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AjJVNCK7uFw
주제: 영의 사람은 몸과 분리된 사람이 아니다
부제: 성령은 우리의 삶을 어떻게 이끄시는가?
본문: 로마서 8:9–15
1. 히브리어 두 단어
1) שָׁמַע 샤마
뜻: 듣다, 귀 기울이다, 듣고 따르다, 순종하다
대표적으로 신명기 6:4입니다.
שְׁמַע יִשְׂרָאֵל
쉐마 이스라엘 “이스라엘아 들으라”
여기서는 명령형으로 쓰였습니다.
2) מָרָה 마라
뜻: 거역하다, 반역하다, 불순종하다
신명기 9:7에도 나옵니다.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부터 이곳에 이르기까지 늘 여호와를 거역하였으되”
שמע 샤마 →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따름
מרה 마라 → 여호와의 말씀에 저항하고 거역함
3) 문장 연습
אֲנִי שׁוֹמֵעַ אֶת דְּבַר יְהוָה
아니 쇼메아 에트 드바르 아도나이
나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습니다.
여기서는 실제 문장에서 현재형이므로 שׁוֹמֵעַ 쇼메아가 됩니다.
תּוֹרָה — 가르침, 토라
חֵטְא — 죄
לֵב — 마음
בָּשָׂר — 육신
רוּחַ — 영
בֵּן — 아들
2. 영에 속했다는 것은 ‘몸과 상관없이 영혼만 구원받는다’는 뜻이 아니다
(롬 8:9) “만일 하나님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여기서 바울의 육신(σάρξ, 사르크스)과 영(πνεῦμα, 프뉴마)의 대조를 ‘몸과 영혼’의 대조로 이해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바울이 말하는 것은 대략 이런 구별입니다.
육신에 속한 삶
→ 나 자신과 죄의 욕망이 주도하는 삶
→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는 삶(롬 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영에 속한 삶
→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거하시는 삶
→ 그 영의 인도를 받아 실제 삶의 방향이 바뀌는 삶
따라서
“몸으로는 죄를 지어도 내 영은 예슈아를 믿으니까 괜찮다.”
라고 말한다면 오히려 로마서 8장의 논리와 반대입니다.
바울은 바로 뒤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롬 8:13)
성령은 몸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몸의 행실을 변화시키십니다.
3. 히브리적 인간 이해
히브리적 인간 이해에서 사람은 단순히 ‘구원받을 영혼이 몸이라는 껍데기 안에 들어 있는 존재’로만 이해되지 않습니다.
사람 전체가 여호와 앞에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사람은 몸·마음·영이 서로 아무 관계 없이 분리되어 움직이는 존재라기보다 전인격적으로 여호와 앞에서 살아가는 존재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내가 몸으로 행한 것은 ‘진짜 나’와 무관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생각하고, 선택하고, 말하고, 몸으로 행하는 모든 것이 ‘나 자신’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적 사고에서는 순종도 매우 구체적입니다.
“마음으로는 여호와를 사랑하지만 몸으로는 어떻게 살아도 괜찮다.”
라는 식의 분리는 성경적 인간 이해와 맞지 않습니다.
4. 헬라적 인간 이해
반면 헬라적 사고 특히 플라톤적 이원론은 몸을 영혼보다 열등하게 보는 경향이있고 영혼이 육체로 부터 벗어나는 것을 강조합니다.
영혼과 몸을 강하게 구별하고 영혼의 불멸, 육체로부터의 해방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몸은 죄를 지어도 영만 구원받으면 된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롬 8:13)라고 합니다.
그리고 구원의 완성도 몸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롬 8:11)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로마서 8장의 육신(σάρξ)을 단순히 ‘육체(body)’라고 이해하면 안 됩니다.
바울이 문제 삼는 것은 몸 자체가 아니라 죄의 지배 아래 하나님께 굴복하지 않는 인간의 삶의 방향입니다.
5. 그리스도의 영이 있다는 것은 예슈아의 길과 분리될 수 없다
(롬 8:9–10)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여기서 매우 중요한 흐름이 있습니다.
