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홍윤숙
세탁소 이발소 미장원 양복점
도장포 지물포 문방구 철물점
한식 일식 고급 양식에 중화요리점
없는 게 없습니다 우리 동네엔
하루 종일 유리창 하나 가득 웃음을 파는
사내의 얼굴이 무성 영화 시대의 활동사진 같은
사진관 앞을 지나 약국을 지나
헐었다 지었다 헐었다 지었다
집짓기 놀이하는 교회당을 지나
내가 사는 골목 바람 속에 들어서면
헐어 빠진 구멍가게
시금치 몇 다발 알사탕 몇 개
시들시들 꿈을 앓던 그 모퉁이
흙과 해가 놀던 자리
오늘은 덩그렇게 빌딩이 서고
빌딩 창구마다 H은행 개업 축하
꽃다발로 밀리더니
어느 날 최신형 슈퍼마켓이
총천연색으로 들어앉았습니다.
나의 손목시계는 '여기서 언제나 저녁 여섯 시'
멎어 버린 시계 속엔 황금빛 해바라기
일각 대문집
치렁치렁 우물물 푸는 소리
퐁퐁 들립니다 맨드라미밭에.
해 설
[개관 정리]
◆ 성격 : 회상적, 문명비판적
◆ 표현 : 대립적인 공간을 통한 정서의 표출(낯선 현대적 풍경 ↔ 소박한 과거의 풍경)
도치법을 사용하여 사라져 가는 옛 풍경들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함.
일상적인 풍경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속도감 있게 표현함.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1~3행 → 우리 동네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제시함.
* 유리창 하나 가득 웃음을 파는 → 사진관에 걸린 사진의 모습
* 활동사진 → '영화'의 옛날 용어
* 헐었다 지었다 헐었다 지었다 → 개발의 흔적
* 헐어 빠진 구멍가게 ~ 흙과 해가 놀던 자리 → 초라하지만 유년의 꿈을 간직한 공간
* 오늘은 덩그렇게 ~ 총천연색으로 들어앉았습니다. → 개발로 인해 달라진
우리 동네의 모습
* '여기서 언제나 저녁 여섯 시' → 시적 화자의 마음은 과거의 동네에 머물러 있음.
* 일각 대문 → 대문간이 따로 없이 양쪽에 기둥을 하나씩 세워서 문짝을 단 대문
* 퐁퐁 들립니다 맨드라미밭에 → 아쉬움을 나타냄. 도치법
* 멎어 버린 시계 속엔 ~ 맨드라미밭에 → 소박한 과거의 풍경을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이미지로 제시하여 그리움과 서러움, 정겨움이라는 다양한 정서를 표출함.
◆ 화자 : 유년의 추억에 젖은 이('나')
◆ 주제 : 개발로 사라져 가는 옛 풍경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
[시상의 흐름(짜임)]
◆ 1 ~ 4행 : 우리 동네의 모습
◆ 5 ~ 14행 : '나'의 어릴 적 추억이 깃든 우리 동네의 옛 풍경들
◆ 15 ~ 19행 : 현대적인 풍경들로 빠르게 바뀌어 가는 동네의 모습
◆ 20 ~ 24행 : 어릴 적 풍경들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에서 배경으로 등장하는 '우리 동네'는 시적 화자의 어릴 적 추억이 깃든 공간이다. 시적 화자는 어릴 적 추억의 공간이었던 '우리 동네'의 친근한 모습이 낯설고 현대적인 풍경으로 바뀌어 가고 있음을 안타까워한다.
[작가소개]
홍윤숙(洪允淑) : 시인
출생 : 1925. 8. 19. 평안북도 정주
사망 : 2015. 10. 12.
가족 : 딸 양주혜
학력 : 서울대학교 교육학 중퇴
데뷔 : 1947년 문예신보 '가을' 발표
수상 : 2012년 제4회 구상문학상 본상
2002년 제16회 춘강상 예술부문
경력 : 한국여성문학인회 고문
작품 : 도서 66건
해방 이후 『여사시집』·『일상의 시계소리』·『경의선 보통열차』 등을 저술한 시인.
저작 : 여사시집, 장식론, 타관의 햇살, 하지제
경력 :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 한국여류문학인 회장, 한국시인협회 회장
관련사건 : 태평양전쟁, 한국전쟁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 현대
성격 : 시인
성별 : 여
<정의>
해방 이후 『여사시집』·『일상의 시계소리』·『경의선 보통열차』 등을 저술한 시인.
