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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辰年 성경적인 신앙뿌리 깊이내려 하늘곳간 알곡되는 해(後) † 使徒바울 ☆ (敎理書信)
롬11:1-12절) 이스라엘의 남은 자
가끔 우리나라에서 아주 유명(有名)한 사람들의 자녀들이 성공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마약(痲藥)을 먹거나, 다른 죄로 경찰에 구속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부모님 밑에서 자랐고, 또 가장 좋은 환경에서 자란 자녀들인데, 더 크게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失敗)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부모의 유명(有名)세에 대한 부담(負擔)이 그만큼 컸던 것입니다. 즉 자녀들에게는 부모가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유명(有名)한 자리에 오른다는 것이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부모 자신(自身)은 좋을지 모르지만, 자식들은 평범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엄청난 부담(負擔)때문에 정상적(正常的)인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유명(有名)한 목회자들 중에서도 자녀들이 방탕(放蕩)하고, 타락(墮落)한 생활을 하는 바람에 마음에 큰 고통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을 본적이 있습니다.
사람은 성공(成功)했을 때보다는 실패(失敗)했을 때, 자신(自身)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고, 그 결과 더 아름다운 성공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本文) 말씀은 하나님을 잘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배운 이스라엘 자손들이 왜 복음(福音)을 믿지 않고, 타락(墮落)한 자들이 되어 교회를 핍박(逼迫)하게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잘 알기는 했지만, 진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알지 못하니까 너무나도 인간적(人間的)인 좋지 못한 점만 배우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보고, 이방인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만 배우니까 더 순수하고, 더욱 뜨거운 신앙(信仰)을 가지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本文) 말씀은 오래 믿는 가정이나, 오래된 교회가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Ⅰ.이스라엘 자손들의 문제(상)
요즘도 성지(聖地)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예루살렘에서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모습들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옛날 하나님의 성전(聖殿)자리에 회교사원(回敎寺院)이 서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하는 식으로 과거를 정리하려면, 회교사원(回敎寺院)을 부수고, 성전(聖殿)을 복원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있는 회교사원(回敎寺院)을 부수면, 전 세계 회교권이 들고 일어나기 때문에 건드릴 수가 없습니다.
또 하나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예루살렘에 몰려오는 기독교인(基督敎人)들을 대상으로 예수님의 유적(遺跡)을 가지고 장사는 하지만, 자신(自身)들은 결코 기독교를 믿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초대교회 당시 사도 바울이나, 이방인 기독교인(基督敎人)들에게 진정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은 하나님을 잘 알고, 성경(聖經)을 많이 배운 이스라엘 자손들이 절대로 예수는 믿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그냥 믿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너무나 기독교(基督敎)를 싫어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기독교(基督敎)를 핍박(逼迫)하면서 믿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먼저 믿은 유대인들이 열심히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습니다. 즉 한때 하나님을 잘 믿었던 사람들이 더 열심히 기독교(基督敎)를 비판(批判)하고. 거부(拒否)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문제를 두고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11:1절)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우리가 생각하기에 신앙(信仰)이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자라고, 목회자의 자녀라면,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배나 신앙(信仰)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그런 자녀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 그런 것은 아니고, 어떤 자녀들은 반발심(反撥心)이 생겨서 오히려 믿지 않는 집의 자녀들보다 더 신앙(信仰)에 대해 냉소적(冷笑的)이고, 오히려 더 타락(墮落)한 모습으로 사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믿음의 *자녀들을 다 버리셨을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 제시(提示)해 봅니다. 사도 바울은 *결코 아니라'고 말합니다. 왜냐면 자신(自身)도 이스라엘 자손이요, 아브라함의 자손인데, 예수를 믿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도 바울도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기독교(基督敎)를 싫어하고, 핍박(逼迫)했지만, 지금은 예수를 믿고, *복음(福音) 전(傳)하는 자로 헌신(獻身)하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믿는 집안에서 자라거나, 어렸을 때부터, 신앙생활(信仰生活)을 잘 하는 것이 신앙(信仰)에 아주 큰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어떤 생명의 양식(洋食)을 먹고 자라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함을 깨닫게 됩니다.
아무리 믿음의 집의 자녀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먹지 않고, 특히 그 말씀을 자신(自身)의 것으로 소화(消化)시키지 않고, 그냥 시키는 대로 신앙생활(信仰生活)만 하다가 어느 순간에 반발심(反撥心)이 생기면서 튕겨져 나가버립니다. 특히 목회자 집의 자녀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남들보다 더 신앙(信仰)이 좋을 것이라는 기대(期待)를 받습니다.
아무리 목회자 자녀라 하더라도 마음속에는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타락(墮落)한 본성(本姓)이 있고, 죄짓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목회자의 자녀는 *작은 목회자나', 구약(舊約)의 *나실인 처럼 착각(錯覺)'합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에 그런 부담(負擔) 때문에 스스로 자포자기(自暴自棄)해 버리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교회에서 봉사(奉事)를 잘하고, 이름이 있는 목회자라 하더라도 자식(子息)들에게는 통(通)하지 않습니다. 자녀들은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타락(墮落)한 본성(本姓)이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달려가거나', *날아가는 신앙(信仰)'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때로는 실수를 하고, 때로는 죄를 짓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밖에서 아무리 유명(有名)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기 아이들에게는 유명(有名) 한 것이 통(通)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좀 풀어주어야 하는' 세심(細心)한 겸손(謙遜)과 주의가 필요합니다.
