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오싱젠 5>
이정인 (2007). ‘이방인’과 ‘국가인’의 경계에 선 가오싱젠. 중국현대문학, (43), 185-213
발행처 : 한국중국현대문학학회
이정인 : 한국외국어대학교 강사
■ 내면으로의 응시
그는 “사람이 소위 조국에서 벗어나면 일종의 거리가 생기고 더욱더 냉정하게 글을 쓰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그는 “개인은 사회성이 있습니다. 단독으로 개인은 사회를 떠나 생존할 방법이 없습니다. 최대한 사회의 주변부에서 살아갈 수 있는 정도입니다..... 도망은 개인의 가장 최선의 출로입니다. 나는 가장 잘 사는 것은 사회의 변두리에서 비평의 권리를 보유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한다.
내면으로 향한 시선은 하나의 자아가 아닌 분열된, 분리된 자아와 모순된 자아를 발견하게 한다. 통일된 자아는 존재하는가? 현재의 삶과 생각은 이렇게 모순되어 있는데 어떻게 ‘나’의 존재와 생명을 증명할 수 있을까?
스스로의 삶과 생명을 증명하기 위해 가오싱젠은 글을 쓴다고 했다. 그래서 내면을 향한 시선 외에 또 다른 시선은 현실이 아닌 현실 저 너머에 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모두 알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의 호기심이듯 가오싱젠 역시 현실 저 너머,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탐구한다. 이는 바로 상상의 세계 그리고 ‘죽음’의 세계이다. 경계를 짓고 있는 중국인과 이방인, 서양과 동양 등의 경계를 모두 뛰어넘는 보편성을 지닌 단어 ‘죽음’, 이는 망명 후기 그의 작품에서 전반적으로 드러나는 특징이기도 하다.
■ 씨줄과 날줄 엮기
가오싱젠의 작품은 ⌜서유기⌟의 81장처럼 어디서부터 읽더라도 크게 상관이 없다. 퍼즐처럼 순서대로 맞춰갈 필요도 없으며 씨줄과 날줄처럼 서로 교차하기 때문에 한 방향으로만 읽을 수도, 또는 무대 위에 펼쳐낼 수도 없다. 따라서 그의 글과 무대는 선형적이지 않다. 사건의 단편들, 의식의 파편들이 정지된 화면처럼, 관객들이 시선을 돌릴 때마다 변해 있다. 선형적 구조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그의 글과 무대는 낯설다.
“놀고 있는 어린이는 자기 세계의 사물들을 자기 마음에 드는 새로운 방식으로 재배열한다는 점에서 시인과 똑같이 행동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놀이의 반대는 진지함이 아니라 현실이다. 작가는 상상 세계를 창조한다.” 가오싱젠 역시 자아와 개인, 현실을 향한 시선과 함께 현실 저 너머, 삶과 생명 그 너머의 세계를 상상하고 창조한다.
그의 작품 속에서 타인과 나, 환상과 현실 그리고 이야기와 보여주기가 씨줄과 날줄처럼 엮어져 새로운 텍스트, 즉 새로운 여러 모양의 직물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죽음에 대한 특별한 개인적 경험을 한 가오싱젠은 “죽음의 생명에 대한 위협은 시도 때도 없습니다. 현실 중 그 누구도 이에 대항할 수 없습니다. 글쓰기 중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이 불가능한 것을 누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철학가와 예술가가 하는 일은 모두 죽음과의 투쟁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왜 현실 속에서 승산 없는 게임인 죽음과 논쟁하는가?
가오싱젠의 망명 이후의 작품은 무대 위에서 보여지는 이야기가 현실인지 환상인지 구분이 모호하다. 극의 초반부에 현실적인 것처럼 보이던 것도 극이 진행됨에 따라 인물들의 말이 거짓인지 아닌지, 어떤 부분이 현실이고 환상인지 알 수 없다.
마치 ‘죽음’은 무대와 같다. 우리의 삶 속에 분명히 속해 있으면서도 상상적이며 환상적인 부분으로 누구도 현실로 부딪치지 못하는 것처럼. 현실과 환상의 경계, 어느 것이 더욱 진실된 것인가? 가오싱젠은 자신은 상상할 때가 현실에 비해 훨씬 진실되다고 이야기한다.
■ 현실과 환상 사이
무대는 ‘무엇을 이야기하는가?’와 ‘어떻게 이야기하는가?’의 교차점이자 이미 획일적이고 일직선인 시,공간에서 다층적이고 다의미적인 곳으로 변하였다.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현실 저 너머’의 세계를 어떻게 보여주어야 하는가? 프레드릭 제임슨은 “시각적인 것은 본질적으로 포르노그래픽적이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하나의 벌거벗은 몸인 것처럼 응시하도록 요구한다.”고 말하였다. 무대 위에 펼쳐놓는 것, 또는 상상력을 요구하는 글쓰기는 관객 또는 독자들에게 자연스럽게 그 펼쳐진 것을 응시하도록 만든다.
21세기는 이미지의 시대이다. 레이초우의 말에 따르면 “본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말해서 폭력의 일차적 동인이다. 이미지란 스스로를 타자 속에다 드러내는 공격적인 광경이다.”
현재의 삶과 타인과 자아와의 소통을 위해 오히려 현재의 삶과 타인과 자아와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부정하는 것, 그리고 이를 스스로에게, 관객들을 향해 무대 위에 드러내는 것은 치명적이자 적나라한 방법이다. 가오싱젠은 “진리란 잡을 수도 볼 수도 없으며 오히려 감각으로 얻는 것이다. 미란 비록 잡을 수 없어도 드러낼 수는 있다. 게다가 진실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무엇이 현실이고 진실인지, 환상이고 거짓인지 구분할 수 있는가? 현실과 상상의 경계는 어디에 있는가? 상상은 허황과 허구이므로 진실되지 않은가? 라고 가오싱젠은 질문한다.
4. 결론
가오싱젠은 ‘도망’과 ‘관성(觀省)’의 방법으로 자아와 타인, 조국과 국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그가 진정 원하는 글쓰기는 현실이 아닌 현실 뒤, 동양인과 서양인 구분 없이 사람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진실을 헤집어 보는 작업이다.
가오싱젠은 자신은 이미 중국문화가 뿌리 깊이 박힌 중국인임을 인지한다. 그래서 더 이상 그것을 강조할 이유도 없고 오히려 자신의 조상과 유산을 팔 필요가 없이 그것에서 초월해서 글을 써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때문에 그가 택한 첫 번째 방법은 앞에서 이야기한 그 자리에서 멀리 도망 나와 그것을 타자화시켜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외부와 내부와의 관계를 단절시킨다.
두 번째 방법은 그렇게 내면화된 글쓰기를 무대 위에, 글자를 통해 독자들 눈 앞에 펼쳐놓는 일이다. 가오싱젠은 말한다. “나는 단지 언어를 사용해서 시상(視象)을 불러 일으킬 뿐이다. 왜냐하면 언어는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표현해 낸 것들을 무대 위에 던져 놓는 것, 그렇게 탄생한 이미지들이 어떻게 자리 매김 될지는 작가 그 자신조차도 알 수 없는 일이 아닐까? 때문에 이는 유혹에 대해 도전적이며 공격적으로 응시하는 방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