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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하나님의 뜻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된 나 바울이,
1:2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께서 내려주시는 은혜와 자비와 평화가 그대에게 있기를 빕니다.
1:3 나는 밤낮으로 기도를 할 때에 끊임없이 그대를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나는 조상들을 본받아 깨끗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섬깁니다.
1:4 나는 그대의 눈물을 기억하면서, 그대를 보기를 원합니다. 그대를 만나봄으로 나는 기쁨이 충만해지고 싶습니다.
1:5 나는 그대 속에 있는 거짓 없는 믿음을 기억합니다. 그 믿음은 먼저 그대의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 속에 깃들여 있었는데, 그것이 그대 속에도 깃들여 있음을 나는 확신합니다.
1:6 이런 이유로 나는 그대를 일깨워서, 그대가, 나의 안수로 말미암아, 그대 속에 간직하고 있는 하나님의 은사에 다시 불을 붙이게 하려고 합니다.
1:7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1:8 그러므로 그대는 우리 주님에 대하여 증언하는 일이나 주님을 위하여 갇힌 몸이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함께 겪으십시오.
◈ 주해
1. 디모데 후서의 기록연대와 상황은 디모데는 물론 우리의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1) 바울은 여러 고난을 받았고, 감옥에서 은혜의 영광을 찬양하며 에베소서를 보냈고, 주 안에서 기뻐하며 빌립보서를 보냈다.
2) 디모데 후서를 쓰는 곳도 감옥인데, 이번의 감옥은 고난을 넘어서 바울은 자신이 사형으로 순교할 것을 알고 기다리는 상태에서 쓴 것이다.
2. 바울은 로마에서 1차 투옥(가택연금) 된 후 석방되어(62년) 스페인과 크레타 섬, 니고볼리를 선교했다.
1) 그리고 그 유명한 내로의 박해로 감옥에 갇혀 사형을 기다리는 상태(66-67년경)에서 디모데 후서를 쓰고 베드로와 함께 순교 한다.
2) 서신의 마지막에 바울은 그의 마지막을 암시하는 말과 겨울이 오기 전이라는 표현을 쓴다.
딤후 4: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3. 바울은 서신을 시작할 때마다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정체성을 밝힌다.
1)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뜻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임을 밝힌다.
2) 그가 사도직의 정체성을 가지는 것은 자신이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그는 감히 교회의 핍박자로서 사도직을 받을 수 없는 죄인 중의 괴수라고 했었다.
3) 그러나 그의 과거, 그의 연약함, 사람들의 비방을 압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과 부르심이었다. 하나님이 사도로 부르셨으면 자신은 사도라는 것이다.
4) 우리도 사단의 정죄와 합리적인 비방에 사로잡히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은혜로 직분자로 부르셨다는 정체성과 믿음을 가져야 한다.
5. 사도직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왜 사도로 부름 받았는지, 그 목적을 아는 것이다.
[새번역] 딤후 1:1 하나님의 뜻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된 나 바울이,
[쉬운성경]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된 나 바울은.
1) 창세전에 하나님은 2가지 일을 하셨는데, 먼저는 자기 속에 있는 생명을 아들에게 주어 아들을 나게 하신 일이다(잠 8:22, 요 5:26).
2) 그리고 창세전에 이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셨다(딛 1:2).
3) 사도로 부르신 목적은 아들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기로 하신 약속을 전하기 위함이다.
6.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을 전하기 위하여 바울은 복음을 전하여 믿는 자마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함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의 아들이 되게 하였다(요일 5:1; 엡 1:4-5).
1) 모든 그리스도인은 존재적인 부르심을 받았다. 즉 아들 안에 있는 생명을 얻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품속에 거하는 교제의 존재로 부르심을 받았다.
2)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은 바울처럼 복음을 전하여 생명을 얻게 하는 사명의 부르심을 받았다.
3)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요 6:40).
7. 디모데는 바울과 같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믿음의 아들이다.
1) 이 사명은 영광스러우나, 그 과정에는 고난과 어려움이 많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2) 그러기에 늘 “은혜와 평강”을 기원했던 바울은 은혜와 평강과 함께 “긍휼”이 함께 있기를 축원한다.
3) 하나님은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긍휼(자비, 헤세드)로 바라보신다.
8. 바울은 디모데를 개인적으로 얼마나 사랑으로 기도하고 있는지를 말한다.
[새번역] 1:3 나는 밤낮으로 기도를 할 때에 끊임없이 그대를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나는 조상들을 본받아 깨끗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섬깁니다.
1:4 나는 그대의 눈물을 기억하면서, 그대를 보기를 원합니다. 그대를 만나봄으로 나는 기쁨이 충만해지고 싶습니다.
