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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석 그는 누구인가?
항상 태극기 집회 때면 가장 먼저 달려나와 가장 먼저 태극기를 들고 가장 먼저 모금함을 돌리며 가장 먼저 나라 사랑하는 마음과 위기 의식을 느끼는 사람들의 개인정보를 가져간 사람이다. 그는 젊은 시절 좌파 운동에 몸을 바쳤고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기에 가장 먼저 앞장 섰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가장 먼저 돌아서며 우익에서 나름 자리 매김을 했다. 그에게 진정성이 있는가? 참으로 의심스럽다. 갔다 온 좌파 서경석 목사 그러나 과연 갔다 온 것일까? 진짜로? 의심이 되는 행동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서경석 부인 신혜수 뭐 이건 인터넷 찾아보면 금방 나오는 이야기고 ...
그의 부인은 인권운동가이다. 그리고 그의 부인은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 대표이며 세계 여성 인권 운동가로 좌파 사상으로 점철된 사람이다. 그런 자의 남편이 우익의 리더이다. 서경석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진짜 참 모습은 여기에 있다.
서경석은 조계종의 유명한 도법 (실천승가회 출신)과 이수호 (전교조 위원장 경력과 현재 전태일 재단 이사장) 이사람들과 진보 보수 진실 화해란 모임을 추진하였다. 참 못마땅하기는 하였지만 화해라니까 ... 그냥 일단 넘기고...
그런데 당시 한창 이슈가 되는 국정 교과서 문제로 토론회를 하기로 했다. 도법은 기가 차지만 스스로 중도 보수를 자처하고 이수호는 진보라고 하고 서경석은 보수라고 하였다. 이게 도대체 말인지 된장인지 어이가 없지만 ... 암튼 토론회가 시작 되었는데 더 어이가 없는 일이 벌어졌다.
토론회에 나온 보수 진영의 패널이 윤여준이다. 윤여준은 중도좌에 가까운 사람이다. 아니 사상은 사회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약간의 유연성을 갖고 자유주의 이념을 필요한 부분 수용할 뿐이다. 그런데 진보 보수 진실 화해라고 해놓고 조계사 대강당에서 토론회가 벌여졌고 꽤 인원이 될 만한 젊은 청중들이 있었다. 어찌 보면 제대로 된 패널만 앉혀놓으면 한번 붙어볼 만한 역사 토론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기자들도 꽤 왔다 그러나 전혀 제대로 된 우익의 가치를 전달할 패널은 없었다. 마치 이건 손발 묶어 놓고 강간 당하는 기분이었다. 어떻게 이런 자리를 만들 수 있단 말인가 도법에게 심하게 항의했다. “윤여준이 보수인가 어떻게 저런 사람을 불러다 놓고 우익의 가치를 논하는가요” 도법은 시끄럽게구니 한쪽으로 끌고가 조용히 이런다. “나한테 말하지마 너네 대장인 서경석이 데리고 온거여” 정말 피가 거꾸로 솟을거 같고 그 답답함은 이루 말을 할 수가 없다. 다음은 한국일보에서 나온 그날의 기사 중 윤여준 발언이다. 좌파들이야 뻔한 논리로 나올 것이고 윤여준의 이 발언이 우익을 대변했고 우익에서도 반대하는 국정 교과서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어이가 없다.
보수쪽 토론자로 초청된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대통령이 갈등을 조정하기보다는 제압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민주적이거나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박 대통령이 ‘확고한 국가관’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건 제가 3공 때 듣던 단어로 그 내용이 무엇인지 의문”이라며 “ 국정화를 하지 않으면 북한의 사상적 지배를 받을 것이라는 말이 북한식 김일성주의에 물들 것이라는 뜻이라면 국민의 지적 수준을 과소평가하는 태도”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서경석 목사는 한시적 국정화를 주장하며 “현 교과서가 지나친 좌편향이라 5년간 국정교과서를 만든 후 다시 검인정 교과서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본다”며 “학계가 만드는 대안교과서 제작 시도가 상당히 중요하며 정부가 여기에도 예산을 배정해 누가 더 좋은 교과서를 만드는지 의미 있는 경쟁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 전 장관은 “독점은 자유민주주의 기본 질서에 어긋나는 것이지만 지금 벌어지는 교과서 논쟁은 실제로는 역사의식 경쟁이라기보다는 실존적 정치투쟁이라 이미 사생결단의 싸움이 돼 버렸다”며 “정치권이나 정부가 양보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인 만큼 상식적, 생산적 논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소통, 사회적 합의를 구하자면 누구라도 자신의 생각을 절대화해서는 안 된다”며 “자신은 절대선, 타인은 절대악이라는 구도 속에서는 타협이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http://www.hankookilbo.com/v/1c936e6cc53a4d06bd12995cd933f56f
이걸 우리쪽 주장이라고 나불거렸으니 나참 기가 차다 어이가 없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이후 서경석은 도법 이수호와 각종 집회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언론에 노출되니 본인으로서는 아주 기쁜(?)일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조선족을 사역의 대상으로 삼고 조선족 대한민국 국적 취득하기 위한 각종 시민 운동을 전개한다. 조선족의 신분도 불확실한 사람들을 무턱대고 동포라 받아들이고 친중 노선을 걷겠다고 한다면 이는 국익에 반하는 일이다.
