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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해도 안 되는 날이 있다.
산악회 출범 이후 역대급 산행이다. 그런데 좋은 쪽으로가 아니라 나쁜 쪽이다. 3㎞쯤 걸었다. 꿈푸리는 만보가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4시간여가 걸렸다. 본 것은 단풍이 아니라 등산복 행렬 뿐이다. 그래서 함께 한 이들은 오래 남을 산행이 될 것이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넨다. 하지만 산악회 대장으로선 수치스럽다. 내가 왜 그렇게 실패할 것이 뻔한 산행지 결정을 했던 것일까? 부끄럽다.
8호선 복정역 1번 출구. 사당역을 떠나면서 지체했다고 집결시간인 7시30분을 13분 넘겨서야 월 산악회 버스가 도착했다. 그전에 해프닝은 있었다. 25분쯤 같은 신성고속 버스가 도착했는데 '망경대' 포스터가 붙어있어 별 생각 없이 올랐다. 맨 뒷좌석까지 갔는데 20여분 전 통화한 노들강을 비롯해 어느 회원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승객 명단을 뒤졌는데 내 이름이 없다. "뫼산산악회 맞으세요?" 둔기에 맞은 듯 "아 네, 제가 잘못 탔습니다."
제대로 버스에 오르니 노들강 등이 일렬로 죽 앉아 있다. 곧바로 출발. 막힌다. 막혀도 너무 막힌다. 경춘고속도로 들어섰는데 가평휴게소 지날 때까지 시속 30㎞ 이상 내는 것 같지 않다. 가평휴게소는 차들로 법석이라 진입할 수도 없고 그 바람에 옆 차선까지 진행이 여의치 않다. 그곳을 지나 좀 달리는가 싶다가도 예의 고갯길 터널이 나오면 속도가 떨어지고 차 간격이 좁혀진다.
화양강 휴게소 들러 커피 한잔 하는데 우리가 늘 앉는 바깥 발코니에서 어떤 오토바이 동호인이 담배를 피워 문다. 내 또래인데 저렇게 무법할까 싶다.
신남 들어가는 길도, 인제와 원통 교차로마다 정체 행렬이 이어지고 미시령과 갈라지는 삼거리를 앞두고도 정체가 어마어마하다. 아니나다를까 미시령 쪽으로 가는 차량은 뜸하고 거의가 한계령을 향한다.
장수대로 오른다는 둘을 내려준 버스가 한계령에 가까워오자 제 속도를 내지 못한다. 엉금엉금 기다 한번 시동이 걸리면 10m쯤 달리다 이내 멈춘다.
한계령 휴게소 근처는 경찰이 많이 나와 그런지 상대적으로 여유있게 통과했다. 급커브 지점에서 관광버스 기사들이 아찔한 운전 실력을 뽐냈다. 그리고 또다시 가다서다를 반복한다. 오전 7시 43분쯤 떠났는데 낮 12시가 조금 넘어 버스에서 내렸다. 거의 서 있으니 우리가 먼저 내렸다. 월산악회 최명규 대장은 "만경대만 보고 오는 것을 권장합니다"라고 말한다. 산악대장이 거의 영어 문장을 말하니 영 어색하다.
500m쯤 걸어가는데 나름 답답한 버스를 벗어났다고 말간 공기도 마시고 햇살도 좋고, 설악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사실에 행복해진다. 그러나 10분도 안돼 절망이다. 만경대 들머리인 용소탐방지원센터 앞에 사람이 한가득이다. 엄청난 줄이 늘어서 있다. 남자 둘이 막 언성을 높여 다투고 있다. 옮기기 거북한 육두문자가 난무한다. 아마 새치기를 했느니 아니니 다투는 모양이다.
