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방송이 수해모금 방송인가 뭔가로
한 주 죽었습니다.
31일 방송물 녹화를 지난 금요일 토요일 등촌동에서
촬영했습니다. 주인공은 서른여덟살의 두아이의 엄마로
만화가입니다. 하반신을 쓸수없는 1급 장애인입니다.
큰아이는 열네살, 작은 애는 일곱살....
아버지는 다릅니다.
서른 여덟의 삶에 참으로 슬픔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취재를 하다 우연히 왼쪽 손목에 깊게 나있는 자상을
봤습니다. 왜 그랬냐고 물으니까 말이 없더군요...
스물셋에 부모모르게 가출을 했고 동거를 했습니다.
결혼도 하지않고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녀의 집안은 충청도 안동김씨.
아주 양반집안이고 아직도 시골에선 유교적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런 집안이 안동 김씨 문중입니다. 게다가 큰 딸...
집안에서 쫓겨나고 2년만에 다리를 못쓰게 됐습니다.
척추통증으로 고생하다 수술을 했는데 그 이후로 다리를
못쓰게 됐다고 합니다...
그 이후 결혼을 한번 했는데 둘째를 낳고 또 헤어졌습니다.
정부에서 주는 생활보조금 28만원이 지금 삶의 전부였습니다
만화는 돈을 해결하기위해 시작했다기보다는 어렸을때부터
꿈이었는데 지금에서야 시작한 것입니다. 2년전에...
지금은 여기저기에 삽화를 그려주고있는데 돈을 받지는
않습니다. 큰아이는 열네살로 아들인데 키가 176에 몸무게가
83kg나 가는 거구였습니다. 사춘기라서 그런지 무척 반항적
인 말투와 행동을 하는 아이였는데 여리기는 여자아이들보다
더 여린 친구였습니다.
다행인것은 이 놈이 효자라는 겁니다. 어머니와 같이 만화를
그려서 전국만화페스티발에서 1등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출연자와 인터뷰를 하면서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집에서 쫓겨나고 아무도 모르는 서울에서 그것도 걷지도
못하는 몸으로 아이를 키워왔던 자신을 10년동안 묵묵히
뒷바라지해준 어머니때문이었습니다.
그녀 자신이 우리 프로그램에 출연을 결심한 것도
평소 표현에 익숙하지 않은 자신의 성격때문에 어머니에게
10년동안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해보지 못했기에
방송을 계기로 어머니에게 그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그 동안의 설움이 복받쳐서 그랬을까요?
어머니에게 고맙다는 인터뷰를 하는 중간에 출연자는
그동안의 울음을 다 토해냈습니다. 나도 울고 조감독도
울고 카메라맨도 울었습니다.
그녀는 많이 독해져있었습니다. 독신녀로, 두아이의 엄마로
또 장애인으로 살려면 어쩔수가 없었겠지요...
10년동안 아무에게도 눈물을 보여준적이 한번도 없었답니다
그래서 그에겐 더욱 그 눈물이 애절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소변을 볼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요도를 통해 방광으로 관을 넣어서 소변을
뽑아냅니다. 다리엔 소변팩이 달려있습니다.
그 분의 상황은 겉으로 보기보다는 더욱 안좋습니다.
신부전증의 기미까지 있습니다.
그 분이 그린 그림은 서른 여덟의 산전수전 다 겪은 분의
그림이라고는 밑기지않을 정도로 깨끗합니다.
그림들이 너무 예뻐서 꼭 중학생이나 여고생이 그려놓은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인생을 받아들이려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혼자서 너무나 힘겨워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생명을 유지시켜주었다고 말합니다.
그녀는 이제 결혼생활은 못한다고 합니다. 소변줄을 빼는
순간 방광내에 소변역류가 일어난답니다.
그러면 신부전증이 급속히 진행되기때문입니다.
여자로서의 생은 끝났고 어머니로서의 삶만 남았다고
담담히 말합니다. 서른 여덟의 나이에 말입니다...
취재가 끝나고 10평도 채안되는 임대아파트를 나서며
그녀의 자상이 깊은 왼손을 꼭 잡았습니다.
"앞으로 절대 이런 짓 하지마세요..."
엘리베이터를 내려오며 우리 촬영팀은 서로 한마디도
안했습니다. 여의도까지 올때까지 차안에서 담배들만
피워댔습니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소주를 2병사서
카메라맨과 조감독과 마셨습니다.
내가 이 직업을 택하지않았다면 평생을 만나지 못할수도
있는 사람일 겁니다. 그 만남이라는 것을 본다면
난 내 직업에 아주 만족합니다. 하지만 슬픔은 만나고
싶지않습니다. 왜인가하면 그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이
모두 내게로 오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마찬가지일 겁니다. 취재가 끝나고
돌아갈때면 발길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지금가면 언제올지 모르는데..."
소주를 하면서 카메라감독은 가끔 그곳에 들리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말을 믿지 않습니다.
----------------이 분은 현재 '사랑의 카네이션'을 맡고 있는데
이글은 그분의 개인 홈피에서 옮겨왔습니다.
카페 게시글
자유게시판
삶이야기
내 직업은 보람보다 슬픔이 많다.------- 어느 PD의 고뇌
mw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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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8.21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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