예슈아의 영을 받았다고 하면서
예슈아께서 걸으신 순종의 길과 정반대로 살아가는 것을 정상적인 ‘영의 삶’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예슈아의 삶은 아버지께 대한 순종으로 나타났습니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요 4:34)
따라서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은 단순히 어떤 신비한 영적 능력을 소유했다는 말이 아니라,
그분의 영이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이끌어 예슈아께서 걸으셨던 아버지께 대한 순종의 방향으로 우리를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6. 예슈아도 죽음에서 건져 주실 아버지께 간구하셨다
히브리서 5:7은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예슈아께서 기도하신 대상은 자신을 죽음에서 건지실 수 있는 분, 곧 아버지이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합니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히 5:8–9)
흐름이 중요합니다.
아들이심 → 고난 → 순종 → 온전하게 되심 →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심
예슈아께서 아들이셨기 때문에 순종이 필요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들로서 아버지께 끝까지 순종하셨습니다.
7. 아버지께서 순종하신 예슈아를 죽음에서 일으키셨다
바울도 이것을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롬 8:11)
여기서 주체가 중요합니다.
예슈아께서 스스로 죽음을 이기셨다는 표현보다, 여호와께서 예슈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셨다고 사도들이 반복해서 선포합니다(행 2:24, 3:15, 롬 10:9).
즉 예슈아께서 아버지께 순종하셨습니다
→ 죽음까지 순종하셨습니다
→ 아버지께서 그분을 죽음에서 일으키셨습니다
→ 그 예슈아를 살리신 하나님의 영이 이제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8.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은 어떤 영인가?
로마서 8:9은 하나님의 영과 그리스도의 영을 연결하여 말합니다.
그리고 그 영을 받은 사람에게 바울은 곧바로 말합니다.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롬 8:13)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영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은 순종과 전혀 상관없이 구원받는다는 선언으로 읽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그 영은 우리를 예슈아께서 걸으셨던 아들의 길, 곧 아버지께 대한 순종으로 인도합니다.
그래서 14절이 이어집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예슈아께서 아들로서 순종하셨듯이, 하나님의 영을 받은 우리 역시 아들로서 아버지의 뜻을 따라 걷게 되는 것입니다.
9.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구원이 되신다.
히브리서 5:9은 여기서 매우 결정적입니다
“그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히브리서는 단순히 “예슈아를 인정하는 모든 자”라고 하지 않고 “그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순종해서 구원을 받아낸다”라고 이해할 필요도 없고,
반대로 “예슈아께서 순종하셨으므로 우리는 순종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이해해서도 안 됩니다.
오히려 이렇게 정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슈아께서 먼저 아들의 순종으로 죽음의 길을 통과하여 승리하셨고, 여호와께서 그분을 죽음에서 일으키셨습니다.
이제 그분을 살리신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며, 그 영은 우리도 아버지께 순종하는 아들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그 생명의 길 끝에 우리 몸의 부활이 있습니다.
10. 성령의 내주는 결국 ‘죽을 몸의 부활’까지 향한다
(롬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바울이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한 것은 구원이 영혼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지금 성령께서 우리의 몸을 순종으로 이끄시고, 마지막에는 이 죽을 몸까지 썩지 않을 부활의 몸으로 변화시키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는 지금의 삶에서 시작하여 몸의 부활까지 이어집니다.
바울은 씨앗으로 설명합니다.
씨를 땅에 심으면 처음 모습 그대로 다시 튀어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씨는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으로부터 새로운 형태의 생명이 나타납니다.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고전 15:42, 44)
11. 그러므로 우리는 빚진 자이다.
(롬 8:12–13)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여기서 바울은 분명히 두 가지를 말합니다.
① 우리는 빚진 자다.
② 그러나 육신에게 빚진 자는 아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질문하게 됩니다.
“그러면 누구에게 빚졌는가?”
본문은 그 목적어를 직접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앞뒤 문맥을 따라가면 그 빚의 성격은 상당히 분명해집니다.
