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은 지났지만, 한가위에 어울릴 시 한 편 띄웁니다. 휘영청 보름달 아래 들으면 더 좋을 것 같은 그런 시입니다.
대금 연주곡, '청성淸聲자진한잎'은 글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빠르고(자진) 큰 곡조(한잎)를 높은 음(청성)으로 연주한다"는 뜻이지만, 실제 소리를 들으면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여름밤 먼 대숲에서 바람에 댓잎이 쓸리는 소리. 고요한 밤바다에 잔잔한 파도가 모래를 쓸고 지나가는 소리. 슬프지만 그래서 아름답다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하기 어려운 그런 느낌이지요.
그런데 이성목 형의 [청성淸聲자진한잎]을 읽고 보니 그게 어떤 느낌인지 비로소 알 것 같습니다.
형의 시를 읽으며 "청성자진한잎"을 다시 듣습니다.
"들어앉을 몸을 얻으려고 산죽을 바닥까지 휘어놓고도, 들어앉는 삶을 견디지 못하"는 바람.
오로지 "소리로만 육체를 드러내"는 바람.
"시김새 없이도 한 생을 이루"는 바람.
"소리로 와서 소리 없이 사라"지는 높새바람.
문자가 곡조를 흔들어 문자를 보여주고, 곡조가 문자를 흔들어 곡조를 흔드는 경지이지요.
형의 시가 마침내 득음得音을 넘어 해음解音까지 이르른 것 같습니다.
형의 문장이 시문詩文인지 곡조曲調인지 아니면 색조色調인지 이쯤 되면 그 경계가 의미가 없는 것 같기도 하고요.
<박제영/달아실출판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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