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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지금의 고난은 장차 올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
부제 | 성령의 첫 열매에서 몸의 속량과 영광의 자유까지
1. 성령의 증언은 단순한 내적 확신에서 끝나지 않는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롬8:16,17)
16절만 떼어 놓으면 성령의 증언을 단순히 마음속에서 느껴지는 어떤 확신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곧바로 상속과 고난과 영광을 이야기합니다.
성령으로 증언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다.
→ 자녀라면 상속자다.
→ 예슈아와 함께 상속받는다.
→ 그렇다면 예슈아와 함께 고난도 받는다.
→ 그리고 장차 그와 함께 영광도 받는다.
그러므로 고난 자체가 성령인 것은 아니지만, 성령으로 인도받는 아들의 길에는 예슈아께서 걸으셨던 순종과 고난의 길이 포함됩니다.
이것은 바로 앞의 말씀과 연결됩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롬 8:14)
예슈아께서 아들이셨지만 고난을 피하신 것이 아니라,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우셨습니다.” (히5:8)
따라서 성령의 인도는 언제나 지금 편안하고 성공하고 영광받는 길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말씀에 순종하기 때문에 손해를 보고, 자기 욕망을 죽이고, 세상의 방향과 다르게 걸으며 고난받는 것이 아들의 길을 걷고 있다는 표지가 될 수 있습니다.
2. 영광은 지금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장차 나타날’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롬8:18)
바울은 현재의 고난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좋으면 고난이 사라진다.” 라고 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두 시대를 대비합니다.
현재의 시대 → 고난
장차 올 시대 → 영광
히브리적, 유대적 종말론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흔히 말하는 올람 하제(עולם הזה, 이 시대)와 올람 하바(עולם הבא, 오는 시대)의 구조와도 잘 연결됩니다.
바울이 기다리는 영광은 단순히 현재의 삶에서 성공하고 높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영광은 아직 “나타날”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 고난받고 있는 사람에게 바울은 이렇게 말하는 셈입니다.
“지금 네가 보고 있는 것이 결말이 아니다.”
3. 인간만이 아니라 피조물 전체가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 바울의 시선이 갑자기 온 창조세계로 확대됩니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롬 8:19-20)
여기서 허무는 헬라어 마타이오테스(ματαιότης)로, 헛됨, 무상함, 목적을 온전히 이루지 못하는 상태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이것은 창세기 3장과 연결해서 읽을 수 있습니다.
인간의 죄 이후 인간만 죽음의 지배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창 3:17)
창조세계 전체가 썩음과 죽음의 질서 아래 놓였습니다.
그러므로 구원 역시 인간의 ‘영혼’만 빼내는 사건으로 끝날 수 없습니다.
창조 전체의 회복을 향합니다.
4. 피조물은 본래 허무를 위해 창조되지 않았다.
피조물이 허무에 굴복한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라고 바울은 분명히 말합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절에서 그 이유를 보여 줍니다.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롬 8:21)
피조물의 현재 상태인 썩음과 허무가 본래 창조의 최종 목적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피조물을 소망 가운데 두셔서 장차 해방을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창세기 처음의 창조를 보면,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창 1:31) 입니다.
그러므로 썩음은 창조의 최종 목적이 아닙니다.
창조 → 타락과 허무 → 탄식 → 해방 → 영광
이라는 방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5. 이것은 출애굽의 언어와도 닮아 있다
바울은 피조물을 “종 노릇”하고 있다고 표현합니다.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롬 8:21)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종노릇했습니다.
애굽의 종살이
→ 탄식
→ 여호와께서 들으심
→ 해방
→ 약속의 땅
그런데 로마서 8에서는 창조세계 전체가 마치 애굽에 있는 것처럼 탄식합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롬 8:22)
그리고 놀랍게도 우리 역시 탄식합니다.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롬 8:23)
따라서 로마서 8장은 어떤 의미에서 우주적인 출애굽을 그리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한 민족만의 해방이 아니라,
썩음의 종살이에서 창조세계 전체가 해방되는 것입니다.