만약 *이런 과정이 없이 내가 신앙적(信仰的)으로 훌륭하고, 유명(有名)하니까 아이들이 알아서 훌륭한 신앙인(信仰人)이 되겠지?'라고 생각을 했다가는 *나중에 문제가 터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첫째는 *신앙(信仰)에서는 중간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믿는 가정이나, 목회자의 가정이나,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제대로 믿든지', 아니면 *엉망으로 믿거나', 아니면 *타락(墮落)해서 핍박하는 자가 되거나',하는 양극단(兩極端)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그 이유는 *어려서부터 잘 믿어야 한다'는 부담(負擔)을 가지기 때문에 어중간할 수가 없습니다. 즉 믿으려면 *아주 잘 믿든지', 아니면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고, 자기 멋대로 살든지', 둘 중의 하나의 길로 가기가 쉽습니다.
둘째는 *아무리 좋은 진리(眞理)라 하더라도 겸손의 그릇에 담지 않으면, 독(毒)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신앙생활(信仰生活)을 해 온 아이들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지만, *교회 안의 좋지 못한 모든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자랍니다. 그러기에 *무조건 말씀만 억지로 주입(注入)시킨다고, 아이들이 좋은 신앙(信仰)으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독(毒)을 먹고, 자랄 가능성(可能性)이' 많습니다.
어른들이 언제나 겸손(謙遜)하게 진리(眞理)를 가르치고, 또 *언제나 말씀대로 잘 사는 것이 아니란다.’면서 아이들의 이해(利害)를 구(求)할 때, 오히려 아이들이 덜 비뚤어지면서 어른들을 이해(利害)할 수 있습니다. 즉 본인(本人)은 밖에서 인정(認定)을 받고, 유명(有名)하다 해서 아이들의 신앙(信仰)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큰 부담(負擔)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유명(有名)할수록 더욱 겸손(謙遜)해야만 아이들의 신앙(信仰)을 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늘 조심(操心)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는 하나님의 영광(榮光)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人間)의 위선(僞善)과 부패(腐敗)한 모습들이 함께 공존(共存)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인간(人間)의 부패(腐敗)한 모습이 하나님의 영광(榮光)을 가리지 않도록 목회자들이나, 중책(重責)을 맡은 자들은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영광(榮光)을 지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자기(自己) 이름이나 내려고 하고, 권세(權勢)나 휘두르려고 할 때, 그 모습을 보고 자라는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독(毒)버섯이 가득 생기게 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타락(墮落)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도 먹었지만, 부모들이 겸손(謙遜)하지 않고 정직(正直)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실제(實際)로 하나님을 잘 알고, 잘 믿는 것 같았지만, 독(毒)을 많이 먹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더 냉소적(冷笑的)이고, 비판적(批判的)이 되어서 하나님의 복음(福音)을 거부(拒否)하고, 핍박하는 복음(福音)의 원수(怨讐)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왜 하나님을 아는 자들이 타락(墮落)하면, 더 믿기 어렵고, 더 심하게 반대(反對)하는 자들이 될까? 마음속에 부정적(否定的)인 것들이 많이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자 비유를 말씀하실 때에 여러 밭 중에서 길가 같은 마음이 있습니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는 길바닥 같은 마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음이 너무나도 단단하게 다져져서 도무지 씨가 땅 속으로 파고 들어가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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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마음들은 대개 어렸을 때, 교회나 믿는 자들의 좋지 못한 독(毒)을 많이 마셔서 마음이 단단해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마음들이 열려서 복음(福音)을 받아들이려면, 아주 강한 성령의 비가 내려서 굳은 땅을 완전히 녹여 버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실제로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길가같이 단단한 마음이었습니다. 기독교인(基督敎人)들을 잡으러 가다가 예수님의 강한 체험을 하는 바람에 단단한 마음이 모두 다 녹아져 버렸습니다. 놀라운 사실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아무리 단단하던 마음도 강한 성령의 역사(役使)에 한번 녹아지면, 다시 한 번 뜨거운 주님의 일꾼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나 혼자만 잘 믿는 신앙(信仰)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늘 겸손(謙遜)하고, 정직(正直)하여 우리도 잘못 생각하거나, 행동(行動)할 때도 있고, 또 위선적(僞善的)이기도 하다는 것을 시인(是認)할 때, 자라는 자녀들이 독(毒)을 덜 마시고, 올바른 신앙(信仰)의 사람들이 됩니다. 또한 예배(禮拜)드릴 때마다 하나님의 영광(榮光)이 충만해야 하고, 성령의 넘치는 역사(役使)가 일어나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족같은 교회, 교회같은 셀(Cell)공동체 주일 예배때마다 오순절(五巡節)이 되어 성도들 사이에 사랑이 넘치고, 구제(救濟)가 넘치고, 기적(奇蹟)이 풍성(豊盛)하게 일어 날 때, 자녀들이 진리(眞理)에서 탈선(脫線)하지 않게 됩니다.아-멘
찬송가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매일 새벽(夏)4-5시 ✫ 주님께 도움의 기도하는 습관. ✫ 저녁엔 주님께 범사에 감사하는 습관(살전517)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지옥)에 태우시리라(눅3:17절)
카페,카톡회원(후(後)반기1) *그물의 비유(마13:47-50)*를 정회원과 비회원 chart로 구별하여 정리하는 기간 아-멘, 댓글은 은혜 받은 성도의 기본, ⟺ 감사와 仲保祈禱는 정회원 될 대상 ※어느 누구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