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 총선을 통하여 급(級 )이 달라진 박근혜(朴槿惠)씨
4.11 역전승이 '내전적 상황' 막아...대한민국 편 헤게모니 회복세
박근혜, 급(級)이 달라졌다...대선도 이길 것!
선거 무기화한 북한 패배..역사의 갈림길에서 역사를 만들어낸 그녀!
4.11 총선을 통하여 급(級)이 달라진 박근혜(朴槿惠)씨
역사적 선거가 운명적 인간을 만든다.
趙甲濟
4.11 총선이 새누리당의 역전승(逆轉勝)으로 끝난 지 보름, 세상이 많이 변하고 있다. 선거가 역사의 흐름을 바꾸거나 굳히는 수가 있는데 지난 총선이 그러하였다. 이 총선의 역사적 의미는 민주화를 대세(大勢)로 만든 1985년의 2.12 총선과 비슷하다.
1. 4.11 총선은 종북좌파 연대가 국회의 과반수 의석을 차지, 북한정권과 손 잡고 한국을 결정적으로 좌경화시키려 한 기도를 저지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전적(內戰的) 사태를 일단 막았다.
2. 국민들이 선거기간에 좌파의 종북성(從北性)과 저질성을 간파하게 되었다. 선거는 거대한 국민교육장이기도 한데, 4.11 총선은 종북의 정체(正體)를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새누리당의 노력도 있었지만(김용민의 욕설 폭로 등), 근본적으론 종북좌파 세력의 오만과 자충수가 불러온 자기폭로이고 自滅(자멸)이었다.
3. 종북좌파의 패배와 맞물린 북한 김정은 정권의 잇딴 실책은 역사의 흐름이 한반도 좌익들의 희망대로 가지 않는다는 심증(心證)을 굳히게 하였다. 이들이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수구반동(守舊反動) 세력임이 분명해졌다. 선거에서 패배한 종북좌파 세력은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역류(逆流)하는 게 얼마나 힘에 부치는 일인지를 깨닫고 자신을 잃어가는 모습이다. 역사는 진실-정의(正義)-자유의 가치를 확장시키는 쪽으로 흐르게 되어 있는데, 종북좌파 세력은 거짓-불의(不義)-억압의 편에 서 있다. 줄을 잘못 선 것을, 선동과 조직의 힘으로 만회해보려 하지만 인간의 노력으로 대세(大勢)를 돌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4. 이번 선거는 박근혜(朴槿惠)씨를 '역사적 인물'로 만들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본질적 변혁을 공약한 종북좌파 세력이 정권(政權)의 일각을 차지, 일종의 계급혁명을 꾀하는 사태를 막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킨 1등 공로자가 된 것이다. 1985년 2.12 총선을 지휘하였던 김영삼(金泳三)씨 이후 한 개인이 이렇게 큰 선거에서 이렇게 결정적 역할을 한 예는 없었다. 박근혜 위원장은 2004년 총선에선 한나라당을 지휘, 개헌저지선을 확보하였고, 2006년 지자체(地自體) 선거에선 집권여당에 압승, 1년 뒤의 대선(大選) 승리를 예약하였다. 지난 두 차례 선거를 합친 것보다 이번 총선의 승리가 더 값지다. 체제의 생존이 걸린 선거였기 때문이다.
5. 안철수씨는 4.11 총선에서 '말장난'하는 구경꾼 이상의 역할을 하지 않았다. 역사적 승부를 회피한 그에게 대권(大權)의 기회가 주어지진 않을 것이다. 이번 선거의 역사적 의미는 박근혜 씨를 라이벌 정치인들과 級(급)이 다른 인물로 만든다. 문재인, 박원순, 한명숙, 그리고 새누리당의 중진들이 선거 이후 작아졌다. 朴 위원장이 보여준 '권력의지'와 '혼신의 승부'는 '운명적인 인간'의 한 모습이었다.
6. 4.11 총선의 실질적 승자(勝者)는 국민이라면서 박근혜 씨의 역할을 애써 축소시키려 한다든지, 줄어든 의석을 지적하면서 새누리당이 이긴 선거가 아니라고 평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 측면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순 없으나 아무리 시나리오와 연출자와 관객이 좋아도 주연(主演) 배우가 시원찮으면 연극을 망친다. 박근혜 씨는 어려울 때 역사적 무대의 주인공 역을 자임(自任), 역전승을 거두었다. 4.11 총선에서 종북좌익 세력이 이겼으면 지금 어떤 세상이 되어 있을지를 상상해보면 '종북국회'의 출현을 막은 게 간단치 않은 일이었음을 알 것이다. 총선에서 지고 대선에서 이기는 게 낫다는 주장도 있었으나 두 선거를 모두 이길 수 있는 기회를 만든 이가 박(朴) 위원장이었다.
