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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0. 묵상글 (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 영적으로 성숙한 기도.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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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0.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
- 영적으로 성숙한 기도
잘 아시다시피 오늘 축일로 지내는 교회의 어머니 마리아 축일은
2018년 처음 축일로 지내기 시작한 축일이고 이동 축일입니다.
곧 어느 한 날로 축일이 정해져 있지 않고 성령 강림 대축일
다음 날 지내게 되어있는 축일입니다.
그러니 이 축일은 성령과 마리아 사이에,
또는 성령 강림과 마리아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다는 말입니다.
어떤 관계일까요?
이 축일 독서로 창세기 뱀과 하와 얘기를 우리는 듣습니다.
하와는 뱀의 유혹에 넘어가 그 자손인 우리에게 원죄를 안긴 어머니입니다.
여기서 뱀은 성령과 반대되는 악령이지요.
이에 비해 마리아는 성령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고 낳으심으로써
그 영적 자녀인 우리에게 구원을 안긴 우리의 어머니시고 교회의 어머니시라는
얘기를 오늘 독서 창세기를 통해 교회 전례는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뒷받침하는 것이 오늘 복음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며
제자 요한과 당신 어머니를 영적 모자 관계로 맺어주십니다.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이로써 주님께서는 마리아를 모두의 어머니로 내어주신 것이고,
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일 뿐 아니라
모두의 어머니요 교회의 어머니가 되신 것입니다.
이런 당부에 따라 마리아는 제자들과 떨어지지 않고,
성령 강림을 앞두고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십니다.
“사도들은 모두 예수님의 어머니와 그분의 형제들과 함께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였다.”(사도행전 1, 14)
그래서 오늘 감사송도 이런 마리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또한 사도들이 주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고 있을 때
당신의 간구를 제자들의 기도에 결합시켜 기도하는 교회의 본보기가 되셨나이다.”
저는 요즘 우리 공동체들을 위해서 기도하자고 자주 권고합니다.
공동체의 누구를 특히 공동체 봉사자들을
욕하거나 비난하지 말고 기도하자고 합니다.
그들을 욕하기보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자는 것이고,
실은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자는 것입니다.
우리의 대통령에 대해서도 욕하기보다 기도하자고 합니다.
지금까지 실컷 욕했으면 이제는 기도할 때가 된 것입니다.
그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우리나라를 이끄는 분이기 때문이며,
지금까지 잘못했어도 이제는 우리나라를 위해
잘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니 실은 우리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적으로 성숙한 것뿐 아니라
마리아처럼 공동체를 위해 같이 기도하는 영적 성숙입니다.
우리는 영적 성숙 특히 기도와 관련한 영적 성숙을,
자기가 기도의 높은 경지에 오르는 것만 생각할 수 있는데
이것은 어떻게 보면 영적 탐욕이요 이기주의이기 쉽습니다.
영적이고 진정 높은 경지의 기도는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는 것임을
그 본보기이신 교회의 어머니 마리아를 통해 배우는 오늘 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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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0.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파우스티나 성녀가 남긴 일기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만일 천사들이 우리를 부러워할 수 있다면, 그들은 두 가지를 부러워할 것이다. 하나는 영성체를 받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고통이다.”
많은 이가 영성체에 대해 무관심하고, 또 고통과 무관한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가 바로 천사들이 우리를 부러워하는 이유라고 말씀하십니다. 천사들은 영이기에 성체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또 육체가 없기에 고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영성체와 고통은 모두 예수님과 결합할 수 있는 은총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예수님과 가장 친밀하게 일치하게 됩니다. 따라서 영성체를 소홀하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또한 고통을 없어져야 할 악(惡)처럼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그보다 예수님과 일치하는 은총으로 감사의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아마 이 점을 성모님께서도 안타까워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파티마에서 발현하신 성모님께서는 “기도하여라. 많이 기도하여라. 죄인들을 위해 희생을 바쳐라. 많은 영혼이 지옥에 가는데, 아무도 희생으로 그들을 도우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늘로 승천하신 성모님께서 어떻게 보면 하늘 나라의 신비라고 할 수 있는 이 점을 알려 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나오듯이,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을 당하시기 직전, 우리 교회의 어머니로 맡겨주셨기 때문입니다. 성모님과 사랑하시는 제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성모님께서는 온전히 예수님과 함께하셨던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끝까지 지키시기 위해 메시지를 남기시고, 또 우리 곁에서 우리를 대신해서 주님께 전구해 주십니다.
교회의 어머니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함께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고통과 무관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고통 안에서도 주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기쁨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또한 가장 큰 기도라고 하는 미사를 통해 이루어지는 주님의 은총을 충만히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성모님과 함께해야 합니다. 우리가 너무나도 부족하고 나약하기에, 그리고 너무 자주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있기에, 가장 큰 믿음으로 예수님과 함께하시는 성모님 곁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우리를 주님의 사랑과 은총 안에 머물 수 있도록 해주시는 성모님을 늘 떠올리면서 함께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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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명언: 여러분과 리무진을 타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겠지만, 정작 여러분이 원하는 사람은 리무진이 고장이 났을 때 같이 버스를 타 줄 사람입니다(오프라 윈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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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0.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요한 19,25-34) 반영억라파엘신부님의 복음 묵상
교회의 어머니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감당했습니다. 버림받은 유다인의 임금이 되셧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은 겁에 질려 떨어져 나가고 예수님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십자가 곁을 지켰습니다. 그들은 오직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섬김으로 끝까지 따른 이들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곁에 계신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서 그 제자들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이제 예수님과의 모자 관계에만 머물지 않고 사랑하는 제자의 어머니로, 예수님을 따르는 이의 어머니가 되십니다. 모든이의 구원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아들에 의해 모든 이의 어머니가 되신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전통은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성모님은 나의 어머니이십니다. 성모님은 우리의 어머니이십니다. 모든 믿는 이의 어머니이십니다. 요한 사가는 예수께서 구원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카나 혼인 잔치에서와 구원 사업의 완성을 이루는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어머니를‘여인’으로 부르심으로써 성모님이 신약 백성의 어머니, 곧 교회의 어머니이심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하와는 뱀의 속임에 넘어가 하느님께 순종하지 못했으나, 성모님은 천사의 말을 믿고 하느님께 순종함으로써 인류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었습니다”(뉴먼 추기경).
예수님을 통해 혈연관계를 뛰어넘어 어머니를 모시게 된 것은 큰 은총입니다. 사랑하는 제자가 어머니를 집에 모셨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제자에 의해서 영적이고 정신적인 관계를 새롭게 하여 고귀한 어머니로 받아들여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제자 편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수락하고 이행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제자가 누굴까? 우리는 요한이라고 생각하지만 드러내 놓지 않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받는 제자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떠나시지만, 예수님을 통해 새로운 세상이 열리게 되는데 그 세상은 ‘믿음의 세상’입니다.
