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아내가 붐비는 쇼핑을 하고 있었다. 연말이라 준비할 것도 많고 선물할 것도 많아 미리 대비해 둘러보고 있었다. 쇼핑에 정신없던 아내는 갑자기 남편이 사라진 것을 알고는 전화를 했다.
“어디야? 우리 할 거 많은 거 알잖아?” 남편의 대답은 이랬다.
“10년 전 우리가 갔었던 보석상 기억나? 당신이 그 다이아몬드 목걸이에 반했었잖아. 그때는 마련할 형편이 안 되지만, 내가 언젠가 해 주겠다고 했었잖아.”
이 남편의 고백에 아내의 뺨에는 눈물이 흘렀다. 아내는 목이 멘 채 답했다.
“응, 거기 당연히 기억나지.” 아내는 그 목걸이를 오늘 사주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나, 거기 옆 자전거 샵에 있어.”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과 자기가 아는 것만 믿는 심리를 인지심리학에서 ‘확증편향(確證偏向/Confirmation bias)’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흔히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와 같은 현상을 이른 말이다. 사소하지만 경계해야할 부분이 많은 말이다. 내가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는 다르다. 나와 생각이 다를 뿐만 아니가 출발이 달랐다. 부정하지 말기를.
아내는 남편이 이야기하는 내용에서 남편이 어디 있느냐에 대한 것보다 남편의 말에 자기가 듣고 싶은 것을 중점으로 듣고 있다. 확증편향은 원하는 정보를 선택적으로 알아듣는다. 같은 사실을 두고 비교해서 설명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주장은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자기 생각과 일치되는 의견만 받아들이는 심리상태를 말한다.
확증편향은 현대인들의 심리적인 보편적 특성이다. 많은 사람이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기 때문에 사실이나 진실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듣지 않으려고 한다. 정보가 넘쳐나다 보니 나름대로의 방어기제로 작동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면 제대로의 목소리를 낼 수 없으니 진실의 유무와 관계없이 사고의 고착화로 함몰되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존재감을 피력할 수 있고, 그러므로 정치나 경제에 있어서 힘의 우위를 점검하기 위한 선제적 전략으로 작동하기고 한다.
성경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유대인 지도자 니고데모가 거듭남에 대하여 대화하는 장면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는데 너희는 우리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요한복음 3장 11절)
사실 니고데모는 자기가 듣고 싶은 것이 있는데 자신의 욕심과 다른 생각 때문에 진리를 듣지 못한다는 지적이 이 말씀이다. 우리는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하고, 또한 듣고 싶은 것만 선택해 듣는 오류에 빠져있다. 그래서 소통이 불가능하다. 편향은 무서운 말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외치는 발언에는 메아리가 없다.
상대가 없기 때문이다.
확증편향은 자신을 더욱 속박하는 굴레와 다름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