화장실 앞에도 제법 긴 줄이다. 우린 모두 화장실 줄 좌우에 늘어선 줄이 결국은 하나의 줄인 것으로 알고, 꼬맹이가 급하다며 화장실 줄에 섰을 때 함께 섰다. 20여분 지났을까 만경대 입구 줄에 서있던 어느 아주머니가 소리친다. "남자분들은 쩌그 가운데 남자 화장실을 제발 쓰세요." 어떻게 저런 얘기를 저렇게 멀리서 크게 얘기할까 싶다가 오죽 답답해 보였으면 저럴까 끄덕여졌다. 지리산이 그 소리에 제일 먼저 그곳을 이용하기 위해 가림막 아래를 통과하려다 배낭에 꽂아놓은 스틱 둘이 걸려 엉거주춤 주저앉는다. 푹 웃음이 나온다. 다행히 주위의 누군가 스틱을 잡아줬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나 빼고 남정네 셋이 모두 용변을 보고 비로소 줄을 섰는데 더욱 놀랄 만한 얘기가 들려왔다. 우리가 선 줄은 주전골 내려가는 줄이란 것이었다. 엥 이게 뭐지 싶었다. 그리고 줄이 빠른 속도로 줄어든다. 경상도 아주머니아저씨 10여명이 만경대 구경은 틀렸다며 속초로 가 회나 먹자고 빠진 덕이었다. 부러웠다. 우린 차가 없어 그럴 수도 없다.
결국 주전골로 내려가는 계단을 밟고 있는데 더 절망적인 얘기가 들려온다. 주전골 내려가는 데 40분쯤 걸리고 이 지점까지 다시 올라오는 데 1시간30분쯤 걸릴 것이란 얘기다. 물론 게중에는 이런 황당한 방식으로 3시간을 허비해 여기 이 자리에 서있다는 아주머니도 있었다.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꿈푸리는 "어이 대장, 우리 새치기 하는 게 어때?" 그런다.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켜고 보니 차마 그럴 수도 없네 허허" 그렇게 우유부단하게 500m쯤 내려갔다. 그런데 역시 갈수록 줄을 따라 올라오는 이들의 경계가 무뎌지는 게 눈에 보인다. 여자 화장실에 빠졌는지 아직도 내려오지 않은 꼬맹이를 기다리기로 했다. 노들강이 전화를 걸었는데 꺼놓았다고 했다. 당연하지. 내가 꼬맹이 배낭을 챙겨 들고 내려왔거든. 난 꼬맹이가 볼 일 볼 때 걸리적거리면 안 된다고 가방을 뺏다시피 해 들고 있었던 것.
그러다 용소폭포 바로 위 바위를 끼고 도는 곳에서 줄이 10m가량 끊긴 게 눈에 들어온다. 이 때다 싶었다. 재빨리 행장을 챙겨 끼어들었다. 그렇게 올라오다 꼬맹이 만나 자연스럽게 합쳐졌다. 그리고 다른 이에게 새치기 하면 안된다고 말하곤 했다. 또, 푹 속으로 웃었다. 그리고 꼬맹이가 그랬다. "아까 막 욕하며 싸우던 두 사람 이런 상황인지 알면서 싸웠을까요?" "그러게. 별 이득도 없는 일에 목숨 걸고 그렇게 싸웠으니. 그걸 알고 얼마나 민망했을까?"
다시 원래의 용소탐방센터 앞 공간에 올라섰다. 다섯이 한 줄로 서란다. 어차피 만경대 들어가는 길은 둘이서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길도 아닌데 휴일에도 나와서 장내 정리에 열심인 공무원과 공단 직원들은 '다섯'을 외쳐댄다. 시계를 보니 얼추 화장실 나와 한 시간쯤 걸린 것 같다. 그나마 새치기를 해 시간을 많이 줄인 덕이었다.
그렇게 줄을 서 산을 오르니 땀이 나지 않아 좋긴 한데 영 어색하다. 700m 가는 데 30분, 450m 가는 데 45분쯤 걸렸던 것 같다. 그냥 서서 한숨 쉬는 게 대부분이다.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다. 이렇게 대한민국이 평등하다는 걸 온몸으로 증명해야 하다니 기가 막힌다. 꿈푸리는 이곳이 왜 개방됐는지 잘 모르는 것 같아 내가 설명했다. "흘림골 코스가 낙석 사고가 나 통제해야 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장사하느냐고 오색 상인들이 들고 일어날 것 같아 그 대안으로 여기를 개방했다." 무슨 일인가 생겨 꿈푸리의 반응을 즉각 확인하지 못했다.