<생애 및 활동사항>
호는 여사(麗史)이다. 1925년 8월 19일 황해도 연백에서 출생하였고, 서울로 이주하여 동덕여자사범학교와 경성여자사범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교육학과에서 수학하였으나 한국전쟁으로 중퇴하였다. 1947년 『문예신보』에 「가을」을 발표하였고, 195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원정(園丁)」이 당선되었다. 1962년 첫 시집 『여사시집』은 부산 피난 당시 스승이 지어준 여사(麗史)라는 이름으로 출간하였다. 초기시들은 한국전쟁의 역사현실에서 시인의 의지를 최대한 발휘하여 전쟁의 폐허를 두고 쓴 것이다. 감상성 짙은 여성시인들의 정서를 답습하지 않았으며 시인의 의지를 살려낸다. 비록 전쟁이 있었지만 새롭게 재건될 믿음을 놓지 않는 강인한 생명의지를 볼 수 있다.
그의 시적 세계는 역사의 질곡을 꽃과 나무에 비유한다. 어떤 시련이 있더라도 이겨내고 반드시 꽃과 잎을 피우는 나무처럼 내면의 생명력을 지속하는 의지의 표현이다. 1987년 『나의 삶 나의 문학』에서 시인은 “결국 내가 시를 쓰는 것은 그 숱한 현실의 비시적 불행의식, 결핍감, 고독과 같은 고통들을 극복하기 위해서였으며 시를 쓰는 작업을 통해 무의미하고 허망한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 것이다.” 라고 밝혔다.
특히 시인은 태평양전쟁과 한국전쟁에 크게 영향을 받고 역사의식을 반영한 시를 쓰게 된다. 여성시인으로서의 삶의 회한은 어머니의 생체험과 관련하여 어린 시절부터 크게 자리잡았다. 여성의 나이듦에 대한 성찰이 담긴 「장식론」 연작시에서 늙어가는 쓸쓸함과, 열정과 꿈이 사라지며, 인간의 관계가 변화하면서, 드디어 장식을 벗어나는 과정까지 묘사한다.
여성성이 사라지는 것을 부인하지 않으면서, 젊음을 잃은 것 못지않게 여성은 나이를 먹으며 절대 고독 속에서 충만한 자기 내면과 만나게 됨을 표현한다. 이후 『일상의 시계소리』와 『타관의 햇살』, 『하지제』 등에서 인간의 근원적인 불안감과 그 개별적인 존재들의 실존에 대한 사유로 들어선다. 3·1만세운동으로 고통을 겪다 돌아가신 조부, 파산한 가문을 운명으로 알고 가족을 책임지며 가장이 되어야 하였던 아버지, 2차대전, 태평양전쟁, 또 한국전쟁으로 청춘의 꽃이 어디 피었는지 몰랐던 전쟁시절을 통과한 시인에게 존재한다는 것은 상처투성이 그 자체였다. 『경의선 보통열차』 등 후기시집으로 오면 개인의 생체험을 추억하는 작품 속에서 역사 흐름에 놓인 사소한 개인들의 삶의 명암을 그려놓는다. 선과 악을 명확하게 대비해둔 역사의 물줄기 아래 선을 행하고도 비참한 현실에 놓였던 평범한 사람들을 시적 화자로 호출해 놓고 그들만의 역사를 써낸 것이다. 김명순, 노천명, 모윤숙으로 이어지는 여성 시인의 계보에서 1950년대 여성시의 위상을 강화한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1970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 1984~1986년 한국여류문학인 회장, 1990~1992년 한국시인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상훈과 추모1975년 한국시인협회상을 시작으로 하여 1985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1993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1994년 보관문화훈장, 1995년 서울시 문화상과 제4회 공초문학상, 1997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2012년 제4회 구상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참고문헌>
「홍윤숙 시 연구」(손미영,『한민족어문학』 74권,한민족어문학회,2016)「홍윤숙 시인의 삶과 시정신」(엄경희,『숭실어문』,2001)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홍윤숙(洪允淑))]
첫댓글 멈춰 버린 나의 시계
감사합니다
무공 김낙범 선생님
댓글 주심에 고맙습니다.
여름입니다. 성하의 계절에
멋진 작품 많으 지으시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