1) 우리는 우리 스스로 생명의 길을 열지 못했다
로마서 8장의 출발은 인간이 스스로 죄와 사망의 지배를 해결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죄로 말미암아 육신에 죄를 정하사” (롬 8:3)
여호와께서 아들을 보내셨고, 예슈아께서 그 사명을 감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명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2) 예슈아께서 죄가 없으면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다
이 부분에서 말씀하신 ‘빚’이라는 표현이 의미를 갖습니다.
예슈아께서는 자신의 죄 때문에 죽으신 분이 아닙니다.
베드로전서에서는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벧전 2:24)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참여하게 된 생명의 길에는 예슈아의 희생과 중보가 선행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른 곳에서 아주 강하게 표현합니다.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 6:19–20)
값이 지불되었다 → 그러므로 내 몸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다.
‘빚졌다’는 것은 다시 죄에게 몸을 내어 줄 수 없다는 책임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빚졌다는 것을 단순히 “아들을 내어주신 아버지와 예슈아께 감사해야 한다.”는 단순한 감정적인 감사가 아니라 삶의 소유권이 바뀌었다는 언약적 책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3) 어린양이 먼저 승리하셨고 우리는 그 승리에 참여한다
요한은 두루마리를 펴거나 인을 뗄 자가 없어서 크게 웁니다(계 5:3–4).
그때 장로가 말합니다.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계 5:5)
그리고 요한이 보았을 때 그곳에는 죽임당한 어린양이 서 있었습니다.
즉, 어린양이 먼저 승리하셨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죽음을 정복하여 생명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예슈아께서 먼저 죽음에 이르기까지 충성하셨고 여호와께서 그분을 일으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을 따라 그 생명의 유업에 참여합니다.
4)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면 결국 내가 잘해서 구원받는다는 것인가?”
라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바울의 대답은 그렇지 않습니다.
먼저 여호와께서 자신의 영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 영이 우리 안에서 역사합니다.
에스겔 36장의 새 언약적 약속과 연결됩니다.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순서가 중요합니다.
여호와의 영을 주시고 말씀을 따라 걷게 하십니다.
→ 순종은 영적인 삶의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순종은 구원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그 사람 안에 거하신다는 사실이 삶으로 나타나는 방향입니다.
12. 종의 두려움에서 아들의 사랑으로
(롬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여기에는 중요한 변화가 있습니다.
순종 자체가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순종의 관계가 달라진 것입니다.
종처럼 형벌이 무서워 억지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사랑하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명기와도 충돌하지 않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 6:5)
토라에서도 이미 순종의 중심은 "사랑"입니다.
따라서 구약 = 두려움과 율법
신약 = 사랑과 성령
이러한 구분은 성경의 전체 흐름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입니다.
성령은 사랑을 가지고 "아버지의 뜻을 행하게 하시는 영"입니다.
육신의 사람은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도 되는가?”를 묻습니다.
영의 사람은 “아버지께서 무엇을 기뻐하시는가?”를 묻습니다.
13. 비유 이야기
"왕자의 길을 걷는 사람"
어느 나라에 왕이 있었습니다.
왕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왕자는 아버지를 사랑했고, 아버지가 맡기신 일을 끝까지 순종했습니다.
어느 날 나라에 큰 재앙이 닥쳤습니다.
백성들이 잘못된 길을 선택하여 죽음의 땅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그곳에서 돌아오는 길은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왕자는 아버지께 말했습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왕자는 백성들이 갇힌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고난을 받았고 마침내 죽음까지 마주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 대한 순종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왕은 끝까지 순종한 아들을 죽음에서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왕자가 걸어온 길은
백성들이 왕의 나라로 돌아갈 수 있는 "생명의 길"이 되었습니다.
왕자는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나를 따라오라.”
많은 사람이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왕자님이 이미 길을 열어 놓으셨으니 저는 여기서 제 마음대로 살아도 되겠군요. 왕자님을 믿기만 하면 언젠가는 왕의 나라에 갈 수 있겠지요.”
왕자가 물었습니다.
“그런데 너는 지금 어느 길을 걷고 있느냐?”
사람이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는 여전히 죽음의 땅으로 향하는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왕자가 말했습니다.
“내가 너를 위해 길을 열었다는 것을 믿는다면 이제 그 길에서 돌아서서 내가 걸어간 길을 따라오너라.”
