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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산(佛岐山 600.7m)
산 행 일 : ‘20. 4. 25(토)
소 재 지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과 청평면의 경계
산행코스 : 빗고개(버스정류장)→자원순환센터→연인지맥→불기산→연인지맥→알바→임도→수리재 버스종점(소요시간 : 4시간)
함께한 사람들 : 산과 하늘
특징 : 한북연인지맥에 올라앉은 봉우리들로 깃대봉, 대금산, 불기산, 청우산이 나란히 능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산은 해발 600.7m로 나지막하지만 인적이 드물고 능선과 계곡마다 수림이 울창해 알차면서도 호젓한 산행을 즐길 수 있다.하지만 능선이 흙길에다 경사까지 가파르니 눈비가 올 경우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참고로 ‘불기산(佛岐山)’은 옛날 이곳에 절을 지으려고 절터를 다지다가 그냥 가버린 탓에 절터에 부초만 자랐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삼국시대 때 불교신자들이 산 중턱에서 살았다는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부처님처럼 솟아 오른 산' 또는 '부처님이 자리 잡은 산'이라는 뜻으로 불기산(佛起山)이라 쓰기도 한다. ‘여지도서(輿地圖書, 1757-1765년에 각 읍에서 편찬한 읍지를 모아 성책한 전국 지방지)’의 가평군 산천조에는 불기산(佛棄山)이라 쓰면서 일봉산(釖峯山)과 같이 견치산(犬齒山)에서 이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 산행들머리는 ’빗고개‘ 군내버스 정류장(가평군 가평읍 상색리 382-10)
이번에도 대중교통이 가능한 근교산을 찾았다. 2주 전 대금산 산행 때 집사람의 체력을 생각해서 생략했던 ’불기산‘을 마저 오르기 위해서이다. 이 산도 역시 경춘선 가평역에서 내리야 접근이 용이하다. 들머리인 빗고개로 가는 군내버스(73-1, 가평터미널과 청평터미널을 왕복 운행)가 가평역을 지나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반대편인 청평 쪽에서 버스를 타는 방법은 없을까? 물론 가능하다. 하지만 버스가 청평역에 들리지도 않을뿐더러 하차지점도 ’빗고개‘가 아닌 ’상색리‘라서 접근성도 많이 떨어진다. 불편을 감수해야만 한다는 얘기이다. 참! ’73-1‘번 버스도 뜸하게 운행(7:20, 8:20, 9:15, 11:05, 13:05, 14:55, 16:05, 17:45, 19:05)하는 편이니 출발 전에 미리 시간표를 체크해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 버스에서 내리면 ’빗고개‘이다. 지금은 길이 훤하게 뚫려 험한 재라는 느낌이 사라졌지만 큰길로 확장되기 전에는 꽤 알아주는 험한 고갯길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승용차로 넘으려면 가속페달 두어 번 정도는 밟아야 할 정도이다.
▼ ’가평군 자원순환센터‘ 방향으로 오르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오늘 걷게 될 코스가 ’한북연인지맥‘이니 지맥(地脈)을 거꾸로 걷는다고 보면 되겠다. 이 지맥은 반대편에 있는 주발봉과 호명산으로 연결되나 4차선 도로가 갈 길을 막고 있는 모양새이다. 중앙분리대까지 만들어놓았으니 지맥을 탐사하는 이들의 입이 한 자쯤 튀어나올 만도 하겠다. 참고로 한북연인지맥이란 한북정맥상에 있는 강씨봉과 청계산 중간 890봉(귀목봉 갈림길)에서 동쪽으로 분기하여 귀목봉(1036m)과, 명지3봉(1199m), 연인산(1068m), 우정봉(906m), 매봉(929m), 깃대봉(910m), 대금산(704m), 불기산(601m), 주발봉(489m), 호명산(632m)을 거쳐 한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산줄기를 말한다. 신산경표(저자 : 박성태)에서는 연인지맥을 명지지맥으로 분류하고 있다.
▼ 자원순환센터 조금 못미처에서 왼쪽 능선으로 들어선다. 이정표는 물론이고 그 흔한 리본 하나 매달려 있지 않으니 대충 감으로 알아차려야 한다. 아니 들머리에 세워진 ‘산 입양사업’ 안내판을 기점으로 삼으면 되겠다.
▼ 50m쯤 오르다가 송전탑 조금 못미처에서 오른편 산자락으로 파고든다. 이곳도 역시 리본은 보이지 않는다. 길의 흔적을 찾기도 쉽지 않다. 그저 능선이려니 하고 올라야만 하는 이 구간은 거칠기 짝이 없다. 길을 막는 잡목에 싸대기 두어 대쯤은 각오하고 올라야만 한다. 가시넝쿨이 없어 할퀴고 찔리지 않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다.
