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진씨는 구원받은 후 율법순종을 하여야한다고 말하면서, 이 율법은 도덕법이라 하였고, 또 더 나아가서 이 순종하는 율법으로 남겨진 것은 바로 십계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즉, 십계명은 도덕법으로서 구원받은 자들이 소위 조사심판과 최후의 심판을 위하여 순종하지 않으면 안될 법이라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여타 다른 모든 법은 의식법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달리셨을 때 모두 폐하여졌다고 한다.
따라서, 그의 주장에 따르면, 성경, 즉 구약의 모든 율법은 폐하여졌으되, 모세의 십계명만은 폐하여진 것이 아니라, 순종할 율법으로서 남았다는 논리가 된다.
다른 표현으로 의식법은 모두 폐하여졌으니 순종할 것이 없으며, 도덕법은 여전히 살아 있으니 지켜야한다는 것이며, 이 도덕법은 십계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유대의 율법이 과연 의식법과 도덕법으로 분류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너무도 명백하게 그런 분류는 유대의 법에 없다.
유대의 법은 의식법과 도덕법으로 하지 않고, '적극적인 계명(Positive Commandments)'과 '소극적인 계명(Negative Commandements)'로 분류되고 있다. 이를 다른 표현으로 말하자면, '해야되는 법'과 '금지하는 법'의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금지하는 법', 금지된 행위에 관한 계명의 수효가 365 개 라는 것이다. 일년의 날 수와 같다. 따라서 나머지 해야되는 법은 248개의 계명을 갖고 있다.
유대의 법은, 즉 유대의 율법은 의식법과 도덕법이 아닌, 행해야 하는 항목들과 행하지 말아야 할 항목들로 분류된다.
결국, 성경, 구약 성경의 율법에 관한 기본적 진리를 왜곡하여 가르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주님도 또 제자들도, 사도 바울도 모두 바리새인들과 유대교의 유대인들에게 경고하기를 율법을 지킬 것을 주장하려거는 율법의 모든 것을 지키지 않으면 율법을 어기는 것이라며 그들을 경고하신 것이다. 즉, 율법을 지키고자 했으면, 율법의 일점 일획도 빼거나 더하지 말고 지켜야 하는 것임을 말씀하고 그렇게 해야한다고 경고하셨다. 더우기, 주님도 사도들도 오직 '십계명'만을 제시하며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한 곳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오직 율법과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아래의 말씀의 부분은 유대인들의 율법, 613개의 Mitzvot로 된 Halakha의 일부를 말하고 있는 구약 성경의 말씀의 부분이다.
레위기 18:4-6
너희는 나의 법도를 좇으며 나의 규례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 나는 여호와니라
너희는 골육지친을 가까이하여 그 하체를 범치말라 나는 여호와니라
이 말씀 뒤에 기록된 율법의 조항들은 6절의 말씀에 해당하는 내용들인 골육지친과의 간음, 즉 근친상간에 대한 법조항들이다.
이것은 결코 의식법일 수 없다. 이것은 매우 강한 도덕에 해당하는 법조항들이다.
이 법조항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결코 어길 수 없는 법조항들인 것이다. 비정상적인 사람들, 즉 도덕관념이 없는 자들이 범하게될 법조항들인 것이다. 이웃의 아내를 탐하는 정도가 아니다. 십계명의 일곱번째 계명보다 매우 구체적으로 그 대상을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십계명만이 순종할 마지막 율법인것처럼 말할 이유를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말씀이라고 하겠다.
레위기 18장의 7 절 부터 23절까지의 내용을 보라. 이 조항들은 결코 폐하여질 어떤 의식에 관한 법이 아니다.
유대의 율법서에 있는 모든 율법이 폐하여진 것이 아니다. 이 율법은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주님의 십자가에 의하여 성취되었다, 혹은 완성되었다, 혹은 만족케 되었다고 해야 하는 것이다. 결코 폐하여진 것이 아니다. 의식법으로 분류하여 폐하여질 율법은 없는 것이다. 율법을 지키고자 한다면, 아니 순종하고자 한다면, 613개의 모든 조항에 다 순종하여야 할 것이다. 십계명만을 말할 근거가없다.