만경대 바로 앞에서는 보고 나오는 줄과 보러 들어가는 줄이 딱 어깨를 마주치며 서 있어야 하는 구간이 있었다. '뭐 이런 걸 보러 이 고생을 했나 싶다'는 둥의 얘기가 많았다. 하지만 보러 들어가는 줄에서 이탈하는 이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여기서 그만두나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니 순서가 오긴 왔다. 단풍이 없다는 건 짐작됐던 일이고, 만경대는 만물상을 바라보는 맛인데 좋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서너 시간을 바칠 만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 존경하는 최명규 대장은 한계령 접어들 때 방송을 통해 "설악산에 세 곳의 만경대가 있는데 오세암과 화채봉, 그리고 이곳 오색 가운데 화채봉 쪽이 최고"라고 털어놓았다. 차마 하지 못한 말 중에는 "여기 만경대는 그닥 볼 게 없다" 였을 것이다. 오세암 만경대야 우리 회원들도 달밤에 파전 붙여먹어 잘 아는 곳이다. 여기는 용소탐방센터에서 1.1㎞인데 이 난리 부르스를 떨고 있다. 비좁은 탐방로에 너무 많은 인파가 몰려드니 당연히 서있는 시간이 더 많아진다. 그렇게 열 받고 내려가 오색 상가에서 술이나 잔뜩 퍼마시고 서울 올라가라는 얘기였다. 말인즉.
여튼 30여명 정도가 수용 규모로 적정해 보이는 곳이 만경대였다. 건너편 점봉산 자락 아래 만물상을 조용히 바라보며 정담을 나눌 만한 공간에 400~500명은 족히 돼 보이는 인원이 들어찼고 그 와중에도 단체 사진을 찍는 이들, 위험한 벼랑 끝에서 셀카봉을 휘두르며 찍는 사람, 사진 찍겠다며 흙먼지 일으켜 내달리거나 미끄러지는 사람들.
마스크 쓰고 올라온 사람도 제법 있다. 말라비틀어진 흙바닥에 먼지가 피어오른다. 두 사람쯤이 "질서 유지"를 외친다. 공무원이거나 공적인 임무로 저런 일을 할텐데, 사람들이 너무 무질서하다고 내놓고 타박한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고 했던가, 높은 곳에서 아래를 쳐다보며 툭툭 내뱉는 단어 하나하나가 귀에 거슬린다. 그렇다고 저 인간하고 싸워봐야 말짱 손해다. 누군가 대들었다가 망신만 당했다. 그는 이미 3주 정도 이곳 근무를 해서 척 보면 다 안다고 했다. 사진 찍는다고 은근슬쩍 새치기를 하거나 줄을 무너뜨려 그 틈을 파고든다 등등.
그런데 이곳의 날머리가 너무 좁다. 그러니 6~7명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야 한다. 걷는 것도 아니고 그냥 서있다가 옆 사람 눈치 보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상당히 비탈져 뒷발축을 단단히 흙에 붙들어야 한다. 그렇게 눈치 보며 악전고투, 20여분 조금 안돼 탈출할 수 있었다. 그런데 등산객들 누구도 큰소리 내지 않고 참을성있게 자신의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다. 게중에 나쁜 인간도 있었지만 훨씬 많은 이들이 차례를 지켰다. 나중에 sbs 리포트 보니 우리 모두가 무식하고 욕심만 많아 자연을 망친 등산객으로 묘사돼 있었다. 장삿속으로 이곳을 개방한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성급하고도 위험한 준비가 근본 원인인데 애꿎은 등산객 전체가 도매금으로 매도당했다. 누리꾼이라고 하는 넘들이 쓸데없이 흥분하고 진실을 알아볼 엄두도 내지 않고 키보드에 분풀이나 해대는 넘들이란 걸 다시 절감했다.
하여튼 이곳을 탈출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급경사고 길도 위험해 자칫 안전사고가 날 법했다. sbs 리포트대로 그렇게 무법천지였다면 당연히 이날 만경대는 물론 하산길에도 두셋쯤 발이 부러지거나 다치거나 쓰레기 천지가 돼야 했다. 하지만 귀경 길에 슬쩍 본 용소탐방센터 앞은 깨끗이 치워져 있었고 몇몇 등산객이 출입금지 줄 넘어 점심을 먹은 장소도 깨끗이 잘 치워져 있었다. sbs 리포트대로라면 서울에서 5시간 이상 차 타고 와 3시간 줄 서서 올라온 뒤 1시간반쯤 걸려 하산해 저기 오색지구 상가에서 점심을 사 먹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 기자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그래야 하는 건가요?
