적인 입장에서 실제로 노무현 체제를 낳은 것은 김영삼 체제부터일 것입니다.
趙甲濟기자를 넘어서서 김성욱 기자에게서조차도 非법대 출신의 법감각보다 현저하게 뒤지는 것이 있어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저는 여인의 짧은 치마에 심하게 적대적인 입장(여인네 종아리를 우상으로 섬기기 싫어서....)이나, 이미 그것은 보수 교회 내부조차도 그것을 따지는 것이 중단되었습니다.
김성욱 기자는 불성실합니다. 죄송합니다. [헌법재판소 판례집]을 전부를 읽지 않았습니다. 사법시험 기본 도서인 [헌법재판소 판례집]을 전혀 안 읽은 티가 팍팍 나서 화가 나서 미치겠습니다. 김성욱 기자님. 법대 동문임을 과시하지 마시고, [헌법재판소 판례집]을 읽으십시오. 무슨 법대생이 ‘감성’으로 이야기합니까? 법대생 출신 맞습니까? 趙甲濟기자가 1990년대 초반의 김영삼 시대 판례를 전혀 읽지 않은 것은 죄가 되지 않을 수 있어도, 김성욱 기자에겐 ‘죄’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법대 진보 좌익 대학교수의 논거에 대항하여 나쁘게 법이 해석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김성욱 기자!
김성욱 기자는 법대생 맞으면, 대학교 때 시험으로 ‘헌법’에 기재된 국민의 기본권에 관한 시험을 봤을 것입니다. 그 기억 어디에 다 반납하고 글을 그렇게 쓰십니까? 국민의 기본권으로서 동국대 한상범 교수나 좌파 법학교수가 얼마나 생뚱맞게 해석하는지를 조목 조목 실증적으로 봐야 할 것 아닙니까?
김성욱씨가 ‘민족사적 정통성’을 이야기하기에 앞서서, 국민의 기본권을 놓고 좌익과 싸우는 ‘법률적 실체’(팩트)로서의 ‘대한민국’에 대하여 분명한 가닥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 ‘법대생’의 자랑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7차 교육과정 [법과 사회] 교재는 기존 사법시험 법학교재 모드에, 간간히 한상범교수류 진보 해석이 많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고등학교 교과서 조차도, 헌법의 국민의 기본권은 쟁점 조항일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고서 민족사적 정통성을 말하는 것은 ‘주사파’ 개-새-끼들 밖에 없습니다. 우익이라면 국민의 기본권을 우익 가닥에서 해석하고 그 바탕에서 논거를 뽑아나가야 합니다. 김성욱씨의 사고가 ‘논리’적으로 명료하지 않다는 사실이 너무 심각합니다.
趙甲濟기자가 헌법을 지킨다면서 이야기하지만, 사법시험 교재를 놓고 보면 얼마나 황당한 주장을 많이 했습니까? ‘저항권’에 대한 병적 집착은 ‘우익 법학’의 논거가 아니라, 좌익 혁명가의 그것이었습니다. 법학에서 용어만 빌되 우익 법학과 전혀 다른 바의 목록은 꼽기가 지겹습니다.
김영삼 체제는 군사정부에 대한 不信을 선물하고, ‘한 권의 반공교재’를 믿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길게 길게 우회하여 ‘한 권의 반공교재’로 돌아가고, 속인 것은 김영삼 김대중 뿐으로 드러납니다.
김성욱 기자. 제 또래 신 것은 압니다. 근데, 경험이라뇨? 7차 교육과정 법과 사회를 만점 맞는 자보다도 ‘헌법 감각’이 떨어지는 데, 우익 자체가 모호하다니요? 정말, 깊이 있게 책을 읽고 보니 ‘박종홍’ ‘이규호’교수는 한줌의 사심이 없이 후대에도 영원히 옳은 말을 남겼고, 趙甲濟기자는 그렇지 않음이 명백하더군요.
인터넷으로 ‘조금씩 흘리는’ 논술교재 원고 일부는 우익의 사고가 사실은 체계적이었다는 것을 알리려는 바입니다. 우익도 단 한권으로 될 수 있고 총화단결할 수 있었는데, 김영삼 김대중이 좌익 역사학 키우게 우익에게 ‘불신’을 심어줬기 때문입니다. 이제사, 되돌아오는 것은 그들에 돌려줄 ‘불신’ 뿐입니다.