성모님을 나의 어머니로, 교회의 어머니로 받아들여 영적인 관계를 맺는 새로운 세상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믿음으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 구원을 선물로 주셨고 성모님을 어머니로 주셨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나의 마음을 열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바라보며 우리를 위한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선물을 기억하는 만큼 자신도 이웃을 위한 사랑의 선물이 되어야 합니다. 희생, 헌신 없는 사랑은 없습니다. 십자가 아래서 보여주신 성모님의 태도는 우리가 따라야 할 귀감입니다. 교부 암브로시오는 말합니다. “나는 마리아가 십자가 곁에 서 있었다는 구절은 읽었지만, 어디에서도 통곡했다는 구절을 읽지 못했다.” 우리가 인생에서 풍파를 겪을 때, 십자가 아래 꿋꿋이 서서 고통을 견디어 낸 성모님을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성모님은 온유함과 강인함의 어머니이십니다. 더 큰 사랑을 담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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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0.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님.
이제 성령강림대축일을 끝으로 부활시기를 마치고, 연중시기를 다시 시작하면서,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기념일을 지내는 것은 매우 의미가 깊습니다.
이는 새롭게 탄생된 첫 교회를 어머니의 보호 아래 맡기신 까닭입니다.
‘교회의 어머니’라는 호칭은 이미 교부시대 때부터 사용되었는데, 성 아우구스티노는 '그리스도 지체들의 어머니'라고 하였고, 성 레오 대교종은 '교회의 지체들의 어머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를 바오로 6세 교종께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을 반포(1964년)하시면서 성모님께 이 호칭을 부여하셨습니다.
이 보호의 원천은 오늘 복음에서 보여주고 있듯이, 마리아와 우리를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로 만들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곧 예수님의 명으로 마리아는 믿는 이들의 공동체인 ‘교회의 어머니’가 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요한 19,26-27)
여기에서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예수님의 고통과 믿음을 동시에 드러나고 있듯이, 십자가 밑에 서 계시는 성모님의 모습에서도 성모님의 고통과 믿음이 동시에 드러납니다.
그리하여 성모님께서는 그리스도의 고통과 죽음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시면서 예수님의 공통과 믿음에 완전한 일치를 이루시고,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깊이 참여하십니다.
그토록 성모님께서 하느님에 대한 신뢰로 십자가 아래에 서 계십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십자가의 죽음이 실패요 패배로 보이지만, 어머니께서는 그 속에서도 승리를 보고 계십니다.
아들의 죽음 앞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시고, 믿음으로 꿋꿋이 서 계십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고통 받으시고 화해를 이루시며, 동시에 성모님께서는 십자가 밑에서 고통을 받으시며 화해를 이루십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깊이 참여하시며, 아버지의 뜻의 완성에 협조하십니다.
사실 오늘도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 서 계시는 성모님을 만납니다.
우리도 언제나 믿음으로 서 있어야 할 일입니다.
불신과 불목을 떨치고 신뢰로 서 있어야 할 일입니다.
서로를 믿고 신뢰하는 일, 그만큼 위대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신비 안에서 살아가야 할 일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신뢰와 의탁입니다.
십자가 아래에서도 꿋꿋이 서 있는 믿음입니다.
그것은 고통 속에서도 그분의 현존에서 사랑을 배우는 일입니다.
곧 성모님과 함께 그리스도의 신비를 사는 것입니다.
'말씀을 따르신 성모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요,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으신' 그 믿음을 따라 살아가는 일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도 복된 일이 벌어집니다.
바로 우리의 어머니요 교회의 어머니 되신 일이 벌어집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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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0.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마산교구 합천성당 이병우 루카 신부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19,26.27)
'마리아의 모범!'
오늘 복음(요한19,25-34)은 '십자가의 못 박히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어머니를 우리의 어머니요 교회의 어머니로 선포하시는 말씀'입니다.
"목마르다."(요한19,28)
"다 이루어졌다."(요한19,30)
예수님께서 이 지상에서 하셔야 할 마지막 일인 십자가 죽음, 곧 숨을 거두시기 전에 어머니 마리아에게 당신이 사랑하시는 요한 제자를 아들로 받아들이라고 요청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사랑하시는 제자에게 당신의 어머니를 자신의 어머니로 받아들이라고 명하십니다.
오늘은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입니다.
이 기념일은 2018년에 제정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8년에 성령강림대축일 다음 월요일을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로 제정하셨습니다.
성모 마리아가 교회의 어머니로 선포된 그 결정적인 이유는 교회와 교회의 구성원들인 우리가 살아가야 할 신앙생활의 결정적 모범이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마리아의 모범!'
"Fiat voluntas tua!"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1,38)
이 결정적 순종으로 주님의 어머니가 되신 마리아는,
이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당신 아들의 시신을 품에 안을 때까지 당신 아드님께서 걸어가신 길에 끝까지 함께 하셨습니다. 그것도 당신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마리아의 이 결정적 신앙의 모범'이 지금 교회가 다시금 걸어가야 할 시대적 징표요, 지금 교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시대적 징표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하게 그리고 충실하게 그리고 겸손하게!'
주님의 어머니요 교회의 어머니이시며 우리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의 모범을 늘 기억하면서 마리아의 모범을 따라가는 성모 엄마의 자녀들이 됩시다!
(~ 민수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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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0.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목마르다.”(요한 19,28) 십자가 위에서 목말라 신음하시며 죽어 가신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인류 구원을 위하여 가장 비참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시어, 세상 모든 죄악과 고통을 지시고 홀로 십자가에 매달려 계십니다.
“다 이루어졌다.”(요한 19,30) 인류를 향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완성되었습니다. 주님 십자가의 사랑과 희생으로 죽음은 극복되었고 모든 이에게 영원한 생명의 문이 열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분 십자가 곁에는 성모님께서 함께 계십니다. 십자가 위 예수님께서 성모님께 말씀하십니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요한 19,26)
성모님의 마음은 어떠하셨을까요? 십자가 아래 성모님께서는 당신 아들 예수님을 차마 마주 바라보지 못하시며 그 어떤 말도 못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에게 “이 분이 네 어머니이시다.”(요한 19,27) 라고 하십니다.
성모님께서는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시어 예수님을 잉태하시고 낳아 기르셨으며, 언제나 하느님의 뜻을 새기시며, 예수님의 십자가 길에도 동행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 전적으로 협력하신 구세주의 어머니 성모님께서는 십자가 아래에서 이제 교회의 어머니, 우리의 어머니가 되십니다.