7. 지난 60여년간 김일성-김정일은 남한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격변을 구경하면서 매우 즐거웠을 것이다. 건국(建國) 대통령은 쫓겨나고, 근대화의 기수는 부하의 총을 맞아 죽고, 전직 대통령은 감옥에 가거나 자살하고, 학생혁명과 민중봉기가 일어나고... 김정은도 4.11 총선에서 종북좌익 세력이 국회의 과반수를 차지하기를 기대하면서 김일성 잔치상에 '수령님의 전사(戰士)들이 이겼다'는 보고를 하나의 진상물로 올리려고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박근혜 씨는 그 잔치상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게 대세(大勢)를 가르는 분수령이 되면 앞으로 우리는 평양에서 일어나고야 말 급변 사태를 느긋하게 구경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젠 우리가 즐길 차례이다.
8. 이번 총선의 본질은 남북한 대리전이었다.
대한민국 편을 대리한 박근혜 씨가 이겼다는 의미는 진실-정의(正義)-자유의 가치가 통용되는 체제를 지켜냈다는 뜻이다.
1943년 1월 독일 제6군(軍)이 스탈린그라드에서 소련군에 항복한 이후 1945년 5월 나치 독일이 망할 때까지 독일군은 한번도 주도권을 회복하지 못하고 줄곧 수세(守勢)에 몰렸다.
그래서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2차 세계대전을 결정지은 전환점으로 본다. 큰 전쟁이나 역사적 대세(大勢)는 한번 기울면 회복하기 어렵다.
4.11 총선이 그런 결전(決戰)이었는지의 여부는 12월 대선(大選)을 통하여 보다 명확해질 것이다.
[조갑제닷컴=뉴데일리 특약]
새로운 정권은 아래와같은 李明博 政權의 전철을 밟지 말고
국정을 잘 수행하기 바라며
李明博 政權이 재기하는 방법.
李明博(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大選과 總選에서 크게 승리하고도 위기에 빠져들어간 100일간의 과정을 정리하면 이렇다.
1. 대통령직 인수위가 노무현 정부에 대한 在庫(재고)조사를 하지 않고 점령군처럼 행동하면서 엉터리 정책들을 쏟아내었다.
李明博(이명박) 당선자의 전략과 방향이 처음부터 실종되었다. 노무현 세력의 반역과 부패를 수사 하여 이들을 일소하고,
선동방송을 정상화시킬 수 있는 타이밍을 놓쳤다.
2. 취임사 등에서 李明博(이명박) 대통령은 ‘이념을 떠난 실용’을 강조함으로써 친북좌익들과 대결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암시하고, 행동파 보수세력을 멀리하겠다는 생각을 드러냈다.
3. 교수중심의 아마추어들을 비서진과 내각에 많이 등용하고, 좌익과 싸울 줄 모르는 富者(부자)들을 重用(중용)하고, 노무현 정권 요직자들을 安保(안보)부서 사령탑에 배치하였다. 좌우로부터 다 비난 받는 인사를 한 셈이다.
4. 총선 때 하향식 밀실 공천으로 親朴槿惠 세력의 반발과 이탈을 불렀다.
5. 총선에서 보수세력이 大勝(대승)했으나 李明博(이명박) 대통령은 ‘親李세력의 패배’로 인식, 總選(총선)의 역사적 의미를 실종시키고, 親北(친북)청산을 요구하는 民心(민심)을 외면했다.
6. 親朴(친박) 국회의원 당선자 26명의 복당을 거부하고 李會昌(이회창)의 자유선진당과 적대적인 관계를 설정함으로써 보수대연합이 아닌 보수분열 구도를 형성했다.
친북세력과 대결할 생각이 없으니 보수대 연합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이념이 없으니 전략도 생기지 않은 것이다.
7. 李 대통령이 행동파 보수층도 외면하고, 親朴(친박)세력도 배척한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보수층 이탈하기 시작하여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졌다.
8. 4월말 MBC의 광우병 선동과 인터넷 괴담, 그리고 친북좌익들의 조직적인 개입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좌익에 機先(기선)을 빼앗겼다. 좌익에 대한 선제공격을 해야 할 타이밍을 놓치니 기습을 당한 것이다.
9. 문제의 발단인 광우병 관련 선동방송에 대하여, 정부가 신속하고도 엄정한 법적 제재조치와 홍보전을 포기함으로써 거짓말이 반박되지 않고 유포되기 시작했다.
