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저녁 밥숟갈 놓자마자 세상 모르고 내처 잤어.
모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 계란찜을 만들어 아침을 먹였어. 새우젓도 넣고 파 마늘에 맛살도
넣었더니 그런 대로 맛이 괜찮아. 맛있게 먹는 아이들 보니 갑자기 미안해져. 아침마다 새로
운 반찬 한 가지라도 준비해서 먹이면 아이들이 살도 오르고 좋으련만 여간해서는 그렇게
되지를 않네. 게으르고 아침잠이 많아서 말이야.
저녁에는 1층 아줌마가 작년 가을에 직접 주운 도토리로 쑤었다며 도토리묵을 올려보냈어.
만져보니 쫀득쫀득하고, 손가락으로 톡 치니 찰랑찰랑해. 떫지도 않게 잘 쑤었네. 밭에서 뜯
은 상추, 깻잎, 쑥갓을 넣고 조선간장을 쳐 살살 까불거려서 먹었어. 김씨들은 원래 도깨비
들이라서 묵을 좋아한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애들도 묵을 워낙 좋아해.
잘 먹으며 오늘 하루 넘겼지만 꼬박꼬박 때맞추어 먹는 일, 먹이는 일은 참 벅찬 일이야.
나처럼 꾸준하지도, 한결같지도 않은 비성실자로서는.
5월 31일 토요일. 볕 쨍쨍.
토요일이야. 어제 오후부터 끓이기 시작한 사골이 제법 뽀얗게 우러나서 아침에는 사골국을
먹여 학교에 보냈어. 미리 건져놓은 사태와 스지(이거 일본말 아닌지 몰라)를 썰어 넣어 주
었더니 맛있나 봐. 입 짧은 건희도 군소리 없이 제법 먹네.
아침 먹은 설거지조차 못했는데, 12시 되기도 전에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 소리가 창문
너머에서 조잘조잘 쨍알쨍알 들려. 얼른 슬리퍼를 꿰어 신고 나가서 맞아들였어. 소영이는
나를 보자마자 옆집 5학년 짜리 미소랑 냇가에 나가 다슬기를 잡기로 했는데 가도 되느냐고
허락해달라네. 다슬기라고? 아, 다슬기 잡는 거 나도 좋아하는데. 그거 엄청 재미있는데. 맞
아. 여기 냇가에 다슬기가 많다는 말을 아줌마에게 듣고서는 언제 나도 한 번 가야지 하고
벼르던 참인데.
맡아 하던 일은 건네주겠다고 약속한 기한 이미 지나도 생각대로 잘 풀리지 않아 골머리 싸
매며 끙끙거리는 처지지만, 오늘은 토요일이라 어차피 독촉전화도 오지 않을 테고 또 마무
리지어 보낸다 해도 다 퇴근한 마당에 소용없는 일이지, 뭐. 그래, 가자. 나도 같이 가자. 아
이들이 좋아라하며 와아, 함성을 질러.
점심을 먹이고 나서 손잡이 달린 그물( 이거 이름이 뭔지 모르겠네), 물고기나 다슬기 담을
통 따위를 챙겼어. 혹시 깨진 유리조각에 발 베일까봐 신발은 물 속까지 신고 들어갈 여름
샌들로 신기고. 시냇가까지 가는 길에 아이들은 들떠 소리 높여 카랑카랑 떠들어대고, 종종
폴짝 뛰고 신났어. 다행히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아 물이 얕아. 물이 깊으면 조그마한 건희가
물에 꼬꾸라져 처박힐까 봐 걱정되어서 아무 짓도 못할 텐데 말이야. 물가에 이르러 보니
올 봄에 깐 새끼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니네. 예쁜 것들.
아이들은 다슬기를 잡고 나는 물고기를 잡는데 아, 이 냇가 참 푸지네. 별의별 고기들이 많
아. 피라미, 참붕어, 모래무지, 줄종개, 가는돌고기, 또 이름조차 모르는 것들도 많아. 물고
기를 잡다가 나도 아이들 곁으로 가서 다슬기를 잡았는데 어느 돌멩이를 들추니까 휙 하고
무엇이 도망가는데 아, 징거미야. 징게미라고도 하는데 표준말로는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
겠어.
