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어질 수 없었기 때문에 그토록 애닯은 것일까? 사랑하는 이를 가슴에 품은 채 일생을 보내야했던 한 여인의 회한은 가슴 찢는 통증이었으리. 전설같은 길상화(김영한 여사 법명), 드넓은 도량에 곱게도 피었다.
길상사는 1960년대와 70년대 그리고 80년대 말까지 삼청각, 청운각과 함께 최고급 요정의 하나였던 대원각 자리에 세워진 사찰이다. 성북동 깊숙한 산자락의 대원각 주인이었던 김영한 여사가 7천여 평의 대지와 건물 40여 동 등, 1천억원대의 부동산을 법정 스님에게 시주해 길상사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김영한 여사의 유해 또한 화장되어 이곳에 뿌려졌다.
길상사에 들어서자 도심의 소란스러움이 한순간에 멈췄다. 순간이동이다. 고요와 적막. 오싹한 정적이다. 도심 한 복판에 있는 사찰이 이렇게 적막할 수 있다니! 신비롭다.
침묵이다. 하늘도, 땅도. 그 안에 담긴 모든 것들도.
조용조용, 걸음을 옮긴다. 오른쪽으로 올라가자 묘한 분위기의 관음보살상이 안치되어 있다. 천주교 성모상 비슷한 느낌이 난다. 알고보니 佛母를 자청한 천주교 조각가가 만들었다고 한다. 보살상을 돌아 몇발짝 위로 오르자 범종각이 있고 바로 옆에 극락전이 보인다. 오밀조밀한 길들을 따라 올라가니 곳곳에 방갈로 같은 집들이 즐비하다. 길상사가 다른 사찰과 특별히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이 스님처소가 아닌가 싶다. 처소는 길상사가 요정이었을 때 기녀들이 손님을 받던 방이었다고 한다. 웃음꽃 질펀한 그곳이 수행자들의 처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길은 계곡을 따라 죽 이어졌다. 계곡은 두꺼운 낯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 시나브로, 김영한의 굽이진 삶을 실어나르고 있었다.
가난 때문에 병약한 남자에게 팔려가듯 시집 간 열 다섯의 소녀. 빨래하는 사이 남편이 우물에 빠져 죽고 시집살이를 견디지 못해 집밖으로 뛰쳐나온 그녀는 기생이 된다. 그녀의 나이 열 여섯. 춤과 노래, 재능 많은 그녀는 권번가에 날리는 기녀가 되어 뭇 사내들의 가슴에 불을 지른다. 한 때 일본으로 유학을 가기도 했지만 자신을 인도했던 사람이 감옥에 갇혔다는 기별을 듣고 부랴부랴 귀국한다. 그녀는 끝내 일본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고국에 주저 앉는다.
스물 둘, 그녀는 평생의 情人인 백석을 만난다. 백석 나이 스물 여섯. 여고 영어선생님이자 시인이었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여 함께 살게 되지만 백석 부모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친다. 백석은 부모 손에 끌려 세 번씩이나 결혼하지만 번번히 그녀에게로 되돌아온다. 끝내 그녀를 잊을 수 없었던 그는 그녀와 함게 만주로 도망치고 싶어하지만 거절당한다. 백석은 혼자서 만주로 떠난다. 그렇게 헤어진 것이 영원한 이별이 될 줄 어찌 알았을까. 38선은 그들을 남북으로 갈라 놓고 죽는 날까지 그리움이라는 굴레에 가둬버렸다.
그녀가 백석을 사랑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녀의 고백을 들어보자.
그 사람을 사랑한 이유 / 이생진
여기서는 실명이 좋겠다 그녀가 사랑한 남자는 白石이고 백석이 사랑했던 여자는 김영한이라고
한데 백석은 그녀를 子夜라고 불렀지 이들이 만난 것은 20대 초 백석은 시 쓰는 영어 선생이었고 자야는 춤추고 노래하는 기생이었다
그들은 죽자사자 사랑한 후 백석은 만주땅을 헤매다 북한에서 죽었고 자야는 남한에서 무진 돈을 벌어 길상사에 시주했다
자야가 죽기 열흘 전 기운 없이 누워 있는 노령의 여사에게 젊은 기자가 이렇게 물었다
천억을 내놓고 후회되지 않으세요? 무슨 후회?
그 사람 생각 언제 많이 하셨나요?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데 때가 있나?
기자는 어리둥절했다
천금을 내놨으니 이제 만복을 받으셔야죠 ' 그게 무슨 소용있어 '
기자는 또 한번 어리둥절했다
다시 태어나신다면? ' 어디서? 한국에서? 에, 한국?
나 한국에서 태어나기 싫어 영국쯤에서 태어나서 문학 할거야'
그 사람 어디가 그렇게 좋았어요? ' 1000억이 그 사람 시 한 줄만 못해 다시 태어나면 나도 시 쓸 거야 '
이번엔 내가 어리둥절했다
사랑을 간직하는데 시밖에 없다는 말에 시 쓰는 내가 어리둥절했다
그렇다면 백석은 김영한을 얼마나 사랑했을까? 다음 시는 자야를 향한 백석의 사랑이 얼마나 절절한 것이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燒酒를 마신다 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리 없다 언제 벌써 내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힌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길이 끊기는 곳에서 되돌아 나와 입구 왼쪽에 있던 지장전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곳은 길상사에서 가장 현대적이며 가장 밝은 곳이다. 지장전에는 도서관과 식당이 있다. 도서관에 올라가니 많은 이들이 불교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고 있었다. 다들 수행하는 스님 같다. 1층 식당 정원에는 작은 연못이 있고 개나리처럼 노랗고 작은 연꽃이 총총히 피어 있었다. 식당은 12시경부터 점심 공양을 할 수 있다. 불자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사찰로서 고고함보다 대중과 함께 숨쉬고 대중들이 편히 쉬어 갈 수 있는 공간을 주창한 법정 스님의 뜻인가 보다.
길상사 가까운 곳에 간송미술관과 최순우 옛집, 한용운 시인의 고택인 심우장, 조지훈 옛집 등이 있다. 성북동의 신비를 느끼고 싶다면 길상사길(북악스카이웨이와 만나는 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겠다.
길상사에서 삼청동쪽으로 내려가면 분위기 좋은 카페와 음식점들이 많다.
숲이 우거진 길상사는 그늘에 잠긴 듯 잠잠하다. 찻길 바로 옆에 있다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고요한 이유도 하늘을 덮는 나무들 때문이 아닌가 싶다. 사찰이라기 보다 소박하고 운치있는 쉼터라고 하면 훨씬 더 어울릴 것 같은 그곳. 두 남녀의 슬픈 사랑이 꽃으로 피어난 길상사를 찾아 지친 몸과 마음을 쉬게 해 보자.
첫댓글 길상사 사진도 좀 올리시지요...
진솔함. 오랜만에 맛봅니다.
황진이와 서화담의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글 재밌게 잘 읽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