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절 빌립보 교회의 지도자 사이에도 갈등이 생길 만큼, 한마음으로 “굳게 서서” 협력하는 것(참조. 1:27)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낮아짐의 모범이신 예수의 마음(2:5)을 함께 품을 것을 권면하는 한편, 이름을 밝히지 않는 “멍에를 같이한” 동료에게 화해를 도와줄 것을 요청합니다. 우리 공동체 안에 중재해야 할 관계는 없습니까?
4,6,7절 기도란 내 지각으로 상황을 통제하려는 수고를 멈추고, 하나님의 지각에 내 마음과 생각을 연결하는 일입니다. 대책이 없어 보여도, “그리스도 안에서”(1:13) 여전히 우리는 아뢸 게 있는 자이고 감사할 게 남아 있는 자입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고 항상 기뻐하려면, ‘모든 일’을 기도의 제목으로 삼아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는 없습니다.
5,8,9절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기도로 평화를 누리는 우리는, 세상에서 모든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 수 있습니다. 진실하고 경건하고 정의롭고 순결하고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10-18절 빌립보 교회는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투옥된 바울에게 ‘쓸 것’을 보내왔고, 바울은 기뻐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기쁨이 후원 받은 대가로 표하는 감사 인사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바울은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쓸 것이 있든 없든 옥중에도 자족할 수 있으므로, 후원 자체가 기쁨의 이유일 수 없습니다. 이 기쁨 이유는, 빌립보 교회가 바울의 고난에 함께 참여(헬. 코이노니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빌립보 교회의 후원은 바울에게 건넨 선물이 아니라 복음의 진보를 위한 ‘동참’이고, 이에 대한 보상은 바울의 감사 인사가 아닌, 하늘의 풍성한 열매로 주어질 것입니다. 주께서 내게 섬길 수 있는 기회와 마음을 주시는데도 형편을 핑계로 미루고 있지는 않습니까?
19절 복음을 위해 ‘쓸 것’(16절)을 보내는 이에게 풍성한 ‘쓸 것’(19절)이 채워질 것입니다. 복음을 위한 우리의 염려와 헌신은 주께 드리는 또 하나의 예배이며 주께서 기억하고 기뻐하시는 예물입니다.
첫댓글 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ᆢ
바울의 이고백은 정말 놀라운 고백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신뢰함이 얼마나 깊은지를 알수 있는 대목입니다 감옥에 투옥중인 바울이 그시절 디도를 통해 빌립보교인 들이 보내준 후원은 가늠하건데 아주 적은 물품이 였을것이고
16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것을 보내었도다
하는 말처럼 데살로니가에 있을때 여려 번이 아니고 두 번을 아주 크게 감사하고 있는 것을 보면 바울의 인성과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넘쳐나는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작은 것에 감사드리면 풍성하게 그것도 나의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는 축복의 말씀을 오늘 내가 받습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나의 오래 되고 고질 적인 죄를 오늘 끊어내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세상 힘에 기대어 살았습니다 모자라고 부족함에 불평하고 불안해 하며 살았습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있는 것이 내게 족하다는 것이 오늘 나의 고백 됨을 간절히 바라고 그런 오늘 하루를 기대하는 삶으로 살아내고 싶으니 도와주옵소서
그리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