어릴 때 살던 고향 동네 냇가에는 다슬기도 없고 피라미조차 없었어. 동네 아래 어디
쯤 물 막은 큰 보가 있어서 물고기들이 위로 올라오지 못한다고 하더라고. 맨 붕어, 중태기,
미꾸라지, 물방개만 있었지. 그래서 버스 타고 멀리 남원 요천강에 어머니랑 다슬기 잡으러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처음 징거미를 보았어. 처음 보는 것이라 신기하더라고. 민물새우와
가재의 중간쯤 생긴 모양새인데 길다란 집게발에 막상 집게는 아주 작아서 보기에는 좀 우습
게 생겼어. 그 징거미를 근 30년만에 보나 봐. 이 냇가는 좁고 얕아서 우습게 봤더니 징거미도
사는구나.
작은 돌멩이보다 큰 돌 아래에 다슬기가 많아서 마음먹고 두 발로 떡 버티고 어느 큰 바위를
힘겹게 뒤집었는데, 뒤집어놓고 보니 노란 알들이 손바닥 넓이만큼이나 다닥다닥 붙어있
는 거야. 부화할 때가 다 되었는지 알 속마다 몸뚱이를 흔들면서 까만 점 두개씩 박힌 게
나를 일제히 쳐다보네. 살려달라고. 뭐, 살려준다고 하더라도 저희 아버지가 용왕님도 아닐
테고 별 볼일도 없을 거면서. 알 속에 있어서 무슨 일이야 없을 테지만 혹시 숨이라도 막힐
까 봐 손으로 냇물을 끼얹으면서 아이들을 불렀어.
"야! 이거 봐, 알이다. 알!"
아이들이 참방참방거리며 달려와 이야! 이야! 탄성을 내지르며 봐. 이런 것은 나조차 처음
보는데 애들이야 당연히 처음이지. 물론 티브이에서야 보았겠지만 말이야. 오죽 신기하겠어?
애들이 더 보려고 하는걸 말리며 도로 제 자리에 얼른 엎어놓았어. 혹시라도 나 때문에 알
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지만 곧 제 어미가 돌아와 열심히 지느러미 흔들
어대며 소독도 하고 깨끗한 물 뿜어주며 돌보겠지. 어련히 알아서 키워낼까. 사람이든 짐승
이든 어버이 된 성질이야 타고나는 것인데.
쓸데없이 걱정하지 말자.
잘 살 거야.
잘 커서 온 냇가 다 휘젓고 다닐 거야.
집에 들어서자마자 젤리 담겼던 플라스틱 통에 다슬기, 징거미, 물고기를 넣고 예전에 수족
관에 쓰던 기포발생기를 찾아서 얼른 꽂아주었어. 산소가 많아지니 좋다고 난리네. 이미 죽
은 물고기는 건져내어 매운탕을 끓였어. 애들이 하도 먹어보고 싶다고 해서 말이야. 물이끼
범벅된 아이 둘 샤워시키느라고 몸도 곤한걸 참으며 힘들게 끓여주었더니 국물만 몇 숟갈
뜨고는 안 먹어. 내 그럴 줄 진작에 알았지. 먹지도 않을 거면서 괜히 귀찮게 하고 난리야.
6월 1일 일요일. 화살볕.
상추는 자꾸 크는데 우리 세 식구가 먹어봐야 얼마나 먹겠어? 뜯어먹는 게 상추 크는 속도
를 미처 못 따라가니 저희들끼리 얼크러져 빽빽하게 붙어서 가랑이 사이 바닥으로는 햇빛도
비치치 않고 바람도 들어가지 않으니 종내 짓물러 주저앉았지. 지금 손봐주지 않으면 다 곯
아서 하나도 먹지 못하겠다 싶어서 반이나 솎아 그냥 버렸네. 아깝게시리.
나도 그렇고 애들도 그렇고 요즘 계속 목 감기를 앓아. 여간해서는 떨어지지를 않고 이번
감기가 오래가네. 기관지 질환은 환경이 중요하다는데 먼지가 많아서 그런가 싶어 작정하고
모처럼 청소를 했어. 으으, 이 노랑 가루들. 소나무 꽃가루는 송화 가루라고 하니까 잣나무
꽃가루는 잣나무 백柏자를 써서 백화가루라고 해야 하나? 어쨌거나 간에 그 꽃가루가 날아
들어와 책상 위에건 티브이 위에건 식탁, 거실 바닥, 세금 고지서, 애들 노트, 싱크대, 계단,
구석구석 틈바구니에까지 앉아 온 집안이 다 노랗네. 청소기 밀고 나서 일일이 닦고 소파에
소파천도 말아 씌우고 나니 갑자기 다른 집이 되었어.