주 예수님을 모시고, 성모님을 어머니로 공경하는 우리의 자리는 ‘십자가 아래’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시작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걷는 십자가의 길을 말입니다.
이 길은 하느님 나라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자 예수님처럼 자신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 걷는 사랑과 봉사, 희생과 죽음의 길입니다. 이 길은 힘겹고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은총과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걷는 우리 곁에는 성모님께서 계십니다. 성모님께서는 당신 자녀인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이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하여 전구해 주십니다.
“어머니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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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0. 나해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 자유인을 어머니로 둔 자녀가 노예의 믿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
복음: 요한 19,25-34
소저너 트루스(Sojourner Truth)는 미국의 노예 해방과 여성 인권 운동의 선구자입니다. 본명은 이사벨라 바움프리(Isabella Baumfree)였으며, 1797년 뉴욕에서 태어났습니다. 소저너 트루스는 신앙심이 깊었던 인물로, 그녀의 삶과 활동에 있어 하느님의 영감을 받은 경험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Sojourner Truth’로 바꾸었는데, 이는 ‘진리를 위한 여행자’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녀는 이 결정을 하느님의 계시로 받아들였습니다. 소저너는 하느님께서 그녀를 부르시어, 진리를 전하고 사람들에게 자유와 평등을 설교하라는 영감을 주셨다고 믿었습니다.
소저너 트루스는 뉴욕주의 한 노예 가정에서 태어나 여러 번 주인이 바뀌는 가운데 자랐습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노예로서의 가혹한 대우와 노동에 시달렸고, 가족과의 이별을 경험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해서 노예 생활했지만, 1826년에 뉴욕주의 노예제도가 점차 폐지되면서 그녀는 두 자녀와 함께 도망쳐 자유를 찾게 되었습니다.
트루스는 자신의 자유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그녀는 법정에서 자기 아들을 주인에게서 되찾기 위해 싸웠으며, 이는 뉴욕주에서 흑인이 백인에게서 법적으로 아이를 되찾아온 첫 사례였습니다. 그녀의 이러한 투쟁은 자녀들에게 자유와 정의를 위한 강한 신념을 심어주었습니다.
자유를 찾은 후, 녀는 자신의 삶을 노예 해방 운동과 여성 인권을 위한 활동에 헌신하며, 연설과 노래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녀의 유명한 연설 “나도 똑같은 여자가 아닙니까?”는 여성의 권리와 인종 평등을 강력하게 주장한 연설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소저너 트루스의 자유에 대한 열정과 끊임없는 투쟁은 그녀의 자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녀는 자녀들에게 자유의 중요성과 인권을 위한 싸움의 가치를 가르쳤습니다. 특히, 그녀의 아들 피터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자유를 찾고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자녀가 자유인이 되려면 당연히 엄마도 자유인이어야 합니다. 트루스가 독립시킨 자녀들은 다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트루스 먼저 자유인이 되어야 했습니다. 여기에서 하느님의 계시가 중요했습니다. 사람은 다 평등하다는 믿음은 그녀가 노예제도에서 벗어나 인권 운동을 위해 싸우는 자유인이 되게 하였습니다.
에덴동산에서의 하와는 자유인이 되지 못했습니다. 뱀의 노예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자신이 이미 하느님임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하느님처럼 되려고 하였습니다. 이미 하느님 자녀가 되었다는 권리를 스스로 걷어찬 것입니다. 그러나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셨습니다. 이로써 그분을 어머니로 믿는 이들 또한 죄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하느님은 하와의 후손이 뱀의 후손의 머리를 밟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하와는 존재한다, 생존한다는 뜻의 ‘하야’에서 파생된 이름입니다. 그러나 이 하와는 바로 성모 마리아의 상징이고 옛 하와는 죽은 이들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본인 스스로 죄의 노예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라고 하실 때 예수님은 성모님을 여인이라 부르십니다. 두 번째 하와이고 당신이 두 번째 아담이시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 태어나는 오늘 요한으로 상징되는 교회는 성모님을 어머니, 그리스도를 아버지로 모시게 됩니다. 그렇게 두 자유인에게서 태어난 우리는 자유인입니다.
그런데 그 자유는 우리가 이미 하느님 자녀가 되었고 하느님처럼 되었음을 믿는 믿음에서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 어머니를 ‘하느님의 어머니’가 된다는 것까지 믿었는데, 우리는 성체를 영하면서도 그냥 인간에 불과하다면 성모님을 어머니로 부르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성모 마리아께서 스스로 하느님처럼 될 필요가 없는 이미 하느님처럼 된 존재임을 믿었기에 참 자유인이 되셨습니다. 그분의 자녀도 당연히 그렇게 믿어야만 합니다.
https://youtu.be/iKep8XqO6Ds?si=c6i23a-0xPqirE3u
유튜브 묵상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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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0. + 조 두레박 신부의 영적일기(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의 마음으로….
혈액 속에는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 그리고 혈장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백혈구는 몸에 어떤 이상한 침입자인 병균이 들어오면 침입자를 처리합니다.
그 처리 방법은 백혈구는 침입자를 품에 껴안아 버립니다. 보기 싫든, 지저분하든지 가리지 않고 모두 껴안아 줍니다.
이 백혈구의 사랑에 감동하여 병균이 녹아버립니다.
또한, 적혈구도 백혈구처럼 아주 사랑이 넘친답니다.
적혈구는 혈액 속에 이리저리 다니면서 산소가 필요한 세포가 있으면 아낌없이 다 줍니다.
자기 몫은 챙기지 않고 온전하게 다 나눠줘 버리고, 4일쯤 살다가 비장에 가서 적혈구로서의 역할을 끝내고 죽습니다.
백혈구의 사랑은 모든 것을 사랑으로 감싸 주는 반면, 적혈구의 사랑은 모든 것을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성모님의 사랑도 백혈구처럼 감싸주는 사랑이고, 적혈구처럼 모든 것을 다 주고 죽는 사랑입니다.
“너의 마음 안에 하느님의 사랑을 품고 은총 속에 살라. 그러면 너의 마음이 그리스도 주 예수님의 마음이 되리라.” 아멘.
우리 교회는 오늘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2018년에 성령강림 대축일 다음 월요일을 ‘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로 제정하셨습니다.
이렇게 성모님을 ‘교회의 어머니’로 공경하는 이유는, 성모님은 성령강림 이후에 어머니로서 교회를 돌보았고, 여기서 성모님의 영적 모성이 드러났기 때문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어머니를 통하여 어렵고 힘든 삶을 살아가는 저희에게 은총 속에서 용기를 북돋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이시다.”
