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팀 레딩은 상당히 유쾌하고 솔직한 친구였습니다. 번데기도 먹어보니 맛있더라는 말에 웃음이 절로 났습니다. ⓒ민기자닷컴 |
-대구가 이렇게 더운 곳인 줄 알고 있었나.
▶오기 전에 인터넷을 찾아봤다. 상당히 고온인 것은 알았다. 그런데 습도까지 이렇게 높을 줄은 몰랐다. (웃음)
-특파원 시절 미국에서 당신 경기를 취재한 기억이 난다. 박찬호와 서재응, 김병현, 김선우 등 빅리그에서 뛴 한국 선수 중에 아는 선수가 있나.
▶직접 대결한 선수는 최희섭이 있다. 마이너리그 시절부터 커브스, 말린스에 있을 때도 만났다. 박찬호는 다른 팀에 있었지만 그가 던지는 것은 늘 봤고, 서재응이 등판한 메츠와 상대한 적도 있다. 그리고 추신수도 잘 안다. 만난 적은 없지만 정말 좋은 선수인데 너무 약 팀에서 뛰는 것이 아쉽다.
-1997년 휴스턴 애스트로스가 드래프트했는데 빅리그 데뷔는 언제였나.
▶2002년 6월 24일이다. 일요일이었다. 신시내티 레즈를 상대로 휴스턴 홈에서 선발 등판했다. 첫 타자를 삼진으로 잡았다.
-누군지 기억하나.
▶아, 후안 카스트로였다. 마이클 터커가 2번이었는데 뜬 공으로 잡았고 켄 그리피 주니어를 볼넷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션 케이시가 2점 홈런을 쳤다. (웃음) 5.2이닝 동안 던졌는데 6회에 애런 분에게 동점 3점 홈런을 맞고 교체됐다. 승패와 무관했다.
-마치 어제 일처럼 기억하는 것 같다.
▶물론이다. 어려서부터 내가 늘 하고 싶었던 것은 오직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서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룬 순간이었는데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나. 어려서부터 운동을 잘 했고, 고맙게도 야구를 잘 할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주어졌다. 모든 어린 운동선수들의 희망은 최고의 리그에서 뛰는 것 아닌가. 농구와 풋볼도 어려서 했지만 야구는 늘 내게 최고의 스포츠였다.
-어려서부터 MLB가 꿈이었겠다.
▶항상 메이저리그를 항상 꿈꿨다. 어려서 나는 양키스 팬으로 컸고, 운 좋게도 양키스 유니폼을 입고 딱 한 번 마운드에 설 기회도 있었다.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던 팀에서 뛰고 싶은 간절한 소망을 이룬 순간이었다.
-특히 레드삭스를 상대했던데.
▶그렇다, 2005년 7월 15일 펜웨이파크에서 열린 경기였다. 보스턴에서 총 3번 등판했는데 모두 결과가 안 좋았다. 양키스 팬으로 자랐기 때문에 그곳에서는 운이 따르지 않았는지. (웃음) 그러나 양키스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 오른 그 하루는 내 인생의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소중한 추억이다.
-올해 양키스 트리플A에서 뛰면서 성적도 아주 좋았다. (7승4패 2.46) 그런데 갑자기 삼성 라이온스를 택했다.
▶트리플A에서 잘 던졌는데도 양키스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라이온스에서 연락이 왔고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었다. 생각하면 너무 잘 한 결정이었다. 동료들도 아주 좋고 라이온스는 강팀이다. 감독님도 대단히 뛰어난 투수였다고 들었고, 팀 분위기도 너무 좋다.
-여전히 빅리그의 기회가 있는 가운데 한국행 결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물론 어려운 결정이었다. 투수는 특히 부상의 위험이 잦고 빅리그에 빈자리가 생기면 올라갈 기회는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7월의 상황이 양키스 구단 내에서 나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말해줬다고 생각한다. 7월에 나는 5승 무패에 0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마지막 3경기는 모두 8이닝을 던졌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트리플A에 머물렀다. 시즌 ERA도 2.46으로 꾸준히 잘 던졌다.
그런 상황에서 삼성의 연락을 받았다. 그래서 양키스 구단에 나에 대한 계획을 물었다. 그러나 나를 계속 데리고 있고 싶다는 말 외에는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다. 특히 빅리그에서 던지는 투수 중에는 분명히 나보다 능력이 떨어지는 투수도 있었다.
그리고 경제적인 요소도 작용을 했고, 한국 야구에 와서 우승에 일조를 하고 싶다는 의욕도 컸다. 라이온스가 아주 강하고 좋은 팀이라고 들었고 결정을 내렸다. 내가 뛰던 트리플A 팀은 포스트 시즌 1회전에 탈락해 우승 반지를 낄 기회를 잃었다. 삼성에서 우승 반지를 끼고 싶다.