1) 바울은 디모데를 생각하면 하나님께 감사가 나온다. 디모데가 복음을 전하면서 흘린 눈물을 기억하면서 디모데를 보기 원한다. 디모데를 만난다면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
2) 디모데는 하나님의 기쁨일 뿐 아니라, 바울의 기쁨이다. 생각만 해도 감사가 나오는 사람, 만난다면 기쁨을 충만하게 주는 사람이 바로 디모데였다.
3) 디모데를 사랑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바울은 디모데의 눈물,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한 그의 눈물을 기억하기 때문에 그를 기억하면 감사하고, 기쁘다고 한다.
9. 바울이 디모데를 기뻐하고, 감사하는 이유는 디모데가 바울과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기 때문이다.
1) 바울은 자신이 “청결한(깨끗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디모데는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기에 그를 보면 기쁨이 가득할 것이라고 한다.
[새번역] 딤후 1:5 나는 그대 속에 있는 거짓 없는 믿음을 기억합니다. 그 믿음은 먼저 그대의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 속에 깃들여 있었는데, 그것이 그대 속에도 깃들여 있음을 나는 확신합니다.
2) 깨끗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바울과 거짓이 없는 믿음을 가진 디모데가 영적 아버지와 영적 아들이 된 것은 당연하다. 이들은 같은 믿음으로 인하여 서로 반한 것이다.
10. 요나단은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치는 믿음을 보고 한 눈에 반하여 언약을 맺고, 평생의 동역자가 되며, 다윗에게 왕위가 이어질 것이라고 격려하고 도왔다.
1) 이는 요나단이 다윗과 같은 믿음을 가졌기에, 믿음 안에서 완전히 하나가 되어서다.
2) 요나단이 블레셋을 향하여 나가면서 하는 고백과 다윗이 골리앗을 향해 나가는 고백이 동일하다. 그들은 같은 믿음 안에서 서로를 사랑하고 기뻐한 동역자였다.
3) 같은 믿음으로 서로 사랑하고 서로 섬기는 관계,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관계이며, 서로 사랑의 완성이다. 다윗과 요나단, 바울과 디모데는 이런 사랑의 관계로 서로에게 힘이 되었다.
11. 바울은 디모데의 거짓 없는 믿음과 함께 그의 눈물을 알고 있다.
1) 영적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순전한 디모데가 눈물을 흘리는 사역을 하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고 안타깝다.
2) 그래서 그에게 안수하여 그의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에 다시 불을 붙이기 원한다.
3) 다양하고 이기적이고 거짓 교사들의 모함이 난무하는 현장에서 거짓 없는 믿음으로 생명의 공동체를 세우는 일은 눈물 나는 일이며,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4) 한편으로는 내 안에 사시는 예수 생명으로 사역해야 하며,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이 주신 은사로, 즉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감당할 수 있다.
12. 눈물로 사역하는 디모데에게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격려한다.
1:7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1) 하나님이 주신 성령께서 디모데에게 능력을 주시며,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주시며, 절제할 수 있게 도우신다며 격려한다.
2) 어쩌면 디모데는 눈물 나는 사역으로 인하여 “능력과 사랑과 절제”에 한계를 느꼈는지도 모른다.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한계로 더욱 눈물이 낫을 수도 있다.
3) 그래서 바울은 그가 밤낮으로 기도하고 있음과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은사와, 능력과 사랑과 절제의 영으로 도우시는 성령님으로 그를 격려한다.
13. 자신이 기도하고 있고,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따라 성령의 도우심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권면한다.
딤후 1:8 그러므로 그대는 우리 주님에 대하여 증언하는 일이나 주님을 위하여 갇힌 몸이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함께 겪으십시오.
1) 이 말을 하기 까지 노년의 바울은 감옥에서 많은 눈물을 먼저 흘렸을지도 모른다.
2) 이미 디모데는 거짓 없는 믿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생명 얻게 하는 복음을 전하는 신실한 믿음의 아들이다.
3) 자신은 감옥에 갇혀 있고, 이는 디모데의 마음을 힘들게 하였고, 바울은 디모데를 만나 그를 도울 수 없다.
14. 순교를 직감한 바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권면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가장 영광스러운 부르심이기 때문이다.
1)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의 눈물이 아프지만, 진리로 보면 “아들 안에 있는 생명을 전하는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것”이 가장 영광스럽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15. 이는 아버지가 아들을 향해 가졌던 마음일 것이다.
1) 아버지는 아들이 성육신 하여 인생의 모든 시험을 받으시고,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무엇보다 죄가 되어 아버지로부터 버림받는 것을 아파하며 눈물을 흘리셨을 것이다.