예수님에 대한 굳은 믿음을 간직하셨던 성모님은 아들의 처참한 십자가 죽음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이 고통을 루카 복음 2장 35절에서는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모님은 아들과 하나 되어 사셨기 때문에, 어머니로서 아들의 십자가 고통을 함께 나누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어머니를 사랑하는 제자에게 맡기십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이시다.”
이 말씀으로 예수님을 믿는 모든 이들의 어머니가 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들의 처참한 죽음을 보면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신 성모님께서는 이제는 고통받는 이들을 어머니의 따뜻한 마음으로 감싸 안아 주십니다.
성모님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셨지만, 누구보다 믿음이 신실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 때문에 크나큰 고통과 어려움을 겪으셨기에,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을 도우시려고 애쓰는 분이셨습니다.
한 마디로 성모님은 “믿음으로 축복을 낳으시는 분”이십니다. 아멘.
사랑하는 고운님들!
영원한 도움의 성모 매일기도 토요일 묵상에 이런 기도가 있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제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저만 바라보십니다. 성전에서 잃었던 아드님을 애타게 찾던 그 눈으로, 십자가 수난을 당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던 그 눈으로, 저를 보시며 부르십니다. 어려움과 고통, 그리고 혼란 속에서 어머니 앞에 서 있는 저에게 당신이 무엇을 도와주면 좋겠냐고 물으십니다.
당신 스스로 영원한 도움의 성모라고 알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 두레박 사제는 고운님들과 함께 예수님을 낳으신 성모님은 교회의 어머니이시고 영원한 도움의 어머니이심을 고백합니다. 아멘.
저 두레박 사제도 영원한 도움이신 성모님의 사랑을 품고 몸과 마음이 아픈 고운님들과 아픈 이들을 돌보는 고운님들, 그리고 고운님들의 자녀에게 주님의 치유와 회복의 은총이 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영적일기를 마무리하면서….
오늘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의 마음을 품고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복된 날이 되게 하고, 고운님들은 예수님 안에서 성령으로 충만한 날로 치유와 회복의 은총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강복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 성자와 성령께서는 고운님들에게 강복하시어 길이 머물게 하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https://youtu.be/WB3Plqyzg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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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0.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맹모삼천(孟母三遷)’이란 고사가 있습니다. 맹자의 어머니는 아들 맹자를 위해서 3번 이사를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처음에 간 곳은 ‘장의사’ 옆이었습니다. 아들 맹자는 망자를 위해서 ‘곡’을 하면서 놀았습니다. 맹자의 어머니는 아들의 장래를 위해서 이사를 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상가가 즐비한 ‘시장’ 옆으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아들 맹자는 물건을 파는 ‘흉내’를 내면서 놀았습니다. 맹자의 어머니는 아들의 장래를 위해서 이사를 하였습니다.
이번에는, 글공부하는 ‘서당’ 옆으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아들 맹자는 글공부 ‘흉내’를 내면서 놀았습니다. 그제야 맹자의 어머니는 만족하였다고 합니다. 아들의 교육을 위해서 3번이나 이사 하였다는 맹자의 어머니 이야기를 두고 ‘맹모삼천’이라고 합니다.
한국 어머니들의 교육에 대한 열정은 맹모삼천에 절대로 뒤지지 않습니다. 자녀의 교육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태평양을 건너서 기러기 엄마가 되기도 합니다. 자녀의 교육을 위해서라면 온갖 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다른 지출을 줄일지라도, 자녀의 교육비에 대한 지출은 줄이지 않습니다.
지하자원이 풍족하지 않은 대한민국이 가난을 딛고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교육에 대한 열정도 큰 몫을 하였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배우자의 외모, 재력, 능력을 보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배우자의 ‘학력’을 보았습니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배움의 기회를 놓친 어머니는 많이 배운 배우자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사범학교를 나온 배우자를 만나 결혼했습니다.
어머니는 가난도 참아 낼 수 있었습니다. 사상의 검열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자녀들이 능력만 있다면 모두 대학에 보내고 싶어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쌀장사, 밥장사, 파출부 일도 하면서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서 헌신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자녀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으려고 야학에 다니면서 한글을 배웠습니다. 신앙에 대한 열정으로 성서를 필사하였고, 구역장과 반장으로 봉사했습니다. 레지오 단원으로 활동하였습니다.
본당 신부님께서 구역장들에게 선물로 주신 ‘신발’을 자랑스러워하였습니다. 많은 예비자를 입교 권면하였고, 기꺼이 대모가 되어 주었습니다. 제가 사제가 되었을 때 저보다 먼저 제가 가야 할 성당에 가서 기도하였습니다. 아들 사제가 잘 지낼 수 있도록 기도하였습니다.
처음 본당 신부가 되었을 때는 3년 동안 식사 준비를 해 주었습니다. 아버지와 잠시 헤어지는 슬픔도 기꺼이 감수하였습니다. 어머니는 늘 말없이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었습니다. 4년 전에 하느님의 품으로 가신 어머니는 이제 천국에서 아들 사제와 동생 수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심을 믿습니다.
오늘은 교회의 어머니 동정 마리아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성모님께서는 교회가 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 삶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저에게 이루어지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인간의 능력과 인간의 지혜에서 길을 찾지 않았고,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길을 찾았습니다. 의로운 사람 요셉도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였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교회는 세상의 지혜를 찾기 전에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식별해야 합니다. 성모님은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를 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교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우선적 선택은 가난한 이들이어야 합니다. 성모님은 ‘포도주가 없구나.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모님은 무엇이 필요한 것인지 알았습니다. 주님께서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교회는 조직과 건물이 있어야 합니다. 신학과 교리가 있어야 합니다. 제도와 전통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존재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교회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고, 교회가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던 제자입니다. 우리는 교회는 사도로부터 이어온다고 신앙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교회는 성모님을 어머니로 존경하고 사랑을 드려야 합니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서 교회를 위해 전구 하시고 있습니다. “마리아께서는 티 없는 마음으로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여 동정의 몸에 잉태하시고 교회의 창설자 그리스도를 낳으시어 교회의 시작을 도우셨나이다.
마리아께서는 십자가 곁에서 아드님의 유언에 따라 모든 사람을 당신 자녀로 받아들이셨으며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그들은 천상 생명을 받아 새로 태어났나이다.
비오니, 성모 마리아의 전구를 들으시어 저희가 주님께 간구하는 모든 은혜를 받아 누리게 하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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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0.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성모님을 신자들의 도움이신 분이라고 부르십시오.
그분은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십니다!>
역대 교황님들 가운데 재임 기간 동안 참으로 혹독한 고통을 겪었던 분이 있었으니, 251대 교황이셨던 비오 7세(1742~1823년, 교황 재위: 1800~1823년)입니다. 침략과 정복의 시절, 비오 7세 교황님께서는 나폴레옹에 맞서 가톨릭 교회를 수호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하셨습니다.