▼ 그렇게 10분 남짓 오르면 드디어 능선이다. 이어서 잠시 후에는 오른편 발아래에 위치한 자원순환센터가 내려다보인다. 아니 그보다는 능선에 모셔놓은 무덤이 더 눈길을 끈다. 산짐승의 피해가 많았었는지 빙 둘러서 비닐 망을 쳐놓았다.
▼ 조금 더 걷자 벌목을 끝낸 개활지(開豁地)가 나온다. 이 일대는 고사리가 많이 자라고 있었다. 집사람의 손길이 바빠질 수밖에 없는 구간이다. 우리 집안 제사상을 책임지고 있는 그녀이니 어쩌겠는가.
▼ 개활지에서의 조망은 끝내준다. 한북연인지맥을 완성시키고 있는 주발봉과 호명산은 물론이고 그 아래에 터를 잡은 상천리까지 한눈에 쏙 들어온다.
▼ 오른편 산자락에는 잣나무 숲이 널따랗게 펼쳐진다. 그러고 보니 이곳 가평은 '잣'의 고장이다. ‘가평’하면 곧바로 ‘잣’이 튀어나올 정도다. 생산량이 전국에서 가장 많고 품질도 좋기 때문일 것이다. 잣은 송자(松子)·백자(栢子)·실백(實栢)이라고도 하는데 우리나라의 특산으로 명성이 높아 예로부터 중국에까지 널리 알려졌다. 당나라 때의 ‘해약본초(海藥本草)’에는 그 생산지를 신라로 기재했고, 명나라 때의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는 아예 신라송자(新羅松子)라 칭하기도 했다.
▼ 가장 먼저 우릴 반긴 것은 ‘붓꽃’이었다. 개활지는 햇빛을 가릴 지장물들이 모두 제거된 덕분인지 꽤 많은 붓꽃이 무리지어 피어나고 있었다. 아니 정상에 오르는 동안에도 붓꽃의 군락지를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다. 참고로 붓꽃은 계손(溪蓀) 또는 수창포(水菖蒲)라고도 하는데 ‘붓꽃’이란 꽃봉오리가 벌어지기 전의 모습이 붓과 유사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참! 서양에서는 아이리스(Iris)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이리스는 여신 주노의 예의가 바른 시녀였다. 그녀는 주피터가 집요하게 사랑을 요구하자 자신의 주인을 배반할 수 없어 무지개로 변하여 주노에 대한 신의를 지켰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그런 때문인지 이 꽃은 여름을 재촉하는 봄비가 촉촉하게 내리거나, 이른 아침 이슬을 머금고 함초롬히 피어오를 때 가장 아름답다. 꽃말도 비 내린 뒤에 보는 무지개처럼 '기쁜 소식'이다.
▼ 잠시 후 산길은 숲속으로 들어선다. 숲은 이제 완연한 연록이다. 2주 전 대금산을 찾았을 때보다 훨씬 더 짙어졌다. 하긴 봄비가 내려 온갖 곡식을 기름지게 한다는 곡우(穀雨)가 바로 지난 일요일이 아니었던가.
▼ 능선의 오른편은 출입을 금하고 있었다. 산나물 채취 금지라고 적혀있는데 CCTV까지 설치되어 있다는 걸 보면 약용식물을 재배하고 있나보다.
▼ 조금씩 가팔라지던 산길이 언제부턴가 ‘코에서 흙냄새가 난다’는 말이 실감 날 정도로 날카롭게 곧추서 버렸다. 곧장 위로 오르지를 못하고 왔다갔다 ‘갈 지(之)’자를 쓰고 나서야 위로 오를 수 있을 정도이다.
▼ 어른들도 버거울 정도이니 아이들에게는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최군의 두 아들인 민상이와 동규의 얼굴 표정에서도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그나저나 걱정이다. 어찌된 일인지 저 아이들만 오면 어김없이 길을 잘못 들어 고생했기 때문이다. 오늘은 제발 그런 일이 안 일어나길 빌어볼 따름이다.
▼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 20분 만에 ‘능선 삼거리’에 올라섰다. 오른편은 서울시 학생교육원‘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정상은 물론 왼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이를 알리는 말뚝 모양의 이정표도 세워져 있다. 하지만 너무 오래된 탓에 글씨가 모두 지워져버렸다.