“사람들이 처음엔 저를 위장보수 아니냐고 의심하더니 지금은 극우(極右)라고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진보주의자입니다. 저는 평생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 편에 있었거든요.”
다시 진보이고 싶은 게 아니라 원래 진보였다는 말이다. 학생운동 시절 독재와 싸웠고, 1979년과 80년 사이 YH사건과 동일방직 사건으로 두 번 투옥됐다가 풀려났다. 1989년 경실련(경제정의실천시민운동연합)을 창립해 ‘경제정의’ 운동을 시작했고, ‘우리민족 서로돕기 운동’으로 북한동포를 도왔다. ‘서울조선족교회’도 세웠다. 그의 말이다.
“지금 우리는 보수와 진보의 구분이 아주 잘못된 사회에서 살고 있어요. 압제자 김정은 편을 들고, 귀족노조 편을 드는 것이 마치 진보인 양 간주되고 있어요. 진짜 진보라면 김정은 편에 서지 않고 억눌림당하는 북한동포의 편에 서야 합니다. 무엇이 기득권이고 무엇이 개혁인가를 가려 우리 사회의 ‘참진보’가 무엇인지 보여줄 겁니다.”
서 목사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최근까지 저는 정부의 재개발 정책 실패를 열심히 지적했습니다. 그것을 보고 김포 한강신도시 건설 과정에서 쫓겨나게 된 교회 목사들이 찾아와 도움을 청했어요. 저는 교회를 잃은 목사들과 함께 서울시청과 서울역 앞에 드러누웠습니다. 도로교통법 위반과 집시법 위반으로 2번이나 체포당했고, 2번 벌금형을 받았습니다. 원주민 85%가 쫓겨나는 현행 재개발 대신 원주민 위주로 정책을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죠. 그런데 언론은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어요.”
이런 그가 항시 우익에 오면 제일 먼저 태극기를 든다 그리고 돈통을 돌려댄다. 우익의 가치를 희석시키고 대중에게 메시지가 전달도 못하는 그가 우익을 이끌고 전부 다른 곳으로 들어간다.
요즘도 마찬가지다. 교추본(좋은 교육감 추대 본부)를 만든 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장사를 하기 위한 허공의 손짓이다. 이런자들을 태극기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면 그 다음은 무덤으로 갈 일 밖에 없는 것이다.
또 이런 자들 뒤에 따라다니는 태극기 세력들은 대체로가 대한민국 자유 민주주의 가치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각 지역 단위에 장을 시켜 준다는 미친 듯이 쫓아다니는 사람들 때문에 우리 대통령은 감옥으로 가고 대한민국은 패망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깨달음이 있다면 그리고 당장 나라를 위해서 새나라 한국과 교추본은 해체해야 한다고 본다.
DJ와 JP의 연합은 DJ에게는 훌륭한 지도자라는 찬사가 주어지지만 JP에게는 처세의 달인 정치 생명 연장의 모략가라는 평가가 붙는다. 왜 그런가? DJ는 대승적 목표 자신의 조직과 자신이 염원했던 사회주의의로 가기 위한 하나의 방안이었지만 JP는 오로지 자신의 안위만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래서 영원한 종이었고 대한민국의 불행이었다. 군사 혁명의 주도자였고 중앙정보부장까지 했던 그에게 국민의 안녕과 자유대한민국의 이념은 없었기 때문에 그는 그냥 노쇠한 정치인의 하나였다. 그리고 그가 이 땅의 우익에게 남겨준 정신은 “ 9월은 9월의 논리가 있고 10월은 10월의 논리가 있다”
정치인이 되려는 많은 사람들은 이 말을 금과옥조로 삼으며 자신의 정치행보에 도영하여 쓰고 있다. 그런 또 다른 정치인이 교육에도 뛰어 들어 망치려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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