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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누가복음 12:48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저는 과거에 릭 조이너의 책을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책이 나오면 모두 사서 읽었습니다. 그의 책에서 가장 감동적인 내용은 안젤로 이야기입니다. 너무 감동적이라서 연극으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스토리 전체가 매우 감동적이지만 여기서는 필요한 일부만 소개하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분(예수님)은 멈추어 섰고 나는 우리 옆의 보좌들(참고: 이 보좌는 사도 바울이 앉아 있는 천국의 가장 높은 보좌 층이라고 함) 위에 앉은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아직도 가장 높은 왕들이 앉아 있는 곳에 있었다. 그때 나는 바로 옆의 한 남자를 알아보았다.
'당신은 내가 어디에서인가 알고 있던 분입니다. 그런데 어디서인지 기억을 할 수 없는데요.'
'당신은 환상 속에서 나를 보셨습니다.' 그가 대답했다.
나는 그 즉시 그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충격을 받았다!
'아니 당신은 실제 인물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가 대답했다.
그러자 나는 내가 아직 젊은 그리스도인으로 내 삶의 어떤 문제로 좌절감을 느끼고 있던 어느 날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나는 내 아파트 근처의 공원 한가운데 나가 있었다. 그때 나는 주님께서 내게 응답해주실 때까지 떠나지 않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한 상태였다. 내가 앉아서 성경을 읽는 동안 나는 환상에 빠졌는데 그것은 내 생애의 첫 번째 환상이었다.
그 환상 속에서 나는 주님을 열심히 섬기고 있는 한 남자를 보았다. 그는 쉬지 않고 사람들에게 간증하고, 가르치고, 아픈 자들을 방문하여 치유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그는 주님 일에 대단히 열심이었고 사람들에 대한 순전한 사랑을 갖고 있었다. 그때 나는 또 한 남자를 보았는데 그는 영락없이 방랑자이거나 집 없는 사람이었다. 작은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잘못하여 그가 가는 길로 들어가자 그는 그것을 발로 차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는 자신을 억제하고 발로 고양이를 길 바깥으로 매우 거칠게 밀어내었다. 그러고 나서 주님께서 내게 이들 두 사람 중 누가 더 주님을 기쁘게 하고 있는지를 대답했다.
'아니다. 두 번째 사람이다.' 그분이 이렇게 대답하시고 그들 각자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첫 번째 사람은 대대로 주님을 믿어온 아주 훌륭한 가정에서 자라났다. 그는 아주 부흥하는 교회 내에서 양육되었고 가장 훌륭한 성경학교들 중 한 곳에 다녔다. 그에게는 주님의 사랑이 백이 주어졌으나 그는 오직 일흔 다섯만 사용하고 있었다.
두 번째 사람은 귀머거리로 태어났다. 그는 학대받았고 어둡고 추운 골방에 갇혀 지내다가 여덟 살 때 당국에 의하여 발견되었다. 그리고 그는 이 기관에서 저 기관으로 옮겨졌으나 가는 데마다 학대를 받았다. 결국 그는 길거리로 쫓겨나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는 그에게 그분의 사랑을 셋을 주셨으나, 그는 그것을 마지막까지 동원하여 자신의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격노와 싸운 끝에 그 새끼 고양이를 해치지 않도록 억제하였다.
나는 이제 그 사람이 솔로몬도 상상할 수 없었을 휘황찬란한 보좌 위에 왕으로 앉아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천사들의 무리가 그의 분부를 기다리며 그의 주변에 정렬하고 있었다. 나는 놀라서 주님을 향해 몸을 돌렸다. 나는 여전히 그가 실제 인물이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고 하물며 이 위대한 왕들 중에 있다는 것은 더욱 믿을 수가 없었다.
'주님, 그의 마지막 이야기도 해주십시오.' 내가 간청했다.
'물론이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 온 것이다. 안젤로는 내가 그에게 준 적은 것에 너무나 충성했기 때문에 나는 나의 사랑 셋을 더 주었다. 그는 그것을 모두 사용하여 도둑질을 그만두었다. 그는 거의 굶어 죽을 지경이었지만 자기 것이 아닌 것에 손을 대는 것을 한사코 거부했다. 그는 빈 병을 모으고, 가끔씩 잡일을 시키는 사람들을 찾아가 생기는 돈으로 먹을 것을 샀다. 그는 들을 수는 없었지만 글 읽는 법을 배웠기 때문에 나는 그에게 복음전도지 한 장을 보냈었다. 그가 그것을 읽었을 때 성령이 그의 마음을 열어주었고 그는 자기 생애를 나에게 전부 바쳤다. 나는 다시 그에게 나의 사랑을 갑절을 더 주었고, 그 후 그는 그 모든 것을 충성되게 사용했다. 그는 나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싶었지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비록 그러한 빈곤 속에 있었으나 그가 번 돈의 절반 이상을 전도지에 사용하여 길모퉁이에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는 몇 사람을 주님께 인도하였습니까?' 나는 그가 왕들과 함께 앉아 있으려면 엄청난 숫자일 것이라 생각하며 이렇게 질문했다.
