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우크라이나 교황대사 비스발다스 쿨보카스 대주교 (중앙)
교회
우크라 전쟁 2년... 쿨보카스 대주교 “2년간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었지만 언제나 희망을 품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2년째인 2월 24일, 주우크라이나 교황대사 비스발다스 쿨보카스 대주교가 우크라이나의 생생한 상황을 전했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인도주의 지원 덕분에 살아가고 있지만, 수백만 명의 어린이는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다. 사제들과 자원봉사자들은 인도주의 구호품 전달을 위한 물류 수송망을 구축하고 있으며, 주교들도 구호품 보급의 최전선에 있다.
Alessandro De Carolis
두려움이 이어지나 믿음도 이어진다. 가끔씩 숨을 쉴 수 있다는 “은총”을 느끼며 언제나 팔을 걷어붙이고 일하지만 “21세기에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야 하는 피로감도 느낀다. 지난 2년간의 전쟁으로 무너진 세상에서 분주하게 움직이지만 주교로서도 이 비극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들과는 거의 대화할 수 없다는 피로감은 마치 우리가 서로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처럼 끔찍한 대조를 이룬다. 주우크라이나 교황대사 비스발다스 쿨보카스 대주교가 「바티칸 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평화의 빛이 보이지 않는 터널 안에서 죽음과 파괴에도 불구하고 지난 2년 동안 살아남은 우크라이나의 정서, 절박함, 고통에 대해 말했다.
이하 비스발다스 쿨보카스 대주교와의 일문일답:
대주교님, 러시아의 침략이 시작된 지 2년이 지난 지금, 우크라이나의 현재 상황은 어떤가요?
“우크라이나의 현재 상황은 분명히 큰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전쟁 포로 생존자로 고국으로 돌아온 이들의 전언에 따르면 수천 명의 우크라이나 출신 전쟁 포로들이 비인간적인 환경에서 살아가며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귀향 병사들, 부모나 법적 보호자와 헤어져 지낼 수밖에 없는 아이들을 위한 기도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 사람들이 지옥 같은 삶을 살고 있고 아주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들을 도울 방법이 기도 외엔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최전선에 가까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노인이나 가난한 이들로, 다른 곳에서 직업을 구할 엄두를 내지 못하거나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이들입니다. 또한 이들은 물과 빵을 포함한 인도주의 지원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습니다. 다른 현재 상황을 말씀드리자면 사제, 자선활동가, 자원봉사자들로 꾸려진 전체 네트워크가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물류 수송망을 구축하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르키우, 드니프로, 폴타바, 자포리자, 헤르손 등 동부지역의 청소년 수백만 명은 감염병의 세계적 확산이 시작된 이래로 학교에 가지 못했고, 최대 4년 동안 온라인으로만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일부 도시에선 잦은 폭격을 피해 지하 학교를 짓고 있습니다. 키이우에 있는 우리 교황청 대사관의 현지 조력자들은 잦은 공습 경보로 몇 시간씩 방공호로 대피해야 하기에 매일 그들의 출근 여부를 확인하기가 어렵습니다. 저는 지난 2년간의 전쟁을 통해 개인적으로 이 같은 경험을 함께 겪지 않은 이들과 솔직한 대화를 나눈다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대화의 주제와 우선순위가 완전히 다른, 서로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전쟁 중 사망자와 부상자, 수백만 명의 실향민과 난민에 대한 이야기는 말할 것도 없고요.”
전투가 치열한 키이우와 우크라이나 서부지역의 상황은 어떤가요?
“헤르손, 하르키우 등 최전선 인근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죽음을 직접 눈으로 보는 데 익숙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강력한 대공 방어 시스템의 ‘혜택’을 받고 있는 키이우는 미사일과 드론 공격이 매일 일어나지 않기에 좀 더 나은 상황입니다. 이틀에 한 번이라도 쉴 수 있다는 게 은총입니다. 하지만 최전선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성당에 가거나, 음식을 구하거나, 기타 긴급한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이동하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야 합니다. 며칠 전 헤르손의 한 가톨릭 신부님에게 ‘무엇이 가장 그리운가요?’라고 물었습니다. ‘적어도 몇 시간 동안 조용히 걷고 잠을 자는 침묵의 시간이 그립다’고 대답하더군요.”
전선에서 돌아온 군인들이 들려주는 체험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저는 전투의 최전선에서 가장 격렬한 순간에도 기도하며 신앙 체험을 했다는 몇몇 군인들의 이야기에 여러 번 감동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군인이 누구인지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곧, 대학 강사부터 신기술 전문가, 연극 예술가부터 사업가를 포함한 이들 모두가 군인입니다. 이들 중 일부는 저조차도 자극이 되는 믿음을 보여줬습니다. 저는 이런 신앙 나눔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폭격 속에서도, 참호 속에서도, 반격 중에도 저는 끊임없이 기도했고 예수님께서 제 곁에 함께 계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방에서 총알이 귓전을 스쳐 지나가고 지뢰가 폭발했지만 저는 살아남았습니다.’ 저를 놀라게 한 또 다른 유형의 신앙 나눔은 여전히 심적으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전쟁 포로 생존자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의 증거는 말로 표현할 수 없고, 가능한 한 그들이 직접 이 이야기를 전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분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 외교적 해법의 실마리가 보이시는지요?
“제 생각이 틀리길 바랍니다만, 개인적인 생각으론 현재로서는 희망의 빛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으로 모든 것이 순식간에 바뀔 수도 있으니 우리는 자비로우신 주님께 큰 신뢰로 기도해야 합니다. 어쨌든 전쟁 종식을 위한 가장 꾸준한 시도는 어느 쪽에도 완전히 동조하지 않은 국가와 국제기구에서 나온다는 점을 강조해야 합니다.”
교회는 우크라이나 주민을 지원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해오고 있나요?
“교회의 지원은 영적인 관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21세기에 어떻게 그런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이러한 치열한 전쟁은 사람들 사이에서 의혹을 불러 일으킵니다. 영적 측면은 특히 최전선에 있는 군인들과 전쟁 포로들에게 중요합니다. 그들에게 기도는 거의 유일한 희망의 빛입니다. 특히 교회와 교황청이 일련의 프로젝트를 전개하지만 항상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이들은 ‘교황님의 말씀 한 마디’만으로도 난관을 타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특정 인도주의 사업이 즉각적인 결실을 맺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교회의 또 다른 활동 분야는 물론 인도주의 지원입니다. 이 분야에서는 교황청 애덕봉사부(교황자선소)와 교황청 온전한인간발전촉진부를 비롯한 교황청 기구는 물론 국제 자선단체와 가톨릭 및 비가톨릭 지역 교회가 모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유아 교육 부문이 있습니다. 대공 대피소를 유치원을 위한 장소로 제공하는 본당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족과 젊은이들에게 의료적, 정신적 지원을 제공하는 카리타스와 동방 교회의 교구 등이 있습니다. 가끔 주교님들이 직접 구호품과 식량을 나눠주는 모습을 볼 때도 있습니다. 그 주교님들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일손이 부족하기 때문에 팔을 걷어붙입니다.”
번역 박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