물론 무질서한 장면도 있었다. 그렇게 많은 인파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인간도 있었고, 새치기하는 할머니와 아주머니, 외부 마이크로 음악을 들으며 산행하는 젊은이들. 그러나 그게 대다수는 아니었다. 그리고 또 웃기는 대목. 중앙일보 기자 먼저 불러 취재시켜 46년 만에 비경이 열리며 11월 5일이면 다시 폐쇄한다고, 이번 기회 아니면 다시는 만경대를 볼 수 없을지 모른다고 겁 줘놓고는 이제 무법천지가 됐다고 시민들을 손가락질하고 매도하는 공단 모습이 우습기까지 했다.
하산 길도 여자들에게 아찔하기만 하다. 앞지를 수도 없고, 몇몇 성급한 이들이 앞지르긴 했다. 개방해선 안될 곳을 개방했다는 생각이 더 강해진다. 700m를 하산하는 데 1시간 20분 가량 소요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중간에 출입금지 줄을 넘어가 늦은 점심을 먹었다. 3시 반쯤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노들강이 예의 낯익은 오징어 꽃쌈 샐러드를 준비해 왔고, 꿈푸리는 독바위역 근처 애용한다는 고깃집의 명물 김치찌개를 보온통 둘에 담아왔고, 엄청 큰 와인 한 병을 익숙한 솜씨로 따 컵에 그득 따라줬다. 난 백설기를 꺼냈다가 슬그머니 집어넣었다. 부끄러웠다. 버스 속에서 나눠준 김밥을 게눈 감추듯 먹었던 터이고, 그 때까지 줄 서서 기다리느라 탈진한 상태라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얘기했다. "이렇게 쉬는 시간이 많은 산행이 이상하게도 더 피곤하다"
4시 반쯤 최 대장에게 전화를 걸어 '혹시 집결 시간을 좀 늦추거나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30~40분이라도 말미를 주면 속초 지인에게 추천받은 토박이식당 들러 제대로 애프터를 할까 싶었던 것이다. 최 대장은 단호하게 "5시"라고 답했다. 또 줄 서서 화장실 다녀온 뒤 일행 다섯이 한 앵글에 담긴 사진을 촬영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떠올라 버스에 오르기 직전 버스 행렬을 뒤에 두고 급히 한 장 박았다. 버스에 오르니 5시 5분이었다. 너댓 사람이 늦어 25분쯤 출발했다.
미시령과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잠깐 멈췄다. 아침에 장수대로 올라간 둘이다. 남교리로 내려서 택시 타고 금방 도착했다고 했다. 옆자리 어르신은 "그쪽을 선택하길 정말 잘했수"라고 하고, 둘 중의 연장자는 자신들이 정말 올바른 결정을 했다는 걸 확인하고 뿌듯해 하며 키득거렸다. 난 속으로 "으이그. 잘났어 증말"이라고 쏘아주었다.
철정휴게소 멈춰 화장실 갔는데 또 줄선다. 꼬맹이와 "오늘 줄 서는 게 운명인가 보다"라고 쉰소리하며 키득거렸다. 지친 산행객들을 위로하는지 모금하는 가수가 통기타를 두드리며 흘러간 7080 노래들을 들려주는데 그 앞에 취기 오른 여섯 중년들이 손뼉을 마주치며 몸을 흔들고 있었다. 꿈푸리는 "사당역에 10시 전 도착하면 한시간 말미를 내 뒤풀이를 하자"고 했다.
9시반쯤 복정역에 도착했는데 나 혼자 내렸다. 사당까지 반 시간을 더 가야 하고 한시간 애프터한 뒤 다시 집까지 한시간 이상 갔던 길을 되짚어 나오는게 영 불합리해 보였다. 일행에게 "이번 주 번개로 대신하자"고 말하고 내렸는데 딱히 말리는 기운도 없다. 복정역 플랫폼에 내려섰더니 분당선 열차가 바로 도착한다. 서울숲역 내려 타박타박 걸어가니 참 딱하다. 늦은 점심을 먹은 뒤로 밥다운 밥도 못 먹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주 가는 콩나물밥집 들러 전주 모주에 뚝딱 한 그릇 해치웠다. 뱃속은 채웠지만 허기는 절대 가시지 않았다.
꿀팁.
22일 남설악 만경대 단풍은 절정이긴 할 것임. 하지만 여름 내내 고온이 이어져 나뭇잎에 수분이 없어 멋진 단풍은 아닐 것으로 생각됨. 올해 단풍 관광은 접는 게 좋을 것임.
