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4일 햇살이 눈부신 아름다운 가을,
곱게 차려입은 주운숙 판소리 명창이 옻골마을 노당정사에서 판소리 녹화와 녹음을 하였다.
주명창은 대구시 남구 대명동에 <주운숙판소리연구소>가 있다.
때마침 율원중학과 중국학생, 주간보호소 장애인들이 체험을 온터라 녹화에 방해가 될까봐 조심했으나
K2의 전투기들은 눈치도 없이 녹화장에 굉음을 내고 내달렸다.
우리세대에 언감생심 통일을 바라겠나만 시끄러운 전투기만 뜨지 않아도 얼마나 좋을꼬?
바쁜 통에 명창의 판소리를 듣지못해 애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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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무형문화재 제8호 판소리보유자로 지정된 주운숙 명창 |
지난 3일 대구시로부터 대구시무형문화재 제8호 판소리보유자 인증서를 받은 주운숙 명창(64)은 판소리를 ‘국악의 꽃’이라고 예찬했다.주 명창은 지난달 31일 대구시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그는 국악인이자 전통예능인이었던 고(故) 주광덕 명인의 막내딸로 2대에 걸친 국악인이다.“아버지께선 북, 설장구, 판소리, 창극 등 못 하는 게 없을 정도로 재능이 많았다고 합니다. 박동진 명인의 친구라고 해요. 제가 7살 때 아버지를 여읜 터라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만 어깨너머로 아버지께서 판소리 하는 것을 보고 따라 했다고 그래요. 문화재가 되고 아버지 산소를 한번 찾아뵈어야 하는데….”주 명창의 고향은 예향의 고장 남원이다. 스무살 때 대구 남자를 만나 결혼해 대구에 정착했다.“결혼 후 20대 때 드문드문 판소리를 흥얼거리다 서른세살 때 이명희 명창에게 사사하면서 본격적으로 판소리에 입문했습니다. 이후 전주에 있는 이일주 명창의 문하생이 됐지요.” 그는 30대 후반에 남편을 잃고 방황하다 그즈음 주운숙 판소리연구소(대구시 남구 현충로50)를 열고 한길 인생을 가기로 결심했다. 그는 밥 먹고 잠자는 시간을 빼곤 하루 종일 득음을 향한 피나는 노력을 했다. “주 명창은 96년 제22회 l전주대사습놀이대회에서 대상(대통령상)을 받은 것을 비롯해 크고 작은 판소리대회에 나가 문화부장관상 등 여러 차례 입상했다. “판소리는 가장 짧은 게 흥보가인데 3시간 걸리지요. 춘향가는 총 8시간30분입니다. 판소리는 서양의 뮤지컬과 종종 비교되는데 중독성이 있는 것 같아요. 하면 또 하고 싶고 그렇죠. 녹음기가 없던 시절엔 어떻게 배웠나 싶어요. 판소리에선 소리가 가장 중요하지만 발림(연극적인 몸짓)도 간과할 수 없어요. 판소리가 시대 변화에 맞춰 다양하게 진화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