▼ 이후부터는 여유로운 산행이 이어진다. 경사가 완만한데다 낙엽까지 수북하게 쌓여 폭신폭신한 것이 걷기에 여간 좋은 게 아니다.
▼ 벙커가 보이는 걸 보면 이곳 불기산도 한때는 군의 주요 경계지역이었나 보다.
▼ 그렇게 10분 조금 못되게 걷자 드디어 불기산 정상이다. 대여섯 평 남짓한 공터로 이루어진 정상의 한가운데에는 굴뚝 모양의 시설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옛날 군의 벙커라도 있었나 보다. 말뚝처럼 생긴 석제 정상석은 굴뚝 앞에 세워놓았다. 이정표를 겸한 정상목도 보인다.
▼ 이정표는 본래의 기능을 거의 상실하고 있는 상태다. 글자판이 대부분 지워졌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매직으로 복원시켜 놓았지만 오른편은 그마저도 틀렸다. ‘학생교육원 2.9㎞’를 ‘산림조합 2.1㎞’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 측량의 기준이 되는 삼각점(일동 315)도 설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높이를 601m로 적어놓았다. 사사오입을 한 모양이다.
▼ 정상 근처 진달래는 이제야 만개했다. 비옥하고 아늑한 좋은 땅은 우악스런 경쟁자들에게 모두 빼앗기고 생존의 극한 상황인 산꼭대기로 쫓겨나다보니 영양실조에라도 걸렸는지 모르겠다. 누군가는 진달래를 나무나라의 가난한 백성이라고 했다. 바위가 부스러져 갓 흙이 된 척박하고 건조한 땅, 소나무마저 이사 가고 내버린 땅을 찾아 산꼭대기로 올라왔다는 것이다. 그래 맞는 말이다.
▼ 한북연인지맥의 대금산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부드러운 육산(肉山)이지만 바닥이 바위로 된 곳도 심심찮게 나온다. 앞서가던 최군이 그게 부담스러웠던가 보다. 스틱을 꺼내 아이들에게 쥐어주는 걸 보면 말이다.
▼ 10분 조금 못되게 진행하자 이정표(두밀리→ 2.4㎞/ 샘말 쉼터← 1.7㎞/ 불기산↓ 300m)가 세워진 삼거리가 나온다. 한북연인지맥은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흐른다. 하지만 이정표는 지맥에 솟아오른 대금산이라는 지명 대신 능선에서 벗어나있는 ‘두밀리’로 적고 있다. 이정표라는 게 본디 등산객들을 위한 시설임을 감안하면 대금산을 병기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 두밀리 방향으로 내려서면서 본격적인 하산이 시작된다. 길은 시작부터 가파르다. 아니 엄청나게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갈 지(之)’자를 써야만 겨우 내려설 수 있는 것이다. 아니 이곳은 폭까지 좁아 ‘갈 지(之)’자의 효과마저도 반감되고 있다.
▼ 두밀리 방향에도 벙커가 여러 곳에 만들어져 있었다. 어느 선답자는 후기에서 ‘벙커봉’이란 지명을 붙이면서 각 봉우리를 1, 2, 3으로 구분하고 있었는데 그의 마음이 이제야 이해가 간다.
▼ 그렇다고 계속해서 가파른 것만은 아니다. 아래 사진과 같이 완만한 구간도 있다.
▼ 그렇게 200m쯤 더 내려서자 글씨가 다 지워진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그게 안타까웠던지 누군가가 ‘불기산 500m’라고 표기해 놓았다. 대금산 방향은 그마저도 보이지 않는다. 원래는 ‘두밀리 2.2㎞, 상천리(수리재) 3.1㎞’라는 표식이 적혀있던 공간이다.
▼ 또 다시 가파른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아니 아까보다 조금 더 가팔라졌다.
▼ 혹이 주렁주렁 달린 참나무가 보여 카메라에 담아봤다.
▼ 가파른 내리막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작은 오름이 나오는가 하면 그 끝에는 봉우리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몸의 중심을 잡기조차 힘들 정도로 가파른 내리막길의 연속이다. 만일 스틱을 챙겨오지 않았더라면 고생깨나 했을 것 같다.