2) 그러나 아들이 가는 길, 창세전 아들 안에 있는 생명을 주기로 약속한 것을 성취하기 위하여 가는 십자가의 길, 고난 받는 그 길이 가장 영광스러움을 아셨기에 아들을 십자가로 이끄셨다.
3) 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기에 기꺼이 자신을 버려 십자가의 길을 끝까지 걸었다. 그리고 디모데는 바울과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길을 걸었다.
◈ 나의 묵상
디모데의 눈물을 생각하면서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하는 바울의 마음을 떠올리니 눈물이 난다. 자신은 복음을 위하여 감옥에 갇혔고, 순교할 줄을 안다. 자신은 고난을 받아도 감격이지만,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 만큼은 눈물 흘리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노사도의 마음이 느껴진다. 같은 마음, 같은 믿음을 가졌기에 디모데의 마음과 사역과 눈물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바울이다. 그런 디모데의 눈물을 생각하면 그를 간절히 보기를 원한다. 그러나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감옥에 갇혔고, 다시는 디모데를 만날 수 없음도 안다.
그런 바울이 디모데에게 사랑으로 권면한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가장 하고 싶지 않은 말이지만, 가장 영광스러운 말이기에, 그는 사랑하는 디모데에게 기꺼이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한다. 누가 사랑하는 자녀가 고난 받기를 원하겠는가? 하늘 아버지도 아들이 고난 받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셨다. 그러나 아들 안에 있은 생명을 얻는 그 가치, 아들 안에 있는 생명을 주는 그 영광을 알기에 아들을 십자가로 이끌었다. 바울도 마찬가지다. 복음을 전하는 사도의 부르심이 영광스러움을 알고, 복음을 위해 받는 고난의 가치를 알기에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복음을 위한 고난”으로 초대한다.
그렇지만 인간적으로 바울은 얼마나 눈물을 흘리면서 이 서신을 썼을까? 할 수만 있다면 바울은 디모데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주고, 디모데가 받는 모든 고난과 어려움을 해결해 주고 싶었을 것이다. 바울은 이미 쉬지 않고 디모데를 위해 기도하고 있고, 디모데 보기를 간절히 원하고, 그의 눈물을 잘 알고 있다. 디모데에게 “긍휼”이 있기를 축원한다.
감히 디모데에게 비할 바는 없지만, 자비하신 하나님이 바울이 디모데를 보듯이 나를 보실 것이다. 비록 디모데에게 있는 믿음은 없지만 복음을 전하기 위한 나의 눈물을 아신다.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음도 아신다. 그래서 은사를 주셨고, 능력과 사랑과 절제의 성령을 주셨다고 격려하신다. 그리고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하신다. 나를 이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아들이 가신 길, 가장 영광스러운 길, 한 번 사는 인생에게 가장 영원한 일이기 때문이다. 눈물을 흘리며 아들을 십자가로 인도하신 하늘 아버지는 사랑으로 나를 십자가로 이끄신다. 사랑하기에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영광의 길을 권면하신다.
물론 나는 디모데가 아니다. 그의 믿음과 순종이 없다. 그러나 아들 안에 있는 생명을 얻게 하는 복음을 전하는 일, 그 복음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이 영광임을 안다. 다만, 그럴 힘과 능이 없다. 바울의 권면대로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 하나님이 주신 마음을 구한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가 다시 불일 듯 일어나기를 기도하며,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내 마음을 주관하기를 기도한다. 그로 인하여 하나님이 부르신 그 영광의 길을 끝까지 가기를 기도한다.
◈ 묵상 기도
주님, 젖을 먹이고 싶으나 젖이 나오지 않는 어미의 마음 같습니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음으로 아들 안에 있는 생명을 주는 영광스러운 일에 참여하고 싶으나 그리할 믿음과 힘이 없습니다. 주님의 은혜와 긍휼과 자비 안에서 주님이 주신 은사와 주님이 주신 마음이 제 안에서 불일 듯 일어나게 하여 주십시오.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 오직 성령의 은혜와 생명주심으로 감당할 수 있는 사명이오니 성령님 주권적으로 저의 영혼과 몸을 덮어 주십시오. 주님이 주신 은사와 마음, 주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 받는 믿음을 부어 주십시오. 영광스러운 부르심에 등 돌리지 아니하고, 예수 생명이 내 생명임을 아는 믿음으로 바울처럼 끝까지 주님의 길을 걷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십시오. 이번주에는 수능과 사경회가 있습니다. 수능을 치러는 자녀들을 믿음과 사랑과 지혜로 이끄소서. 사경회를 통하여 바울의 이 믿음과 마음이 부어지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