6. 그렇다면 그 ‘영광의 자유’란 무엇인가?
바울이 바로 설명합니다.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롬 8:23)
바울이 기다리는 최종 구원은
몸에서 영혼이 탈출하는 것이 아닙니다.
몸 자체가 속량되는 것입니다.
앞에서 이미 말했습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롬 8:11)
따라서 로마서 8장은 하나의 이야기 입니다.
롬 8:11 — 죽을 몸도 살리심 → 롬 8:21 — 영광의 자유 → 롬 8:23 — 몸의 속량
우리가 기다리는 자유는 단순히 마음이 편안해지는 자유가 아닙니다.
죄와 죽음과 썩음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부활의 자유입니다.
7.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란 무엇인가?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롬8:23)
여기에는 히브리 절기적 배경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 열매는 히브리어로 레쉬트(ראשית) 또는 비쿠림(בכורים)과 연결되는 개념입니다.
첫 열매는 전체 추수가 끝났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첫 열매가 나왔다
→ 추수가 시작되었다
→ 그러나 전체 추수는 아직 남아 있다
는 표지입니다.
따라서 성령을 받은 것은 모든 구원이 이미 완성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령은 장차 올 완전한 구원을 미리 맛보게 하는 첫 열매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은 바울조차 탄식합니다.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탄식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첫 열매를 받았기 때문에 오히려 완전한 추수를 더욱 기다리는 것입니다.
8. 최종적인 부활과 몸의 구속을 기다리는 언약 백성
구약의 신실한 백성 → 예슈아와 사도 시대의 성도 → 오늘의 우리
이들은 모두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최종적인 부활과 몸의 구속을 기다리는 언약 백성이라는 큰 틀에서 볼 수 있습니다.
구약 성도들도 바로 그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니엘에게도 마지막 때의 몸의 부활이 약속됩니다.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단 12:2)
그리고 다니엘 개인에게도 약속하셨습니다.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날에는 네 몫을 누릴 것임이라.” (단 12:13)
욥 역시 자신의 죽음을 넘어 여호와를 뵙는 소망을 고백합니다(욥 19:25–27). 이사야도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날 것을 말합니다(사 26:19).
9. 구약 성도와 바울 시대 성도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히브리서 11장이 이 문제를 아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사라, 모세, 라합 등 구약의 믿음의 사람들이 길게 열거된 뒤 이렇게 끝납니다.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히11:39)
그리고 결정적인 말씀이 이어집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히11:40)
이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구약 성도들이 별도의 구원을 받고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들도 아직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울도 기다리고 있고,
우리도 기다리고 있으며,
아브라함도 최종적인 약속의 완성을 기다립니다.
무엇을 기다립니까?
부활과 몸의 속량,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완성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의 관점에서는 놀랍게도 그들과 우리가 함께 완성되는 것입니다.
10. ‘성령의 첫 열매’는 어떻게 이해할까?
여기에는 구속사의 중요한 진전이 있습니다.
구약에도 성령께서 분명히 역사하셨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들은 장차 성령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더욱 충만하게 부어지는 시대를 예언했습니다.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요엘 2:28)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에스겔 36:27)
그리고 예슈아의 부활 이후 오순절에 베드로가 요엘의 말씀을 인용하며 “이것이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라고 선언합니다(행 2:16–18).
따라서 구약 성도들에게 성령의 역사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예언되었던 종말론적 성령 부으심이 예슈아의 부활 이후 새로운 단계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조차 완성이 아닙니다.
