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겨울 가막골에서 42 가을 43 능소화 44 추석 45 추석 만월 46 흐린 날의 기억 48 유년 49 화순장터에서 50 해당화 52 호박죽 54 세탁기 56 있니 57 롱패딩 58 수술 전야 60 퇴원 전야 62 봄맞이
3부 그럼에도
66 코로나19 -2020 67 코로나19 -2021 68 그럼에도 69 태풍 전야 70 천둥벌거숭이 72 달력을 넘기며 74 문득 76 목탁 소리 78 봄바람 79 봄이어서 80 비 오는 날 82 석양 83 소문 84 시를 찾아서 85 북서울꿈의숲
4부 낙월도 민박집
88 제비꽃 89 보랏빛 제비꽃 90 그리운 봄날 91 벚꽃 지다 92 앗싸! 94 외출 95 영산홍 96 눈물, 혹은 노래 97 매미 소리 98 구월은 99 입동 100 십일월 101 정원의 풍경 102 이 가을 104 우회로에서 105 가을 오솔길 106 낙월도 민박집
107 해설_희망을 예감하는 삶의 기척들_마경덕(시인)
저자 소개
안규례
전남 화순 출생. 2004년 월간 [문예사조], 2005년 [문학21]로 등단하였으며 시하늘문학회 회원, 한국문인협회원이다.
책 속으로
대추나무 집
정겨운 골목길 따라 들어가면/ 드문드문 녹이 슨 철 대문 집/ 지붕 위 줄기를 말아 올린 호박꽃들/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다// 나지막이 조곤조곤 주고받는 목소리/ 밤늦도록 이어지고 아직 날이 밝기도 전/ 한 쌍의 비둘기처럼 나란히 어디를 가시는 걸까/ 바람이 들고나는 콩밭 이랑에/ 곁을 주지 않고 딱 붙어 다니신다// 이슬 내린 밭둑에 새들이 날아오르고/ 아침 해 밀고 올라오자/ 애호박 한 덩이 따 들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집으로 가는/ 저, 노부부의 그림자
엄마의 이름표
초저녁 하늘/ 뜬눈으로 불 밝힌 별 하/나 새벽으로 간다// 시계 초침 소리는/ 여전히 잠들지 못한 나에게/ 늘어진 엿가락처럼 다가오고 먼/ 인기척에도 셀 수 없이/ 가슴 쓸어내리며 지샌 밤/ 새벽은 더 가까이 와 있다// 허탈한 가슴은 눈물조차 메마르고/ 바싹 탄 입안은/ 마른침마저 돌지 않는다// 아직도 작은 아이 손에 꼭 쥔 로봇은/ 꿈인 듯 생시인 듯/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문밖의 시간을 끌어당긴다
제삿날
제사 장 보는 건 나의 일/ 과제물처럼 꼼꼼히 메모해서/ 재래시장으로 장 보러 간다/봄에 말려놓은 고사리 먼저 삶아 두고/ 깜박 잊고 잡아 둔 약속도 취소하고/ 절주도 미리 만들어 식혀둔다/ 명절이나 집안 제사가 돌아오면/ 차례상을 진설할 때마다/ 홍동백서 조율이시 어동육서/ 가르치며 책임을 주셨지/ 예뻐해 주시고 사랑 듬뿍 주셨지/ 과일을 좋아하셨으니/ 가장 크고 좋은 걸 골라야지/ 생선과 나물도 싱싱한 걸 드려야지/ 시장바구니 끌고 언덕 넘어/ 집으로 가는 길// 내일은 내 남편의 아버지를 뵙는 날
출판리뷰
*희망을 예감하는 삶의 기척들 마경덕(시인)
사물과 하나로서 언어는 ‘온갖’이며 ‘모든’을 드러내는 ‘능력’이다. 그러해서 언어는 ‘온갖’이며 ‘모든’으로 드러나는 ‘자유’다. 언어의 능력과 자유와 그 정직이 시를 확장하는 ‘가능성’이다. 위선환 시인이 자신의 시집 뒷면에 쓴 글이다. 온갖 것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은 언어를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내면이나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 본능적으로 느끼는 예감까지도 자유롭게 언어로 표현할 수 있으니 언어는 ‘모든’이며 ‘온갖’인 것이다. “멀어서 보이지 않는 적의 기척이 내 몸에 느껴지는 날들이 있었다. 적들이 수런거리는 기척은 새벽의 식은땀이나 오한처럼 내 몸속에서 살아있는 징후였다. 우수영에서는 보이지 않는 적들이 더욱 확실했다.” 