-한국 야구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나.
▶예전에 SK와 LG에서 나를 원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3년 전 워싱턴 트리플A에 있을 때 SK에서 문의가 왔는데 빅리그로 승격돼 기회가 없었고, 올 초에는 내가 콜로라로 로키스에 방출을 요구했을 때 LG에서 문의가 왔었다. 1주일 정도 미시간의 집에 있을 때였는데 LG 관계자가 집에 왔었다. LG와의 협상을 끝내기 3시간 정도 남았었는데 에이전트가 양키스 브라이언 캐시맨의 전화를 받았다.
2005년에 양키스에서 뛰었지만 어깨 통증으로 부진했고 결국 시즌이 끝나고 수술을 받았다. 그래서 양키스로 돌아갈 수 있다는 기회가 주어지면서 꼭 다시 도전해보고 싶었고 결국 LG행을 포기했다. 그런데 몇 달 후에 결국 이렇게 한국 야구에서 뛰게 됐다.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 삼성에서 거는 기대가 크다.
▶내가 잘 던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웃음) 아직은 적응하는 과정이다. 야구가 다른 점이 많다. 마운드는 미국처럼 관리가 철저하게 잘 돼 있지는 않다. 인조 잔디에도 익숙지 않고 특히 야구는 많이 다르다. 타자들은 큰 스윙보다는 공을 맞추는데 주력하고 컨택트 능력이 뛰어나다.
-그런 스타일의 야구에 익숙지 않을 텐데.
▶WBC 등에서 한국와 일본 야구를 봤다. 항상 야구를 보니까 어느 정도는 느끼고 있었지만 실제 경험하니 많이 다르다. 이치로는 많이 상대해봤는데 원하면 파워도 내지만 역시 맞추는 능력은 최고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한 팀에 그런 타자가 한, 두명이지만 여기는 라인업에 그런 타자들이 즐비하다. 이대호를 보라, 그 홈런 타자가 지난 번 경기에서 나를 상대로 배트를 던지며 안타를 만들었다. 42홈런에 3할6푼의 타자라니!
야구공도 미국보다는 훨씬 표면이 끈끈하다고 해야 할까 그렇다. 그런 모든 것들을 빠르게 배워가고 있다.
레딩은 메이저리그에서 두 번의 10승 시즌을 포함해 통산 37승 57패를 기록했습니다. 올해는 양키스 트리플A에서 뛰다가 삼성으로 왔습니다. ⓒ 게티이미지/멀티비츠
-마운드에서 흙은 만져 경고를 받은 것도 그런 연유였나.
▶역시 야구의 차이 때문이었다. 미국에서는 흙을 만져도 먼지를 닦으면 문제가 없다. 손에 먼지를 묻혔다가 유니폼에 닦으면 됐는데 처음에 3이닝 동안은 아무 말도 없다가 4회에 갑자기 심판이 안 된다고 하더라. 규정이 그런지 몰랐다.
한국에서는 비가 오면 투수가 뒷주머니에 로진백을 넣고 던지지만 미국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런 차이였던 것 같다. 규정의 해석에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당시는 마운드에서 타자와 싸우는 상황에 그런 일을 당해 당황하고 화도 났지만 역시 많은 것을 배운 경험이었다.
역시 중요한 것은 플레이오프니까 정규 시즌에 가능한 한 많은 것을 배워 플레이오프에서 좋은 경기를 던질 것이다.
-구종은 패스트볼,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을 던지나.
▶주로 그 4가지 구질을 던진다. 그런데 역시 변화를 주어야 한다. 체인지업도 미국에서와는 달리 잘 떨어지지 않는다. 공이 더 잘 긁히기 때문인지 체인지업을 던지기가 훨씬 어렵다. 체인지업을 잘못 던졌다가는 장타를 맞으니까 더욱 주의하고 있다. 슬라이더 구사도 더 조심하면서 감각을 익히고 있다. 커브와 패스트볼은 아주 좋다.
-어릴 적 이야기를 들려 달라. 언제 야구를 시작했나.
▶다른 모든 애들처럼 스윙을 할 수 있는 나이인 5,6세 때부터 티볼과 야구를 했다. 여동생밖에 없어서 늘 밖에서 나보다 나이 많은 형들과 야구를 하며 놀았다. 그래서 야구를 더 빨리 배웠던 것 같다. 정말 열심히 하지 않으면 형들을 이길 수 없으니까.
-언제부터 프로를 꿈꿨나.