'한 사람'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그를 격려해주기 위해 알콜중독자 한 사람을 내게로 인도하였다. 그것이 그에게 큰 힘이 되어 다른 한 영혼을 회개시키기 위해서라면 그 길모퉁이에 몇 년이라도 서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천국 전체가 나에게 그를 이곳에 데려올 것을 간청하고 있었고 나도 그가 자신의 보상을 받기를 원했다.'
'하지만 왕이 되기 위하여 그는 무엇을 하였습니까?' 내가 질문했다. '그는 그에게 주어진 모든 일에 충성하였다. 그는 나와 닮게 될 때까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결국 순교자로 죽었다.'
'하지만 그가 무엇을 극복하였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순교자가 되었습니까?'
'그는 나의 사랑으로 세상을 이겼다. 그토록 적은 것으로 그렇게 많이 이겼던 사람은 너무 적었다. 나의 백성 중 많은 사람이 한 세기 전만 해도 그 편리함 때문에 왕들도 부러워했을 만한 편한 집에 살면서도 감사하지 않는 반면, 안젤로는 추운 밤 종이 상자 하나를 너무나 감사한 나머지 그것을 내가 임재하는 영광스러운 성전으로 변화시켰다. 그는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는 사과 한 개를 가지고도 내 백성 중 어떤 사람들이 성대한 향찬에 대해 기뻐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했다. 그는 내가 그에게 준 모든 것에 충성하였다. 그것이 비록 내가 너를 포함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준 것에 비하면 너무나 하찮은 것일지라도.'"
여러분이 익히 아는 이 간증을 다시 소개하는 이유는,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최고의 예라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또 이 이야기가 실려 있는 『빛과 어둠의 영적 전쟁』의 후속판으로 나온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책에 보면 바울이 저자에게 이렇게 말한 것이 나옵니다.
"바울은 손을 들어 나를 가리켰다.
'당신에게는 많은 것이 주어졌기 때문에 많은 것이 요구될 것입니다. 비록 당신이 믿고 맡겨진 수많은 달란트를 파묻을지라도 당신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하실 것이나 당신의 임무는 실패한 것이 될 것입니다. 당신은 절대로 스스로를 다른 사람과 견주지 말고 앞으로 전진하도록 굳게 마음을 먹고 주님만을 찾으십시오. 그리고 모든 영광이 당신에게 계시된다 할지라도 절대로 그 옷(겸손의 겉옷)을 벗지 마십시오!'"
제가 이것을 여러분에게 소개하는 이유는, 우리 교회가 바로 이와 같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추수할 일꾼의 롤 모델이신 예수님이 한 삼중사역을 통해 여러분에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삼중사역이 무엇인지 아시지요! 예수님이 회당에서 진리를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모든 약한 것과 모든 병을 고치는 것이 바로 삼중사역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먼저 복음을 전하지 않고, 회당에서 가르치는 것부터 하셨을까요? 천국 복음을 먼저 전하는 것이 맞는 순서 아닐까요?(히6:1-2) 그 이유는 예수님이 불신자를 상대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유대교인들을 상대하셨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의 문제는 바로 장로의 유전 즉 구약을 잘못 해석한 잘못된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진리를 가르치시는 일부터 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선교지에 가서 가톨릭 신자를 만나거나 개신교인이라도 명목상의 신자를 만나면 가르치는 일을 먼저 해야 합니다. 그러나 불신자나 타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상대할 때는 가르치는 일부터 하면 안 됩니다. 그들에게는 천국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렇듯 순서는 대상을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필요에 의해 삼중사역을 역순으로 설명하고자 합니다.
(1) 우리 교회는 능력전도를 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초대 예루살렘 교회처럼 성령이 임하고 성령의 권능이 임한 교회입니다. 그리고 고린도 교회처럼 다양한 성령의 은사가 임한 교회입니다. 그러면서도 고린도 교회와 달리 질서가 있고 균형이 잡혀 있는 성숙하고 모범적인 교회입니다.
