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기 유럽 신비주의의 특징은 교회의 권위보다 개인적인 신앙체험을 통해 신과의 관계를 구축하면서, 성직자라는 중개자 없이 직접 신과 소통하여 영적 진리를 깨닫는 것이었습니다. 고통과 죽음에 대해서도 단순한 고난이 아니라 영적 성장을 위한 과정으로 이해하고, 신과 인간 사이의 사랑과 일체감을 강조하면서,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신성을 발견하려는 것이 신비주의의 특징입니다.
신비주의는 매개 없이 신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제도권 교회와 남성중심의 성직주의에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종교가 권위주의적인 교권체제로 굳어지는 시대에는 언제나 신비주의가 형태를 달리하면서 등장했습니다. 오늘의 한국교회에서도 개인적 영성과 직접적인 신체험을 추구하는 신비주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도 한국교회의 교권주의에 대한 평신도들의 도전 혹은 대안적 영성 추구의 시도라고 생각됩니다.
중략
에크하르트가가 바라는 신은 결코 인간 밖에 존재하는 타자로서의 신, 대상적 신, 내가 필요에 따라 소유하고 버릴 수 있는 신이 아니라 나 자신의 존재로서의 신, 내 안의 신, 나 자신보다 나에게 더 가까운 신, 아니 나의 참 자아로서의 신입니다.(38)
둘째, 길희성 교수는 에크하르트가 불교와 그리스도교라는 매우 이질적인 두 종교가 만날 수 있는 지점을 제시한다고 평가합니다. 특히 선불교와 그리스도교가 만날 수 있는 접촉점을 제공하고 훌륭한 매개자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39) 내용적으로는 초탈과 방하를 호소하는 에크하르트의 사상과 무념, 무주의 세계로 가는 길을 말하는 선사상, 모든 상을 여읜 순수하고 투명한 지성을 말하는 에크하르트와 맑고 밝은 거울과도 같은 공적영지(空寂靈知)의 불성(佛性)을 말하는 선불교, 모든 것을 버리고 비우고 자유로운 삶을 바라는 에크하르트와 무심, 무사의 경지를 추구하는 선불교, 성속의 거추장스러운 분별을 벗어버리고 단지 한 진정한 인간으로 살라는 에크하르트와 무의(無依)도인, 무위(無爲)진인의 삶을 호령하는 당나라의 임제 선사(臨濟, ?-866)가 같다는 것입니다.(40) 더 나아가 길희성 교수는 에크하르트 영성 사상은 비단 불교만이 아니라, 전 동양사상과도 만날 수 있다고 평가합니다.(41)
끝으로 길희성 교수는 성장과 성공 신화에 매달려 크고 화려하고 풍요로운 것을 하느님의 축복으로 간주하면서 물신주의에 빠진 한국의 기독교의 변화를 위해서는 초탈 혹은 초연이라고 부르는 가난의 영성을 실천한 에크하르트의 삶과 영성 사상을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세상과 자신에 대한 집착은 물론 심지어 하느님마저 놓아버리는 철저한 가난의 영성은, 보이는 것에 눈이 멀어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영적 눈을 상실한 한국 기독교에 강한 호소력과 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는 것입니다.(42)
그러나 에크하르트의 삶을 연구한 레이몬드 B. 블레크니는 에크하르트의 특이한 사상들 가운데 매우 혁명적인 것들이 있다는 것을 긍정하면서도, 만일 에크하르트의 활동이 정치, 사회적 변화나 제도화된 종교 구조에 여향을 끼쳤다면, 그것은 그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또는 그가 의도하지 않은 사이에, 또는 그의 동의 없이 발생한 것임을 지적합니다.(43
종교적 사유의 혁명성과 사회적 실천의 혁명성은 에크하르트의 경우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의 신비체험의 혁명적인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에크하르트는 교회의 충실한 수도자였습니다. 그는 교회의 악습이나 개혁에 관한 그 어떤 비평도 가하지 않았고, 정치문제에도 아무런 견해도 피력하지 않았습니다.(44)
그리고 에크하르트가 라틴이 아니라 독일어로 수녀들과 베긴회 회원들을 포함하는 평신도 청중들에게까지 설교하고, 교육의 부족과 지성의 부족을 동등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반드시 그랬기 때문에 에크하르트가 여성 영성의 지지자였다거나(45), 민중에 의한 사회적 개혁 열망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고 성급하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46)고 조심스럽게 블레크니는 주장합니다.
그렇습니다. 어느 사상가든 그가 살았던 시대의 역사적 맥락에서 평가되어야 합니다. 에크하르트도 중세라는 시대정신과 이단 심문이라는 정황에서 파악하고 평가해야 합니다. 그런 모든 한계에도 불구하고, 에크하르트 사상의 혁명적인 요소들은 오늘도 제도권 종교의 본질이 물어지고, 추구되는 곳에서 강력한 길잡이가 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