십계명을 지킬 율법으로 유일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모순이 되는 것이다. 십계명은 단지 도덕법이 아니다. 그래서 순종할 법으로 남은 하나님의 법이 아닌 것이다. 십계명은 매우 우둔하고 어리석은 광야에서의 이스라엘을 일깨우기 위한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모세는 이 십계명을 근거로 유대의 지켜야할 모든 율법의 조항을 완성하였다.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 율법을 완성하신 것이다. 결코 폐하여질 율법이 아니다.
요한복음 7:19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
야고보서 2: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열왕기상 2:3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모세의 율법을 순종하고 따르려거든 기록된대로 모두 지켜야 할 것이다. 그래야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여 질 것이나, 만약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심판하실 것이다.
저들은 예수님의 반문에 대해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저들 또한 인간인지라 그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은 생각 않고, 마치 예수께서 안식일을 범한 냥 단정하고 있으니 저들과 다를 바 뭐 있겠냔 말입니다. 앞뒤 꽉 맥힌 사람처럼 굴지 말고 좀 상식적으로 생각하십시오! 여기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불을 피우기 위해 산에 나무를 하러갔다면, 그대가 보기엔 분명 이 사람은 안식일을 범한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엔 그렇지 않다 하실 수도 있단 예깁니다. 성령이 어쩌고 생명이 어쩌고를 논하면서 정녕 그걸 모르겠더이까?
왜 하나님 보시기에 그렇지 않다 하실 수 있다고 하시는지요? 그 근거는 어디에다 두고 하시는 말씀이신지요? 안식일은 쉬라했으며, 거룩히 지키라했습니다. 자신의 인간적인 삶을 위하여 안식일을 범하지 말라는 뜻이지요. 그 인간적인 삶은 하나님의 삶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또 의지하지 못하는 자가 안식일에 하지 말라는 일을 함으로 안식일을 범하게 되는자가 아닐런지요?
생명이 어쩌고, 성령이 어쩌고와 안식일에 관한 문제를 연관지어서 상대를 시험하고자 하는 그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리스도 예수를 믿고 구원받고 거듭난 자가 받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과 그로 인하여 받은 하나님의 생명을 살기에 굳이 별도의 안식일이 필요없어졌으며, 우리를 제한하고 통제하는 율법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할 필요도 없어졌습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것도 성령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
생명이 어쩌고, 성령이 어쩌고와 안식일에 관한 문제를 연관지어서 상대를 시험하고자 하는 그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리스도 예수를 믿고 구원받고 거듭난 자가 받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과 그로 인하여 받은 하나님의 생명을 살기에 굳이 별도의 안식일이 필요없어졌으며, 우리를 제한하고 통제하는 율법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할 필요도 없어졌습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것도 성령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우리를 제한할 뿐입니다.
북극곰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무엇때문에 그분의 복음 가운데 있게 하셨으며, 무엇때문에 우리를 구원하셨고, 무엇때문에 우리에게 하나님 자신의 생명을 주셨다고 생각하십니까?
뭔 딴소리를 늘어 놓는게요? 내가 미첬소? 상대를 시험하게? 내 예긴 생명이 어쩌고, 성령이 어쩌고를 죽창 입에 달고 있으면서 안식일에 하는 일에 대해 죄를 물을 수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는 사실 쯤은 왜 생각해볼 여유는 갖지 않고 무슨 잔말이 그리 많으냔 말입니다. 그 근거는 4복음서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안식일에 행하던 일이 죄에 속한 것이었는지, 아닌지를 누가 누구에 대하여 판단을 하였든가요?
그리고 하나님의 생명을 살게되면, 우째서 필요없어진게 4게명 뿐이던가요? 나머지 역시 굳이 필요없어야 형평성에 맞지 않으냔 말입니다.
당연하지요. 그 계명은 우리가 살도록 하는 계명이 아니라, 우리를 심판하고, 우리의 죄로 인하여 죽을 이유를 제시한 계명들이기 때문입니다. 북극곰은 주님을 영접하여 죄사함 받았다는 것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갖고 있습니까? 죄사함을 받은 것이 어떤 죄를 사함받았다고 생각하시기에 여전히 율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