▼ 능선을 따르다가 잣나무 군락을 다시 만났다. 이왕에 들른 잣의 고장이니 이번에는 잣의 효능에 대해 알아보자. 잣에는 지방유가 약 74% 정도 들어 있고 그 주성분은 올레인산·리놀렌산이다. 오래 먹으면 장의 유동운동을 촉진시키면서 배변을 용이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또한, 마른기침을 하는 사람이 복용하면 폐의 기능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기운이 없을 때 먹으면 기운이 소생하며, 피부가 윤택하여지고 탄력을 얻게 되므로 미용에도 좋다. 그러나 민간에서는 약용보다는 식용으로 주로 쓰여 왔다. 각종 음식에 고명으로 들어가며 죽을 끓여 먹기도 한다. 또, 정월 보름날에는 잣을 열두 개 준비하여 불을 붙여 한 해의 운수를 점치는 민속도 있다.
▼ 하지만 이 부근에서 우린 길을 잘못 들어버렸다. 한참을 내려왔는데 길이 끊겨버린 것이다. 아니 길이 아닌 곳으로 내려왔다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일 수도 있겠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가팔랐던 내리막은 다 그런 때문이었을 게고 말이다. 아무튼 우린 내려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었던 가파른 길을 다시 올라갈 일에 한숨만 쉬고 있는데 이때 리딩을 맡은 최군이 구세주가 되어 주었다. 혼자서 좌우를 헤집고 다니면서 길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안내산악회의 산행대장을 역임했던 배태랑 산꾼다운 능력이었다.
▼ 한참을 헤매다가 겨우 찾아낸 산길, 이곳도 일 년에 한두 명이나 다닌 탓인지 길의 흔적을 찾기가 만만찮다. 그 흔한 산악회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좋은 점도 있었다. 인적이 끊긴 덕분에 다래와 고춧잎나물이 지천이었던 것이다. ‘엎어진 김에 쉬어가라’라고 우린 이곳에서 산나물을 뜯기로 했다. 그리고 꽤 많은 양을 채취할 수 있었다.
▼ 집사람이 산나물을 뜯는 동안 나와 최군은 캔맥주로 시간을 때웠다. 이때 눈에 들어 온 것이 금낭화이다. 금낭화는 아치형으로 활대처럼 곧게 뻗은 꽃대에 아이들 복주머니 모양의 진분홍색 꽃들이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꽃이다. 꽃 모양이 옛날 며느리들이 차고 다니는 주머니를 닮았다 하여 ‘며느리주머니’라고도 부른다.
▼ 계곡을 빠져나오자 널따란 경작지가 나온다. 아니 지금은 이름 모를 나무들로 그 주인이 바뀌어 있다. 통상적인 밭작물로는 채산성이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 묵밭에서 내려서니 임도다. 길가에 ‘불기산’ 정상에서 2㎞쯤 되는 지점이라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수리재’로 연결되는 임도인 모양이다. 아까 능선에서 길을 잘못 들지 않았더라면 이 길로 편하게 내려왔었을 것이다. 하지만 산나물은 뜯지 못했을 것이니 이런 걸 두고 ‘인생지사 새옹지마(人生之事 塞翁之馬)’라 하지 않을까 싶다. 참고로 아득한 옛날 세상이 홍수로 범람했을 때 물이 넘쳐흘렀다는 고개가 ‘수리재’이다. 그게 사람들에게 물의 이치를 알 수 있게 해주었다나? 그 고개 밑에 있다고 해서 마을 이름도 ‘수리재’라고 불린단다.
▼ 이젠 임도를 따라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왼편은 길이 3.1㎞의 지방하천인 ‘수리천’이 흐르지만 물기는 한 점도 없다. 주변 풍경도 산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렇고 그런 것들뿐이다.
▼ 날머리는 수리재(가평군 청평면 상천리 1567)
임도에 내려선지 20분쯤이면 ‘수리재(상천3리)’ 마을에 닿는다. 참! 실제 상황을 얘기해보자. 이때 까지만 해도 우리 일행은 ‘두밀리’로 내려온 줄로만 알고 있었다. 이제나저제나 두밀리 마을이 나오기만 기다리며 걷는데 난데없이 ‘수리재 마을’의 버스 종점이 나타났으니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특히 독도법을 완벽하게 터득하고 있는 최군으로서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였을 것이다. 아무튼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어디서 정규 탐방로를 벗어났었는지를 짐작조차 못한다. 그저 잣나무 군락지 근처가 아니었을까 추측해볼 따름이다. 직전 이정표에서 조금만 더 걸으면 나온다는 헬기장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오늘 산행은 4시간 50분이 걸렸다. 간식을 먹느라 정상에서 쉬었던 시간을 감안한다면 4시간을 걸은 셈이다. 하지만 산나물을 뜯느라 발걸음은 더뎠고, 가끔은 멈추기까지 했으니 소요시간에 의미를 둘 필요는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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