소설 ‘칼의 노래’에서 이순신 장군이 “적의 기척”에 대해 느끼는 대목이다. “적의 기척”을 느낀 밤은 “새벽의 식은땀과 오한”으로 나타난다. ‘기척’은 짐작하여 알 만한 소리나 ‘기색’이기에 멀리 떨어진 “적의 기척”을 확신하는 예감조차 두려운 것이다. 시 쓰기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시의 기척”을 예감하는 일이다. 고정된 시각으로는 보이지 않는 “현실의 이면과 사유의 세계”를 보여주는 일이기에 새벽의 식은땀이나 오한처럼 내 몸에 깃든 징후들을 눈치채고 그들의 존재를 언어로 드러내는 것이다. 이때 시인에게는 ‘모든 것’과 ‘온갖 것’들을 동원할 “언어의 자유”가 주어진다. 사물들을 생소한 콘텍스트 안에 던져놓고 출구를 찾아가는 시 쓰기는 익숙한 길을 두고 낯선 길을 찾아 두려움과 맞서는 일이기에 치밀하지 않으면 주어진 자유를 상실할 수가 있다. 내밀한 감정까지 공개하는 시집은 타인과 관계를 이루며 감정을 교류하는 또 하나의 “작은 세상”이다. 자신을 평가하고 위치를 확인하는 방법 또한 타인을 통해서 이루어지기에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아닌 낯선 그 어떤 것들을 위해 시인은 심혈을 기울인다. 시각과 청각을 모두 잃어버린 ‘헬렌 켈러’는 타인의 존재에 대한 중요성에 대해 “듣지 못하는 것은 보지 못하는 것보다 더 불행하다… 왜냐하면 보지 못하는 것은 사물들로부터 나를 고립시키지만 듣지 못하는 것은 사람들로부터 나를 고립시키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파레르곤(Parergon)’은 텍스트의 바깥이면서 중심부의 영향을 받아 안으로 영향을 미치는 주변부이다. 동일한 작품도 개인의 코드에 따라 달리 해석되기도 한다. 나와는 무관한 타인은 현실과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수시로 문제에 개입하고 영향을 미치는 ‘파레르곤’인 셈이다. ‘프로이드’는 해결할 수 없는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문학창작의 과정으로 보았다. 안규례 시인도 가난했던 유년의 상처를 꺼내 보듬으며 마음을 치유하고 있다. 자신이 성장했던 환경을 서술하며 그것에 두고 온, 또는 아직 남아 있는 유년의 모습에 주목한다. 잔잔한 감흥을 일으키는 소박한 일상의 이야기는 내리사랑으로 번져가고 변함없는 부모의 사랑은 “행복의 구심체”가 되어 끈끈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 담담히 들려주는 “넉넉한 사랑”은 현대인의 메마른 ‘정서’에 단비 같은 위로가 되어준다. 시집 제목은 『눈물, 혹은 노래』이다. ‘눈물’이 변해 ‘노래’가 될 수 있고 혹은 ‘노래’가 변해 ‘눈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제목이다. ‘눈물’과 ‘노래’는 전혀 상반된 뜻을 지니고 있지만 같은 선상에 올려둔 것은 무슨 연유일까. ‘눈물’을 다듬어 ‘노래’를 만들었다는 뜻으로 읽힌다. ‘눈물’ 없이 어찌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눈물’은 ‘노래’를 위한 준비였을 것이다. 이제 ‘눈물’이 ‘노래’가 되어가는 과정을 따라가 보자.
내 어린 시절 눈 뜨면 두어 평 남짓한 방에 쪼그리고 앉아 물레를 돌리시던 어머니 노름으로 야바위로 재산을 탕진한 아버지 야반도주한 지 이태째
빚쟁이들 고성이 떠날 날 없는 나날들 재봉틀, 괘종시계 쓸 만한 살림살이 죄다 가져가도 호롱불 아래 홀로 앉아 날밤을 새우셨다
고만고만한 쌍둥이 같은 어린 자식들 잠이 들면 시렁 위 솜이불 내려다 덮어주시고 토닥토닥 두드리시며 가만히 한숨을 짓곤 하시었다
잠결에 들려오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소리 새벽닭이 홰를 치고 먼동이 터올 때까지 나는 자는 척 잠이 들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