그러자 다른 사람이 물었습니다.
“왕자님, 저는 그 길을 끝까지 걸을 자신이 없습니다.”
왕자는 그에게 등불 하나를 주며 말했습니다.
“이 불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셨던 불이다.
이제 이 불이 네 안에서 꺼지지 않도록 하여라.
그러면 어둠 속에서도 내가 걸었던 길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등불을 들고 왕자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넘어질 때도 있었지만 다시 일어났습니다.
길이 힘들 때도 있었지만 왕자가 걸어간 길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그는 깨달았습니다.
왕자의 은혜는 자신을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게 해 주는 은혜가 아니라,
왕자를 따라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준 은혜였다는 것을.
그리고 손에 들린 등불은 단지
“너는 왕의 사람이다.”
라고 알려 주는 표식만이 아니었습니다.
왕자가 걸었던 길을 자신도 걸을 수 있도록 비추어 주는 빛이었습니다.
객관식 20문제
1. 로마서 8장에서 ‘육신에 속한 삶’을 가장 잘 설명한 것은 무엇입니까?
① 몸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든 삶
② 음식을 먹고 일하는 일상생활
③ 죄의 욕망을 따라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는 삶
④ 육체적으로 연약한 삶
2. 로마서 8:9에서 사람이 ‘영에 있다’고 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① 성경 지식이 많기 때문에
② 하나님의 영이 그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③ 몸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④ 특별한 영적 체험을 했기 때문에
3. 다음 중 로마서 8장의 가르침과 가장 거리가 먼 것은 무엇입니까?
① 하나님의 영은 우리의 실제 삶을 변화시키신다.
② 영의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간다.
③ 몸으로 죄를 지어도 영혼만 구원받으면 괜찮다.
④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여야 한다.
4. 바울이 말하는 ‘육신(σάρξ, 사르크스)’을 단순히 육체(body)와 동일시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① 몸 자체가 악하다고 가르치기 때문에
② 육신은 죄의 지배 아래 하나님께 굴복하지 않는 삶의 방향을 포함하기 때문에
③ 육신은 인간의 감정만을 뜻하기 때문에
④ 바울은 몸의 부활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5. 히브리적 인간 이해에 가장 가까운 것은 무엇입니까?
① 영혼만이 진정한 인간이다.
② 몸은 영혼을 가두고 있는 껍데기이다.
③ 사람 전체가 여호와 앞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④ 몸에서 벗어나는 것이 구원의 최종 목적이다.
6. 플라톤적 이원론의 경향을 가장 잘 설명한 것은 무엇입니까?
① 몸과 영혼을 강하게 구별하고 영혼을 더 높은 것으로 보는 경향
② 몸과 영혼을 전혀 구별하지 않는 사고
③ 몸의 부활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고
④ 토라의 계명을 몸으로 실천하는 것을 강조하는 사고
7. 로마서 8:13은 성령과 우리의 몸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① 몸은 중요하지 않으므로 무시해야 한다.
②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여야 한다.
③ 몸을 버려야 영적인 사람이 된다.
④ 몸의 행동은 구원과 아무 관계가 없다.
8. 예슈아께서 자신의 삶의 양식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
② 많은 기적을 행하는 것
③ 자신을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고 그 일을 이루는 것
④ 세상의 고난을 피하는 것
9. 히브리서 5:7에 따르면 예슈아께서는 누구에게 간구하셨습니까?
① 자신을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분
② 제자들에게
③ 천사들에게
④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
10. 히브리서 5:8–9에서 예슈아의 길을 바르게 나타낸 것은 무엇입니까?
① 아들이심 → 순종이 필요 없음 → 영광
② 고난 → 불순종 → 죽음
③ 아들이심 → 고난 → 순종 → 온전하게 되심 → 구원의 근원이 되심
④ 기적 → 인기 → 왕이 되심 → 구원
11. 로마서 8:11에서 예슈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분은 누구입니까?
① 예슈아 자신만을 가리킨다.
② 여호와 하나님
③ 제자들
④ 천사들
12.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다는 것을 이번 메시지의 관점에서 가장 잘 설명한 것은 무엇입니까?
