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기에 이단과 분파주의
모든 영적 각성시대가 그렇듯이, 12세기에도 보편교회의 위계구조와 교리적 틀에 맞지 않는 그러한 운동 중 일부는 전통적으로 기독교 신앙이라고 불려온 것에서 매우 벗어났다. 어떤 운동은 자격이 없거나 무관심한 교회 권위자에게 복종하지 않으면서 더 깊이 있는 신앙생활을 영위하려 했다. 발도파를 제외하고
이 모든 운동은 비슷한 결과를 낳았다. 교회로부터 정죄되고 당국의 박해를 받아 결국 사라졌다.
발도는 리옹의 상인이었는데 가난과 복음전파에 전념하며 살기로 했다. 곧 같은 이상을 품은 추종자들의 무리가 생겨났다. 리옹의 귀샤르 대주교가 그들이 설교하는 것을 금지했으므로 발도와 추종자들은 로마에 항소했다. 그들이 청빈 서원을 유지하는 것은 허락되었지만 지역 교회 당국자의 공식적인 허가 없이 설교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리옹의 대주교가 여전히 그들을 반대하여 설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으므로 발도와 추종자들은 그를 무시하고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주신 사명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밀고 나가기로 했다. 그 결과 그들은 1184년에 메로나 공회에서 정죄되었다. 유럽 전역에서 정죄되고 박해받은 발도파는 알프스의 외딴 계곡에 정착했는데 지금도 그곳에서 그의 추종자들이 발견된다. 13세기에 비슷한 운동들 특히 롬바르드의 빈자들이 박해를 피하여 발도파와 합류하면서 로마에 대한 반감을 도입했다. 16세기에 그들은 칼빈주의와 접촉하여 그들의 기독교를 채택했다. 그리하여 그들이 가장 오래된 개신교회가 되었다. 12세기의 발도파가 준 충격과 13세기에 프란치스코파가 준 충격은 흡사하지만 후자가 기성교회의 울타리 안에 머물렀다는 점은 예외이다.
교회는 다른 조직의 교리들도 정죄했다. 이것들은 평신도들 가운데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학자들과 수도사들 가운데서 생겨났고 대체로 하나님과 세상의 관계와 관련된 것이었다. 그 중 가장 영향력이 큰 것은 피오레의 요아킴의 가르침이었다. 칼라브리아 출신의 요아킴은 시토회 수도원장이었다. 후일 그는 피오레에 수도원을 세우고 관상과 성경연구 특히 계시록을 연구하면서 살았다. 그는 1202년에 사망했을 때 성인으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13세기에 신학자들이 그의 교리를 공격했다.
요아킴의 신학이 후대에 영향을 끼친 가장 큰 점은 삼위 일체의 3위를 역사의 세 단계와 연결하려 한 방식이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역사는 세 단계로 전개된다. 첫 단계는 아담과 함께 시작되어 그리스도에게서 끝난다. 둘째 단계는 그리스도에서부터 1260년까지이다. 마지막 단계는 1260년 이후부터 종말까지이다. 첫 단계는 성부의 시대요. 둘째 단계는 성자의 시대요. 셋째 단계는 성령의 시대이다.
피오레의 요아킴은 살아있을때 정죄되지 않았다. 13세기에 제 4차 라테란 공의회에서 그의 삼위일체 교리가 공식적으로 거부되었다. 그때 그의 역사 도식이 교회와 사회 전체의 삶에 미칠 영향을 깊이 생각한 사람이 없었던 듯하다. 수도의 총회장인 파르마의 요한을 포함하여 프란치스코회 엄격주의파가 이 역사 도식을 취하여 교회 및 다른 수도회를 대항하여 성령 시대의 대표자가 되었으므로 보나벤투라와 같은 교회의 권위자들은 요아킴주위의 광범위한 영향력에 직면해야 했다.
12세기의 가장 중요한 이단은 카타리파 또는 알비파였다. 이 교리에 관해서는 그것이 십자군과 동방을 여행한 여행자들이 서유럽으로 들여온 보고밀파에서 파생되었다는 것 외엔 알려진 것이 없다. 어쨌든 11세기에 서유럽의 선구자들이 있었지만 알비파 운동은 12세기의 현상이었다. 1179년에 제 3차 라테란 공의회는 그들을 대적하여 십자군을 소집했고 1181년에 십자군 원정이 있었다. 13세기 이노센트 3세 때 알비파를 대적한 대규모 십자군 원정이 있었다. 여기에서 종교 광신과 정치적 야망이 결합하여 잔인한 행동으로 나타났다. 알비파를 대적하여 가장 특징적인 형태의 종교재판이 전개되었다. 성 도미니크는 이단자들을 다루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설득이라고 확신하여 설교자 수도회를 세우려 했다. 극단적인 형태의 카타리파는 상반되는 2개의 영원한 원리 ㅡ선과 악이 있다ㅡ를 주장한다. 창조는 선의 원리인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 그 적인 악의 원리의 것으로 간주한다. 영들은 선의 원리에 속하지만 악한 세상의 물질 속에 갇혀 있다. 이 갇힌 영들은 일련의 연속적인 환생을 통해서 물질에서 해방되어 오랜 순례의 마지막 단계인 완전한 신자 안에 거할 수 있게 된다. 완전한 신자들은 엄격한 금욕생활을 해야 하는데 단순한 듣는 자에게는 그것이 요구되지 않는다. (여기에 마니교와 비슷한 점이 있다.) 알비파의 의식에서는 물질에 대한 반대를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와 성상과 상징 등의 사용에 반대한다. 그러나 그들은 함께 모여 성찬식을 행하면서 떡을 뗀다. 물질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그들의 기독론에서도 발견된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보여 주기 위해서 육신을 취한 천상의 존재라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12세기 서방 기독교에 대해 살펴보았다 12세기를 다루면서이 시대가 매우 혼란스러운 지적활동과 경험의 시대였다는 인상을 받는다. 고딕식 성당의 기초가 놓이는 동안 중세 스콜라주의 높은 첨탑의 기초가 놓이고 있었다.
후스토 곤잘레스, "기독교 사상사", 엄성옥 역,
은성출판사(서울: 2020), 333-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