그런데도 곧 폐쇄돼 10년 안에는 보기 어려울 것 같다는 겁박에 넘어가 만경대를 꼭 보고 싶다면 오전 5시 출발을 강추함. 8시쯤 도착해도 수백명 줄 서있기는 할 것 같음. 후닥닥 보고 빨리 오색약수로 내려와 늦은 아침 먹고 설악 다른 곳으로, 아니면 속초 고려식당 회냉면 먹고 낮 12시쯤 귀경할 것을 권함
사실 영동고속도로도 공사 때문에 정체가 빚어지고(17일 치악산 다녀온 집사람도 정체가 장난 아니었다고) 하니 단풍이든 은행나무숲이든 강원도 쪽은 쳐다보지 않고 수도권 한적한 산을 찾아볼 것을 강추
20일 번개
제주에 3개월 내려가 있던 안은섭 선배와 생업에 열심이라 얼굴 안 비춘 왕눈이 참석
저녁 7시 연길반점(회현역 4번 출구 나오면 바로 옆 건물 2층)
댓글로 참석 여부 알려주기 바람
11월 정기산행
18일 봉화 청량산 갔다가 청송 이동해 1박
19일 주산지 아침 구경하고 주왕산 오른 뒤 귀경
하자고 일행 다섯은 굳게 결의했음.
진선광의 스타렉스 이용 가능하면 이렇게 해보겠음
첫댓글 사실, 조짐이 안 좋긴 했습니다. 9월 산행 후 오솔길에게 10월 정산은 어디로 간대, 하고 물었더니 '망경대' 하더라고요. 그때부터 불안하긴 했는데, 2주 전 대장이 오색 근처가 주차장이더라, 해서 당연히 산행지를 바꿀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그냥 가자 해서 뭐, 그래봐야 줄서서 가는 정도겠지, 했는데...이른 새벽 사당역 화장실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니 이러다 전국에서 다 망경대로 오는 거 아니야, 싶더라고요. 아무튼 기억에 남는 산행이었습니다. 용소폭포탐방지원센터에서 화장실을 다녀오고나서 일행이 안 보일 때는 정말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전화도, 돈도 없는 맨몸이었는데,,, 정말 미아되는 줄 알았어요. ^^ 땡큐, 대장님
아, sbs,보도와 관련해서 한 마디! 그날 알형이 카톡으로 공유해준 기사 보고 너무 열 받아서, 머리털 나고 처음 댓글이라는 거, 달아봤습니다. 팩트체크도 안 하고 문제의 본질이 뭔지도 모르는 기자에게 화가 나서.... 정말 그만해서 거기 있던 등산객들은 참을성과 질서의식이 대단한 거 아닌가요?
알대장님 산행기 쓰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오랜만에 참석한 산행인데 두고두고 회자될, 기억에 많이 남을 산행을 했네요.
하고싶은 얘기는 알대장이 산행기에서 지적하신대로 이하동문...
같이 산행한 동문들 고생하셨고요, 뒷풀이로 사당동 '누나홀닭'에서 맛난 치맥사주신 꿈풀이형 고맙습니다.
전 줄서기를 싫어합니다. 차타고 가다가도 IC 출구가 막히면 하나 더 가서 다시 돌아옵니다. 그런 제가 평생동안 설 줄을 섰습니다. 무엇을 보러 갔을까요? 46년만에 개방된다는 상술에 낚였습니다. 그들은 처녀지를 밟고 싶다는 욕망을 철저히 이용했습니다. 단풍...우리의 정열의 열풍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평소 생각해 왔더랬습니다. 한 여름의 태양의 열기를 가득 담고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는 우리 인생처럼 말입니다. 단풍은 없었고 욕망은 충독되지 못했고 처녀지는 더럽혀져 있었습니다. 그래도 만물상은 멋졌습니다. 삶의 굴곡과 사연을 가득 담고 있었지요. 기억에 남을 산행이었습니다.
알대장님! 혹시 자책하고 있다면 전혀 마음쓸 것 없어요. 회원들 고생 많았습니다. 지금 못내 아쉬운 것은, 차라리 주전골로 내려가서 가볍게 산책하고 막걸리나 한잔 하는 것이 더 좋았겠다는 생각? 왜 그 때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을까...
산행기 보다는 산행정체기라는 제목이 어울릴듯한.. ㅠㅠ 대장님과 대원님들 정체를 알수 없는 수많은 등산객들 땜시 정체에 시달리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10월 설악은 못가야 하는 것인가요? ㅠ 하루 종일 줄서느라 고생들 하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