① 예슈아의 순종과 관계없이 구원이 보장되었다는 뜻이다.
② 몸을 사용하지 않고 영적으로만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③ 예슈아께서 걸으신 아버지께 대한 순종의 길로 인도받는다는 뜻이다.
④ 더 이상 삶에서 선택과 순종이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13. 히브리서 5:9은 예슈아께서 누구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고 말합니까?
① 예슈아에 관하여 알고 있는 모든 사람
② 순종하는 모든 사람
③ 이스라엘 사람에게만
④ 죄가 전혀 없는 사람에게만
14. 로마서 8:11의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는 말씀의 의미로 가장 적절한 것은 무엇입니까?
① 몸은 버리고 영혼만 영원히 산다는 뜻
② 현재의 몸이 늙지 않고 그대로 영원히 산다는 뜻
③ 죽을 몸을 일으켜 썩지 않는 부활의 몸으로 변화시키신다는 뜻
④ 죽음을 경험하지 않는다는 뜻
15.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바울이 부활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대표적인 비유는 무엇입니까?
① 포도나무
② 씨앗
③ 양과 목자
④ 등불
16. 부활의 몸을 설명하는 두 가지 중요한 개념은 무엇입니까?
① 단절과 소멸
② 연속성과 변화
③ 육체와 죄
④ 지식과 지혜
17. 로마서 8:12에서 바울은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① 자유인이므로 아무 의무도 없는 자
② 육신에게 빚진 자
③ 빚진 자이지만 육신에게 빚진 것은 아닌 자
④ 몸을 버려야 하는 자
18. 우리가 ‘빚진 자’라는 것을 삶의 태도로 가장 잘 표현한 것은 무엇입니까?
① 구원을 받기 위해 값을 스스로 지불해야 한다.
② 예슈아의 희생으로 열린 생명의 길에 참여했으므로 다시 죄에게 자신을 내어 주지 않고 순종으로 응답한다.
③ 죄를 지을 때마다 물질로 대가를 지불한다.
④ 예슈아께서 모두 행하셨으므로 우리의 삶은 중요하지 않다.
19. 로마서 8:14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리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① 하나님의 영에 관하여 많이 알고 있는 사람
②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
③ 종교적인 활동을 많이 하는 사람
④ 특별한 은사를 가진 사람
20. 로마서 8:15에서 ‘종의 두려움’과 ‘아들의 삶’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무엇입니까?
① 아들은 더 이상 순종하지 않는다.
② 종은 말씀을 알고 아들은 말씀을 모른다.
③ 아들은 형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아버지를 사랑하는 관계 안에서 순종한다.
④ 아들은 어떤 행동을 해도 책망받지 않는다.
주관식 · 묵상 및 하브루타 5문제
1. “몸으로는 죄를 지어도 내 영은 예슈아를 믿으므로 괜찮다”는 생각이 왜 로마서 8:9–13의 가르침과 맞지 않는지 설명해 보세요.
2. 예슈아께서 아들이시면서도 아버지께 끝까지 순종하셨다는 사실은 오늘날 ‘하나님의 아들’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줍니까?
3. 바울은 “우리가 빚진 자”라고 하면서도 “육신에게 빚진 것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예슈아의 희생과 부활을 생각하며 우리가 누구에게, 어떤 의미에서 빚진 자인지 자신의 말로 설명해 보세요.
4.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는다”는 것을 단순한 감정이나 영적 체험이 아니라 실제 생활의 순종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 보세요. 지금 내 삶에서 성령의 인도를 따라 바꾸어야 할 ‘몸의 행실’ 또는 삶의 방향은 무엇입니까?
5. 종은 두려움 때문에 순종하고 아들은 아버지를 사랑하기 때문에 순종합니다.
나는 지금 여호와께 두려움으로 순종하고 있는지, 사랑으로 순종하고 있는지 돌아보고, 신명기 6:5과 로마서 8:14–15을 연결하여 나누어 보세요.
객관식 정답
1③ / 2② / 3③ / 4② / 5③ / 6① / 7② / 8③ / 9① / 10③ /
11② / 12③ / 13② / 14③ / 15② / 16② / 17③ / 18② / 19② / 20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