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서예자료[1072]삼희당첩《三希堂帖》
삼희당첩《三希堂帖》
중국 청나라 때 양시정(梁詩正) 등이 건륭제의 명에 따라
돌에 새긴 사적을 탑본한 서첩(書帖).
왕희지, 왕헌지, 왕순의 글씨와 위나라부터
명나라에 이르기까지 각 대(代)의 명필의 글씨가 실려 있다.
1747년에 완성된 것으로, 총 32첩이다.
三希堂
중국에서 발간 된 '자금성제후생활'이라는 사진집이 있다.
내용은 자금성에서의 역대 황제와 황후들의 생활 모습을 담았다.
사진 가운데 건륭황제의 조그만한 개인 서실 사진이 있었다.
당호 이름은 '삼희당(三希堂)'. 세 가지 보물을 간직한 곳이라는 뜻이다.
건륭황제의 세 가지 보물은 서예작품이었다.
진(晉)나라 왕희지(王羲之)의
'쾌설시청첩(快雪時晴帖)',
왕헌지(王獻之)의 '중추첩(中秋帖)',
왕순(王珣)의 '백원첩(伯遠帖)'이다.
건륭황제가 제일 애지중지한 것은 왕희지의 글씨였다.
왕희지의 '쾌설시청첩'은 대설이 내린 다음에
날씨가 화창하게 개자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인
'산음장후(山陰張侯)'의 안부가 궁금해 그 심경을 전하고자
쓴 서간문이다. 재질은 마(麻)이고
가로 14.8cm, 세로 23cm의 크기에
4행의 행서로 총 28자를 썼다고 한다.
'삼희당' 당호 아래 대련의 내용이 의미심장하다.
'회포관고금(懷抱觀古今), 심심탁호소(深心託豪素)'.
대충 말하면, '고금은 보고 안고 품으며,
깊은 마음을 호방과 깨끗함에 맡긴다'라고 할까.
첫 구절은 박학한 학자로서의 염원이고
대구는 황제로서 통치 자세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쾌설시청첩>>
<<중추첩>>
<<백원첩>>