김성욱 기자에 충고합니다. 우익도 명료했습니다. 명료하지 않다는 자들은 씨알사상이란 별개의 마음 안의 신앙을 전파하고자 하는 ‘함석헌 자식들’ 뿐임을 아시나요? 맑스주의와 우익이 짬뽕 될 수 있고, 각종 불명료 모호한 잡탕밥이념이 가능하다는 것이 ‘함석헌 자식들’ 뿐임을 아시나요? 김영삼 체제가 심어준 군사정부 보수에 대한 불신 탓에, 공산서적 교과서 기준으로 비난되는 우익사상의 개별 하나 하나도 읽고, 우익사상에서 비판되는 공산사상도 읽었습니다. 그러다가, 김성욱씨 귀하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만 쓰러지고서, ‘한 권으로’ 우익에 필요한 교양이 갖추어질 수 있는 바탕이 되던 시대가 복원되도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의미로서, 박효종 교수의 교과서포럼만 대담했습니다. 옳다면 대담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주권’이 위협받는 입장에서, 국민국가를 넘어서는 ‘민족’에만 몰두하는 것이 얼마나 화딱지 나나요? 김성욱씨 귀하께서는 ‘민족해방세력’과 싸우려면 ‘민족해방세력’이 좋아하는 모든 것이 싫어지는 느낌이 안 나나요? 그러면, 영혼을 바치는 노력 아니라 정략적이라 봐야 맞습니다.
우익은 제발 주체사상 젓까라마이싱 개잡년 개잡놈 스러운 사유방식과 단절해야 합니다. 몽고에 줄줄이 굴복하게 되는 고려국이 몽고에 자주권을 찾는 방식의 선택권만이 남아 있습니다. 몽고에 인질되면서 다른 나라 못 도와줘 미안해 미안해 그러한 논거를 쓰는 자들을 보면, 솔직히 화가 납니다.
우익 법학교재는 무조건 ‘국민의 기본권’ 방어가 핵심입니다. 趙甲濟 닷컴은 국민의 기본권 방어는 나몰라 하는 전제의 북한만의 사유지요? 북한인권을 반대하는 게 아니라, 趙甲濟 닷컴에 끼고 도는 함석헌식 똥냄새에 반대입니다.
김성욱기자가 법대생 출신이라면 대학교 4학년 쯤에 ‘법철학’을 배우셨을 것이고, ‘정치학’으로 그것이 바로 연결되며 ‘정치학’은 ‘역사사회학’과 연결된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러한 언어의 씨실 날실 배경을 넘어서 ‘한마디’도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체제를 지키는 법학은 우익 논객이 만들 수 있습니다. 법대생 출신이 정치철학과 역사사회학까지를 볼 의도가 있고, 좌익 법학자들을 공적 장소에서 논쟁 걸어서 구석으로 몰 수 있다면 그렇습니다.
우익은 군사정부의 ‘간단한 시대’를 깨자며 의심을 전달하고, 좌익에 세금으로 학문하는 토대 만들고서는, 우익에는 눈물밥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서, 국민의 기본권이 위태하다 협박하고서는 아무 일도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정말로 군사정부의 간단한 시대를 깨자고 했으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우익 문화 문명의 발전을 위해서 뭔가를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운동권 좌익을 적당히 변화시켜서 자기들의 상행위만을 반복했습니다.
좌익도 따지고 보면 맑스주의 연구사가 무궁무진합니다. 그러나, 압축하면 a4 용지 한 장일 것입니다. 우익도 무궁무진하되 압축하면 몇 문장일 수도 있습니다.
김성욱기자의 생각을 보면, 김성욱 기자의 생각에서 우익이 왜 헐벗고 눈물 흘려야 했는가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우익은 이성을 넘어서 ‘경험’이라고요? 그런데, 또래 수준인데,.... 그리고 문장을 보면 기본을 못 갖춘 부분이 분명히 보이는데??
<좌익에 단순화를 유도하고 우익은 추상적 복잡화하되 실은 아무것도 아닌 단순가닥인거>
그만 봤으면 합니다.
우익이 복잡하게 많이 봐야 한다는 말은, 김영삼 패밀 리가 던져준 우익 내부의 ‘불신’의 불꽃에 더도 덜도 아니고, 이제는 다시 원점에 돌려줘야 할 바일 것입니다.
김성욱 기자 또래인 제가 ‘경험’을 이야기하고 이렇게 많은 책 봐야 우익된다고 하면, 우익하기는 가물에 콩나기보다 더 어렵다고 자인하는 꼴이라고 삿대질 받는 게 분명할 것이며, 노인들에겐 노인도 모르는 자아도취형이라고 삿대질 받을 텐데,.....
왜, 좌익은 대중을 찾고 우익은 왜 별 것도 아닌데 고상해지려고 발버둥 치나요? 권력은 소유물이 아니라 마주 잡은 인간의 손 사이에 있을 것입니다. 우익이 권력을 소유물로 아는 아집 때문입니다. 그것은 버려야 할 착각이며 구시대적 만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