『20세기 사도행전 인도네시아 부흥 이야기』라는 책에서 쿠르트 코흐는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은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시며'(눅9:1, 2). 우리는 스스로 묻게 됩니다. 이런 권능을 오늘날 교회에서 볼 수 있는가? 교회에 설교자는 가득하지만, 증인은 거의 없습니다. 악마를 쫓아내거나 병을 고치는 권세를 위임받은 그리스도인의 수는 훨씬 적습니다."
실제로 이것이 오늘날 교계의 현실 아닙니까? 그러나 감사하게도 우리 교회는 예외입니다. 김옥경 목사님이 인도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을 통해 다수의 목회자와 성도들이 능력전도를 위해 잘 준비되어 있습니다. 능력전도를 하므로 이삭줍기가 아니라 영혼들을 추수할 수 있는 추수할 일꾼들로 가득한 교회입니다. 그래서 제가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눅12:48)라는 말씀이 우리 교회에 해당된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하여 온 나라와 열방으로 나가야 합니다.
혹 서울에 사랑하는교회가 세워지던 해인 2005년도에 제가 미국에 가서 밥 존스 목사님을 처음 만나던 때를 기억하십니까? 그때 저는 밥 존스 목사님을 만나러 가기 전 L. A.에서 왕복 8시간 거리에 있는 쉐코야나무 숲에 다녀왔습니다. 그 산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곳으로 스타워즈의 촬영장소이기도 했습니다. 나무가 얼마나 큰지 자신이 매미같이 느껴졌습니다.
아무튼 저는 쉐코야나무들을 보고 바로 밥 목사님을 보러 플로리다로 갔습니다. 거기서 밥 목사님을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당연히 밥 목사님은 저에 대해 어떤 정보도 없었고 저를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식당에서 제게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당신은 나뭇가지가 뻗어 나오는 것과 같은 사람으로 보입니다. 나무가 보입니다. 당신은 그 나무가 있는 곳에서 왔는데, 그 나무보다 더욱 높고 큰 나무로 자라게 될 것입니다. 지금 현재 한국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중이며 이는 한국분 아니라 전 세계를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에게로 오는 나무들이 세계로 뻗어나가게 될 것인데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지도자로서 그들을 훈련시키고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
당신에게 있는 가장 강한 기름부으심은 하나님이 당신에게 현재 전해주고 있는 가르침들입니다. 그 가르침들이 목사님에게 온 사람들을 다음 단계로 준비시킬 것입니다. 당신 손 안에 있는 것을 보십시오. 그중에 하나가 치유의 은사입니다. 당신을 통하여 이 치유의 향유가 흘러나갈 것을 위해 준비하십시오."(2005년 11월 11일)
이 예언은 생각할수록 놀라운 예언입니다. 밥 목사님은 내가 쉐코야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왔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그런데 당시 무명의 목사였던 저에게 한 밥 목사님의 예언의 핵심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여러분 중 많은 사람이 우리 교회를 통해 준비되어 세계로 나가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로부터 6년 후인 2011년 9월 7일, 밥 존스 목사님은 저에게 다시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현재 사랑하는교회에서 일으키시는 기적과 이사는 미래에 다가올 일에 대한 하나의 징표일 뿐입니다. 더 큰 일에 대해 예비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저희 세대 가운데 많은 기적과 이사를 보았습니다. 죽은 자가 일어나는 것을 보았고, 없어진 장기가 생기고, 잘려나간 다리가 생겨나는 기적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유전자를 창조하셨고 그 유전자 안에는 이미 모든 것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유전자를 다시 조합시키기만 하면 됩니다.
사람들이 항상 우리에게 기름부음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 말이 맞습니다. 여러분이 가질 기름부음이 이미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다만 그 기름부음을 사용할 수 있도록 자라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버지를 닮습니다. 아버지 안에 있는 것이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 가운데 자라난 아들이셨습니다. 많은 아들과 딸들 중에서 첫 아들이셨습니다. 교회가 자라났을 때, 눈먼 자에게 새로운 눈이 생기게 될 것이고, 새로운 팔과 다리가 생겨나게 될 것입니다."
같은 날, 밥 존스 목사님은 또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우리는 엄청난 기적과 이사 가운데 행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미 그 일을 행하고 있습니다. 큰 복음전도 운동들이 영혼구원은 있었지만 큰 기적과 이사 가운데 행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큰 기적과 이사와 함께 능력전도의 방법으로 복음전도를 하셔야 합니다.