성령을 받은 바울이 여전히 말합니다.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롬 8:23)
즉, 구약 — 약속을 바라봄
→ 예슈아의 부활 — 장차 올 부활의 첫 열매
→ 성령의 부으심 — 장차 올 완성의 첫 열매를 맛봄
→ 현재 — 성령을 받았으나 여전히 탄식하며 기다림
→ 마지막 — 죽은 자의 부활과 몸의 속량, 피조물의 해방
여기서 특히 고린도전서 15장과 연결하면 더 명확해집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전 15:20)
사람으로서 부활의 첫 열매는 예슈아입니다.
그리고 구약의 신실한 자들과 사도 시대의 성도들과 오늘의 우리는 모두 마지막 부활과 몸의 속량을 기다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시대는 달라도, 기다리는 추수는 하나입니다.
아브라함도 기다렸고, 바울도 기다렸고, 우리도 기다립니다.
그 기다림의 끝은 몸의 구속과 부활, 그리고 피조물이 누릴 영광의 자유입니다.
11. 비유 이야기
"겨울을 견디는 씨앗"
한 농부가 늦가을에 밭에 씨앗을 심었습니다.
씨앗은 차가운 흙에 묻혀 긴 겨울을 보내야 했습니다.
누군가 농부에게 물었습니다.
“싹도 보이지 않는데, 정말 이 밭에 생명이 있습니까?”
농부가 대답했습니다.
“지금 보이는 것만 보면 흙뿐이지요. 하지만 나는 봄에 이 밭이 어떻게 될지를 알고 있습니다.”
겨울이 깊어질수록 씨앗은 사라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봄이 오자 땅을 뚫고 싹이 올라왔고, 마침내 밭은 황금빛 곡식으로 가득 찼습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지금은 고난과 탄식이 보이고 우리의 몸도 여전히 썩어짐 아래 있지만, 지금 보이는 모습이 우리의 마지막 모습은 아닙니다.
성령의 첫 열매를 받은 우리는 아직 보이지 않는 추수를 기다립니다.
씨앗은 겨울을 보고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보이지 않는 봄을 품고 겨울을 견딥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로마서 8:25)
지금은 고난이지만, 우리의 결말은 고난이 아닙니다.
우리의 결말은 몸의 속량이며 부활이며 영광의 자유입니다.
객관식 20문제
1. 로마서 8:16에서 성령께서 증언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① 우리가 고난을 받지 않을 것
②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
③ 우리가 이미 완전한 영광을 얻었다는 것
④ 모든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것
2. 하나님의 자녀라면 바울은 또한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① 선지자
② 제사장
③ 상속자
④ 천사
3. 로마서 8:17에서 예슈아와 함께 영광을 받는 것과 연결되어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① 재물
② 고난
③ 지식
④ 명예
4. 이번 메시지에서 성령의 인도를 가장 바르게 설명한 것은 무엇입니까?
① 언제나 편안하고 성공하게 되는 것
② 어려움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
③ 말씀에 순종하며 아들의 길을 걷는 것
④ 마음속에서 좋은 감정을 느끼는 것
5. 히브리서 5:8은 예슈아께서 무엇을 통해 순종을 배우셨다고 말합니까?
① 지식
② 고난
③ 성공
④ 기적
6. 로마서 8:18에서 현재의 고난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은 무엇입니까?
① 현재의 축복
② 사람의 지혜
③ 장차 나타날 영광
④ 세상의 부귀
7. ‘올람 하제(עולם הזה)’와 ‘올람 하바(עולם הבא)’의 설명으로 알맞은 것은 무엇입니까?
① 땅과 바다
② 이 시대와 오는 시대
③ 이스라엘과 이방
④ 육체와 영혼
8. 로마서 8:19에서 피조물이 고대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① 세상의 발전
② 고난이 조금 줄어드는 것
③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
④ 새로운 제국의 등장
9. 로마서 8:20의 ‘허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무엇입니까?
① 아가페
② 마타이오테스
③ 로고스
④ 프뉴마
10. 피조물이 허무와 썩음 아래 놓인 것과 연결하여 살펴본 창세기의 사건은 무엇입니까?