10. 대통령의 일방적 사과와 정부의 거듭된 퇴각이 이어지고 선동방송에 대한 명쾌한 반박이 없으니 거짓말이 사실로 둔갑하여 떠돌기 시작했다.
11. 李明博(이명박) 정부는 5월들어 집시법 위반인 야간집회를 ‘촛불문화제’라고 허용함으로써 스스로 법질서 수호 의지를 포기했다. 이것이 선동세력의 기를 살려주었다.
12. 선동세력이 거리를 점거하고, 청와대로 몰려들고, 보수언론을 협박하기 시작했다. 검찰 경찰이 법집행을 포기하니 보수언론도 겁을 먹고 선동세력에 영합하기 시작했다.
불법폭력 시위를 비판하지 않고 경찰의 물대포 사용을 비판하는 식의 기사가 쏟아지니 경찰도 사기를 잃고 사보타지 단계에 들어갔다.
13. 李會昌의 자유선진당까지 촛불 세력에 가세하고, 朴槿惠 의원의 팬 클럽인 박사모는 촛불시위에 가담했다.
한나라당은 경찰의 물렁한 진압까지도 제동을 걸고 선동세력에 굴종하는 모습을 보였다. 보수정치 地形이 폐허화되었다.
14. 李明博 대통령의 비서진과 내각도 선동방송과 촛불시위대에 대하여 겁을 집어먹은 것처럼 행동했다.
청와대 대변인, 관계 장관, 정부 대변인들이 방송과 좌익들의 터무니 없는 거짓말에 대하여 반격을 포기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15. 정부가 거짓말에 대한 반격을 포기하고 사과, 후퇴를 거듭하니 선동세력이 오히려 正義의 사도나 된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촛불시위는 맥아더 동상 파괴 기도-
평택 미군 기지 이전 반대 폭동세력이 주도했으나, 李明博 대통령에게 불만을 품은 여러 세력이 가담했다.
특히 인터넷 怪談에 속아넘어간 어린 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진실과 正義(법치)와 자유는 한 덩어리인데 진실을 지키지 못하니 正義와 자유가 날아간 것이다.
16. 李明博 정부는 불법폭력 시위에 대한 진압을 포기했다. 공권력 행사의 도덕적 기반인 진실 공방에서 밀린 때문에 엄정진압에 나서지 못한 것이다. 대한민국 심장부인 광화문에 보름간 ‘선동의 해방구’가 조성되었다.
6.25 전쟁 이후 처음이었다. 공권력이 무력화되니 李明博 대통령에 대한 보수층의 불신이 확산되어 지지율은 10%대로 急落(급락)했다.
17. 李 대통령은 한번도 국민들을 직접 설득하려고 한 적이 없었다. 그의 입에선 한번도 “문제의 발단은 MBC의 선동방송이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18. 결국 李明博(이명박) 대통령은 진실을 포기함으로써 정의(法治)와 자유(안전)까지 날려 보내고 있다.
국민의 안전을 지키주지 못하는 대통령, 광화문을 난동세력에게 넘겨주고, 청와대에 숨어 있는 대통령이란 인식이 확산되었다. 그가 再起(재기)불능 상태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퍼졌다.
19. 친북좌익과 정면으로 대결해본 적이 없는 李明博 대통령은 광우병 사태 이후 비로소 이들과 싸우지 않고선 國政운영이 불가능하겠구나 하는 인식을 하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공안기관도 참으로 오랜만에 좌익세력을 견제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대통령이 법질서 확립을 기치로 내걸고 反헌법적 친북좌익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정부를 끌고 가면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이다.
20. 첨부: 이명박 정권이 재기하는 방법
(1). 친북 좌파세력을 완전히 척결해야 한다. 친북좌파를 대한민국 국민으로 착각하지 말라.
(2).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은 엄격한 법질서 확립으로 준법정신에 입각한 불법을 공권력 행사로 일관 해야 한다.
(3).유치하지만 대통령 자신이 군에 갔다 오지 않아 적군과 아군도 구별 못하는 상황을 빨리 배워서 적과 동지를 확실히 분간해야 한다.
* 자유민주주의 수호국민의 허탈감을 빠른 시일안에 일소시켜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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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min@dreamwiz.com/bjmin15@paran.com/bjmin@hanmail.net
(031)243-2100/010-4313-5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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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번 총선을 통해 보수층 집결을 가져왔지요^&^
보수이 대안은 대표님이 유일합니다.
안보관과 국가관이 투철한 사람만이 지난 좌파정권의 폐해를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