제가 이번 집회에 참석한 사랑하는교회 성도들을 보았는데요. 그들은 능력전도를 능히 행할 수 있게 자라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 그 사람들이 조금 더 성숙하게 된다면 전면적인 기적과 이사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와 여러분을 향해 갖고 계신 계획입니다. 하나님이 그리고 계신 그림이 보이십니까? 하지만 어떤 분들은 제게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입니다. "목사님 예언을 다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옳은 말입니다. 저도 밥 존스 목사님을 포함하여 많은 세계적인 선지자들의 예언 중 빗나간 것들이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예언을 소개하는 이유는 이 예언들이 실제로 우리 교회 안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밥 존스 목사님이 이 예언을 한 지도 벌써 7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우리 교회의 목회자와 성도들은 성숙했고, 능히 능력전도를 할 수 있는 사역자들이 되었습니다. 사실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핑계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주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하여 능력전도를 하러 열방으로 나가야 합니다.
(2) 우리 교회는 천국 복음을 전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천국 복음'은 하나님의 통치 즉 예수님의 주 되심을 강조하는 복음입니다. 그래서 회개와 행함 있는 산 믿음을 강조하고, 제자가 지불해야 할 대가를 당당하게 요구하는 복음입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도 그 내용을 보면 천국 복음이었습니다. 이것은 다음 구절들을 보면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사도행전 20: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로마서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로마서 14:7-9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고린도전서 6:9-10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예수님이 전한 복음과 바울이 전한 복음이 일치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 중요성에 대해 김세윤 교수님은 『칭의와 성화』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잘 설명했습니다.
"바울의 칭의의 복음(은) ...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에 상응한다는 것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바울의 칭의의 복음은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의 구원론적인 표현'입니다. ... 바꿔 말하면 바울의 칭의론을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의 틀로 이해해야 왜곡함 없이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개신교 전통에서는 바울의 칭의의 복음을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과 무관하게 해석하다 보니 칭의의 의미를 편향적으로, 또는 왜곡해서 이해했습니다. 그 결과 칭의론은 의인으로서의 삶이 없으면서도 의인으로 자처하는 사람들을 양산하는 교리, 심지어 의인으로서의 삶을 방해하는 교리로 전락해버렸습니다. 그래서 대다수 개신교인들은 믿음을 윤리와 분리해서 이해하고, 윤리는 없어도 믿음만 있으면 자신들이 최후의 심판 때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 교회의 비극의 가장 근본 원인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바울의 칭의의 복음을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의 구원론적 표현으로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속지 마십시오. 절대로, 믿는다고 다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교회 안에 곡식과 가라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3:24-30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그럼 누가 곡식이고 누가 가라지일까요?
마태복음 3:7-10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이 말씀에 의하면 죄를 회개한 자는 곡식이요, 죄 가운데 여전히 살고 있는 자는 가라지입니다.
누가복음 14:25-27, 33 "수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이 말씀에 의하면 제자가 지불해야 할 대가를 지불하는 자는 곡식이요, 그냥 군중심리로 따르는 자는 가라지입니다.
위 사실들에 기초하여 저는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만일 복음을 전하는 자가 회개하라고 외치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회개하겠습니까? 또 복음을 전하는 자가 행함이 있는 산 믿음의 필요성을 강조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겠습니까? 그리고 예수님이 그랬듯 따르는 자들이 감소할 것을 각오하고 제자가 지불해야 할 대가를 말해주지 않는다면 참 제자가 되겠습니까? 그럴 수 없겠지요. 그래서 예수님이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진다고 경고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복음전도자들 중에 심지어 능력전도자들 중에도 천국 복음이 아니라 구원파적인 거짓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제가 파악한 바로는 오히려 전도자들이 더 구원파적인 거짓 복음을 신봉합니다. 왜냐하면 성경 그대로 복음을 전하여 사람들을 회심케 할 능력은 없고, 그렇게 전해야 결신자들을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능력전도자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20% 정도만 천국에 간다는 여러 간증이 보여주듯이, 실제로 교회들이 명목상의 신자들과 외식자들로 가득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다릅니다. 우리 교회는 『지옥에 가는 크리스천들』이라는 책 때문에 시작된 교회입니다. 그 후로도 『다이아몬드 같은 진리!』를 비롯하여 여러 설교들을 통해 성경적인 탄탄한 구원론으로 완전무장한 교회입니다. 따라서 능력전도를 통한 영혼구원의 양은 물론 천국 복음을 통한 질도 확보한 교회입니다. 그래서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눅12:48)라는 말씀이 우리 교회에 해당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교회에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명감을 가지고 한 손에는 천국 복음을 들고 한 손에는 치유의 은사를 가지고 열방으로 나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