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나를 사랑한 비보이,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등장인물 : 비보이 준영
발레리나 더블레스
<더블레스>
5년만의 귀국길이다
발레리나로서는 약간 늦은 나이에 나는 러시아 볼쇼이 발레학교로 유학을 떠났었다.
한국에 왔다가 우연히 나의 공연을 본 볼쇼이 스카우터가
부모님께 적극적으로 권유해 이루어진 유학이었다.
하지만 유연하고 아름다운 어린 소녀들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내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넌 아주 특별해. 기술적인 면에서는 조금 늦지만 이름처럼
너의 바디라인은 환상적이야. 조금만 더 기술을 연마한다면 그 얼굴에 그 몸매에
주인공 섭외가 쏟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 될거야" 라고 격려해준 주위 관계자들의
진심어린 충고에 나는 희망을 버리지않고 있다.
오늘 처음으로 10일간의 휴가를 한국에서 보내고자 귀국하는 길이다
<준영>
우왕~~~~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Red Bull BC One 대회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보이들이 빠짐없이 참가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비보이 댄싱에 미쳐있었다. 비보이팀에 합류해서 연습했고 기량도
좋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나의 큰 키가 팀밸런스 맞추기에 방해가 되어 공연에서는
제외되기가 일쑤였다.
어쩔수 없이 일인댄싱을 땀 흘리며 연습했다.
일반적인 팝핀보다 락킹(락으로 이루어진 즉흥스텝)이내게 맞았다.
개인역량을 겨루는 이번 러시아대회에 그동안 알바로 저축해둔 나의 피같은
자비로 관람을 갔다가 지금 귀국하는 길이다.
아! 꿈의 무대... 나도 언젠가는... 꼭!!!
창가에 위치한 내 자리를 찾아 두리번 거리는데...
허억~~~ 내 숨을 멈추게한 그녀..가 내 옆 좌석에 있다.
*.*.*.*.
준영이 배를 움켜쥐고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
꽤 심각해 보여서 "승무원을 불러드릴까요?"라며 더블레스가 물어보았다.
"아아뇨, 화장실만 다녀 오면... 실례지만... 좀 나갈께요"
준영은 두 번 더 화장실을 다녀 온 후에야 진정이 되었다.
"저..노로바이러스라고.. 혹시 아세요"
"노로?? 아~ 네에..."
둘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준영은 친화력이 강한 편이었다.
준영의 솔직함, 위트에 더블레스는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었고
비보이에 관한 준영의 열정을 보았을 땐 자신의 발레에 대한 신념을
더욱 다지게 되었다.
지금까지 여자친구 하나없이 첫눈에 반하게 될 여성만을 이상형으로 꿈꾸어 왔던 준영은
더블레스를 보자마자 '그래 바로 이 사람이야...'라는 생각과 동시에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서로에 관해 이야기를 털어놓다보니 둘에게는 공통된 미래의 목적이 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발레리나와 비보이로서의 성공이 그것이었다.
인천공항이 가까웠다. 서로 꼭 할 말이 있는듯 하였으나 둘은 침묵했다.
연애를 경험해 보지 못한 둘은 자신에 대한 상대의 마음을 어떨게 확인해야 할지를 몰라 당황하기만 했다.
"저.. 4월 마지막 토요일에 홍대 앞 비보이 전용극장에서 공연이 있는데 혹시 보러와주실래요?"
준영은 더듬거리며 더블레스에게 초대장을 내밀었다. 준영으로서는 큰 용기를 낸 것이다.
더블레스는 고통에 휩싸였다. 내가 이 초대를 받아들이고 그와 시간을 함께 하다보면 아마 나는
러시아로 돌아가고 싶지않게될지도 몰라. 이 사람 곁에 있고싶어하는 나는 발레를 포기하게
될것 같아.. 안돼... 나는 성공해야만해..
"미안해요 전... 그 날짜엔 이미 러시아에 돌아가 있을거예요" 거짓을 말하는 더블레스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해서 둘은 공항에서 아쉬운 작별을 했다.
토요일...
홍대앞 비보이전용극장엔 비보이에 관심을 가진 젊은이들이 북적거리고 있다.
더블레스와의 첫만남과 이별을 동시에 겪었던 준영은 아직도 그 일이 꿈만 같았다.
다시는 그녀를 보지 못한단 말인가...
그 때 비보이 동료 태현이가 손에 커다란 상자를 건네주었다.
"이거 네 앞으로 배달 된거네... 뭐지? 풀어봐."
상자속에 아주 고급스러운 회색 비보이 하이바와 편지 한 장이 들어있었다.
"준영씨, 꼭 성공하세요. 저도 발레리나로 성공하여 준영씨 앞에 나타나고 싶어요.
준영씨도 저와 같은 마음이라면 이 하이버를 쓰고 춤추어주세요. 더블레스.."
준영의 눈자위가 뜨거웠다. '아아 그녀도 나를 사랑하는거야. 그래 우리의
만남을 앞당기기 위해 난 지금보다 몇 배 더 많이 노력할거야...'
무대위의 준영은 신들린듯이 춤을 추었다. 그녀가 준 하이버를 쓴 헤드스핀의 회전은
더 빨랐고 시원시원한 에어트랙과 절도있는 프리즈 동작에 관객들은 매료되어 환호를
보냈다.
준영의 공연을 더블레스는 무대 뒤쪽에서 눈에 띄지않게 훔쳐보았다.
준영이 자신이 선물한 하이바를 쓴 것을 보고 그의 마음을 확인하였다.
얼굴이 달아오르고 기분은 날아갈 것만 같았다.
일년 후...
비보이로서 어느정도 인지도를 높인 준영은 '짝'이라는 TV 프로그램에 나가게 되었다.
오직 더블레스만을 그리는 준영에게 남녀커플을 이어주는 이 프로그램은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잘 생긴 외모의 준영이 시청률을 올릴것으로 계산한 개미 PD는 준영에게 다른 출연자
보다 세배에 가까운 출연료를 제시하며 유혹하였다.
"이건 그냥 프로그램일 뿐이니 부담갖지마 임마. 사실, 방송후 실제로 데이트하는 커플은
하나도 없어. 그러니 한 번만...응?" 준영은 친구의 누나인 개미PD의 청을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처음이라는 이름의 여성과 상대가 되어 데이트를 하게 되었다. 활달한 성격이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준영은 프로그램을 위해 처음이라는 여성과의 데이트에 최선을 다 했다.
하지만 마음은 더블레스와의 데이트를 상상하고 있었다.
한가지 재미있는것은 처음이라는 여성은 무슨 영문인지 너로구나라는 닉을가진 아주 귀여운
한 여성출연자를 ss라고 우기며 광분하고 있었다.
'ss..라니... 나의 더블레스를 떠올리는 이름이다.'
'그녀의 성공... 나의 성공....그 때가 언제쯤일까?
아아.. 나의 이야기에 잔잔히 귀기울여주던 그녀가 오늘은 더 절실히 보고싶다.
더블레스.. 잘 있는거지? 내 생각..하고 있는거지?
난..오늘 밤도 그녀를 꿈속에서 만날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