1808년 프랑스 군대가 로마를 점령하며, 나폴레옹은 교황령이 프랑스에 병합된다고 선언하게 됩니다. 비오 7세 교황님께서는 물러서지 않고 용감하게 침략자들을 파문했습니다.
그 결과 초유의 대 사건이 발생하지요. 비오 7세 교황님께서는 1809년 체포되어 사보나에 있는 감옥에 구금됩니다. 그는 약 5년간 교황이라는 신분을 지닌 분으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고초와 굴욕을 다 겪었습니다.
길고도 긴 암흑의 세월을 지내는 동안 비오 7세 교황님께서는 늘 성모님의 도움을 간청하였습니다. 옥중에서 바깥에 있는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보낸 서한에는 이 어려운 시절, 성모님께 기도하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마침내 1814년 5월 24일 교황 비오 7세는 길고 긴 암흑의 세월을 마무리짓고 바티칸으로 귀환합니다. 그는 교회 역사 안에서 가장 어려운 시대, 성모님께서 큰 도움을 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그리스도인의 도움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축일을 제정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도움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신심은 살레시오회 창립자 돈보스코(1815~1888)에 의해 널리 전파되었습니다. 살레시오회를 비롯한 전 세계 살레시오 가족은 그리스도인의 도움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첫번째 수호자로 모시고 있습니다.
돈보스코는 성모님을 바라볼 때마다 출중하고 탁월한 능력을 지닌 변호사로서의 모습을 확인했습니다.
하느님 앞에 부족하고 나약한 자신을 변호해주시고 중재해주시는 어머니, 자신이 펼치는 모든 사업에 늘 함께 하시며 자상하게 보살펴주시는 협조자로서의 어머니가 성모님이심을 강하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돈보스코는 만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외쳤습니다. “성모 마리아를 신자들의 도움이신 분이라고 부르십시오. 성모님은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십니다. 모든 것은 다 그분이 하셨습니다. 제가 조금이라도 좋은 일을 했다면 그것은 모두 도움이신 성모님께서 친히 하신 것입니다. 저는 오직 부족한 도구였을 뿐입니다.”
돈보스코는 직접 도움이신 마리아께 드리는 기도를 만들어 전파했습니다. 간단한 기도이지만 합당한 조건을 갖추고 매일 이 기도를 드릴 때 받는 은총은 엄청납니다.
“오 마리아, 굳센 동정녀시여! 당신은 교회의 빛나는 큰 성채이시며 승리하는 군대처럼 위엄을 갖추신, 그리스도인의 든든한 도움이십니다! 오직 당신만이 세상의 모든 거짓을 쳐 이기셨나이다. 원수에게서 저희를 지켜주시어 번민, 싸움, 궁핍을 이기게 하시고 임종 때 저희를 천국으로 인도하소서.”
성모님 사랑하면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베르나르도 성인 역시 성모님께서 큰 도움을 주시는 분이라는 확신을 언제나 지니고 살았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지극히 자비로운 동정녀에게 도움을 간청한 그 누구도 거절당했다는 말을 단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위험과 곤란, 의혹에 빠질 때 그리스도인의 도움이시여, 당신께 간구하오니, 당신께 의지하여 저희는 결코 쓰러지지 않으오리다. 당신의 인도로 저희는 인생길에서 지치지 않을 것이며, 당신의 은혜로 천국에 도달하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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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0.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한상우 바오로 신부)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 27)
변하는
세상 속에서
변치 않는
사랑을
만납니다.
변치 않는
은총의
어머니는
오늘도
예수님을 믿듯
교회를 믿습니다.
교회는
어머니와 함께
걸어갑니다.
어머니와
공동체는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교회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보여주십니다.
믿음을
지켜내는 일은
진실로 중요한
교회의 역할입니다.
어머니께서는
흔들리는 우리를
붙잡아 주시고
일으켜 세워
주시며 우리의
스승이 되십니다.
교회의 어머니가
되시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감사의 마음을
올립니다.
가장 아름다운
사랑은
십자가의 여정을
함께 걸어가듯
서두르지
않습니다.
함께 하실
뿐입니다.
새로운 모든 것이
시작될 때는
우리의 어머님이
함께 하십니다.
어김없이
어머님이 계시고
하염없이
어머님께서
교회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끊임없이
기도하시는
사랑으로
교회는 시들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교회에
주신 가장 큰
은총은
어머니이십니다.
사도들의
어머니이시며
교회의
어머니이시며
아픈 이들의
위로자이신
어머님께
전구를 청합니다.
행복한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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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0. 전주교구 송영진 모세 신부님
<신앙생활은 효도하는 생활>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요한 19,25-27)
“성안에 들어간 그들은 자기들이 묵고 있던 위층 방으로 올라갔다. 그들은 모두, 여러 여자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분의 형제들과 함께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였다."(사도 1,13ㄱ.14)
1) 우리는 성모님이 교회의 어머니시고, 우리 모두의 어머니시라는 것을 논리적으로 증명하려고, 또는 설명하려고 애를 쓰는 일을, 도대체 언제까지 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 증명을(설명을) 도대체 누구를 향해서 하는가? 우리가 성모님을 어머니로 모시고 공경하면서 살았던 세월이 이천 년이 넘었는데, 성모님이 교회의 어머니시고 우리 모두의 어머니시라는 것을 증명(설명)하는 일은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는가? 나 자신이 성모님의 자녀로서 자녀답게 사는 것, 바로 그것이 성모님이 나의 어머니이심을 증명하는 최고의 증거입니다. 따라서 이제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과연 나는 자녀답게 잘 살고 있는가?”입니다.
2)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제자들의(교회의) 어머니로 맺어주신 일은, 어머니가 아닌 분을 어머니로 새롭게 맺어주신 일이 아니라, 성모님은 ‘처음부터’ 신앙인들의(교회의) 어머니이신 분이라는 것을 깨우쳐 주신 일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고(1코린 12,27), 성모님은 예수님의 어머니시니까 성모님은 ‘처음부터’ 우리의 어머니셨습니다.>
그 일은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겠다.”(요한 14,18)라는 말씀에 연결되는데, 이 말씀은 원래 당신의 ‘부활’과 ‘부활 후의 현존’을 암시하신 말씀이지만, 신앙인이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가르침으로도 생각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절대로 고아가 아니다.”라는 가르침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인은 주님이신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고,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또 어머니 성모님의 전구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결코 고아가 아닙니다. 하느님도 안 믿고 예수님도 안 믿는 사람들, 또는 종교도 신앙도 없이 그냥 살아가는 사람들은 스스로 고아처럼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하느님은 ‘모든 사람’의 아버지이신 분이고, 예수님은 ‘모든 사람’의 메시아이신 분이고, 성모님도 ‘모든 사람’의 어머니이신 분이기 때문에, ‘고아인 사람’은 원래 없습니다. 자기 스스로 신앙을 거부하고 ‘고아로 살고 있는 사람들’만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 가운데에는 하느님과 예수님을 알면서도 믿기를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고, 복음을 전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하느님과 예수님을 아예 모르는 채로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알면서도 믿기를 거부하는 것은 죄이지만, 복음을 전해 주는(알려 주는) 사람이 없어서 모르는 채로 고아처럼 살고 있는 것은 그 자신의 죄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런 경우가 생기지 않도록 복음을 전하는 일을 더욱 열심히 해야 합니다.