▶어려서부터 항상 꿈이었지만 고등학교에서 야구를 하고 대학에 가면서 구체적이 됐다. 고교 시절에는 86~87마일을 던졌는데 주니어 컬리지에서 가면서 92마일까지 구속이 나왔다. 운동도 체계적으로 하고 정말 많이 달리고 하면서 구속이 빨라졌다.
텍사스나 캘리포니아 같은 곳에서는 고교 때도 체계적으로 야구에만 집중하지만 나는 뉴욕 주 로체스터에서 자랐고 야구, 농구, 풋볼 등으로 골고루 하면서 고교 시절을 보냈다. 그래서 무리하지 않은 점도 있다. 그리고 대학에 가서 본격적으로 야구를 배웠다.
-투수치고는 큰 체격은 아닌데 강속구를 구사한다.
▶1999년 싱글A에서 마무리로 뛸 때 100마일을 찍은 적이 있다. 보통 96~97마일을 던졌었다. 그러나 선발로 돌고는 94~97마일을 던졌다.
-강한 어깨를 타고 났다보다.
▶그런 것 같다. 요즘도 94마일까지는 던진다. 인터넷으로 Km로 따져보니 152Km 정도 되더라. 컨디션을 잘 조절하고 긴 이닝 동안에 그런 구속을 유지할 수 있도록 더욱 신경을 쓰고 있다.
-마운드에서는 상당히 투쟁심이 강한 모습이 평소와는 많이 다르다.
▶지는 것을 정말 싫어한다. 그리고 제대로 못 던지는 것도 스스로 용납을 잘 못한다. 마운드에서는 두려움을 가져서는 안 된다.
실패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타자는 10번에 7번을 실패해도 좋은 타자지만 투수는 10번에 7번을 실패한다면 버텨낼 수 없다. 나는 지고 들어가는 것을 질색하고 그래서 고의 볼넷도 아주 싫어한다. 투쟁심과 경쟁심이 운동선수를 끌고 간다.
팀에서 나에게 믿음을 갖고 이곳까지 데리고 왔으니 그 믿음에 보답하고 싶다. 퀄리티 스타트도 좋지만 승리도 또 아주 중요하다. 내가 8이닝 2실점하면 좋은 경기지만 2-1로 패한다면 패전에 불과하다. 좋은 경기를 하고 그리고 이기고 싶다.
야구는 승리하면 팀의 몫이지만 패하면 투수의 책임일 때가 많다. 선발로 나서 경기에 승리하고 그리고 동료들에게 고마움과 칭찬을 해줄 수 있을 때가 가장 좋은 것 같다.
-완벽주의자로 보인다.
▶완벽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누구도 완벽해질 수는 없다. 늘 최선을 다해 완벽해지려고 노력할 뿐이다.
-야구를 즐기나.
▶지난 2년간은 스포츠로서 야구를 즐기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스포츠라기보다 일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내가 원하는 만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상도 있었고 성적도 잘 나오지 않을 때는 더 잘하기 위해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한 달 여 지내면서 야구를 다시 즐기게 됐다고 생각한다. 동료들이 팀의 승리를 위해 이런 저런 작은 일들을 하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 많다. 희생 번트로 주자를 진루시키고 돌아오면 동료들 모두 일어나 요란하게 환영을 해준다.
투수가 실점을 하고 마운드를 내려와도 하이파이브를 하고, 격려해준다. '우리는 팀이니까 함께 극복하면 된다.'라는 그런 느낌을 준다. 미국에서는 실점을 하고 내려오면 누구도 말을 나누려하지 않는다. 마치 고립된 섬처럼.
동료가 잘못되는 것을 원하는 선수는 하나도 없다는 그런 느낌. 그런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런 점은 미국 야구가 한국이나 동양 문화에서 배워야할 점이라고 생각한다. 동료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에도 모두 격려하고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함께 이겨나가려는 모습은 보며 야구를 다시 즐겁게 하고 있다. 팀이라면 그렇게 하는 것이 바른 길인 것 같다.
승리가 전부는 아니고 야구는 팀 스포츠니까.
뒤늦게 한국 야구에 뛰어들었지만 경쟁력을 보인 레딩은 삼성 라이온스의 포스트 시즌 성패에 열쇠를 쥔 선수 중의 한 명입니다. ⓒ민기자닷컴
-한국 프로에 늦게 합류했으니 가족과는 떨어져 있겠다.
▶2주 동안 한국에 왔었다. 딸 셰이는 9살이고 아들 브레넌은 7살이다. 광주도 갔고 서울도 갔었다. 있는 동안에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한국의 많은 곳을 둘러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집사람과 애들이 좋은 경험을 했다. 만약 내년에도 한국에서 뛰게 된다면 가족들을 오래 와있게 할 생각이다.