① 바벨탑
② 홍수
③ 인간의 범죄와 땅의 저주
④ 아브라함의 부르심
11. 로마서 8:21에서 피조물이 해방되기를 바라는 것은 무엇의 종노릇입니까?
① 율법
② 썩어짐
③ 노동
④ 인간
12. 이번 메시지에서 로마서 8장의 피조물의 해방을 출애굽과 연결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① 모두 광야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② 모두 애굽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③ 종노릇과 탄식에서 해방으로 나아가는 구조가 닮았기 때문에
④ 모두 모세가 기록했기 때문에
13. 로마서 8:22에 따르면 피조물은 현재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① 잠잠히 기다리고 있다
② 함께 탄식하며 고통을 겪고 있다
③ 이미 완전히 자유롭게 되었다
④ 심판받아 사라지고 있다
14. 로마서 8:23에서 성도들이 기다리는 것은 무엇입니까?
① 몸을 벗어나 영혼만 구원받는 것
② 세상에서 높은 지위를 얻는 것
③ 양자 될 것, 곧 몸의 속량
④ 고난 없는 현재의 삶
15. 로마서 8:11, 8:21, 8:23의 흐름으로 가장 알맞은 것은 무엇입니까?
① 영혼의 탈출 → 천국 → 육체의 소멸
② 죽을 몸을 살리심 → 영광의 자유 → 몸의 속량
③ 고난 → 재물 → 성공
④ 율법 → 심판 → 멸망
16.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가 의미하는 것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무엇입니까?
① 구원이 이미 완전히 끝났다는 것
② 장차 올 완전한 구원을 미리 맛보고 보증받는 것
③ 바울 시대의 사람들만 구원받는다는 것
④ 성령의 역사가 그 시대에 처음 존재했다는 것
17. 성경에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분은 누구입니까?
① 아브라함
② 모세
③ 다윗
④ 예슈아
18. 구약의 신실한 백성과 사도 시대의 성도와 오늘의 우리가 공통적으로 기다리는 것은 무엇입니까?
① 각각 다른 구원
② 지상의 정치적 성공
③ 최종적인 부활과 몸의 속량
④ 고난이 전혀 없는 현재의 삶
19. 히브리서 11:39–40에 따르면 구약의 믿음의 사람들은 어떻게 묘사됩니까?
① 모든 약속을 이미 완전히 받았다
② 우리와 관계없이 이미 모든 것이 완성되었다
③ 약속의 완성을 기다리며 우리와 함께 온전함에 이르게 된다
④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약속을 받지 못했다
20. 로마서 8:24–25이 가르치는 기다림의 태도로 가장 적절한 것은 무엇입니까?
① 보이지 않으면 포기한다
② 현재의 고난만 바라본다
③ 보지 못하는 것을 소망하며 인내로 기다린다
④ 고난이 없어질 때까지 순종을 미룬다
주관식 하브루타 5문제
1. “성령의 증언”을 단순히 마음속 확신이나 좋은 느낌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로마서 8:16–17을 중심으로 설명해 보세요.
함께 생각하기: 성령의 인도, 자녀 됨, 고난, 상속, 장차 올 영광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요?
2.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는 말씀은 현재 내가 겪는 어려움을 바라보는 관점을 어떻게 바꾸어 줍니까?
3. 피조물의 ‘썩어짐의 종노릇에서의 해방’을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비교하여 설명해 보세요.
종노릇 → 탄식 → 해방이라는 공통된 흐름을 찾아보세요.
4. 성경이 말하는 최종적인 구원이 단순히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로마서 8:11, 21, 23을 사용하여 설명해 보세요.
5. 아브라함과 구약의 신실한 백성들, 바울과 사도 시대의 성도들, 그리고 오늘의 우리는 모두 무엇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또한 이 소망이 현재의 고난을 인내하는 데 어떤 힘을 줄 수 있는지 자신의 삶과 연결하여 나누어 보세요.
객관식 답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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