3) ‘고아처럼’ 살고 있다는 말은 ‘목자 없는 양처럼’ 살고 있다는 말에 연결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마르 6,34; 마태 9,36) ‘목자’가 없었던 때는 단 한 순간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목자 없는 양들처럼 살고 있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 때문이기도 하고, 그 자신들 탓이기도 하지만, 어떻든 예수님께서는 목자 없는 양들처럼 살고 있는 사람들을 가엾게 여기셔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고아가 아닌데도 고아처럼 살고 있는 것이나, 목자가 있는데도 목자 없는 양들처럼 살고 있는 것은, 사실상 같은 것입니다. 안식처를 찾지 못하고, 의지할 곳도 없고, 외롭고 고단한 인생을 살면서 방황하는 상황... 신앙생활은 자신이 고아가 아니고, 목자 없는 양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하는 생활입니다. 아버지 하느님과 주님이신 예수님과 어머니 성모님의 사랑과 보호 속에 안식과 평화를 누리는 생활이 곧 신앙생활입니다.
4) 그래서 신앙생활은 효도하는 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모에게 기쁨을 드리는 것이 효도 중에 가장 큰 효도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가장 크게 기뻐하시는 것은, 바로 ‘나의 회개와 구원’입니다. 그분들에게 무엇인가를 많이 바치는 것이 효도가 아니라, 내가 회개해서 구원받는 것이 효도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다음 말씀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모님의 심정을 아주 잘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는 너!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마태 23,37; 루카 13,34)
이 말씀은, 예루살렘이라는 특정 도시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고 자꾸만 멸망을 향해서 가고 있는 어리석은 인간들에게 하신 말씀이고, 그 인간들의 어리석음이 가엾고 안타까워서 하신 말씀입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나에게’ 하시는 말씀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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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0. 서울대교구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오늘 복음을 보면 두 여인 간의 만남이 있습니다. 아기 예수님을 잉태하신 성모 마리아와 세례자 요한을 잉태한 엘리사벳의 만남이지요. 태어날 아기들의 운명이 어찌 되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여인들의 마음은 얼마나 쓰렸겠습니까? 그런데도 서로 격려하면서 주님께 찬미를 드립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에게 이렇게 외칩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이처럼 주님에 대한 신뢰를 통해서만 앞날에 대한 희망이 나옵니다. 지금은 나의 처지가 비천하지만, 언젠가 귀한 존재가 되리라는 희망입니다. 비록 내가 슬픔에 젖어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기쁨으로 넘치리라는 희망이지요.
마리아는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라고 응답합니다. 비천한 사람은 낮은 신분, 또는 매우 겸손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돈도 지위도 명예도 없기에 하느님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입니다.
또는 재산이나 명예는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기에 주님 앞에서 자신은 무력한 존재임을 깨닫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마리아는 비천한 자신을 택하신 주님을 찬미하며, 주님께서는 하실 수 없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모든 이에게 알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우리 삶에 기쁨이 넘치려면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계심을 느껴야 합니다. 나의 생활을 늘 되돌아보면서, 그 가운데 하느님께서 활동하고 계심을 발견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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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0. 제주교구 한재호 루카 신부님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십자가에 매달리신 아드님을 두고 성모님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비통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아드님에 대한 사랑과 연민을 담아 그 곁에 ‘서 있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 행동에서 예수님을 향한 성모님의 믿음이 얼마나 크신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내놓겠다던 베드로뿐 아니라 다른 제자들까지도 예수님을 버리고 달아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사형수가 되신 마당에 그분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발각이라도 되면 큰일 날 것이라고 두려워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로마 군사들의 무자비한 폭력과 위협을 눈앞에 두고서도 그 자리에 서 계셨습니다.
영어로 ‘이해하다’(understand)는 말은, ‘밑에’(under)라는 말과 ‘서 있다’(stand)가 합쳐진 것입니다. 곧 누군가를 이해하려면, 그 사람 밑에 서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십자가 밑에 묵묵히 서 계신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의 죽음을 그 누구보다도 깊이 이해하신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와는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고 에덴동산 한가운데에 있는 선악과 나무에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따 먹음으로써 온 인류의 죽음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께서는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시어 골고타 언덕 한가운데에 있는 십자가 곁에 끝까지 서 계심으로써 우리에게 생명의 열매를 내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분께서는 예수님의 어머니에서 나아가 새 인류의 어머니, 새로운 하와가 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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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0.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이성근 사바 신부님
성모님께서는, 아드님과 함께 고통과 죽음을 체험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시기 직전에, 사랑하시던 제자에게 성모님을 맡기시고, 그 제자를 성모님께 아들로 제시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시면서 새로운 모자 관계를 맺어 주신 것입니다.
이름이 나오지 않는 그 사랑받는 제자는, 일반적으로 요한 사도라고 받아들이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을 내적으로 깨닫고, 그분의 계시를 증언하도록 부름을 받은 모든 제자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성모님께서는 교회의 어머니이시며,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의 청원을 중재하십니다.
우리는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이를 볼 수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어려움에 놓인 사람들을 대신하여 아드님께 간청하시는 자상한 모습을 보여 주셨고,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의 청을 들어주셨습니다.
이제 신앙인들은 성모님을 통하여 주님께 간청을 드릴 수 있고, 또 주님께서 그 간청을 들어주시리라고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새로운 모자 관계는 또한 예수님께서 떠나신 뒤 남아 있는 공동체가 지닌 일치와 사랑의 특징을 대변합니다.
교회는 하느님 아드님의 희생으로 시작되었고, 예수님의 애제자와 성모님의 일치는 하느님 교회의 사랑을 미리 보여 주는 것입니다.