-한국 음식이나 문화, 언어 등에는 어떻게 적응하고 있나.
▶한국어는 어렵다. 아직 안녕하세요, 정도 밖에 모른다. 음식을 시키고 할 때는 어려움도 있다. 양파를 싫어하는데 빼달라고 할 때라든지. 앞으로 한국어도 열심히 공부해볼 생각이다. 음식은 좋다, 아주 매운 것은 싫어하지만 미국의 매운 맛과는 조금 다르다. 김치도 괜찮고 고기와 생선 등은 모두 좋아한다. 숯불에 구워먹는 갈비는 진짜 맛있다. 사냥을 좋아해서 다양한 음식을 먹는데도 주저하지 않는 편이다.
-사냥을 자주 하나.
▶사냥철이 되면 토끼, 사슴, 엘크, 무스 등을 사냥한다. 플로리다에서 스프링 캠프 때 악어도 잡은 적이 있다. 악어는 꼬리에 X자로 뼈가 있는데 그 곳의 고기를 먹는다. 한국에 와서 이틀째인가 우리 포수(진갑용)의 식당에 간 적이 있는데 무슨 벌레를 내오더라. 뭔가 물어봤더니 나비 애벌레라고 했는데 먹어보니 꽤 맛있더라. (번데기를 뜻했습니다.) 그런데 내 딸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가 혼났다. 셰이는 나비를 아주 좋아하는데 내가 번데기를 먹었다니까. (웃음) 쭈꾸미도 먹어봤고, 한국 음식은 맛있는 것이 많다.
-야구는 얼마나 더 하고 싶은가.
▶내년 2월이면 만 33세가 된다. 미래를 알 수는 없지만 내가 던질 수 있는 한은 던질 것이다. 미국에서 보면 투수는 30대 후반이면 대충 끝나는 것으로 안다. 나는 토미 존이나 큰 수술을 받은 적은 없었고 앞으로도 그런 운이 따라야겠지만 경쟁력 있게 던질 수 있는 한 마운드에 서고 싶다.
-앞으로 목표는 무엇인가.
▶짧게는 팀을 위해 좋은 경기를 하면서 승리하는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확고하다.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잘 던지고 싶다.
장기적으로는 아직 알 수 없다. 시즌이 끝나면 나는 미국에서는 FA가 된다. 한국에서는 삼성이 재계약 권리를 가지고 있다. 메이저리그 팀이 나를 원한다면 좋겠지만 삼성이 원한다면 돌아와서 풀 시즌을 뛰고 싶다. 이렇게 좋은 팀에서 풀 시즌을 뛴다는 것은 큰 경험이 될 것 같고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다.
-마지막 질문, 팀 레딩에게 야구란 어떤 의미인가.
▶나의 모든 것을 야구를 통해 얻었다. 팀과 동료들과 여행을 다니고 미국 전역뿐 아니라 베네수엘라, 멕시코, 그리고 한국에도 왔다, 야구가 아니었다면 그런 기회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잡 사람도 야구 때문에 만났다. 프로 2년차 때 미시간 주의 배틀 크릭이라는 곳에 원정을 갔다. 그 전까지는 들어본 적도 없는 곳이었다. 개막전 전날에 코미디 클럽에 갔다가 그 사람을 만났는데 개막전에 오라고 했더니 오지는 않았다. 내가 개막전 투수였는데. (웃음) 그러나 데이트를 계속했고 그리고 이제 곧 결혼 10주년 기념일이 된다. 두 아이와 가족과 그리고 은퇴 연금 등 그 모든 것이 야구를 통해 내게 왔다. 오늘의 나를 만들어준 것이 바로 야구다.
어렸을 때부터 늘 하고 싶었던 것이고 그 꿈은 모두 이루어졌다. 앞으로 선수 생활을 더 할 것이고 어쩌면 코치로도 일할지 모르겠다. 야구는 나의 인생이다.
팀 레딩은 상당히 유쾌하고 솔직한 친구였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 10승 시즌을 두 번이나 기록해 기대가 아주 컸던 만큼 아직 기대를 충족시킬 정도는 아니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그러나 경쟁력 있고 팀과 동료를 생각하며, 그리고 승부욕이 상당히 강한 투수입니다.
내년을 기약할 수 없는 외국인 선수니까 포스트 시즌의 활약 여부가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나 레딩은 굳이 내년을 계산하지 않더라도 마운드에 오르면 최선으로 승리를 위해 던지는 선수라는 느낌을 줍니다. 투수에게 승패는 늘 하늘의 뜻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