"소영아, 우리 집 참 넓고 좋다 야, 그지?"
소영이도 기분이 개운한지 흐뭇한 표정이야. 청소 자주자주 해야지. 청소를 자주 안 해서 아
픈 거라면 아득바득 실랑이하며 먹이는 게 다 뭔 소용이야.
오후 늦게 침대에 누워 잠깐 눈 좀 붙이려고 했더니 전화가 와서 잠 다 깨고 에이, 일찌감치
저녁이나 먹고 치우자 싶어. 평일이야 학교에서 단체급식을 하니까 대충 먹여도 된다지만
일요일에는 특식을 먹이고 싶어서 여러 가지 재료를 미리 준비해두었어. 밥 짓고, 메추리알
삶아 까 넣어 돼지고기 삶은 데 섞어 장조림도 만들고, 야채 씻어 넣어 도토리묵도 양념하고,
애들이 먹고싶다던 게 세 마리 손질해 삶는데 갑자기 콧물이 주르륵 흐르네. 앗! 하며 손으로
막고는 이상해서 손을 보니 피야. 에이, 홀아비가 밤에 힘쓸 일도 없는데 웬 코피를 다 쏟냐
그래? 쏟을 만해서 쏟는다면 억울하지나 않지.
일기를 그래 열심히 쓰니 코피가 나지. 살살 써요. 징거미 그거 어항에 같이 넣으면 작은 물고기 꼬리 다 잘라먹어 . 그녀석들이. 그라고 손잡이 달린 그물은 반두야. 천렵의 필수품이지. 이제 가장자리 추 줄줄이 달린 둥그란 그물만 사면 되겠구만. 상추를 뭐할라고 그리 많이 심었수. 홍당무 심어. 그게 젤 이뻐,
징거미는 따로 격리시켰수. 꼬리지느러미 잘린 물고기 한 마리 생기길래 바로. 상추는 딱 네 줄만 심었수. 우리 먹을 거. 그리고 불시에 찾아올 손님이 따갈 만큼까지 속셈하고. 찾는 이 없어서 문제지. 계산착오야. 그리고 홍당무는 땅이 걸어야 해. 이 땅은 너무 거칠어서 안 돼. 버글거리는 모래땅이거든.
첫댓글 노래좋네. 진짜루...다슬기도 좋아할겨.
아름다운 너무나도 아름다운 풍경들.
일기를 그래 열심히 쓰니 코피가 나지. 살살 써요. 징거미 그거 어항에 같이 넣으면 작은 물고기 꼬리 다 잘라먹어 . 그녀석들이. 그라고 손잡이 달린 그물은 반두야. 천렵의 필수품이지. 이제 가장자리 추 줄줄이 달린 둥그란 그물만 사면 되겠구만. 상추를 뭐할라고 그리 많이 심었수. 홍당무 심어. 그게 젤 이뻐,
징거미는 따로 격리시켰수. 꼬리지느러미 잘린 물고기 한 마리 생기길래 바로. 상추는 딱 네 줄만 심었수. 우리 먹을 거. 그리고 불시에 찾아올 손님이 따갈 만큼까지 속셈하고. 찾는 이 없어서 문제지. 계산착오야. 그리고 홍당무는 땅이 걸어야 해. 이 땅은 너무 거칠어서 안 돼. 버글거리는 모래땅이거든.
그리고 일기는..... 나를 지켜주어. 일으켜세워주어. 아니, 더 이상 자빠뜨려지게 가만 손놓고 있게 하지는 않아. 스스로 정리가 많이 되고, 하여간 그래. 좋아.
야금 야금 맛보는 나도 조아.^^ 히~! 그리구 이 음악이 종일 귀에서 딩딩딩딩 두루루루 해싸서 개로아.
나도....이노래 여러명 개로피네.....
징거미고 물고기고 다 도로 개울에 풀어줘. 그거 잡고있어봐야 뭐해. 먹지도 않을거. 라이프 이즈 딩가딩딩딩도동동 그러면 좋겠어, 일기쓰는 인간하고 가계부 쓰는 인간하고 난 안 친하고싶어. 너무 부지런해보여서...내가 쫄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