어떤 인간관계보다 모자 관계는 끈끈하고 강하며, 애정으로 묶여 있는 관계입니다. 그 안에는 모든 논리를 뛰어넘는 사랑과 일치가 담겨 있고, 그것이 교회의 특징적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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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0. 예수 그리스도 고난수도회 김준수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오늘 축일은 2018년 2월 11일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루르드 성모 발현 160주년이 되는 날 제정 반포하셨습니다. 교황님께서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의무 기념일을 제정하신 까닭은 진정한 성모 신심과 교회의 母性을 강조하고 성장시키기 위한 사목적 결단이었습니다. ‘교회의 어머니’란 칭호는 이미 밀라노의 성 암브로시오 주교(338–397)께서 성모 마리아의 믿음과 사랑 그리고 그리스도를 잉태하고 출산하였다는 점,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이유로 들어 그녀를 교회의 어머니요 원형으로 부르며 마리아를, 곧 교회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교황 바오로 6세께서 바티칸 공의회 기간 중 성모 마리아에게 공식적으로 헌정한 호칭이었습니다.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 헌장 인류의 빛’을 반포하면서 마리아께 ‘교회의 어머니 Mater Ecclesiae’라는 호칭을 부여했습니다. 아울러 교황청은 1975년 성년을 맞아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신심 미사를 로마 미사 경본에 수록했었습니다.
교회에서 마리아에게 교회의 어머니라는 호칭으로 부르게 된 성경의 배경은 오늘 우리가 들은 요한복음 19, 26~27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밑에 서 계신 “어머니 마리아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사도 요한)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을 맞이하시는 순간에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를(=교회의 대표인 요한을) 마리아에게, 마리아를 사랑하는 제자에게 곧 교회에 맡긴 후, “다 이루어졌다.”(19,30) 하고 토로하신 후 숨을 거두셨습니다. 이를 근거로 “성모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사랑의 유언을 받아들이시고, 교회의 자애로우신 어머니가 되셨다.”라고 교회는 선언하고 고백하며,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로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오늘 기념일을 성령강림 대축일 다음 날에 지내는 이유는 바로 오늘 복음과 더불어 어머니 마리아께서 사도들과 함께 다락방에서 기도할 때 성령강림으로 태어난 ‘교회의 어머니’로서 당신 사명을 이미 실천하셨던 것입니다.(사1,14~2,4참조) 바로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바로 이 성경을 근거로 성모님의 ‘영적 母性’이 드러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더욱 오늘 미사의 독서 창세기에서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창3,20)가 되신 새 하와의 모습이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오늘 미사의 감사송에서, 교회의 어머니이신 마리아께서는 『교회의 창설자 그리스도를 낳으시어 교회의 시작을 도우셨나이다. 마리아께서는 십자가 곁에서 모든 사람을 당신 자녀로 받아들이셨으며,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그들은 천상 생명을 받아 새롭게 태어났나이다. 또한 사도들이 주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고 있을 때, 당신의 간구를 제자들의 기도에 결합시켜, 기도하는 교회의 본보기가 되셨나이다. 마침내 하늘에 올라 영광을 받으셨으며, 주님께서 영광스럽게 오시는 그날까지, 나그넷길을 걷는 교회를 어머니의 사랑으로 보살피시어, 천상 고향으로 들어가도록 자비로이 지켜 주시나이다.』하고 기도합니다. 이로써 교회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를 찬양하며, 마리아를 선택하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교회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함께 우리도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합시다.
“복되신 교회의 어머니,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숨 쉬며 살아가도록 저희를 위하여 전구하여 주시고 저희를 보호하여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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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0. 성 베네딕토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어머니인 교회>
-교회의 어머니 마리아-
어제 5월19일 성령강림대축일 다음날인 오늘 5월20일은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2018년 이 기념일을 정해 첫 번째 기념미사를 봉헌했고, 매해 성령강림대축일 다음 월요일에 이 기념미사를 봉헌하도록 했습니다. 교황님의 첫째 기념미사때 강론이 지금도 생생하며 전폭적으로 공감합니다.
“교회는 성모 마리아처럼 여성이며 어머니입니다.” 주제의 강론이었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역시 “하느님은 아버지이시고 교회는 어머니이시니, 우리는 형제들입니다.” 갈파했습니다. 참으로 교회는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닮아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우선 교회를 뜻하는 단어인 ‘교회’와 ‘신부’가 여성형이기에 여성적입니다. 그리고 자녀를 출산하는 어머니입니다. 교회는 신부이자 어머니입니다. 여성적인 차원이 없을 때, 교회는 참된 정체성을 잃게 되고 교회가 아니라 단순히 하나의 자선단체나 축구팀 같은 무엇이 되고 맙니다.
그러니 교회가 여성이고, 신부요 어머니인 이러한 태도를 지니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망각할 때, 교회는 이러한 차원이 결여된 남성적인 교회가 되고, 슬프게도 사랑도 할 수 없고 출산도 할 수 없는 외로움 속에서 살아가는 노총각들의 교회가 되고 맙니다.
여성없이 교회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여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여성의 태도는 마리아에게서 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원하셨습니다.
교회는 사랑의 길을 걸어가는 어머니입니다. 침묵할 줄 알고, 연민 가득한 눈길로, 조용하게 어루만저주는, 수많은 지혜의 언어를 구사할 줄 압니다. 또한 사랑이 넘치며, 웃음을 머금고, 따뜻한 애정과 부드러운 온유의 사람으로서, 어머니의 길을 똑같이 걸어가야 하는 어머니 교회입니다.”
교회나 수도원이 여성이며 어머니인 자매님들 없으면 참 유지하기 힘들 것입니다. 교회를 사랑하여 미사예물이나 봉헌금을 바치는 이들은 거의가 자매들입니다. 남자 형제들은 대부분 빈손으로 오지만 자매들은 거의 무언가 들고 옵니다. 봉사자들도 대부분 자매들입니다. 하느님 사랑을 가장 많이 닮은 분들이 바로 어머니들입니다.
모성애에 비하면 부성애는 빈약하기 그지 없으며, 아버지에 대한 추억보다도 어머니에 대한 추억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훌륭한 자녀들을 보면 십중팔구 배경에 자리잡고 있는 거룩한 사랑의 어머니들입니다. 특히 교회의 어머니이자 예수님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는 모든 어머니들의 모범입니다. 끊임없이 교회가, 우리가 닮아야할 마리아 성모님의 믿음, 희망, 사랑입니다.
오늘 말씀의 배치도 재미있습니다. 창세기의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가 된 하와와 복음의 예수님의 어머니와는 참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우리는 하와 어머니의 실패를 완전히 만회한 참 좋은 어머니 마리아를 만납니다.
5월 성모성월에 참 잘 어울리는 오늘 복음의 성모마리아입니다. 오늘 복음의 장면이 살아 있는 성화같습니다. 성모님과 우리의 자리가 잘 드러납니다. 흡사 이등변 삼각형의 구도를 연상케 합니다.
이등변 삼각형의 위 꼭지점에 십자가의 예수님이 계시고 아래 한 쪽에는 성모님이, 한쪽에는 우리가 있습니다. 아드님의 십자가 아래 성모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하느님께 전적 의탁하심으로 자신을 완전히 비우신 케노시스의 절정이었을 것이며 저절로 거룩한 성모성심을 묵상하게 됩니다. 애제자를 두고 하시는 말씀은 역시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있는 우리를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자매님은 “어머니의 딸입니다”로 알아들어도 무방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교회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성모성월 5월에는 모든 어머니들이 예수님의 십자가곁에 계신 성모님의 비움의 사랑을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으로 끊임없이 자기를 비워가는 겸손의 훈련장 공동체’에서 성모님은 최고의 스승입니다. 이어서 애제자와 동시에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당부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성모님을 자기 집에 모셨다 합니다.
주님의 집인 수도원이나 교회는 물론이요 가정교회와 같은 가정집에서도 성모님을 모시고 살아야 함을 깨닫습니다. 성모님을 모시고 살 때 우리가 받는 은총이 헤아릴 수 없이 클 것이며 무엇보다도 공동체는 모성적이 될 것입니다. 이어지는 예수님의 두 임종어를 마리아 성모님은 누구보다도 더 깊이 잘 이해했을 것입니다.
“목마르다!”
평생 하느님께, 진리에 목말랐던 아드님 예수님처럼, 마리아 성모님도 똑같이 목말랐을 것입니다.
“다 이루어졌다!”
아드님 예수님의 고백처럼, 모든 것이 다 이루어졌음을 고백하셨을 성모님의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삶이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마리아 성모님도 남은 생애 아드님의 이 두 말마디를 평생 마음에 담고 사셨을 것입니다.
오늘 옛 어른의 말씀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바람을 거스르는 풀은 없기에 모든 가르침은 바름이어야 한다.”<다산>
“군자의 덕은 바람이고 백성은 풀이다. 바람이 불면 풀은 바람을 따라 눞는다.”<논어>
바람이 상징하는바 성령처럼 생각됩니다. 성령에 따라 배우고 깨닫고 실천하는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교회의 어머니, 마리아 성모님의 전생애도 그러하셨을 것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성령의 바람따라 성모님과 함께 순리의 삶을 살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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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0. 의정부교구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떠남이 아름다울 수 있기를>
요한 19,25-34 (십자가에 못 박히시다, 숨을 거두시다, 군사들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그 뒤에 이미 모든 일이 다 이루어졌음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시려고 “목마르다.” 하고 말씀하셨다. 거기에는 신 포도주가 가득 담긴 그릇이 놓여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듬뿍 적신 해면을 우슬초 가지에 꽂아 예수님의 입에 갖다 대었다.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드신 다음에 말씀하셨다. “다 이루어졌다.” 이어서 고개를 숙이시며 숨을 거두셨다.
그날은 준비일이었고 이튿날 안식일은 큰 축일이었으므로, 유다인들은 안식일에 시신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지 않게 하려고, 십자가에 못 박힌 이들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시신을 치우게 하라고 빌라도에게 요청하였다. 그리하여 군사들이 가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의 다리를 부러뜨렸다. 예수님께 가서는 이미 숨지신 것을 보고 다리를 부러뜨리는 대신,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떠남이 아름다울 수 있기를>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요한 19,26)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27)
아들이 떠나신다
어머니에게
당신의 벗을
아들로
남겨 놓고
벗이 떠나신다
벗에게
당신의 어머니를
어머니로
남겨 놓고
나도 그리 떠날 수 있기를
떠남은
사라짐이 아니라
새롭게
피어남이니
모두 그리 떠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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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0. 월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님.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말씀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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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20일 월요일
 교부들의 말씀 묵상
예수님께서 그 아버지에게, “아이가 이렇게 된 지 얼마나 되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대답하였다.
“어릴 적부터입니다. (마르 9,21)
첫 범죄의 감염
원죄를 전제하지 않는다면, 이 아이가 그렇게 된 다른 무슨 원인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어릴 적부터 사악하기 그지없는 마귀에게 사로잡혀 살아왔으니 말입니다 자기 죄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므로 첫 범죄에 감염되지 않은 채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음을 가톨릭 신자들은 기억하고 고백해야 합니다(로마 5,12- 4 참조). 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죽음의 육신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로마 7,24 참조) 하느님의 은총을 간절히 청해야 합니다.
-존자 베다-
 생태 영성 영적 독서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첫째 오솔길】
창조계
설교 6 사람은 숭고하다
사람은 새로운 성전이다.
새로움이야말로 우리의 창조 작업과 재창조 작업에 꼭 필요한 요소다. “모든 것은 … 하느님 안에서 영원히 새롭다. 요한은 묵시록에서 이것을 이렇게 말한다. “옥좌에 앉아 계신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한다’”(21,5). 만물은 아들과 함께 새롭다. 왜냐하면 “이들은 이전에는 한 번도 태어나지 않았다는 듯이 오늘 태어나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창조 작업과 그 새로움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여기서는 끝이 시작이고, 끝난 것이 시작이며, 태어난 것이 늘 태어난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하느님은 만물을 창조한다. 그분은 창조 작업을 멈추지 않는다. 그분은 영원히 창조하고, 창조하기 시작한다." 하느님은 새롭고, 그분이 하는 모든 일도 새롭다. 우리도 우리의 신성 속에서 새롭다. 하느님의 모든 행위는 새롭다. “스스로는 변하지 않으면서 만물을 새롭게 한다”(지혜 17,27). 하느님과 접촉을 유지함으로써 우리는 새로워진다.(172)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5월 3주간
<금주간 성서읽기> 금주간 성서 읽기 에페 1-6장
<생태 문화 주간> 음악/미술/독서 등. 생태 품앗이
 월요일 거룩한 독서(렉시오디비나)의 날
에페 2,11-22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됨
그러므로 이민족으로 태어난 여러분은 한때, 사람 손으로 몸에다 행하는 이른바 ‘할례를 받은 자들’에게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이라고 불렸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때에는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관계가 없었고,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으며, 약속의 계약과도 무관하였고, 이 세상에서 아무 희망도 가지지 못한 채 하느님 없이 살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나 이제, 한때 멀리 있던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하느님과 가까워졌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
또 그 모든 계명과 조문과 함께 율법을 폐지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여 당신 안에서 두 인간을 하나의 새 인간으로 창조하시어 평화를 이룩하시고,
십자가를 통하여 양쪽을 한 몸 안에서 하느님과 화해시키시어, 그 적개심을 당신 안에서 없애셨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시어, 멀리 있던 여러분에게도 평화를 선포하시고 가까이 있던 이들에게도 평화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통하여 우리 양쪽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제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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